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상임금 범위를 폭넓게 인정하는 대법원 판결이 이어지면서 노사갈등이 새로운 양상을 띨 전망이다.
이 판결을 전후로 통상임금과 관련된 소송이 급증하고 있다. 이에 대해 재계에선 “통상임금과 관련된 소송으로 지출해야 할 비용이 최소 36조 원에 달해 기업이 부실화할 우려가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반면 노동계에서는 “그동안 임금체계를 왜곡해왔던 관행이 정상화했다”며 환영하고 있다.
특히 재계는 현재와 같은 임금체계를 설계할 당시만 해도 ‘1개월을 초과해 연단위로 지급되는 상여금은 통상임금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법적 인식과 관행이 있었고, 교섭의 상대방인 노동계 또한 동일한 인식을 바탕으로 노사교섭을 진행해왔다며 “통상임금에서 배제되어왔던 상여금을 갑자기 소급해 통상임금에 반영하라는 취지의 판결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위 판결 이전에도 대법원은 “1월을 초과해 매년 1회 일정 시기에 전 직원에게 지급하는 체력단련비 및 월동보조비라도 통상임금에 포함된다”(대법1996.2.9 94다19501), “연 1, 2회 지급되는 효도제례비, 연말소통장려금 또한 통상임금에 해당한다”(대법 2007. 6. 15 2006다13070)고 판결한 바 있다. 2011년 환경미화원들이 제기한 통상임금 청구소송에서도 “1개월의 기간을 초과해 정기적·일률적·고정적으로 지급되던 기말, 정근, 체력단련비가 통상임금에 포함된다”(대법원 2011. 6. 24 선고 2011다23064)고 판결하는 등 통상임금의 산정 범위를 점차 확대하는 해석을 내려왔다.
20년간 통상임금 배제 행정지도
대법원의 이와 같은 판례 경향을 고려하면 이번 판결이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재계가 지난해 3월 대법원 판결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것은 법리적 판단은 차치하고 여타 복리후생적 수당과 달리 상여금이 근로자에게 지급되는 연간 인건비 총액 중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교대제 또는 장시간 근로가 관행적으로 이뤄지는 사업장의 경우 통상임금에 기초해 산정되는 시간외근로수당이 임금 총액의 20~40%에 달한다.
기업은 최저임금과 기업의 지불능력, 상품 원가, 동종업계 임금 수준, 최저생계비 등을 고려해 임금 수준을 결정한다. 과거 대다수 호봉제 사업장에서 급여 책정 때 기본급을 먼저 정한 후 기타 직책수당, 직무수당, 식대, 교통비, 자격수당, 위험수당 등의 각종 수당을 그때 그때 형편에 따라 신설하고 확대해왔다. 또한 이윤창출 정도에 따라 상여금 및 기타 복리후생수당을 지급하고, 노사 단체교섭을 통해 그 지급률을 점차 올리는 방식으로 임금 수준을 높여왔다.
특히 매월 고정적으로 확정돼 지급하는 기본급과 달리 상여금은 그 시행 초기에는 명절 등 특수한 시기에 당시 기업의 성과에 따라 임시적으로 책정돼 지급된 측면이 있다. 더욱이 1988년 고용노동부는 통상임금 산정지침을 통해 통상임금의 정의를 ‘소정 근로시간에 대해 근로자에게 지급하기로 정하여진 기본급 임금과 정기적·일률적으로 1임금 산정기간에 지급키로 한 고정급 임금’, 즉 ‘1월 기간 내의 근로 대가로 지급되는 임금’으로 규정하고 상여금을 통상임금 범위에서 배제했다. 이 지침을 근거로 20여 년간 기업에 행정지도를 하면서 상여금 등은 당연히 통상임금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법적 인식 및 관행이 확대돼온 것이다.
다수 기업 경영난 봉착 우려
물론 초기의 상여금이 특별한 시기 또는 이윤을 배분하는 과정에서 임시적으로 책정되어 지급되어온 측면은 있다. 그러나 경제 성장과 더불어 상여금이 고정적 임금으로 정착했음에도 기업들은 이를 매월 기본급에 반영해 임금 수준을 상승시키지 않았다. 장시간 노동이 관행화한 상황에서 상여금을 매월 임금에 포함시켜 지급할 경우 시간외근로수당이 점증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노동계에서 “1개월을 초과해 연단위로 지급되는 정기상여금 등은 통상임금에 해당하며, 현행 임금체계에서의 상여금이란 시간외근로수당을 통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매월 임금을 연단위로 분할해 지급해온 것”이라며 이번 판결을 왜곡된 임금 구조에 쐐기를 박는 판결로 받아들이는 것도 이와 같은 이유에서 일면 타당하다.
