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기 비천한 목수의 아들로 태어나 드높은 야망을 품었던 한 청년이 있다.
- 19세기 프랑스 격변기, 속물적 가치를 경멸하며 상류사회에 진입한 이 야심가는 결국 사랑으로 한순간 파멸에 이른다.
- 세계문학사에서 가장 매혹적인 남자 주인공, 쥘리앵 소렐이 등장하는 스탕달의 작품 ‘적과 흑’은 비극적인 성장소설이자 대단히 감성적인 연애소설이다.
프랑스 문학의 거장, 스탕달
젊은 날 스탕달은 나폴레옹 체제하에서 군인과 관리 생활을 했으며(1812년 전쟁 때는 러시아까지 갔다가 나폴레옹 군대와 함께 퇴각했다) 나폴레옹 몰락 이후에는 주로 이탈리아에 머물며 딜레탕트적인 삶을 살았다. 그가 다시 관직을 얻은 것은 1830년 7월 왕조가 성립됐을 때다. 대체로 일신의 행복과 안락을 추구했던 그의 삶은 별다른 얘깃거리를 주지 않는다.
문학적 측면만 봐도 그러하다. 그에게서는 보통 19세기 작가들이 보여주는 순교자적 측면을 찾아보기 힘들다. 가령 그는 ‘펜의 도형수’를 자처하며 괴물처럼, 짐승처럼 써나갔던 ‘열혈남’ 발자크와도, ‘일물일어설’의 원칙에 따라 피를 말리는 고통을 맛보며 소설 쓰기에 임했던 ‘냉혈한’ 플로베르와도 다르다. 등단 시기도 상당히 늦었다. 첫 소설 ‘아르망스’를 발표한 것은 1826년, 그가 불혹의 나이를 넘겼을 때였으니 말이다. 이후 그가 쓴 작품은 회상록이나 에세이를 빼고 소설에만 국한한다면 그다지 많은 양이 아니다. 그런 그가 세계문학사에서 가장 매혹적인 소설 중 하나인 ‘적과 흑’을 썼다. 바로 이 대목이 극적이다.
군인 혹은 관리로서의 출세를 꿈꾸었으나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했고 못생긴 외모에 대한 보상 작용인 양 수차 연애를 거듭했으나 대개의 경우 실연을 당했던(대신 ‘연애론’을 남겼다) 한량이 1830년에 ‘적과 흑’이라는 제목의 소설을 완성한다. 그때 그의 나이는 이미 47세였다. 이 소설은 1820년대 후반 프랑스에서 실제로 있었던 한 형사 사건(‘베르테’ 사건)을 소재로 취했는데, 그 시의성에도 불구하고 그다지 인기를 얻지 못했다. 당시 스탕달은 발자크보다 지명도가 낮은 작가였다. 그러나 스탕달은 자신의 소설이 훗날에는 유명해질 것이라고 믿었고 결국 그 예언이 실현됐다. 실제로 ‘적과 흑’은 문학성은 물론 읽는 재미마저 갖춘, 고전치고는 제법 드물게 가독성이 높은 소설이다. 좀 더 세부적으로 보자.
‘적과 흑’은 주인공의 야망과 좌절에 주목한다면 비극적인 성장소설이자 모험소설이고, 그의 사랑과 연애에 집중한다면 대단히 감성적인 연애소설이며, 자유간접화법의 사용이 돋보이는 섬세한 심리 묘사에 매료된다면 훌륭한 심리소설이다. 어떤 경우든 이 소설의 중심축을 이루는 것은 매혹적 청년 쥘리앵 소렐이다. 나폴레옹이 힘으로 세상을 뒤흔들었다면 스탕달은 문학으로, 쥘리앵은 연애로 비슷한 위업을 달성한다. 작가의 입장에서 보자면, 그는 나폴레옹에 대한 자신의 양가적인 입장을 주인공에게는 순수한 열광과 숭배의 형태로 반영한다.
