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호

“‘연 10% 이자’로 저축하면 집 산다는 가르침에 ‘벼락거지’ 됐다”

[Special Report② | 아! 부동산…2030은 왜 분노하는가] 신혼집 임장, 고민하는 사이 2억 올라

  • 직장인 P(32) 씨

    입력2025-11-28 09: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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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1억 원을 모은 때는 직장 생활 3년 차인 2022년이었다. 교통비를 아끼고자 자전거로 서울 영등포구 신길에서 여의도까지 출퇴근했고, 모든 끼니를 구내식당에서 때웠다. 집과 회사만 다니기를 반복하니 어느덧 수중에 목돈이 생겼다. 주변에선 “뭘 그렇게까지 아끼냐”고 말했지만, 크게 슬프지도 않았다. 오히려 돈을 모으는 데 재미를 느끼고 있었다. 마침 당시는 부동산 조정장이 시작돼 서울 아파트 평균가가 30%가량 하락한 시기였다. “내 집 마련의 기회가 다가오고 있다”는 생각이 커졌다.

    부동산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때는 2021년 말쯤이었다. 당시 문재인 정부는 부동산 3법을 비롯해 연이어 부동산 규제를 시행했으나, 비웃기라도 하는지 부동산 가격이 치솟았다. ‘잃어버린 10년’이라는 일본의 경기침체를 말하며 자산 폭락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있었지만, 사실 집 없는 사람들의 바람뿐이었다. 시간이 지나서 하는 얘기지만 당시만 해도 수도권 기준 청약 분양가 6억 원 정도면 괜찮은 위치에 국민평수(전용 84㎥)로 집을 구할 수 있었다.

    지난해 결혼 상대를 만났고, 올해 중순부터 신혼집을 마련하기 위해 부동산 임장을 시작했다. 휴대폰에는 다양한 부동산 애플리케이션이 생겼다. 영등포구, 중랑구, 성남시 등 구역을 정해 주말마다 아파트를 보러 다녔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의 당선을 예상하고 “민주당 집권기에는 집값이 오른다”는 분위기가 시장을 지배하던 때였다. 

    처음 해보는 임장이었다. 하루에도 수십 명의 사람들이 집을 보기 위해 부동산 중개업소 앞에 문전성시를 이뤘다. 영등포는 여의도를 제외하고 전용 59㎥(25평형) 기준 10억~13억 원이었고, 중랑구나 구성남은 9억~10억 원 정도였다. 둘이 모은 돈과 대출에 양가 지원까지 합치면 겨우 살 수도 있었겠지만 이후 상환할 300만 원가량의 원리금이 부담됐고, 아이를 낳아 외벌이 될 경우 앞날이 깜깜하다는 생각이 들어 섣불리 결정을 내릴 수 없었다. 그러다 정부가 돈을 풀기 시작했고, 앞에 말한 부동산 가격은 반년 사이 최소 1억~2억 원이 더 올랐다. 

    국·영·수 중심 교육과정, 미래세대에 죄악

    10월 9일 서울 남산에서 바라본 서울 아파트 단지. 동아DB

    10월 9일 서울 남산에서 바라본 서울 아파트 단지. 동아DB

    임장을 다니면서 알아보니 집주인 상당수는 부모로부터 물려받았거나, 젊을 때 1억~2억 원을 주고 산 집이 자연스레 10억 원이 넘은 경우가 많았다. 그들에 비해 열심히 살지 않아 상대적 빈곤에 빠진 게 아닐 텐데, 누군가는 살다 보니 상류층이 됐다는 게 불공평하다고 느껴졌다. 보통 월급쟁이들은 1년에 3000만 원도 모으기 힘들다. 5000만 원씩 모은다고 해도 20년을 모아야 10억 원이다. 20년 뒤 아파트 가격은 안 봐도 비디오다. 어릴 때 1000원인 김밥이 지금 5000원이다. 20년 뒤 아파트는 50억 원이 돼 있지 않을까.



    무주택에서 하급지로, 하급지에서 상급지로 올라가는 사다리가 없어지고 있다는 기분이 든다. 부동산은 인플레이션의 영향을 받는 자산인 만큼 어쩔 수 없는 측면도 있다. 미국과 같은 선진국은 한국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빈부격차가 심하고, 상급지와 하급지의 차이도 더 심하다고 한다. 한국도 이제 그 갈림길에 있어서 이러지도 저리지도 못하고 있는 게 안타깝다. 

    낡아빠진 국·영·수 중심 교육과정은 어른들이 미래세대에게 저지르고 있는 가장 큰 죄악이라고 생각한다. 이제는 정규교육에서 물가와 화폐가치, 인플레이션 같은 경제 개념과 기본적인 재테크 상식을 가장 먼저 가르쳐야 한다. 기성세대가 ‘연 10% 금리로 저축하면 집을 살 수 있었다’는 기억을 기준 삼아 가르친 결과가 우리 세대다. “벼락거지가 됐다”는 말을 온몸으로 실감하는 우리는 누구보다 빠르게 변화에 적응하려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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