2025년 12월호

“이젠 ‘K-캔두 이데올로기’로 행복강국 만들어야”

[인터뷰] 외교·안보·K-방산 전문가 백승주 회장의 ‘APEC 이후 韓 생존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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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지영 기자

    kjy@donga.com

        

    입력2025-11-22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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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89년 만에 국제정치 중심지 된 경주

    • “다자 회담 무도회 속에서 진행된 양자 회담 ‘칼춤’”

    • 한반도 주변이 모두 얼음과 암초…“쇄빙 외교 필요”

    • 어떤 양자관계도 소홀하지 않는 외교 스탠스

    • 원자력 연료 추진 등 K-국방 발전의 중요한 전기

    • 헌법 정신에 따라 北 ‘두 국가론’은 거절해야 마땅

    • ‘K-캔두(CAN DO)’로 산적한 국정과제 해결해야

    백승주 전쟁기념사업회장은 “한중 정상회담을 통해 북핵 문제, 서해안 구조물, 한한령(한류금지령) 해제 등 주요 현안에 대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분명한 입장을 끌어내지 못한 것이 아쉽다”고 말했다. 지호영 기자

    백승주 전쟁기념사업회장은 “한중 정상회담을 통해 북핵 문제, 서해안 구조물, 한한령(한류금지령) 해제 등 주요 현안에 대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분명한 입장을 끌어내지 못한 것이 아쉽다”고 말했다. 지호영 기자

    전 세계 이목이 쏠린 2025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11월 1일 마무리됐다. 국내에서 APEC 정상회의가 개최된 건 2005년 부산 APEC 이후 20년 만이다. 2015년 박근혜 대통령이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린 APEC 정상회의 당시 제안해 2025년 대한민국 개최를 성사시켰다.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후 처음 열린 이번 APEC 정상회의에는 주요 2개국(G2) 정상인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참석해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트럼프 대통령은 2022년 이후 3년 만, 시진핑 주석은 2014년 이후 11년 만의 방한이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와 한국을 대표하는 대기업 총수들의 만남인 ‘깐부 회동’, 이재명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의 마음을 사로잡은 ‘금관 외교’ 등 예상치 못한 외교 이벤트도 화제를 뿌렸다.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자동차 관세율을 15%로 타결하는 등 소기의 성과가 있었지만, 관세와 안보 분야의 세부 협상은 여전히 숙제로 남아 있다. 안보·외교 분야 전문가로 통하는 백승주 전쟁기념사업회장은 “신라시대 금관을 재현해 트럼프에게 선물한 것은 잘한 일”이라면서도 “이번 APEC 정상회의는 한마디로 다자 회담 무도회 속에서 진행된 양자 회담 칼춤이라고 평가하고 싶다”고 말했다. 백 회장은 정치학 박사로 한국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장, 국방부 차관을 지냈으며 20대 국회의원으로 활동했다. 2년여 동안 전쟁기념사업회를 이끌며 미국을 비롯한 각국 외교 라인과 두루 친분을 다진 점도 특기할 만하다. 이번 APEC 정상회의가 남긴 것과 이후 대한민국이 나아갈 길을 그에게 물었다. 다음은 그와 나눈 일문일답.

    “다자 회담 무도회 속 양자 회담 칼춤”이 남긴 것

    경주 APEC 정상회의가 성공적이었다고 보는가. 

    “다자 회담을 통해 자유무역을 확인하고, 국제 협력을 강조하는 메시지를 재확인해야 하는 측면에서는 아쉬움이 크다. 그러나 트럼프-시진핑 회담, 한중 정상회담이 국제사회의 눈과 귀를 압도적으로 끌어내 흥행 측면에서 성공적이었다. 경제 전쟁을 벌이고 있는 트럼프와 시진핑이 잠정적으로 일정 부분 휴전하고, 한국과 미국이 절충 협상에 도달한 것은 의미가 있다. 한반도 안보와 관련해 중국을 비롯한 참가국들이 비핵화 메시지를 새롭게 만들어 북측에 보내지 못한 것도 아쉬움이 크다. 트럼프가 깜짝 북·미 회담을 추진했지만, 김정은의 계산 앞에 좌절돼 트럼프 스스로 체면을 구겼다. 신라 멸망 후 1089년 만에 경주가 금관과 함께 국제정치의 중심지로 관심을 끈 것도 우리 외교사에 길이 남을 것이다.”