한편 스탕달은 부유한 부르주아 출신으로서 귀족과 민중 모두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를 취했는데, 특히 민중에 관한 한 혐오와 경멸을 감추지 않았다. “나는 더러운 것을 혐오하는데, 민중이란 내 눈에 항상 더러워 보인다”라거나 “민중과 더불어 산다는 것은 내게는 순간순간마다 고통이 될 것이다”라거나 “가겟방의 사람들과 더불어 살기보다는 매달 보름씩을 감옥에서 보내는 편이 좋을 것이다”라는 말을 남겼다지 않은가(‘앙리 브륄라르의 삶’). 그럼에도 정작 자기 소설의 주인공은 목수의 아들, 즉 민중에서 택했다. 무엇이 그토록 매력적이었던 것일까.
인생을 나폴레옹처럼!
쥘리앵 소렐은 무식하고 거친 목수의 아들이다. 그럼에도 아비나 형들과는 달리 도무지 육체노동에는 어울리지 않을 법한 야리야리한 몸에 뽀얗고 곱상한 얼굴, 나긋나긋하고 조용한 행동거지, 뛰어난 지력과 예민한 감수성 등 모든 점에서 너무나 민중답지 않다. 환경결정론과 유물론의 관점에서 보자면 주인공의 성격에 동기화가 다소 부족한 편이다. 달리 말해 작가의 입장에서는 주인공의 현재 위치와 야망 사이에 존재하는 간극과 차이가 중요했던 것 같다. 즉 “드높은 마음, 비천한 신세”(1부 10장의 제목)!
쥘리앵에게 출세는 ‘군인’과 ‘성직자’라는 구체적인 명사로 나타난다. 물론 그의 진짜 꿈은 늙은 군의관이 불어넣어준 대로 ‘나폴레옹’이 되는 것이었다. 인생을 나폴레옹처럼!
스탕달이 47세에 완성한 소설 ‘적과 흑’은 문학성과 재미를 두루 갖춘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나폴레옹에 대한 향수는 비단 쥘리앵뿐만 아니라 하층 계급 전반에 걸쳐 만연해 있다. 소위 나폴레옹 신화의 핵심은 무엇인가. ‘신분’은 숙명처럼 주어지는, 고로 절대 바꿀 수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계급’은 본인의 능력과 노력, 어쩌면 운을 통해 어떻든 조금이나마 변화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다. 혁명, 특히 코르시카 섬 출신의 자그마한 군인 하나가 어느 날 갑자기 황제가 된다. 개천에서 용이 태어난 셈인데, 나폴레옹이 증명한 것은 바로 그 가능성이다.
나폴레옹을 향한 쥘리앵의 모방욕망에 늙은 군의가 심심파적으로 베푼 교육의 영향까지 가세한다. 그는 틈나는 대로 ‘세인트헬레나의 기록’을 읽고 나폴레옹의 초상화를 성물처럼 간직하고 있다. 아비의 집을 떠난 이래 그는 예비 사제로서 주로 검정색 옷을 입지만(‘흑’), 그 내면은 나폴레옹적 야망과 열정으로(‘적’) 가득 차 있다.
“쥐라 산맥의 가련한 농사꾼이나, 평생 동안 이 음울한 검은 옷을 걸치고 있어야 할 내가 아닌가! 아아! 이십 년 전만 해도 나는 그들처럼 군복을 입었을 것이 아닌가! 그때라면 나 같은 남자는 전쟁터에서 죽거나 아니면 ‘서른여섯 살에 장군이 되었을 텐데.’”(2권, 106쪽)
그렇다면 ‘적’과 ‘흑’은 단순히 군직과 성직이 아니라 순수한 열정과 현실적 타협, 혁명의 시대와 왕정복고(반동)의 시대 등을 상징하기도 한다. ‘흑’은 차선책이었던 셈이다. 셸랑 신부는 이 점을 일찌감치 간파한다.
