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고된 참패’ 앞에 국민의힘 우왕좌왕
당 족쇄 끊고 인물론으로 선거 치르려는 오세훈
가치 추구하면 덧셈 정치, 자리 탐하면 뺄셈 정치
극우 유튜버·윤어게인 세력과 완전 절연=비대위 전환

3월 9일 송언석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국민의힘 107명 의원 전원 명의의 이른바 ‘절윤 결의문’을 발표하고 있다. 뉴시스
“청중은 화자의 인격을 믿을 때 설득된다”
국민의힘은 도도하게 흐르는 국민 정서를 직시해야 한다. 국민이 생각할 때 과도하다 싶을 정도로 ‘윤어게인’ 세력과 절연하고, 당을 해체하는 수준으로 반성하지 않는 한 떠나간 마음을 되돌리기는 어렵다. 무슨 말을 해도, 어떤 방식으로 이재명 정부를 공격해도 “당신들이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느냐?”는 그 선명한 물음표가 모든 걸 압도할 것이기 때문이다.지금은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가 이재명 정부의 부동산정책을 비판해도 공허한 해프닝처럼 느껴진다. 연초부터 이혜훈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가 낙마하고, 강선우 의원의 공천 뇌물 스캔들이 터져도 국민의힘은 반사이익을 얻지 못했다. 말할 수 있는 자격과 신뢰, 즉 에토스가 심하게 훼손됐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수사학’에서 “청중은 화자의 인격을 믿을 때 설득된다”고 말했다.
3월 9일 발표한 국민의힘 107명 의원 전원 명의의 이른바 ‘절윤 결의문’은 한마디로 ‘껍데기’다. 오세훈·나경원·신동욱 등이 경선 후보 등록을 안 하거나 불출마를 선언한 데 따른 즉자적 반응일 뿐이다. 단어와 단어 사이에 순간의 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술수가 범람한다. 장동혁 대표는 결의문을 낭독하는 대신 극우 유튜버들을 의식한 듯 긴장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내란에 대한 반성은 명확하지 않고, 윤어게인 세력에 대한 규정이나 방침도 없었다.
대통합을 말하지만 한동훈 전 대표에 대한 언급은 빠졌다. ‘이재명 정부의 반헌법적 폭주’라는 표현에서는 전도된 현실 인식의 정점을 목도하게 된다. 조지 레이코프의 인지언어학 이론에 따르면 ‘반헌법적 폭주=윤석열 내란’으로 인식될 뿐이다. 정치에서 “언어는 단순한 설명이 아니라 현실을 해석하는 하나의 틀(frame)을 만들기 때문”이다. 윤석열의 헌법 파괴 행위에 대해서는 주섬주섬 넘어가고 느닷없이 현 정부를 공격하는 것은 부메랑으로 돌아오기 일쑤다. 그들이 이재명 정부를 공격하면서 언급한 ‘자유민주주의 수호, 사법 파괴 저지, 헌법 가치 존중’은 모두 자신들의 심장을 정조준하는 언어에 불과하다.
결의문 발표 이후 오세훈 시장은 ‘가시적 변화’를 요구했고, 조경태 의원은 ‘한동훈 전 대표에 대한 제명 철회’와 ‘극우 인사 출당 조치’ 같은 구체적 실천을 주문했다. 해당 결의문이 국민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했다는 것은 3월 12일 발표된 NBS 전국지표조사 결과가 말해 준다. 엠브레인퍼블릭, 케이스탯리서치, 코리아리서치, 한국리서치 네 개 기관이 공동으로 실시한 전국지표조사는 결의문이 나온 3월 9일부터 11일까지 사흘 동안 진행됐다(만 19세 이상 1002명을 대상으로 휴대전화 가상번호(100%)를 이용한 전화 면접 방식으로 조사, 응답률은 17.3%로 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조사에 따르면, 국민의힘 지지율은 17%로 2주 전 조사 결과와 같았다. 민주당 지지율은 43%였고, 이재명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67%로 최고치를 유지했다. 국민의힘은 70세 이상(27%)을 제외한 전 연령대에서 10%대의 낮은 지지율을 기록했다. 충격적인 점은 국민의힘이 보수의 텃밭인 대구·경북 지역에서도 민주당(29%)에 4%포인트 뒤진 25%에 그쳤다는 사실이다. 게다가 중도층의 42%가 민주당을 지지했고, 단 9%만이 국민의힘을 지지했다. 부산·울산·경남 지역의 이재명 대통령 국정 지지율은 66%를, 정당 지지율도 민주당이 40%로 국민의힘 21%의 거의 두 배다. 국민의힘 비토 정서가 그들의 텃밭까지 확산하고 있음을 방증한다.