    관세 문제와 3500억 달러 현금 지원 논란으로 귀추가 주목된 한미 정상회담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나. 

    “트럼프 정부의 요구를 상당 부분 우리 측에 유리하게 수정, 합의해 한미 관계의 최대 불안 요인을 제거한 것은 성과다. 우리 군의 숙원 사업이던 원자력 연료 추진 핵잠수함 건조 합의도 중장기 K-국방 발전의 중요한 전기가 될 것이다. 회담 이후 노출된 이견 해소는 물론 합의 결과를 추진하는 디테일 협상에 더욱 정성을 쏟아야 한다. ‘금관 외교’로 지도자 간 신뢰를 회복한 분위기를 활용해 후속 회담을 신속하게 마무리해야 한다. 주요 CEO들의 ‘깐부 회동’ 등을 통해 공공외교의 효용성을 극대화한 점도 높이 평가할 만하다. 11월 5일 미국 보궐선거가 민주당 압승, 트럼프 정부 참패로 끝났다. 이로써 드러난 미국 정세 변화도 한미 관계에 녹여내야 하는 과제다.”

    노재헌 주중 한국대사는 “한중 정상회담이 국익에 기반한 실용 외교로 한중 관계를 다시 복원하는 계기가 됐다”고 평가했다. 동의하나. 

    “부분적으로 동의한다. 11년 만에 우리나라를 방문한 시진핑과 정상회담을 통해 현안에 대한 의중을 서로 확인하는 기회를 가졌다는 점에서다. 하지만 지난 10여 년간 양자관계가 깨진 적이 없으니, 복원이라는 말은 적절하지 않다. 한중 정상회담을 통해 양국 지도자 간 새로운 신뢰를 만들었다. 10년 전 박근혜-시진핑 회담 당시 한중 관계가 정점을 찍은 이후 사드 배치, 미중 관계 등으로 불편해졌는데 트럼프 외교 앞에서 암묵적 ‘동병상련 공조’를 만들었다. 북핵 문제, 서해안 구조물, 한한령(한류금지령) 해제 등 주요 현안에 대한 시진핑의 분명한 입장을 끌어내지 못한 것은 아쉽다.”

    한중 정상회담 후 중국인 무비자 입국 조치가 내년 말까지 연장됐다. 중국의 한한령도 풀리겠나.  

    “큰 틀에서 무비자 입국 조치 연장을 지지한다. 한중 정부 간 관계도 중요하지만 우리 국민과 중국 인민 간에 신뢰와 우호적 정서를 쌓는 일도 중요하다. 한한령은 중국공산당의 시혜적 조치로 풀리기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 중국 국민의 관심과 열망의 힘으로 한한령이 해제돼야 한류 사랑이 지속 가능하다. 용산 전쟁기념관을 찾는 일일 평균 외국인 관람객이 4000여 명에 달한다. 이 가운데 중국인 관광객이 압도적으로 많다. 이들 중국 관광객이 과거보다는 현재와 미래의 한중 관계를 만드는 데 건설적 역할을 할 것이다. 한한령은 시간이 문제지, 곧 풀릴 것이다.”

    한중 정상회담이 열린 11월 1일과 한미 국방부 장관이 함께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을 방문한 11월 3일에 북한군이 방사포를 발사한 것으로 확인됐다. 저의가 뭘까.  

