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8일 충남 계룡대 연병장에서 열린 3군 장교 합동 임관식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육사 수석 졸업생 양주희 소위에게 계급장을 수여하고 있다.
육사는 사태 수습과 향후 재발 방지를 위해 8월 26일 ‘육사 제도·문화혁신 태스크포스(TF)’를 통해 생도의 3금 제도를 강화하고 교육체계를 개선하는 ‘육사 제도·문화 혁신’ 방안을 발표했다. 먼저 3금 제도를 한층 강력하게 시행해 정예 장교로서 요구되는 고도의 자기 절제능력을 배양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육사는 이성교제는 허용하지만 1학년 생도, 같은 중대 생도, 지휘계선상의 생도, 생도와 교내 근무 장병·군무원 간의 이성교제는 금지하는 등 그 범위와 행동지침을 명확히 규정했다. 아울러 건전한 성 윤리의식을 정착시키기 위해 ‘양성평등상담센터’를 설치하고 양성평등 동료상담자 제도를 운영하기로 했다.
육사는 창설 당시인 1952년(11기)부터 미국 웨스트포인트 사관학교 제도를 도입해 3금 제도를 운영해왔다. 전통적으로 모든 생도에게 3금 제도를 적용하고 있으며, 생도 내규에 이를 명시하고 어길 경우 퇴교 등의 조치를 내려왔다. 각군 사관학교는 교내 축제행사에서, 또는 훈육관이나 교수들이 통제하는 회식에서 일정량의 술을 마시는 것은 허용하지만 담배와 결혼은 엄격하게 금지한다.
이러한 3금 제도 존폐 논의는 과거에도 꾸준히 제기됐다. 특히 1994년에는 ‘21세기를 지향하는 육사교육개혁안’을 검토하는 과정에 3금 제도의 폐지 혹은 완화 방안을 검토했으나 역대 교장과 생도대장이 위원인 전통위원회에서 부결된 바 있다. 이후에도 3금 제도의 폐지 및 완화 문제가 꾸준히 거론되다가 이번 사건 처리과정에서 육사가 내놓은 특단의 조치를 계기로 더욱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다.
육사 출신을 포함한 많은 예비역 장교는 3금 제도가 육사의 좋은 전통이기 때문에 이를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3금 제도가 군의 독자성과 사관학교의 전통을 계승하는 규제사항이며, 어려운 야전생활을 해나갈 생도들에게 4년 동안 절제하고 극기하는 소중한 경험이 된다고 본다. 이들은 또 육사는 일반 대학과 달리 교내에서 집단 내무생활을 하며, 국가가 교육비를 전액 부담하는 학교기관이기 때문에 엄격한 규율이 요구되고 자기희생이 따라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관생도에 대한 국민의 기대 수준이 높고 군과 사회에서 해온 과거 경험을 되돌아본다면 엄격한 규율과 자기희생으로 조국을 지킨다는 의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또한 앞으로 국가의 훌륭한 간성(干城)이 되려면 그 정도의 인내와 극기는 필요하다고 말한다. 거기엔 ‘우리는 해냈는데 왜 후배들은 못하느냐’는 질타도 포함돼 있다.
반대로 3금 제도를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그들은 우리가 도입할 때 모델로 삼은 웨스트포인트도 1960년대에 3금 제도를 폐지했고, 당시 웨스트포인트를 모방해 3금 제도를 유지하던 다른 국가의 사관학교도 이를 폐지해 이제 3금 제도를 유지하는 곳은 우리나라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아울러 3금 제도는 그동안 변화해온 시대정신에 맞지 않고, 생도의 의식 변화를 고려하지 않은 시대착오적인 것이며, 생도를 쉽게 통제하려는 행정편의주의에 불과하다고 본다. 생도가 허위 보고하는 기풍이 생긴 것도 비현실적인 3금 제도 탓이라는 것이다.
허위 보고와 양심 불량자
최근에는 국가인권위원회와 법원이 3금 제도 개선을 요구하고 나섰다. 인권위는 2008년 8월 육사의 3금 제도 위반에 대해 퇴교조치를 내리는 것이 인권침해라고 판단해 국방부 장관에게 제도 개선을 권고한 바 있다.