6·3지방선거, 2018년 지방선거와 닮은꼴
이번 지방선거의 전체 흐름은 2018년과 닮았다. 2018년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들어선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이 70% 중반대를 기록하고 있었고, 한국갤럽 기준으로 보면 당시 더불어민주당 지지율은 50%를 상회했다.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을 합쳐서 20%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었다. 2018년 광역단체장 선거 결과는 14대 2대 1이었다. 거의 전 지역에서 민주당이 압승했고, 자유한국당에서는 권영진 대구시장과 이철우 경북지사만 살아남았다. 제주의 경우 원희룡 지사가 무소속으로 당선했다.현재 오세훈 시장은 2018년 ‘원희룡 케이스’를 벤치마킹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당의 족쇄를 끊고 인물론으로 선거를 치르는 데는 무소속이 좀 더 나을 수 있다. 물론 오세훈 시장이 당 경선에 참여할지, ‘탈당’과 ‘무소속 출마’라는 강수를 둘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이는 오직 국민의힘이 파괴적 혁신에 나서느냐 마느냐에 달려 있을 것이다.
몇 해 전부터 지방선거 흐름은 정당 투표와 동조화하는 현상이 강화되고 있다. 광역단체장의 경우 인물 영향력이 있을 수는 있으나, 대체로 정당 지지율에 따라 당락이 결정된 것이다. 2018년에는 민주당이 압승했고, 2022년 지방선거에서는 국민의힘이 상당한 격차로 승리했다. 2022년 5월 17~19일 한국갤럽이 전화 면접 방식으로 유선전화 10%를 포함, 무선전화 무작위 추출로 임의걸기방식으로 전국 만 18세 이상 1000명을 대상으로 자체 실시한 조사를 보면 국민의힘 지지율이 43%, 더불어민주당 지지율이 29%였다.(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 응답률은 11.3%.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그해 지방선거 결과는 광역단체장 기준으로 국민의힘이 12곳, 민주당이 5곳에서 승리했다. 특히 기초단체장이나 지방의원의 경우 소속 정당이 당락을 좌우했다.
지금의 흐름이 오는 6월 지방선거까지 이어진다면, 국민의힘은 대구·경북 외의 모든 지역에서 패배할 가능성이 크다. 만약 대구·경북 통합이 무산되고 대구시장 선거가 독립적으로 치러지면 대구도 안전지대가 아니다.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대위원장도 3월 12일 ‘시사인’과의 인터뷰에서 국민의힘이 대구·경북 두 지역에서만 승리할 것 같다고 예측했다. 인구의 절반이 모여 있는 서울·경기 지역은 거의 포기 수준이며, 제주 지역도 승리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진단했다.
선거 결과는 구도-인물-이슈(정책) 순으로 결정된다. 물론 인물이 압도적인 경우 예외가 있을 수 있다. 특정 네거티브 이슈가 판을 흔드는 경우도 존재한다. 그러나 대체로 구도가 압도적이면 인물도 이슈도 수면으로 떠오르기 어렵다. 이번 NBS 전국지표조사에서 안정을 위해 여당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응답이 50%, 견제를 위해 야당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응답이 35%였다. 한국갤럽 결과도 비슷하다. 15%포인트 차이면 압도적이다.
정당 지지율보다 더 선거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이 구도다. 민주당의 압승으로 끝난 2024년 총선의 경우 그해 3월 26~28일 한국갤럽이 무선전화 가상번호로 전화조사원 인터뷰 방식으로 전국 만 18세 이상 1001명을 대상으로 자체 실시한 조사에서 정당 지지율은 국민의힘이 37%, 더불어민주당+조국혁신당 41%로 큰 차이가 나지 않았다.(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 응답률은 15.4%.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그러나 여당 다수 당선이 40%, 야당 다수 당선이 49%였다. 구도의 힘이 선거를 압도했다. 구도의 경우 10%포인트 안팎의 차이에도 엄청난 결과의 차이를 만드는데, 지금은 15%포인트 이상 국민의힘에 불리한 형국이다. 심지어 지금 국민의힘은 유력 주자들이 불출마를 하거나 당의 혁신을 요구하며 한발 물러서 있는 형국이다. 이처럼 구도와 인물이 둘 다 밀리면 이슈는 먼지처럼 허공에 날아가 버린다.
