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리문을 밀고 들어서면 세월의 냄새가 훅 끼쳐온다. 쇠락한 여관의 냄새다. 천장은 낮고, 복도는 좁다. 양쪽으로 나무문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데, 문짝마다 1호·2호 패찰이 달려 있다. 손때가 반들반들한 문고리를 잡아 돌리면 어른 한 명 간신히 발 뻗고 누울 만한 쪽방이 나온다. 일제강점기 신문지부터 꽃무늬 벽지까지, 여러 번 도배한 벽면 곳곳이 뜯기고 찢겨 서로 다른 얼굴을 드러내보인다. 복도 끝의 공동변소, 2층으로 이어지는 나무계단, 목조 뼈대가 노출된 천장…. 눈앞의 모든 것에서 수십 년 세월이 읽힌다. 그 사이로 그림 혹은 사진 때로는 조각이 늘어서 있다. 갤러리 맞다. 분명 그렇다. 하지만 어디까지가 공간이고, 어디부터가 전시인지 구분이 쉽지 않다.
조명 역시 인색하기 짝이 없다. 작은 전구 몇 개를 제외하면 자연광이 전부다. 유리문과 2층 지붕 밑 천창 두 개를 통해 들어오는 빛이 실내를 밝힌다. 어둠에, 공간에 먼저 익숙해져야 비로소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이 갤러리의 인테리어는 사람 손으로 만들어진 게 아니다. 보이는 그대로, 세월의 작품이다.
“1936년 가을 함형수와 나는 둘이 같이 통의동 보안여관이라는 데에 기거하면서 김동리, 김달진, 오장환들과 함께, ‘시인부락’이라는 한 시의 동인지를 꾸며내게 되었다.”
미당 서정주의 문학인생을 기록한 ‘서정주 문학전집’ 3권 ‘천지유정’의 한 대목이다. 75년 전 문학청년이 ‘기거하던’ 그 여관이 지금의 이곳이다. 서울 종로구 통의동 길. 건너편으로 경복궁 영추문과 마주한 거리에 ‘보안여관’은 흑갈색 2층 건물로 여전히 서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