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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들이 탐해 호선주(好仙酒), 접대하다 살림 축내 망주(妄酒)

황희 정승 가문의 자존심 문경 호산춘

신선들이 탐해 호선주(好仙酒), 접대하다 살림 축내 망주(妄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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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지체할 이유가 없었다. 그로부터 일주일이 지난 후 필자는 다시 도자기전시관을 찾았다. 술병을 구경하고 호산춘을 제대로 맛보기 위해서였다. 이번엔 호산춘과 호산춘을 빚는 황규욱씨와 함께했다. 관장이 나무상자를 열어 곱게 간직한 도자기를 보여주었다. 15세기 후반에서 16세기 중반까지 역사 속에 잠깐 등장했다 사라진 분청사기 술병이었다. 모란 문양이 새겨져 있는데, 분 화장을 한 듯 회색이 돌고, 선이 자유롭고 거침없어 편안했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완벽을 갈구하지도 않는 선들이 술병의 겉면을 장식했다. 관장은 뒤이어 16세기 초반에 만들어진 분청인화문 잔을 내놓았다. 옅은 청자색이 도는데, 술잔 안쪽에 국화꽃 문양의 손도장이 무수히 찍혀 있다. 술잔은 넓고 운두는 낮다.

필자는 호산춘 술병을 꺼내 “술 한잔 따라 마셔도 되지요?” 묻고는, 이 관장이 거절할 틈도 주지 않고 술잔에 술을 채웠다. 필자는 변명삼아 “이 술잔도 술맛을 보지 못한 지 500년은 되었을 겁니다”라면서 한 잔을 목에 넘겼다. 그때 황씨가 물었다.

“술맛이 어떻습니까?”

술을 빚는 이들은 자신의 술맛을 늘 궁금해한다. 낯선 사람을 만나면 그 궁금증이 더 커지는 모양이다.

“500년 된 술잔에 술을 마시니, 500년 된 술을 마시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말하고 나니 그럴싸했다. 호산춘의 역사는 황씨 집안의 역사와 함께 해왔기 때문이다.

“할머니 오래 사시겠어요”

황씨는 500년 이상 문경 땅에 터잡고 사는 문경 장수 황씨 사정공파의 장손이자, 조선 초기 명재상 황희 정승의 22대손이다. 황희 정승이 사용하던 벼루, 갓끈, 문진도 그의 집안에서 보존해왔다. 황희의 고조부(장수 황씨 중시조)는 전북 장수 사람이고, 황희는 개성과 한양을 기반으로 활동한 인물인데, 어떤 연유로 황씨 집안이 문경에 터잡고 지내게 되었는지 궁금했다.

연유는 이러하다. 황희 정승의 둘째아들 황보신이 상주에 내려와 살았다. 상주에서 문경 산북면으로 들어온 사람은 황보신의 손자 황정이다. 황정은 삼척부사를 지낸 아들 황사웅에게 재산 상속과 관련된 분재기를 작성하여 남겼다. 그 분재기가 아직도 황씨 집안에 전해오고 있다. 문경 장수 황씨 집안은 입향조 황정의 호를 따라 사정공파라 이름하게 됐다.

사정공파 종가는 오랜 고택이다. 고택 마당에는 400년 된 탱자나무가 있고, 고택 뒤편에는 글씨가 새겨진 바위가 있다. 호산춘이 함께 살아온 공간이다. 호산춘의 무게가 단지 춘주라는 이름에서만 비롯된 게 아니었다.

현재 호산춘은 지방문화재로 지정된 고택 바로 앞집에서 빚고 있다. 격식 있는 한옥이라 술 빚기가 까다로워 앞집으로 나왔는데, 술 옆에 사람이 있어야 해서 살림살이까지 따라 나오게 됐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고택은 텅 빈 채로 덩그렇게 남아 있다. 문경시 산북면 한두리마을 앞으로는 개울물이 흐른다. 야트막한 두 개의 산줄기가 개울물을 호위하면서 따라가는데, 황씨의 고택은 산 밑에 자리잡고 있다. 편안한 양지를 찾아 마련한 집터다.

호산춘은 황씨와 그의 어머니 권숙자(75)씨가 빚는다. 호산춘이 경상북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것은 1991년의 일이다. 전통주 빚기가 허용된 게 1990년이니 비교적 일찍 문화재로 지정된 셈이다.

황씨 집 앞에는 ‘호산춘’ 간판이 걸려 있다. 이곳이 호산춘을 파는 유일한 곳이다. 술을 빚기만 할 뿐 일부러 내다 팔지는 않는다. 홍보도 하지 않는다. 다만 사람들이 소문을 듣고 찾아오면 내준다. 이곳의 마당은 넓고 지붕은 낮다. 권씨가 거처하는 살림집과 별도로 호산춘 제조장이 있다. 필자가 이곳을 방문했을 때 권씨는 마당에서 솔잎을 따고 있었다.

권씨의 얼굴에 진 깊은 주름은 세월의 흐름을 오롯이 간직하고 있다. 요즘은 몸도 좋지 않다. 2004년 설연휴가 시작되기 전날. 밤 11시가 넘어서 누군가 철문을 두드렸다. 제주(祭酒)로 쓸 술을 사러 온 것이었다. 그래서 마당을 건너 문을 열어주고 술을 두어 병 내주는데 가슴에 통증이 일었다.

간신히 문을 닫고 다시 자리에 누웠는데, 또다시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도저히 일어나 나갈 수 없을 정도였다. 그래도 찾아온 손님이라 힘겹게 몸을 이끌고 나가 술을 내줬다.

방에 들어와 자리에 눕는데 이번엔 전화가 왔다. 술을 사러 오겠다는 것이었다. “몸이 아파 팔기 어려우니 내일 아침에 오라”고 했다. 그런데도 “지금 서울로 올라가야 하는데 제주 안 사가면 혼난다”며 다짜고짜 찾아오겠다고 했다. 자정이 다 된 시각이었다. 갈수록 가슴의 통증이 심해졌지만 어쩔 수 없었다. 찬 바람 속에 다시 마당을 건너 문을 열고 술을 내줬다.

결국 다음날 권씨는 병원으로 실려 갔다. 그리고 곧바로 서울 큰 병원으로 옮겨져 심장 수술을 했다. 수술을 마친 의사가 “할머니, 오래 사시겠어요”라고 했다. 권씨가 왜냐고 묻자, “심장 동맥이 파열됐는데도 안 돌아가셨으니까요”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그 뒤로 권씨는 예전 기력이 아니다. 지금은 아들의 관리감독 아래, 동네 사람 둘을 불러 술을 빚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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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시명 여행작가, 전통술품평가 soolstory@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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