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호위사령부 소속 이철진 중좌가 평양특별시 모란봉구역 칠성문동에 위치한 호위사령부 본관으로 들어선다. 제복 차림으로 허리에는 툴라-토카레프의 북한식 개량품인 68식 권총을 찼다. 권총 손잡이 안쪽에 별 모양의 금장식이 붙어 있지만 권총집에 덮여 보이지 않는다. 그것은 국방위원장 김정일의 측근 경호를 맡고 있다는 영예의 표시다. 본관 계단을 오르는 이철진을 향해 내려오던 군관 두 명이 경례를 했다. 낯익은 군관들이다. 아마 별장호위연대 소속인 것 같다. 가볍게 답례한 이철진은 곧 2층 복도 끝에 위치한 2호위대 참모장실로 들어섰다.
“어, 왔나?”
책상에 앉은 참모장 박장우 중장의 표정은 어둡다. 머리만 끄덕여 인사를 받은 박장우가 눈으로 앞쪽 의자를 가리켰다. 참모장실 안에는 둘뿐이다. 열린 창을 통해 차량의 배기가스 냄새가 흘러들어왔다. 이철진이 자리에 앉자 박장우가 똑바로 시선을 주었다.
“동무, 집은 광복거리에 있지?” “그렇습니다.” “집은 옮기지 않아도 돼.”그 순간 이철진의 눈썹이 치켜 올라갔지만 입을 열지는 않는다. 이제는 박장우가 책상 위의 서류로 시선을 내리더니 말을 잇는다.
“동무는 2군단 제27사단 3연대 1대대장으로 전직되었어. 일주일 후인 4월 2일까지 2군단사령부에 신고하도록 해.”
“….” “호위대가 개편되면 다시 불러들일 테니까 당분간만 내려가 있도록 해.” “알겠습니다.”
이철진은 차분한 제 목소리를 듣고는 어깨를 폈다.
“명령에 따르겠습니다.” “나도 곧 떠날 거야.” 마침내 박장우가 먼저 흔들렸다. 눈을 치켜뜬 박장우가 이철진을 노려보았다.
“그러니까 그때 다시 만나자고.” “예, 참모장 동지.” 자리에서 일어선 이철진이 어깨를 폈다. 심호흡을 했더니 매연 냄새가 더 진하게 맡아졌다. 요즘은 평양에도 차가 많아졌다.
“안녕히 계십시오.”
이철진이 경례를 했지만 박장우는 외면한 채 받지 않았다.
2군단은 전연지대인 휴전선 중서부 지대에 배치된 정규군단으로 사령부는 황해북도 평산군에 위치하고 있다. 호위사령부의 제2호위대에서 전연지대라고 불리는 전방의 보병사단 대대장으로 전출되는 것은 좌천이라기보다 유배와 같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김정일의 측근에서 머물던 이철진은 2군단장도 눈 아래로 보았던 것이다. 참모장실을 나와 이제는 계단을 내려가는데 올라오던 소좌 둘이 시선을 피하면서 지나쳤다. 이놈들도 낯익다. 그렇지, 제1호위대 소속으로 김일성 주석의 동상을 관리하던 놈들이다. 그러던 놈들이 이제는 대장 주위에 배치되고 있다.
“인사 내용을 보셨습니까?” 이영호가 묻자 김정은은 머리를 끄덕였다. 주석궁의 집무실 안이다. 소파에 앉은 김정은 앞에 선 총참모장 이영호가 말을 잇는다.
“당장 급한 곳은 전연지대 군단입니다. 조중 국경 지역 군단은 천천히 하셔도 됩니다.”
지금 둘은 군 고위지휘관의 인사를 의논하고 있다. 정색한 이영호가 김정은을 보았다.
“지금은 서릿발 같은 위엄을 보이셔야 합니다. 그래놓고 나서 자애롭게 대해주시면 더 감격합니다.”
“알겠소.”
“한꺼번에 하면 혼란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으므로 먼저 4군단의 사단장급부터 이동시켰습니다.”
김정은이 잠자코 손에 쥔 서류에 시선을 주었다. 모르는 이름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이 중 영전된 장성들은 새롭게 시작되는 김정은 대장의 인맥으로 분류될 것이었다. 이영호의 열띤 목소리가 이어졌다.
“21사단장 하석훈 중장은 제1호위대에서 충성을 검증받은 동무입니다. 대장 동지를 위해서는 목숨을 바칠 것입니다.”
“알겠소.”
김정은이 하석훈의 인적사항을 읽는다. 하석훈은 1994년부터 14년 동안이나 김일성 주석의 묘소를 관리하다가 지난해 이영호에게 발탁되어 소장으로 진급했다. 소장으로 진급한 후에 총참모부에서 정찰국을 관리하다가 이번에 중장으로 진급해 사단장이 되었으니 이영호의 심복이다. 그때 이영호의 목소리가 멀어지는 느낌이 들면서 김정은의 눈앞에 아버지의 모습이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