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호

[추적] “‘항소 포기’ 지시는 빠져나갈 구멍 다 마련해 놓고 이뤄진다”

[대장동, ‘보이지 않는 손’은 누구인가] 검찰 수뇌부 ‘줄사퇴’ …‘항소 포기’ 후폭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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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진렬 기자

    display@donga.com

        

    입력2025-11-20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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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814억 원 추산 범죄수익 환수 막힌 ‘대장동 포기’

    • 판결문 “이재명, 정진상과 공모해 배임 취지 기재”

    • “검찰, 어떻게든 상부 의견 구했을 것”

    • “장관과 대통령, 관심 사항 모른 채 넘기지 않아”

    • 대검→ 법무부→ 민정수석…상부 의중 떠보는 ‘계획보고’

    • “‘항소하겠다’는데 ‘신중하라’는 의도…특검 대상”

    • ‘李 변호인’ 조상호 장관 보좌관-이태형 민정비서관 주목

    노만석 검찰총장 전 직무대행이 11월 14일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에서 열린 비공개 퇴임식을 마치고 청사를 나서고 있다. 뉴스1

    노만석 검찰총장 전 직무대행이 11월 14일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에서 열린 비공개 퇴임식을 마치고 청사를 나서고 있다. 뉴스1

    대장동 항소 포기가 정국의 뇌관이 되고 있다. 거액의 범죄수익 환수 가능성이 사라지면서 책임론이 급부상한 것이다. 검찰의 항소 포기로 7814억 원으로 추산되는 범죄수익 대부분을 환수할 방법이 사실상 사라졌다. 한국갤럽이 11월 14일 발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항소 포기가 ‘적절하다’고 응답한 국민은 29%에 그쳤다.

    이번 사태의 핵심은 ‘항소 포기 판단에 법무부와 대통령실의 개입이 있었는가’다. 논란의 중심에 선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항소에 대한) 보고는 받았지만 지시는 없었다”는 입장이다. 정 장관은 11월 12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수사 지휘를 하려 했다면 서면으로 했을 것”이라며 개입설을 부인했고, “사건과 관련해 대통령실과 논의하지를 않는다”며 대통령실 연루 가능성도 일축했다. 노만석 전 검찰총장 직무대행이 자신의 뜻을 넘겨짚어 독자적으로 항소 포기를 결정했다는 주장이다. 

    “검찰, 어떻게든 상부 의견 구했을 것”

    법조계의 생각은 다르다. 검찰의 보고가 대통령실까지 올라갔을 가능성이 상당하다는 것이다. 검찰과 대통령실을 모두 경험한 한 법조계 인사는 11월 13일 기자와 통화에서 “장관이나 대통령이 관심 사항을 모르는 채 넘어가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통상적으로 검찰 조직은 상부에 ‘OO건에 대해 이렇게 처리하겠다’는 정보 보고, 즉 ‘계획보고’를 한다. 가령 서울중앙지검이라면 대검, 법무부, 대통령실 민정수석실로 올라가는 구조다. 계획보고라지만 실상은 상부의 의중을 떠보려는 목적도 없지 않다. 검찰이 어떤 방식으로든 (장관이나 대통령의) 의견을 구했을 수 있고, 대통령 관련 사안인 만큼 대통령실까지 보고됐을 가능성이 높다. 노 전 직무대행이 “용산과 법무부의 관계를 고려했다”고 얘기했다는데, 괜한 말은 아닐 것이다. 게다가 (정 장관의 말처럼) 법무부 장관이 검찰총장에게 서면으로 수사 지휘를 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대부분의 지시는 ‘빠져나갈 구멍을 마련한 채’ 이뤄진다.”

    결국 쟁점은 “누가 최종 결정을 내렸느냐”로 모인다. 이번 사태의 핵심 고리인 노 전 직무대행은 11월 14일 퇴임식을 하면서도 항소 포기 결정에 대해 추가 설명을 하지 않았다. 핵심 관계자가 입을 닫으면서 책임 공방은 더 복잡해지고 있다. 지금까지 드러난 정황을 토대로 당시 상황을 재구성하면 다음과 같다(타임라인 참조).



    11월 3일 대장동 수사·공판팀은 만장일치로 항소 제기를 결정했고, 5일 정진우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이 공식적으로 항소 방침을 확정해 관련 내용을 상부에 알렸다. 6일 대검이 “법원이 지적한 별건수사 문제를 검토하라”고 지휘하면서 절차가 지연됐으나, 수사팀은 7일 오후 6시까지 박경택 공판5부장→ 이준호 4차장검사→ 정진우 지검장 순으로 결재를 마무리했다.

    항소 시한이 임박한 7일 오후 7시 30분경 박철우 당시 대검 반부패부장이 재검토 지시를 내리면서 분위기는 급변했다. 오후 11시 20분경 공판 담당 검사들이 4차장실로 찾아가 “항소해야 하니 결단해 달라”고 뜻을 전달했으나, 이준호 4차장검사는 “대검에서 불허했고, 검사장도 불허했다. 어쩔 수 없다”고 전했다. 그 시각 법원에서는 항소장을 접수하기 위해 직원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결국 항소 기한 마감 7분 전인 오후 11시 53분 정 지검장이 ‘최종 항소 금지’ 지시를 내렸다. 정 지검장은 다음 날 오전 사의를 표명했고, 11월 19일 박철우 대검 반부패부장이 후임자로 임명됐다.

