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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자연이 빚는 이중주, 환경사

역사와 자연이 빚는 이중주, 환경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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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자연이 빚는 이중주, 환경사
역사란 인간이 지내온 내력 자체 또는 그것을 기록·정리·연구하는 일과 그 성과를 말한다. 그런데 ‘고려사’ 천문지(天文志), ‘한서’ 천문지를 비롯하여 전통사회의 역사는 인간의 일이 아닌 하늘의 일, 즉 자연의 일을 자세하게 기록해놓은 문헌을 포함한다. 중국 역대 정사(正史)의 원형인 ‘사기’의 편찬자 사마천은 아버지 사마담의 대를 이어 태사령(太史令) 벼슬을 지냈다. 태사령은 사관으로서 역사 기록의 임무는 물론 천문·역법까지 관장했다. 요컨대 사람의 일과 하늘의 일을 모두 기록·정리했다.

전통적인 역사가 하늘의 일, 자연의 일까지 포함했던 것은 그것이 사람의 일과 불가분의 상호관계를 맺고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재이설(災異說), 그러니까 나라의 정치가 어지러워지고 군주의 덕이 모자라면 하늘이 재이를 통해 경고한다는 관념을 예로 들 수 있다.

자연의 내력, 인간의 내력

이런 관념에 대해 오늘날의 학자들은 사실과 가치를 구분하지 않는 전근대적 사고방식이라고 평가한다. 인간적인 가치관념을 자연에 투영시킨 비합리적 사고방식이라는 것이다. 이에 비해 근대 이후 탈인간화한 자연은 철저하게 자연과학의 영역이 됐고, 역사는 오로지 인간이 지내온 내력에 한정됐다. 그리고 자연의 내력은 자연사(Natural History), 역사 기후학, 고생물학, 진화생물학, 지질학, 생태학, 천문학 등이 다루는 주제가 됐다.

그런데 최근 들어 자연의 내력과 인간의 내력이 결코 동떨어져 있지 않았음은 물론 긴밀하게 상호작용하면서 영향을 주고받았다는 학문적 인식이 환경사(環境史)란 이름으로 새롭게 대두되고 있다. 물론 재이설로 대표되는 전통사회의 천인(天人) 상관설과는 성격이 다르다. 어디까지나 자연과학의 연구성과를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환경사라고 하면 인간을 둘러싼 자연환경에 대한 연구, 그러니까 자연을 대상으로 한 과학적 연구로 이해하기 쉽다. 하지만 환경사는 인간과 자연간 상호작용의 측면에 주안점을 둔다. 시대와 지역을 불문하고 나무가 국가나 문명의 흥망성쇠를 좌우했음을 말하는 존 펄린의 ‘숲의 서사시’(따님)를 보면 이해가 쉽다.

메소포타미아인들은 나무를 토대로 문명을 꽃피웠지만 숲이 사라지자 무너졌다. 에게해의 작은 섬 크레타는 메소포타미아인들과 나무 교역을 해 얻은 부로 지중해를 지배했지만, 숲이 고갈되자 쇠퇴했다. 아테네와 스파르타의 오랜 전쟁은 함대 유지에 필요한 재목을 누가 확보하느냐에 따라 승패가 갈렸다. 헬레니즘 세계 변방의 도시국가 마케도니아는 그리스 국가들이 마케도니아 삼림에 의존하게 되면서 지중해의 강자로 떠올랐고, 급기야 알렉산더 대왕의 정벌도 가능했다.

신대륙에 대한 영국의 각별한 관심과 미국 독립전쟁도 나무와 상관 있었다는 점도 흥미롭다. 대영제국 해군의 거대한 주력 전함에 필요한 돛대는 지름 1m, 길이 25m의 거목으로 만들어졌다. 북유럽산 돛대 재목을 네덜란드가 통제하기도 했거니와, 북유럽 삼림에서 나는 것보다 훨씬 큰 것이 필요했다. 이렇게 군수 물자로 나무를 확보하려는 영국과 미국 이주민 사이의 갈등이 곧 미국 독립전쟁의 배경 가운데 하나다.

오늘날 환경 재앙의 배경에도 삼림 남벌이 자리잡고 있음은 물론이다. 얼마전 태풍 ‘루사’가 우리나라에 엄청난 피해를 주었다. 산의 나무를 베어내고 추진한 개발 탓에 흙더미가 무너져내려 피해가 더욱 늘어났다. 앞으로 그런 재앙이 해마다 거듭될 가능성이 높다는 경고마저 들린다. 이렇듯 기상 재앙은 단지 하늘의 일이 아니라 인간이 땅에서 저지른 일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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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표정훈 / 출판칼럼니스트 mediu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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