    “북한식 축하 방법이다. 북측 영토에 근접한 헤그세스 미 국방부 장관에게 북측의 존재를 드러내기 위한 ‘치기 어린’ 축포다. 헤그세스는 보고를 받았을 것이고, 북측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북측에 겁을 먹겠는가, 도발로 분노를 느끼겠는가. 자해적인 축포다. 이후 한미 국방장관이 북측의 어떠한 도발에도 압도적으로 대응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밝혔다. 적절한 대응이다.”

    우리 경제의 암초 깨부수는 쇄빙 외교 필요

    이번 APEC 정상회의를 지켜보면서 가장 아쉬웠던 점은 뭔가. 

    “양자 회담에 쏠린 관심 때문에 다자 회담의 의제가 묻혔다는 점이다. ‘연결, 디지털 인공지능(AI) 혁신, 성장 혜택 공유’를 강조한 ‘경주 선언’이 있었지만 미중, 한중 등 양자 회담에 집중된 조명 때문에 큰 울림을 만들지 못했다. 또한 트럼프가 APEC 정상회의에 참가하지 않고 한국을 떠난 것은 주최국과 APEC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강대국 사이에 놓인 우리의 외교적 스탠스가 더욱 중요해졌다. 해법을 제시한다면?

    “이제는 강대국의 정책, 국제 정세에 적응하는 수동형 스탠스보다는 능동적으로 주도하는 스탠스가 필요하다. 전시 상황과 맞먹는 미중 관계, 냉전질서 등은 분명 우리 경제는 물론 우리의 시대정신인 통일 여건 조성을 가로막는 암초고 빙하다. 그 암초, 빙하를 깨부수는 쇄빙 외교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한미, 한중, 한러, 한일 어느 양자관계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되며 특정 양자관계를 위해 다른 양자관계를 심각하게 손상시키는 스탠스를 취해서도 안 된다. 아울러 북측이 주장하는 ‘두 국가론’을 수용해서는 결코 안 된다. 한국이 통일을 포기하고 북한에 굴종하는 듯한 패배주의적 메시지를 북한 주민과 국제사회에 심어줄 수 있다. 정부가 공식적으로 ‘두 국가론’을 받아들이면 우리 안보·외교에 엄청난 혼란을 야기하게 된다. 정부는 헌법 정신에 따라 이를 거절해야 한다.” 

    APEC 정상회의에 힘입어 한국 경제가 좋아질 것으로 전망하나. 

    “이번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관세 불확실성이 제거된 것은 무역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에 좋은 영향을 줄 것이다. 그러나 현재 우리 경제는 거시경제보다 부동산, 건설, 자영업 등 실물경제의 침체 터널이 깊고 길다. 디지털AI를 강조하지만 취업난은 상상을 초월한다. 취업지망생,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들에 하면 되고, 할 수 있다는 ‘K-캔두(CAN DO) 이데올로기’를 되새기게 해야 한다. 침체, 좌절의 사회 분위기가 장기화하면 거시경제에도 악영향을 미치는 경제 악순환이 이어질 수 있다. 사회 분위기를 새롭게 하고, 시장경제를 활성화하며, 양호한 거시경제 지표로 선순환을 일으키는 정책이 절실히 필요하다.”

    ‘K-캔두 이데올로기 어게인!’ 절실

    백승주 전쟁기념사업회장(맨 오른쪽)이 10월 26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박정희 대통령 서거 46주기 추도식에서 고인을 기리는 묵념을 하고 있다. 뉴스1

    백승주 전쟁기념사업회장(맨 오른쪽)이 10월 26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박정희 대통령 서거 46주기 추도식에서 고인을 기리는 묵념을 하고 있다. 뉴스1

    10월 26일 열린 박정희 전 대통령 서거 46주기 추도식에서도 ‘K-캔두 이데올로기’를 강조했는데. 

