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를 품고 있는 건물도 그렇다. 좌우대칭을 이루는 4개의 기둥과 박공지붕이 우아하고 품격 있다. 2002년 3월 서울시 기념물 20호로 지정된 이곳의 이름은 ‘구세군중앙회관’. 1928년, 우리나라에 구세군 자선냄비가 등장한 바로 그해에 근대 건축 양식으로 지어졌다. 구세군 목회자인 최혁수 사관은 “영화 ‘장군의 아들’에 등장하는 조선총독부 장면을 여기서 촬영했을 만큼 지금도 건축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이곳에 갤러리가 문을 연 건 2011년 2월. 출판, 영화제작 등으로 알려진 문화기획그룹 ‘공간 루’가 운영을 맡았다. 전시에서 종교적인 색채는 찾아보기 어렵다. 고전적인 공간과 어울리는, 편안하고 따뜻한 작품이 주를 이룬다. 마민웅 전시기획팀장은 “건물 전체가 문화재라 못 하나도 마음대로 박지 못한다. 원형을 보존하기 위해 늘 노력하고, 전시를 기획할 때도 가장 먼저 ‘이 공간과 어울리는가’를 고려한다”고 밝혔다.
17개의 나무 계단을 밟고 올라가면 펼쳐지는 2층 전시실에서도 이런 갤러리의 철학이 드러난다. 기존에 있던 창문을 남겨둔 채 새하얀 자석패널로 채광만 가려 벽면에 창틀 위치가 그대로 노출되는 것. 울퉁불퉁 굴곡진 벽은 여느 갤러리의 화이트월과 다른 멋을 풍긴다. 전시실과 계단을 잇는 7m 길이의 나무 복도에서는 이 창의 원형을 감상할 수 있다. 창을 막지 않아 햇살이 한껏 들어온다. 시간에 익어 색이 짙어진 마루 위로 햇빛이 쏟아지는 풍경은 아늑하고 평화롭다.
1928년 지어진 구세군중앙회관 외관(왼쪽)과 당시 분위기를 간직한 정동갤러리 내부.
덕수궁 돌담길을 따라 펼쳐지는 정동은 거리 자체가 매력적인 곳이다. 한국 최초의 감리교회인 정동교회, 1927년 건립된 경성재판소의 원형을 유지하고 있는 서울시립미술관, 동양 최초의 로마네스크 양식 건축물 성공회성당 등이 모여 있다. 이들에 비해 구세군중앙회관이 덜 알려진 건 덕수궁 뒷길에 있기 때문이다. 서울시립미술관 맞은편으로 뻗은 외길, 덕수궁 대한문에서 출발할 경우 남쪽 돌담길을 따라 걷다가 세 갈래 교차로에서 오른쪽으로 접어드는 길 끝에 있다. 이곳은 초행자에게 다소 낯설게 느껴진다. 입구에 경찰이 바리케이드를 친 채 상주해 통행이 금지된 것 아닌가 착각하게 만든다. 하지만 누구나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곳. 몇 걸음만 안으로 들어서면 정동에서도 특히 고즈넉한 이 길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봄이면 연둣빛으로 물들고 새소리가 들리고, 진달래 향기가 그윽하다. 그 길을 따라 나지막한 언덕을 오르면 오른쪽으로 빨간 벽돌 건물이 모습을 드러낸다.
정면 상부의 박공 ‘구세군사관학교 1928’에서 알 수 있듯 이곳은 처음엔 구세군 목회자를 양성하는 교육장이었다. 이후 한국 구세군 본부 건물로 사용되기도 했고 지금은 구세군 청년교회 ‘유스나루’와 청년문화비전센터 공간으로 쓰인다. 누구에게나 무료로 개방되는 구세군역사박물관과 도서관 겸 휴게실 등이 있어 정동의 명소들과 함께 둘러보며 하루 나들이를 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위치 서울 중구 정동 1-23
●운영시간 월~일요일 오전 10시~오후 6시(수요일 휴관)
●문의 02-765-1883
정동갤러리에서는 공간과 어울리는 따뜻하고 편안한 전시가 주로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