“자네 성격의 밑바탕에는 어두운 격정이 엿보이는 것 같아 걱정이네. 그것은 성직자에게는 꼭 필요한 절제라든가 세속적 이득의 완전한 포기 같은 것을 보여주지 않는단 말이야. 자네의 재주는 전도유망하다고 생각하는 바이지만 그러나 (…) 성직자가 될 경우 나는 자네의 구원이 염려되는 바일세.”(1권, 78쪽)
그러나 목표가 설정됐다면 움직여야 한다. “쥘리앵에게 출세한다는 것은 우선 베리에르를 떠나는 것을 의미했다. 그는 자기 고향이 질색이었다.”(1권, 43쪽) 더욱이 그에게는 야망을 뒷받침해줄 충분한 능력(특히 신약 성경을 다 외우고 라틴 고전 문학까지 섭렵할 만큼 뛰어난 라틴어 실력)이 있다. 그리하여 이 19세 청년은 아비의 집을 떠나 베리에르 시(市) 시장 집의 가정교사로 들어간다. 이어 브장송의 신학교, 파리의 드 라 몰 후작의 저택 등 계속해 대처(大處)로 나간다. 쥘리앵의 동선, 즉 시골 청년의 상경 스토리는 19세기 근대소설의 일반적인 구성을 반복한다. 자, 쥘리앵은 ‘검은 옷’의 나폴레옹이 될 수 있을 것인가.
순수에의 집착
쥘리앵 소렐은 책을 읽는다는 이유로, 즉 육체노동을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아비의 집에서 거의 기생충 취급을 받았다. 이방인이라는 꼬리표는 어딜 가나 그를 따라다닌다. 우선 지방 귀족 사회에 가정교사로 편입된 청년의 지위는 제법 애매하다. 지적인 능력과 야망의 크기에 비해 그 사회적 처지는 어쩔 수 없이 굴욕적이며, 쥘리앵처럼 성격이 예민한 경우는 더욱 그렇다.
그는 추상적인 의미의 상류 사회는 흠모하지만 그것의 구체적인 요소에 대해서는 정반대의 반응을 보인다. 가령 가난하되 오만한 사람의 특징인바, 추상적인 돈은 동경하되 구체적인 돈은 경멸하고 대체로 이해타산과 축재에 둔하다. 이는 어떤 의미에서 자신의 유일한 가치인 ‘순수’를 지키려는 본능적인 방어기제의 산물일 수 있다. 결과적으로 출세욕이 강할수록 속물적 가치에 대한 혐오는 더 커지는 역설이 발생한다. 이것이 그가 시장 집에서도 이방인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한편 브장송의 신학교는 그야말로 시련의 도가니다. 성직에 대한 소명감보다는 최대한 손쉽게 빵과 안정을 얻기 위해 신학교에 들어온 거친 평민의 아들들이 모두 쥘리앵의 적이 된다. 그의 장점(우수한 성적, 순수에의 집착, 성취욕구, 성실성 등)이 질투와 힐난을 불러온다. 일등을 하면 세상살이가 피곤해진다. 이런 현실을 통감할수록 쥘리앵의 소외감은 더 커진다. 피라르 신부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그의 인생은 정말 우울했을 터이다.
드 라 몰 후작의 저택은 어떠한가. 작가는 쥘리앵이 시골 출신임을 수시로 언급하면서 파리라는 공간의 특수성을 강조한다. 실제로 파리 귀족사회는 지방 귀족사회와는 사뭇 다르다. 쥘리앵의 두 연인 드 레날 부인과 마틸드는 그 상징 같다. 전자가 신분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온화하고 다정한 모성에 가깝다면(즉 촌스럽고 그렇기에 숭고하다!) 후자는 도발적이고 자극적이기에 더욱 더 정복의 욕구를 자극한다. 그럼에도 그 욕구를 성공리에 실현하기에는, 즉 파리의 노회한 귀족 사회를 감당하기에는 그는 너무 순수했거나 너무 어리석었다. 타고난 능력 덕분에 후작의 밀사가 될 만큼 신임을 얻어놓고서도 고작(!) 여자 문제 때문에 파멸하다니!
운명에 맞서다 최후를 맞이하는 영웅
하지만 쥘리앵의 매력이 최고조에 달하는 것은 그의 야망이 좌절됐을 때다. 후작의 손에 떨어진 드 레날 부인의 편지(실은 어느 사제가 쓴 것을 부인이 베껴 적은 것이다)를 마틸드에게서 건네받고 그것을 다 읽자마자 그는 말한다.
