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이 걷는 것 이상 좋은 게 없다는 핑계 아닌 핑계를 들어 남편과 단둘이 라운딩을 나갔다. 남산만해진 배를 안고 다른 이들과 함께 골프를 친다는 건 민폐 중의 민폐일 테니, 만만한 것은 ‘공범’인 남편밖에 없지 싶었다.
그때가 여름의 절정인 8월이었다. 내 몸 하나도 가누기 힘든 무더위 속에서 피칭과 퍼터만 들고 18홀을 돌았다. ‘나중에 아이가 태어나면 엄마가 널 위해서 얼마나 열심히 애썼는지 말해 주겠다’는 일념으로 8㎜ 캠코더까지 들고나서는 그 무렵의 나를 남들이 봤다면 ‘나이 먹어 유난 떠는군’ 하며 수군거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참으로 민망한(^^) 수차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나는 무게 4.45Kg, 모자만 씌우면 중학교에 보내도 상관없을 것만 같은 건장한(?) 사내아이를 낳았다. 다행인지 불행인지는 알 수 없지만.
작게 낳아서 크게 키우겠다는 당초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지만, 그래도 이제 만 23개월이 된 아들은 ‘제법 유연한’ 엉터리 스윙을 선보여 우리가족을 웃음바다로 이끈다. 재미있는 것은 이 녀석이 골프 채널에 맞춰져 있던 TV 화면을 다른 곳으로 돌리면 제꺽 안된다며 발을 동동거려 엄마를 어이없게 만든다는 사실이다. 이게 현장태교의 효과일까? 나중에 정말 골프를 하겠다고 나서려나?
다시 지구는 어김없이 태양 주위를 한바퀴 돌았고, 골프의 계절인 가을도 어김없이 찾아왔다. 창문을 열면 불어오는 산들산들 가을바람. 올해는 기어이 그 바람에 몸과 마음을 맡기며 필드에 나서리라는 굳은 결심을 해본다. ‘출산 후’라는 좋은 핑곗거리가 있으니 스코어가 잘 나오든 말든 상관하지 않을 수 있으리라는 기분 좋은 예감도 스친다. 그동안 못다했던, 남들이 말하는 그 ‘운동’이란 것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겠지.
내 속마음을 아는 걸까. 남편과 아이들은 벌써부터 ‘당장 날짜 잡자!’하는 눈빛이다. 이제 태어난 지 두 달밖에 안된 딸아이와 열심히 말썽을 피우느라 정신 없는 큰아들. 애들하고 같이 나가서 마음먹은 대로 골프가 될까 하는 한 줄기 걱정이 슬며시 피어오르지만, 마음은 벌써 셀로판지처럼 투명한 가을 햇살 아래 필드를 걸으며 갖가지 아이디어에 골몰하고 있다.
‘아하! 어린이 갤러리가 가능하면 이번엔 큰 녀석 현장학습을 시켜볼까? 푸훗, 그러고보면 나는 정말 못 말리는 엄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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