    정 전 지검장에게 항소 금지를 지시한 사람이 노 전 직무대행이라는 사실에는 이론이 없다. 그러나 노 전 직무대행에게 관련 지시를 한 최종 책임자가 누구인지를 두고서는 복잡해진다. 대장동 수사·공판팀을 이끈 강백신 대구고검 검사는 11월 8일 검찰 내부망(이프로스)을 통해 “대검 내부적으로도 항소할 사안으로 판단한 후 법무부에 항소 여부를 승인받기 위해 보고했지만 장관과 차관이 이를 반대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노 전 직무대행은 10일 대검 과장들과 면담하면서 “이진수 법무부 차관이 항소에 대한 우려를 전달하며 3가지 선택지를 제시했는데, 모두 항소를 포기하는 내용이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법무부는 이 같은 주장에 선을 긋고 있다. 이 차관은 노 전 대행과 통화한 사실은 인정했으나 “사전 조율과 협의 과정이었을 뿐 수사지휘권 행사는 아니다”라는 입장이다. 그의 직속상관인 정 장관은 항소 여부를 둘러싼 보고를 듣고 이 차관에게 “중형이 선고됐는데 신중히 판단할 필요가 있지 않겠느냐 (말했다)”면서도 “외압이 아니라 일상적 얘기”라고 평가했다. 다만 정 장관 역시 자신의 발언을 검찰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짐작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는 “검찰이 과거부터 내려온 관행이 있다”며 “대개 장관이나 위에서 신중히 판단하라고 했을 때, 본인들이 그 말의 뜻을 추단해 알아서 판단해 온 것 같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앞선 해명으론 상황이 설명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이창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검찰총장 직무대행이 사퇴한 것 자체가 사실상 문제를 인정한 측면이 있다”며 “‘항소를 하겠다’고 결재를 올렸는데 ‘신중하게 해라’는 대답이 내려왔다면, (의도는) 명확한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이 교수는 “현재 여러 특검이 진행 중인데, 이번 사건은 검찰의 의사결정 및 권한 침해 여부와 관련된 만큼 특검 대상에 가장 부합한다”고 평가했다. 정 장관과 노 전 직무대행은 직권남용, 업무방해,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고발된 상태다.

    “‘항소하겠다’에 ‘신중해라’…의도 명확해”

    검찰 내부에서도 정 장관의 해명에 대해 비판이 잇따르고 있다. 임풍성 광주지검 형사3부장은 11월 11일 검찰 내부망에 “수사 경험상 깡패 두목이나 행동대장들이 빠져나가려고 할 때 ‘나는 지시한 적 없다. 밑에서 하겠다고 하니 신중하게 결정하라고 했을 뿐이다’ 이런 식으로 책임을 떠넘긴다”며 “(정 장관은) 지위에 걸맞게 진상이 무엇인지 제대로 밝히시고, 그렇게 안 할 거면 부끄러운 줄 아시라”라고 비판했다

    대통령실까지 보고가 올라갔는지 여부도 핵심 쟁점이다. 정 장관은 “이 사건이 이 대통령하고 무슨 관계가 있나”는 입장이지만 법원 판단은 다르다. 대장동 1심 재판부는 해당 재판과 이 대통령의 관련성을 일부 인정했다. 판결문에 “검사는 공소사실 중 피고인들에 대한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등에 관한 법률 위반(배임) 부분에서 피고인들이 이재명, 정진상과 공모해 배임 범행을 저질렀다는 취지로 기재했다”면서도 “(이 대통령이) 법정에 출석한 사실이 없고, 가담 여부에 관한 실체 파악에 일부 제한이 있어 (판단하지 않았다)”고 적시한 것이다. 만약 검찰이 항소했다면 2심에서 관련 쟁점이 다시 다퉈졌을 가능성이 있다.

    이른바 ‘대장동 변호사’들이 검찰의 비공식 보고 라인인 법무부와 대통령실 민정수석실에 잇따라 배치된 점 역시 고려점이다. 조상호 법무부 장관 정책보좌관과 이태형 대통령실 민정비서관은 수년간 이재명 대통령을 변호했고, 현 정부 출범 이후 각각 법무부와 대통령실에 발탁됐다. 이 대통령 관련 재판이 법정에 계류 중인 상황인 만큼 “검찰과 법무부, 대통령실을 잇는 사적 라인이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이 교수는 “중대한 사안인 만큼 대통령실도 진상 규명에 뜻을 모으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최진렬 기자

    최진렬 기자

    2020년 동아일보 출판국에 입사. 주간동아를 거쳐 신동아로 왔습니다. 재미없지만 재미있는 기사를 쓰고 싶습니다. 가정에서도, 회사에서도, 사회에서도 1인분의 몫을 하는 사람이 되려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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