    “시민 자격으로 추도사를 준비하며 박정희 시대 전과 후의 현대사를 구분할 키워드를 찾다가 ‘하면 되고 할 수 있다’는 뜻이 담긴 ‘캔두(CAN DO)’가 생각났다. ‘캔두’는 박 전 대통령이 일깨워준 정신 혁명 아닌가. 나는 박 전 대통령의 고향인 경북 구미 산골에서 1960년에 태어났다. 이후 진행된 한강의 기적 등 대한민국의 거대한 변화도 최일선에서 지켜봤다. 그 변화를 만들어 낸 에너지를 ‘K-캔두 이데올로기’라 이름 지었다. K-경제, K-문화, K-방산 등 K로 시작하는 모든 긍정적 성취를 하나의 이데올로기에 담아냈다.”

    박 전 대통령은 ‘K-캔두 이데올로기’를 어떤 방식으로 활용했나. 

    “국제사회나 우리 정치권에서 ‘불가능하다고 조롱하던 국가 어젠다’를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국가 어젠다’로 승화시켰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통일부와 정신문화원 창설이다. 1·21사태 직후 야당 의원들의 건의를 받아 통일부를 창설한 것은 우리 정치인이 두고두고 재평가해야 한다. 닉슨 미국 대통령은 미군 철수로 압박하고, 1·21사태 등 북한의 심각한 도발이 일상화하는 가운데서도 박정희 대통령이 1969년 3월 1일 통일부를 창설해 통일 준비를 결단한 것은 ‘불가능한 현실에 안주하지 않으면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꿀 수 있다’는 국정운영 철학을 보여준 것이나 다름없다. 박 대통령은 당대 지식인 박종홍의 자문을 수용해 1978년 공장 지을 돈으로 ‘정신문화원’을 설립했다. 이는 K-컬처의 원석을 만든 것으로 통찰력 있는 국정 설계의 백미라는 평가를 받는다.”

    ‘K-캔두 이데올로기’가 지금 이 시점에 왜 필요하다고 보는가.  

    “대한민국은 그동안 급격한 경제성장을 이뤘음에도 국민의 행복지수가 높은 편이 아니다. 저출산 기조에 높은 자살률, 심각한 지역 불균형과 양극화, 청년실업과 부채, 4색 당파 수준 분열, 북핵 위기 등 해결해야 할 국정과제가 쌓여 있다. 상당수 국민이 이것들을 해결하기 어려운 어젠다로 인식하지만 해결할 수 있고 해결해야 한다. 그래서 ‘행복강국’을 만들어야 한다. 행복강국을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을 ‘K-캔두 이데올로기 어게인’에 담을 필요가 있다.”

    2026년 지방선거에서 외교·국방·방산 전문가로 경북도지사 후보로 거론되던데, 출마할 의사가 있나. 

    “경북도지사든, 어떤 일을 하든 가장 중요한 역량은 콘텐츠, 통찰력, 체력을 결합해 변화를 이뤄낼 능력이다. 나는 오래 전부터 1904년생인 중국 덩샤오핑의 삶과 정치 여정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 그의 정치 여정에서 가장 극적인 부분은 1966년부터 4년간 강서성으로 귀양을 가 트랙터 공장에서 일하며 중국 인민의 의식주를 해결하려는 의지와 도면을 다듬고, 수영을 통해 체력을 단련했다는 것이다. 후일 최고 권좌에 복귀해 덩샤오핑이 자신에게 준 최고 관직이 ‘중국 개혁개방의 총설계사’다. 10월 26일 추모 헌정사를 통해 나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역사적 위상을 ‘K-캔두 이데올로기의 총설계사’로 설정했다. ‘K-캔두’ 정신과 내가 지난 20대 총선에 나서며 던진 출사표 정신을 이어가겠다.” 



    김지영 기자

    김지영 기자

    방송, 영화, 연극, 뮤지컬 등 대중문화를 좋아하며 인물 인터뷰(INTER+VIEW)를 즐깁니다. 요즘은 팬덤 문화와 부동산, 유통 분야에도 특별한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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