“나는 드 라 몰 후작님을 비난할 수 없습니다. (…) 어떤 아버지가 사랑하는 자기 딸을 이런 작자에게 주려 하겠소! 잘 있어요!”(2권, 319쪽) 그러곤 그 길로 베르에르 시로 달려가 성당에서 기도를 하고 있던 드 레날 부인을 권총으로 쏜다. 이 과정에 대한 묘사는 무척 짧을뿐더러 그의 심리에 관한 언급이 없다. 부인을 쏜 것은 과연 복수심 때문이었을까.
어떻든 이후 우리가 보는 것은 자신의 운명을 의연히 받아들이는 쥘리앵이다. 굳이 발뺌을 하지도 않거니와 자살의 유혹도 나폴레옹을 떠올리며 일찌감치 물리친다. “나는 아직 대여섯 주일을 살 수 있다. 자살! 안 될 말이지. 나폴레옹도 자살하지 않고 살아갔는데….”(2권, 331쪽) 브장송의 지하 감옥에 갇힌 채 죽을 날을 세는, 더 정확히 남아 있는 날을 조용히 향유하는 쥘리앵의 모습은 그 어느 때보다 아름답고 숭고하다. 진정한 높이는 오히려 밑바닥으로 추락했을 때 확보된다는 것, 대단한 역설이 아닌가. 법정 가득 울려 퍼지는 그의 말을 들어보자.
“나는 여러분에게 용서를 청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본인은 조금도 환상을 품고 있지 않습니다. (…) 내 범죄는 잔혹한 것이며 또한 계획적인 것입니다. 배심원 여러분, 그러므로 본인은 사형을 당해 마땅합니다. 그러나 내 죄가 좀 더 가벼운 것이었다 해도 사람들은 내 젊은 나이가 동정을 살 만하다는 사실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나를 통해 나와 같은 부류의 젊은이들을 징벌하고 그들을 영원히 의기소침하게 하려 한다는 것을 본인은 잘 알고 있습니다. 즉 하층 계급에서 태어나 가난에 시달리면서도 다행히 좋은 교육을 받았고 부유한 사람들의 오만이 사교계라고 부르는 것에 대담하게 끼어들려 한 젊은이들 말입니다. / 여러분, 그 점이 바로 본인의 범죄입니다. 그리고 사실상 나는 나와 같은 계급의 동료들에게 판결 받지 못하는 만큼, 내 범죄는 더욱더 준엄한 징벌을 당할 것입니다. 본인의 눈에는 배심원석에 부유한 농민 하나 보이지 않고 오직 분개한 부르주아들만이 있을 뿐입니다….”(2권, 373~374쪽)
살인미수는 큰 죄이지만, 쥘리앵의 주장을 피해의식의 산물로만 볼 수는 없다. 문제는 사건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둘러싼 여러 정황(드 라 몰 후작과 프릴레르 부주교의 해묵은 반목, 남작에다 시장이 된 발르노의 복수심, 마틸드의 ‘영웅주의’가 빚어낸 역효과 등)과 사회 구조다. ‘적과 흑’의 초반부에 등장한, 지방 권력의 농간으로 브장송에서 사형을 당한 루이 장렐의 운명이 실로 복선이었던 셈이다.
한편 통렬한 계급의식에 사로잡힌 쥘리앵의 고백에 따르면 그의 죄는 상승 욕망, 말하자면 ‘꿈꿀 권리’를 가진 것이다. 더 깊이 파고들면, 상류 사회에 편입하고자 하면서도 그것을 경멸하고 또한 그러면서도 상승 욕망을 버리지 못한 것이야말로 자기기만의 핵심이다. 그러나 파멸로 치달을 수밖에 없는 이 자기 모순 덕분에 쥘리앵은 19세기판 비극의 주인공이 된다. 끝까지 운명에 맞서 싸우다 장렬히 최후를 맞이하는 영웅! 그 운명의 이름이 사랑이라는 점에서 ‘적과 흑’은 확실히 연애소설이다.
