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6시20분, 어스름녘이 되니 누군가 밥 준비 다 됐단다. 저녁식사를 포기하고 그와 마주앉는다. 운동장 스탠드에 자릴 잡더니 담배 연기 한 모금 깊숙이 빨아들인다(그는 촬영현장에서도 자기 신만 아니면 담배부터 꺼내고 보는 체인스모커다). 가만 보니 이 사람, 무뚝뚝하지만 거만하진 않다. 스타 연 하는 ‘곤조’가 없다. ‘뜨기’ 전이나 뜬 다음이나 똑같을 사람이라 생각하니 왠지 마음이 편안해진다.
“김광석 노래 좋아한다면서요.”
“네. 그 사람 CD만 7장 갖고 있어요. 차에 싣고 다니며 줄창 들어요.”
“뭐 좋아하세요? ‘이등병의 편지’ ‘서른 즈음에’ ‘부치지 않은 편지’…. 많잖아요.”
“다 좋아해요. ‘서른 즈음에’는 내 노래라 다른 사람이 부르려고 하면 마이크 바로 빼앗아버려요. 지난번에 이창동 감독님 부르려고 하실 때도 제가 그랬어요. 친하니까.”
처음 김광석을 알게 된 건 김민기 연출의 뮤지컬 ‘지하철 1호선’에 출연할 때였단다. 어느 날 우연히 김광석 콘서트가 한창인 대학로 소극장에 들렀다 엉겁결에 공연을 보게 됐다. 다 좋았지만 특히 오프닝 곡인 ‘서른 즈음에’가 어떻게나 맘속 깊이 스며들던지, 그 날부터 공연 끝날까지 첫 곡 부르는 시간만 되면 콘서트장으로 달려가 그 노래를 듣곤 했다.
“‘박하사탕’ 홍보하려고 ‘이소라의 프로포즈’에 출연했어요. 노래를 하라길래 ‘이등병의 편지’를 불렀죠. 나중에 스태프들한테 핀잔 꽤나 들었어요. ‘공동경비구역 JSA’랑 한참 비교 될 때였는데, 그 영화 띄워주는 노래를 부르면 어떡하냐구요. 왜, 그 영화에 ‘이등병의 편지’가 삽입돼서 인기 많이 끌었잖아요.”
사랑하는 가수 이야기가 나오니 말이 술술 풀려나온다. 언제 그렇게 낯가리며 딱딱하게 굴었나 싶을 정도다.
설경구의 고향은 충남 서천군 한산면이다. 태어난 곳이라지만 가슴 아린 추억 같은 건 없다. 지금에 와서는 모시 짜는 사촌누이 한 분이 살고 있을 뿐이다.
철도 들기 전 서울 마포구로 이사했다. 지금의 ‘홀리데이 인 서울’ 호텔 뒷동네에 자리잡았다.
“거기 마포아파트라고 있었어요. 그게 우리나라 최초의 아파트거든요. 하여튼 비싸고 좋았어요. 우리집은 그 마포아파트… 옆에 있는 한옥이었어요. 거기 살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집을 사 이사했죠. 역시 부근 어디였어요. 덕분에 초·중·고등학교를 다 그 동네서 나왔어요. 마포초등학교, 마포중학교, 마포고등학교요.”
‘마포맨’ 설경구의 아버지는 마포구청에 근무했고 거기서 정년퇴임을 맞았다. “뿌리 깊은 가문인 만큼 국회의원 출마라도 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했더니 “어, 나 지금 일산 사는데…?” 하며 눙치고 든다. 누나 하나, 남동생 하나가 있다.
학교 다닐 땐, 그의 표현대로라면 ‘어리버리한 아이’였다. 특별한 사건도, 기억에 남는 일도 없다고 했다. 그런데 가만 얘기를 듣다보니 꼭 그런 것만도 아닌 것 같다.
“어릴 적 기억이라…. 글쎄요, 요렇게 단추 딱 끼는 넥타이에 양복 빼입고 창경원 놀러갔던 거요. 버스 타면 왜 운전기사석 옆에 엔진통 있잖아요. 거기 앉는 걸 좋아했어요. 기사 아저씨 발 움직이는 거 보려고. 그게 너무 재미있어서 장래 꿈도 버스운전사였잖아요. 동네에 꼭 엔진통처럼 생긴 난간 같은 게 있었는데, 심심하면 그걸 타고 앉아 발을 들었다 놨다 하며 운전연습을 했어요.”
“어린 시절에도 그렇게 독했냐”고 물으니 픽 웃으며 “저 안 독해요” 한다. 재차 “애들 꽤 울렸겠다”니까 이번엔 좀더 심각한 얼굴로 “저 싸움 안해요” 그런다.
“때리는 게 싫어서요. 사교적이진 않지만 그런대로 분위기에 묻혀 사는 정도는 됐어요. 그렇다고 애들한테 먼저 다가가는 일은 없었고. 오는 애들도 다 받아주진 않았죠. 정리해서 받았어요. 전 싫으면 꼭 티가 나거든요. 냉정해져요. 좋은 척, 착한 척, 이런 척, 저런 척, 그런 거 못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