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4월호

구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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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어미가 무가당주스라도 되는 듯 빨고 있는 아이,

가슴에 안겨 가슴을 착취하고 있다

졸아드는 건 조바심이나 멀미만이 아니다

수량(水量)이 다하면 어미는 모래톱처럼 드러누우리라

다른 곳에 배를 대는 아이의 손은 강건하겠지



얼굴 뒤에 숨는 자의 얼굴은 발자국과 같아서

표정보다 흔적이 먼저다

젊은 어미에서 늙은 어미로 술지게미를 진

세월이 건너간다 슬하(膝下)라는 말 아래엔

늙은 어미의 시린 무릎과 노안이 있다

아이가 직립인간의 진화를 완성하는 동안

여전히 무릎걸음으로 돋보기나 찾고 있는 어미,

주스 한 잔 마실 시간에 벌어지는 일이다

구멍

일러스트 · 박용인

권 혁 웅

● 1967년 충북 충주 출생
● 고려대 국어국문학과, 동 대학원 졸업
● 1996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평론부문 당선, 1997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 시 당선

● 現 한양여자대학 문예창작과 교수, 문예중앙 편집위원

● 시집 ‘황금나무 아래서’ ‘마징가 계보학’ ‘그 얼굴에 입술을 대다’, 산문집 ‘두근두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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