문제는 이 판결과 동일한 판결이 이어질 경우 기업에 미치는 효과에 있다. 한국GM 같은 대기업도 통상임금 여파로 인한 미지급임금 명목으로 8140억 원을 책정하는 바람에 지난해 사상 최고의 매출을 올리고도 3400억 원의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이처럼 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된다는 판결이 거듭될 경우 상당수 기업은 실질적인 경영상 어려움에 봉착할 수 있다. 이 경우 기업들은 고비용구조로 인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구조조정을 하거나 저임금의 비정규직 근로자들을 고용할 수 있고, 이는 부메랑이 되어 근로자들의 생존권을 위협할 수 있다.
따라서 상여금의 발전과정 및 지난 20여 년간 상여금은 통상임금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인식 아래 형성된 임금체계와 현실을 고려하지 않고 법원이 단지 ‘정기적, 고정적, 일률적’이라는 통상임금의 법리에 비추어 ‘1월을 초과해 정기적으로 지급되는 상여금뿐만 아니라 체력단련비, 효도휴가비 등 명목상 복리후생적 수당이나 근로의 대가로 정기적으로 지급되어온 기타 수당’ 모두 통상임금에 포함된다는 기조를 유지할 경우 노사분쟁이 가속화할 수밖에 없다고 본다. 따라서 노사는 장기적으로 노사 모두에게 득이 될 수 있는 적절한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
여기서 유의해야 할 것은 현재의 임금체계가 장시간 노동을 배경으로 형성됐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법정근로시간은 1일 8시간, 주 40시간이다. 그러나 2010년 한국노동연구원의 노동실태 조사에 따르면 1주일간 48시간 이상 일하는 사업체가 전체의 37.6%였고 52시간이 넘는 곳도 18.5%에 달했다. 2011년 통계청 경제활동인구 조사에서도 주당 52시간을 초과해 일하는 근로자가 380만 명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체 근로자 1740만 명의 21.8%로, 5명 중 1명이 법정 근로시간을 초과해 일을 하고 있다.
왜곡된 임금구조 개편 시급
그런데 경제성장률이 2~3%에 불과한 저성장 시대에도 과거와 같은 장시간 근로가 지속되리라는 보장은 없다. 그뿐만 아니라 근로자들은 삶의 질 향상을 추구하고 있다. 고용노동부가 1주 12시간 연장근로의 한도에 휴일근로까지 포함시키려 하는 것도 이와 같은 시대적 변화를 반영한 것이다. 장시간 연장근로를 전제로 기본급과 각종 수당, 상여금 등으로 분할하는 임금구조가 구축된 현 상황에서 근로시간이 단축된다면 근로자들의 실질임금은 상당부분 줄어들 수밖에 없다.
상여금이 통상임금에서 제외된 배경에는 장시간 노동 관행에 따른 시간외근로수당 부담 또한 작용한 점을 고려한다면 근로시간 단축이라는 시대적 과제를 앞두고 왜곡된 임금구조 역시 새로이 개편돼야 한다. 즉 시간외근로로 인해 연단위로 분할해 지급하는 방식으로 강화돼온 정기상여금 중 일부는 근로시간 단축 시 통상임금으로 편입해 월정액이 상승하는 방향으로 개편돼야 하며, 이를 제외한 상여금은 인센티브로서 본래의 취지에 맞게 경영성과 및 개인성과와 연동해 지급하는 방향으로 재편돼야 한다.
결론적으로 노사는 근로시간 단축으로 일과 삶의 조화를 원하는 시대적 변화에 발맞춰 장기적으로 모두에게 득이 될 수 있는 임금 시스템 해법을 함께 창출해야 하는 문제해결자로서 통상임금 분쟁을 바라보아야 한다. 법원도 시행령에 정한 통상임금의 문리적 해석에만 치중할 게 아니라, 20여 년에 걸쳐 형성된 현재의 임금체계와 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될 경우 산업 전반에 미치는 영향을 감안해 합리적인 조정안을 제시하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