보수 궤멸이냐, 재기 발판 마련이냐
지방선거 이후 국민의힘 앞에는 보수 궤멸의 역사를 쓸지, 재기의 발판을 마련할지 양단간의 결과가 기다리고 있다. 현재로선 국민의힘이 지방선거에서 승리하는 길은 보이지 않는다. 의미 있는 패배의 길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 길을 위해서도 뼈를 깎는 파괴적 혁신이 필요하다.국민의힘, 한국의 보수는 왜 이렇게까지 무너졌을까. 한마디로 가치와 원칙의 붕괴다. 가치가 사라진 곳에 자리를 탐하는 욕망이 가득하다. 가치를 추구하면 덧셈 정치를 하게 되고, 자리를 탐하면 뺄셈 정치를 하게 된다. 국민을 위한 원칙 있는 목소리는 사라지고, 권력을 가진 자에게 줄 서는 비굴함의 늪에 빠진다. 지금 국민의힘 상태는 이준석·유승민·한동훈 등을 제거하고, 윤석열·김건희에게 영혼 없이 무릎 꿇은 결과다.
김대중·노무현 두 대통령에게 정권을 빼앗겼던 2006년 당시 한나라당에는 박세일 교수가 있었다. 당시 박세일 교수는 한나라당 실패 원인을 “확고한 가치 지향성과 국가 비전, 전략을 갖고 있는 지도부가 없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세계화, 선진화, 개인과 공동체의 동반성장이라는 보수의 핵심 가치를 재정립하려고 했다. 하지만 이런 전통은 이제 어디서도 찾아보기가 어렵다. 보수가 이니셔티브를 쥐었던 마지막 선거는 2012년 대통령선거였다. 당시 박근혜 후보는 경제민주화, 정치혁신, 청년정치, 선택적 복지 등 합리적 진보 이념을 대거 수용하는 선거 캠페인을 벌였다. “보수가 바뀌면 나라가 바뀐다”는 자부심이 남아 있던 마지막 정치 캠페인이었다.
미국 보수의 철학적 밑그림을 그리고 있는 팔란티어 창업자 알렉스 카프는 ‘기술공화국 선언’에서 인공지능(AI) 시대에 “국가의 정체성과 존재 목적에 대한 질문이 다시 우리 앞에 놓이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나아가 “개인의 권리와 공정성이라는 자유주의 가치에 대해 헌신하는 것을 넘어, 우리가 속한 공동체의 공유된 비전이 무엇인지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2006년 당시 박세일 교수의 문제의식과 사뭇 닮아 있다. 필자는 알렉스 카프의 군국주의적 구상에 동의하지는 않지만, 대전환기 보수의 가치에 대한 근원적 질문을 하지 않고 국민의힘이 보수 재건의 중추가 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낡은 이념 대결 구도를 넘어 실용주의적 문제해결형 리더십을 추구하고 있다. 대전환기의 대한민국 국익을 위해서는 ‘무자비할 정도의 실용주의’를 국가의 공동 목표에 부합해 나갈 필요가 있다. 국민의힘이 무언가를 해보려면 낡은 이념에 기반한 묻지마 비판이 아니라 앞서 나가는 이재명 리더십과 논쟁할 정도의 가치 기준을 재정립해야 한다.
무엇보다 국민의힘이 이번 지방선거에서 ‘재기의 발판’이라도 만들어 내려면 제대로 된 반성과 혁신, 그리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비대위 체제로 반드시 전환해야 한다. 하나부터 열까지 ‘잘못했습니다 정신’으로 무장해야 한다. 국민의힘은 두 대통령의 탄핵, 심지어 군대를 동원한 내란의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껍데기 결의문’으로 국민의 마음은 열리지 않는다. 그런데 지금 지도부는 진짜 반성할 것 같지가 않다. 괴테가 ‘파우스트’에서 말했듯이 “자신의 마음에서 우러나지 않는다면 타인의 마음도 움직일 수 없다.” 2004년 당시 박근혜 대표의 천막 당사, 염창동 월세 당사 시절을 떠올려 보라.
극우 유튜버나 윤어게인 세력과 완전히 절연하고 새로운 길을 모색할 통합 비대위 체제를 빠른 시간 안에 만들어야 한다. 비대위의 핵심 목표는 첫째 진짜 반성, 둘째 보수 가치 재구축, 셋째 덧셈 정치로의 전환이다. 지금 국민의힘은 신속하고 완전하게 내란의 강을 건너야 한다. 오세훈·유승민·한동훈 등 불법 계엄에서 자유로운 인물들이 전면에 나서는 것과 함께 뺄셈 정치의 시작이었던 이준석 대표 등이 합류해 통합 혹은 연대를 한다면 보수 정치의 실낱같은 희망을 찾을 수도 있다. 정치는 불가능의 예술이다. 불가능해 보이는 바로 그 순간에만 정치가 다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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