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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문화재 보고 ‘야 미치게 아름답네’ 할 줄 알아야 해요”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유홍준 교수가 밝히는 베스트셀러 비밀

“죽은 문화재 보고 ‘야 미치게 아름답네’ 할 줄 알아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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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문화재 보고 ‘야 미치게 아름답네’ 할 줄 알아야 해요”

유홍준 교수는 답사기 6권에 경복궁 근정전 앞마당에 깔린 박석의 가치를 재조명했다.

죽은 문화재에 생명력 부여

유 교수는 죽어 있는 문화재를 끄집어내 생명력을 부여하는 힘을 가졌다. 게다가 사람들이 눈길 두지 않던 문화재급 꽃이나 나무, 동물들을 등장시켜 깊은 인상을 안겨주기도 한다. 합천 가회면 오도리의 시도기념물 이팝나무, 대조사 꽃사슴 해탈이와 진돗개 복실이, 부여 농군의 지게….

“문화유산을 하나의 물질로만 보게 되면 굉장히 생경하게 느껴집니다. 그런데 그것과 같이 어우러졌던 인간이나 에피소드는 유물과 유적을 더 오랫동안 기억할 수 있게 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오 헨리의 소설 ‘마지막 잎새’는 그리니치빌리지에 살고 있는 가난한 화가의 따뜻한 인간애를 그리고 있어요. 그런데 우리는 그런 분위기는 다 잊어버리고 한 늙은 화가가 담장에 마지막 잎을 그려 넣는 에피소드만 기억하게 돼요. 답사기에서도 소설과 영화처럼 에피소드 처리를 잘해야 하거든요.”

철저한 계산의 산물

▼ 그것을 의도한다는 건가요?



“일종의 작가적 구성이 필요한 거지요. 유능한 작가와 감독은 에피소드 처리에 대단히 능숙한 사람들입니다. 글을 쓸 때도 좋은 에피소드가 있으면 글 쓰는 맛이 납니다. 그런 게 없을 때는 글이 굉장히 빡빡해집니다. 특히 문화재의 아름다움을 얘기할 때는 기존에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 이미지에 겹쳐지게 비유하면 제법 설득력이 생겨요.”

그가 답사기 1권에서 고선사탑과 석가탑을 비교하는 장면이 떠오른다. 그는 장중한 고선사탑은 글래머 스타 같아서 배우 소피아 로렌 같은 느낌을 주고, 우아하고 귀족적 느낌의 석가탑은 그레이스 켈리나 잉그리드 버그만 같다고 썼다.

“문제는 제가 비유하는 것들이 다 옛날 스타, 옛날 정서를 작동시키는 것들이어서 요즘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정보를 담지 못한다는 겁니다, 허허. 제 책의 독자 가운데 중년 이후가 많은 것도 그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인터뷰 도중 마침 이날 오후 유 교수가 미술사학과 4학년 ‘문화유산 교육론’ 수업에서 자신의 글쓰기 지론을 밝힌다는 얘기를 듣고 그의 수업을 청강했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6’이라는 건축물을 어떻게 축조했는지 그 개괄을 알 수 있었다.

그의 책은 철저한 계산의 산물이었다. 먼저 그는 이 책이 전국을 대상으로 한 답사기라는 점에서 내용 구성상 지역적 안배를 염두에 뒀다. 서울 경기도에서 경복궁, 충청도 부여, 전라도 선암사, 경상도 거창·합천, 경북 도동서원, 강원도의 낙산사를 새로 썼는데, 이것은 이번에 낸 1~5권 개정판에 넣었다. 구체 소재는 궁궐, 서원, 양반집, 사찰, 관아. 한 개의 장(章)은 대략 200자 원고지 100장 안쪽이다. 단편소설과 비교할 수 있는 것은 각 장이 단편과 분량도 비슷하지만 세밀한 플롯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플롯에 들이는 공은 아주 특별하다. 이는 한때 그가 문학청년이었던 것과 무관하지 않다. 동아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미술평론가인 그는 글쓰기는 잘 짜인 구성에서 나와야 감동과 재미가 극대화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답사기 6권에서 도동서원을 소개하는 글을 보자. 우선 그는 어떤 형식으로 써도 들어가야 하는 부분, 즉 서원의 건축적 특징과 그 주인 한훤당 김굉필에 대한 이야기를 마련해뒀다. 그 다음 주인공과 관련된 일, 곧 도동서원에서 일어났던 특별한 사건이나 사상적 의미를 조명하려 했다.

“그런데 특별한 게 눈에 띄지 않았어요. 결국 한훤당에 대한 역사적 평가를 중심으로 서술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도동서원의 임자인 그가 어떻게 문묘배향의 첫 인물이 되고, 스승이었던 점필재 김종직과 헤어지는 과정 등이 흥미로운 요소이지요. 스승과 제자의 헤어짐은 사실 지금 생각해도 울림이 있는 이야기로 이 시대와 겹쳐집니다. 당대에 중요한 위치에 있던 지식인 점필재가 변절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개인의 안일을 위한 게 아니라 사회적 선을 실천할 수 있는 한 방편으로 생각을 조금 바꿨을 뿐이었지요. 이를 판단하는 것은 사실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 사건에 대한 해석을 직접 하지 않고 은근히 내세우면서 퇴계 이황과 한문학자인 송재소 성균관대 명예교수님이 언급한 부분을 집어넣었습니다. 그렇게 인문학적 내용이 갖춰진 겁니다. 만약 이 부분이 빠졌다면 그저 서원의 건물 이야기에 그쳤을 수도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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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상 기자│doppel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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