연애의 법칙, 인생의 법칙
스탕달은 ‘연애론’에서 사랑을 열정적인 사랑, 취미적인 사랑, 육체적인 사랑, 허영적인 사랑 등 네 종류로 구분한다. 이 분류법을 ‘적과 흑’의 주인공에게 적용해보면 드 레날 부인과의 사랑은 열정적인 사랑에, 마틸드와의 사랑은 허영적인 사랑에 해당하겠다. 하지만 전자의 경우도 그 출발점은 허영적인 사랑이다. 스탕달의 비유를 빌리자면, 프랑스 남자라면 누구나 훌륭한 말(馬)을 갖고 싶어하는 것과 같은 종류의 사랑 말이다. ‘적과 흑’을 놓고 보면 문제는 우리의 연인들이 소설을 읽는지 어떤지로 볼 수 있다.
‘스탕달 신드롬’이란 말을 있게 한 귀도 레니의 작품 ‘베아트리체 첸치’. 스탕달이 1817년 이탈리아의 한 성당에서 이 작품을 감상하고 나오던 중 무릎에 힘이 빠지며 황홀경을 경험했다고 고백한 데서 이 말이 유래한다.
마틸드는 전혀 다른 인물이다. 재색을 겸비한, 부유한 명문가의 딸로서 그녀는 자신의 비상함을 또렷이 의식할뿐더러 불쾌감을 유발할 만큼 그것을 강조한다. “나와 같은 여자의 운명에는 모든 것이 특이해야만 해.”(2권, 115쪽) 이런 식의 오만한 자존심, 무엇보다도 귀족 살롱 특유의 ‘권태’가 그녀의 뜨거운 열정을 부채질한다.
사랑에 관한 한, 그녀의 야망은 그 시대의 도덕률과 관습이 허용하는 범위를 훌쩍 넘어선다. 특히 그녀는 라 몰 가문의 후예로서 자부심이 강한 탓에, 앙리 4세의 부인이었던 마고(마르그리트) 여왕의 연인으로 정쟁 과정에서 참수를 당한 보니파스 드 라 몰을 숭배한다. 심지어 그의 기일에는 검은 상복을 입기도 하다. 처형당한 연인의 머리를 품에 안았던 마고를 향한 모방 욕망은 더 대단하다.(‘적과 흑’의 마지막 장면, 쥘리앵의 잘린 머리에 키스를 하는 마틸드를 보라.) 그뿐인가. 야심 찬 여장부의 대명사인 카트린 드 메디치, 아벨라르의 연인 엘로이즈, 루소의 ‘신(新) 엘로이스’의 주인공들 등 그녀가 동경하거나 적어도 염두에 두는 대상의 목록은 끝이 없다.
이렇듯 마틸드는 타고난 지식욕과 왕성한 독서, 풍요로운 지적 환경 덕분에 실제로 사랑을 체험하기도 전에 사랑이라는 개념에 먼저 눈뜬다. 그래서 실제 대상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기보다는 자신이 투영한 그 모습대로 사랑을 키우고 사랑의 대상을 자신의 틀에 따라 창조하려 한다. 그녀의 사랑이 시종일관 이기주의 혹은 자기중심주의의 산물인 것은 당연하다.
덧붙여 그녀는 어떤 경우에도 당당하다. 소위 양갓집 규수치고는 너무도 쉽게 쥘리앵과 육체적 관계를 맺고(더욱이 그녀가 먼저 유혹한다) 그 이후 자존심, 수치심과 싸우면서도 연애를 지속하며 임신을 한 후에도 아버지에게 자신만만하게 자신의 권리를 요구하지 않던가. 한데, 그녀의 오만함이야말로 본질적으로 계급적 산물임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쥘리앵의 추측대로 마틸드는 가문과 재산, 미모 덕분에 앞으로 무난한 삶을 살아갈 것이다. 모방 욕망에 사로잡혀 인생을 소설책처럼, 역사 속 인물처럼 꾸려가도 현실적 기반이 튼튼한 자는 파멸하지 않는 법이다.
쥘리앵은 말하자면 마틸드와 드 레날 부인의 중간쯤에 위치하고 있다. 소설을 많이 읽지는 않으나, 앞서 보았듯, 그의 인생은 시작부터 모방 욕망에 감염돼 있었다. ‘나폴레옹처럼!’이라는 좌우명은 그 무엇보다도 연애에 적용된다. 즉 상류 사회의 상징처럼 나타나는 여인을 하나둘씩 정복하는 것. 드 레날 부인과의 관계도 처음에는 사랑의 행복이라기보다는 정복의 쾌감을 안겨준다. 물론 결국에는 레날 부인의 사랑에 모방 욕망마저 희석되고, 한계 상황에 처한 그가 의지하는 존재 역시 레날 부인이지만.
