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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수수밭’과 고량주

수수와 여러 곡물을 발효한 바이지우(白酒)의 매력

‘붉은 수수밭’과 고량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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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이머우 감독과 배우 궁리를 세상에 알린 영화 ‘붉은 수수밭’엔 ‘고량주’가 비중 있게 등장한다. 그러나 영화에 등장하는 고량주는 우리가 알고 있는 고량주가 아니다. 우리가 흔히 고량주 혹은 ‘배갈’이라 부르며 마시는, 향이 강하고 도수가 높은 중국 술의 정식 명칭은 따로 있다. 여운이 강하게 남는 영화 ‘붉은 수수밭’과 중국 전통술에 대해 알아보자.
‘붉은 수수밭’과 고량주
영화 ‘붉은 수수밭(紅高粱·Red Sorghum)’은 중국 영화의 거장 장이머우(張藝謀) 감독의 데뷔작이다. 1987년 제작돼 국내에는 1989년에 소개됐다. 중국 현대문학의 대표 작가 중 한 사람인 모옌(莫言)의 소설에 기반을 둔 작품으로 1988년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황금곰상을 수상했다. 이를 계기로 장이머우 감독은 일약 중국 5세대 영화의 대표 주자로 떠올랐다. 5세대 영화란 1982년 베이징영화학교 졸업생들을 중심으로 전개된 1980~90년대 중국영화의 새로운 흐름을 지칭한다. 5세대 영화는 종래의 전통적인 표현 방법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표현을 추구했다.

궁리(鞏?)와 장원(姜文)이 주연을 맡았는데, 훗날 대배우로 성장하는 궁리 역시 이 영화로 데뷔했다. 영화는 중일전쟁(1937~45) 발발 전후, 중국 산둥지방의 한 벽촌에서 여주인공 지우얼(궁리 분)의 손자가 과거를 회상하는 내레이션으로 시작된다. 지우얼은 지독하게 가난한 집안의 아홉째이자 생일이 9월9일이라 ‘지우얼(九兒)’로 불린다. 그녀는 18세가 되는 해에 얼굴도 모르는 늙은 남자에게 시집을 간다. 그녀가 결혼을 하는 대가로 친정에선 나귀 한 마리를 얻었으니 팔려가는 거나 다름없었다. 남편 될 사람은 쉰 살이 넘은 문둥병 환자로 양조장을 운영하고 있었다.

지우얼과 가마꾼의 인연

시집가는 날, 붉은 옷으로 치장한 지우얼은 붉은 가마를 타고 신랑의 양조장이 있는 십팔리파(十八里坡)라는 외진 마을로 떠난다. 가마를 메고, 풍악을 울리는 일을 모두 양조장에서 보낸 일꾼들이 했는데, 거기에 전문 가마꾼(장원 분)이 끼어 있었다. 지우얼은 가마 문틈으로 윗도리를 벗은 그의 단단한 상체를 보고는 야릇한 감정을 느낀다. 가마꾼은 익숙한 솜씨와 강렬한 카리스마로 일행을 리드한다. 그런데 일행이 청살구(靑殺口)의 드넓은 붉은 수수밭을 지나는 도중에 총을 든 도적의 습격을 받는다. 이때 젊은 가마꾼이 위기에 처한 지우얼을 구해낸다.

마침내 신랑 집에 도착한 지우얼은 자기 할 일을 마치고 멀리 사라지는 가마꾼에게 아쉬운 눈길로 작별을 고한다. 그날 밤 지우얼은 첫날밤을 맞이하지만 영화에서는 이에 대해 구체적으로 묘사하지 않는다. 다만 신방에서 들리는 지우얼의 외마디 비명 소리로 일이 제대로 치러지지 않았음을 암시한다. 문둥병 신랑 역시 영화 내내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결혼 사흘째 되는 날, 그 지방의 관습대로 지우얼은 나귀를 타고 혼자서 고향집을 찾는다. 그런데 도중에 불현듯 도적으로 위장한 가마꾼이 나타나고, 두 사람은 붉은 수수밭에서 뜨겁게 맺어진다. 가마꾼이 이 영화 화자의 할아버지가 되는 순간이다.

이후 고향집에 도착한 지우얼은 겨우 나귀 한 마리에 자신을 팔아넘긴 아버지를 원망하며 다시는 고향집을 찾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십팔리파로 돌아가는 지우얼에게는 엄청난 소식이 기다리고 있었다. 남편이 누군가에 의해 살해된 것이다. 끝내 진범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화자인 손자는 자신의 할아버지가 범인이었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어쨌든 주인을 잃은 양조장의 일꾼들은 동요한다. 마침내 새로운 일거리를 찾아 떠나려는 그들을 지우얼이 나서 붙잡으며 지금부터 자기와 함께 열심히 일해보자고 부탁한다. 이익금의 일정 부분을 분배하겠다는 지우얼의 약속에 가장 나이 많은 고참 루오한을 중심으로 일꾼들이 모두 양조장에 그대로 남기로 결정한다. 이에 양조장은 새 주인과 함께 새 출발을 다짐한 일꾼들이 주위를 정돈하느라 분주해진다.

그러던 어느 날 한동안 보이지 않던 가마꾼이 술에 취한 상태로 갑자기 양조장에 나타난다. 그는 일꾼들에게 수수밭에서 있었던 지우얼과의 일을 떠벌리며 이제부터 지우얼의 낭군으로서 양조장에 살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지우얼은 냉랭한 태도로 그를 쫓아내버리고, 그는 일꾼들에 의해 양조장 앞 빈 술독에 방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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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곤│서울대 흉부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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