서울행정법원은 지난 7월 약혼녀와 성관계를 가졌다는 이유로 사관생도에게 퇴학처분을 내린 것은 부당하다고 판결했다. 전 육사생도 A씨가 육사를 상대로 낸 퇴학처분 취소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린 것. 재판부는 “국가가 내밀한 성생활의 영역을 제재 대상으로 삼아 간섭하는 것은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판결했다. 또한 “성의 개방 풍조는 막을 수 없는 사회변화”라면서 “A씨의 성관계가 군기를 문란하게 하거나 사회의 건전한 풍속을 해친다고 보기 어려워 징계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라고 판결 이유를 설명했다.
이번 사태를 지켜보면서 나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3금 제도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첫째, 사관학교 교육은 훌륭한 장교를 육성하는 체계로 발전해야 한다. 자율과 책임이 동시에 작동하는 제도가 가장 바람직하다. 좋은 제도란 타율보다는 자율이, 획일성보다는 다양성이 살아 숨 쉬는 제도를 말한다. 훈육관 등 감독자 수를 늘려 감시를 강화하는 등의 타율적인 교육만 강요하면 훌륭한 장교를 양성할 수 없다.
둘째, 군인과 생도는 제복을 입은 대한민국 시민이다. 따라서 대한민국의 법정신과 시대정신에 맞는 교육을 해야 한다. 아무리 좋은 전통이라 해도 헌법정신에 맞지 않거나 인권을 위배해서는 당위성이 없어진다.
셋째, 모든 교육은 합목적일 때 성과가 높다. 사관학교 교육의 목적은 훌륭한 장교를 양성하는 것이다. 때로는 부하들과 함께 술을 마시고 못하는 담배도 피우며 정을 나눠야 할 때가 있다. 따라서 생도 시기에 이러한 분야에 대한 적절하고 절제된 교육이 필요하다.
넷째, 통상적으로 사회의 가치관은 시대정신을 만들고, 시대정신에서 제도가 만들어진다. 바로 이러한 제도가 행동을 유발한다. 아름다운 전통이던 3금 제도도 과거보다 훨씬 자유로운 성풍속과 음주 문화 등으로 이제는 세계의 모든 사관학교에서 폐지할 만큼 구시대적인 제도로 전락했다.
다섯째, 지킬 수 없는 전통은 과감히 개선해야 더 좋은 전통을 수립할 수 있다. 지킬 수 없는 3금 제도를 유지하려면 그만큼 허위 보고가 많아지고 양심 불량자를 양산할 수 있다. 육사의 또 다른 전통인 명예제도가 무너질 수 있다. 따라서 노력하면 지킬 수 있는 제도로 보완해나가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폐지해야
그러면 어떻게 개선할 것인가. 나는 생도들이 명예와 품위를 지키며 스스로의 정체성을 확립하도록 극기하고 자존심을 키워가는 방향으로 3금 제도를 점진적·단계적으로 보완하고, 일정 시점이 되면 발전적으로 폐지할 것을 제안한다.
첫 번째 단기 처방으로, 이번에 육사에서 발표한 내용을 한시적으로 실천에 옮기면서 모든 관계자가 참여하는 공청회를 열어 공론화·담론화 과정을 거쳐 최적의 방안을 도출한 후 3금 제도의 문제점을 보완해야 한다.
두 번째 중기 대책으로, 3금 제도를 학교 내부에서만 운용하고, 외출·외박과 휴가 등에서는 자율권을 보장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음주의 경우에는 복귀 몇 시간 이전에는 음주해서는 안 된다거나 술 냄새를 풍겨서는 안 된다는 방향으로 조정하면 될 것이다. 결혼과 약혼은 3학년부터는 가능한 방향으로 검토해도 될 것이다. 그것 때문에 생도 생활이 어렵다는 인식은 일방적인 견해일 수 있다.
세 번째 장기 정책으로, 단·중기적인 방안이 건전하게 정착되면 3금 제도를 폐지하는 것이다. 세계 대부분의 사관학교는 3금 제도 없이도 훌륭한 전통을 유지하며, 유능한 장교를 양성하고 있다. 다른 나라는 다 그렇게 해도 우리는 안 된다는 것은 편파적이고 일방적인 논리다. 육사에는 3금 제도 말고도 좋은 전통이 많다.
‘명예제도’ ‘자치제도’ ‘절차탁마’ 등은 어느 곳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좋은 제도다. 이번에 3금 제도를 강화하면서 형식을 지키기 위해 생도들의 자율과 책임을 약화시키는 건 아닌지 걱정된다. 가장 좋은 전통은 시대와 법정신에 부합하면서 인권을 보장하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를 지키는 집단이 긍지와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 3금 제도도 그러한 방향으로 발전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