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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는 사극, 속 끓는 디자이너

거액 스폰서 디자이너 행세, 우후죽순 카피·표절

뜨는 사극, 속 끓는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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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는 사극, 속 끓는 디자이너

세계적으로 한류 열풍을 일으킨 사극 ‘대장금’의 한장면.

드라마가 한류 상품으로 부상하고 시각적인 요소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작품 속 의상은 점점 화려해지고 있다. 2005년 방영된 SBS ‘서동요’를 시작으로 2006년 ‘주몽’ ‘연개소문’, 2007년 ‘태왕사신기’ 등이 고대를 배경으로 삼으면서 의상 제작비는 더욱 늘었다. ‘주몽’에서 주인공 송일국이 입은 대례복의 제작비는 벌당 1000만원대에 달한다. 지난해 방송된 드라마 ‘성균관스캔들’의 의상을 담당한 이진희 ‘옛의상스튜디오’ 대표는 “수준 높은 의상을 만들려면 돈이 많이 든다. 우리 드라마의 경우 조선 시대를 배경으로 삼았는데도 정조의 곤룡포 한 벌을 제작하는 데 700만~800만원씩 들었다”고 밝혔다. 이 의상의 어깨 부분에 들어간 자수는 국빈들의 의상을 짓는 업체에서 만든 ‘작품’이라고 한다. 이 대표는 “제작비가 충분하지 않으면 어떻게 이런 시도를 하겠느냐”고 했다.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사극의 의상제작비는 적게는 수억원에서 많게는 십수억원에 달한다. 문제는 사극의 경우 PPL(간접광고) 등을 통한 제작비 지원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 드라마가 성공하면 가장 주목을 받게 되는 한복 업체 정도를 제외하고는 협찬사를 구하기 쉽지 않다. 그리고 이 정도 자금을 지원할 수 있는 한복 업체도 제한적이다.

무대 아래 선 디자이너

그렇다보니 제작사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스폰서의 무리한 요구를 들어주는 경우도 많다. 이혜란 차장은 “한번은 드라마 방영 도중 협찬사가 드라마 의상을 활용한 한복 패션쇼를 하고 싶다고 요청해왔다. 방송 일정이 빠듯했지만 드라마가 인기를 끌고 있을 때 쇼를 해야 홍보 효과가 크다는 협찬사의 요구를 거절할 수 없어 제작 일정을 조정해 의상을 빌려줬다”고 했다. 협찬사 대표는 1부에는 그들이 디자인한 판매용 한복을 올리고 2부 무대에는 드라마 의상을 소개하는 식으로 쇼를 구별하겠다고 약속했다. 자신들이 해당 사극의 디자인 작업에는 참여하지 않았음을 밝히겠다고 한 것이다.

하지만 막상 쇼가 끝나자 대표가 무대에 올라 디자이너 자격으로 인사했다. 이 차장은 “내가 디자이너인데 무대 아래서 바라보고 있다는 게 기가 막혔다. 하지만 방송 기간이 아직 몇 달 남아 있었기 때문에 중간에 협찬을 중단할까봐 제대로 항의도 못했다”고 털어놓았다. 그날 이후 여러 언론에는 ‘OOO 드라마 의상을 디자인한 OOO 디자이너’에 대한 기사가 실렸고, 협찬사는 지금까지도 이 경력을 마케팅에 이용하고 있다. 또 다른 디자이너도 “협찬사 대표의 일방적인 패션쇼 홍보 때문에 상처를 입었다”고 고백했다. 하지만 향후에도 계속 사극을 제작해야 하는 제작사와 소속 디자이너들은 해당 협찬사의 협조를 또 받아야 하기 때문에 벙어리 냉가슴만 앓는다.

사극의 의상 협찬사는 대부분 일상 한복 분야에서 기반을 다져온 업체들. 디자이너가 대표를 겸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이들이 다른 디자이너를 고용하지 않고 직접 의상을 디자인하면 되지 않을까. 이런 의문에 대해 현장 디자이너들은 “일반적인 한복 디자이너가 사극 의상을 디자인하는 건 쉽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익명을 요구한 한 디자이너는 “영화·드라마 의상은 스토리와 연출자의 의도, 조명과 무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만들어진다. 소재에 따라 조명 흡수율이 다르기 때문에 다양한 샘플을 만들어 테스트해보고, 여러 스태프가 모여 의견을 조율하는 단계도 거친다. 일반 디자이너들이 전적으로 사극 디자인에만 매달린다면 모를까, 현실적으로는 어려운 일”이라고 했다.

양씨는 “최근 사극 의상이 주목받는 이유가 기존에 있던 한복과 전혀 다른 독착성 때문 아니냐”며 “전통 한복을 오래 디자인해온 디자이너들은 그런 창의성을 발휘하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저는 지금까지 한복에 사용된 적 없는 새로운 소재를 많이 썼어요. 주인공 캐릭터를 부각하기 위해 원단에 화려한 꽃무늬 패턴 같은 것도 넣었습니다. 기존 디자인에 익숙한 협찬사 대표가 처음엔 ‘천박하게 이런 걸 만들라고 한다’며 싫어할 정도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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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화선│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pr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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