반면 그에게 마틸드는 시종일관 상승과 정복과 모험의 욕망을 자극하는 대상이다. 실상 엇비슷한 또래의 젊은 연인 사이에 관능적 열정이 개입되지 않았을 리 만무하다. 그럼에도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둘 모두가 갖고 있던 모방 욕망이다.(“사실 그들의 환희에는 약간 의도적인 기색이 스며 있었다. 정열적인 사랑이 그들에게는 아직 현실이기보다는 모방의 대상이었던 것이다.” 2권 138쪽) 쥘리앵은 은연중에 스스로를 아벨라르에, 생 프뢰(‘신(新) 엘로이즈’의 남자 주인공)에 비유하곤 한다. 이들은 대체로 다 비극의 주인공인데, 쥘리앵 스스로 자신의 삶을 이런 비극으로 몰아간 것은 아닐까. 그러나 살다 보니 죽는 것이지, 죽기 위해 사는 사람은 없다. 그가 열심히 들고 날랐던 사다리는 어쨌거나 위로 올라가기 위한 도구였다. 사랑의 사다리가 결국 추락의 도구로 변질된 것은 역시나 “비천한 신세”에 “드높은 마음”을 키웠기 때문이리라.
왕정복고 시대 프랑스 다룬 정치소설
‘적과 흑’에는 ‘1830년 연대기’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1830년은 나폴레옹이 실각한 뒤 다시 왕좌를 거머쥔 부르봉 왕조가 7월 혁명에 의해 무너진 해다. 그러나 소설의 말미에 언급되는 프랑스의 왕은 여전히 샤를 10세이며 연구자들이 추적한바 쥘리앵 소렐의 모험은 1826년 9월말부터 1830년 7월말 사이에 걸쳐 일어난다. 그런데 소설이 발표된 해는 1830년이다. 즉, 이 소설은 7월 혁명의 발발을 전제하지 않은 채 거의 전적으로 왕정복고 시대의 프랑스를 다루고 있는 셈이다. 이 사실이 중요한 이유는 ‘적과 흑’이 어쨌거나 정치소설이기 때문이다.
작품 속의 인물들은 수시로 정치에 대해 논하며(특히 드 라 몰 후작의 살롱) 그들 스스로 모종의 정치적 입장을 대변하기도 한다. 피라르 신부(장세니스트: 자유주의자)와 프릴레르 부주교(예수회파: 자유주의자)의 경우처럼 종교적 분파와 정치적 성향이 맞물려 눈에 뜨이는 갈등을 빚어내기도 한다. 어떤 경우든 많은 이의 삶이 정치적 정황과 밀접히 관련되어 있다. 오늘날 ‘적과 흑’이 지난 역사의 한 페이지에 대한 충실한 기록으로 읽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야말로 ‘연대기’인 것인데, 이는 스탕달의 소설적 원칙과 맞닿아 있다. 가령 마틸드와 상류 사회를 묘사하는 부분에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온다.
“그런데 독자여, 소설이란 큰길가를 돌아다니는 거울과 같은 것이다. 때로 그것은 푸른 창공을 비춰 보이기도 하고, 또 때로는 도로에 파인 수렁의 진흙을 비춰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여러분은 채롱에 거울을 짊어지고 다니는 사람을 비도덕적이라고 비난하다니! 그의 거울이 진흙을 비추면 여러분은 그 거울을 비난한다! 차라리 수렁이 파인 큰길을, 아니 그보다도 물이 괴어 수렁이 파이도록 방치한 도로 감시인을 비난함이 마땅할 것이다.”(2권, 162쪽)
낭만적 거짓과 소설적 진실
소설은 현실을 철저히 반영해야 한다는 원칙은 낭만주의가 팽배하던 당시 문단의 분위기를 생각하면 거의 혁명적인 측면이 있다. ‘적과 흑’과 비슷한 시기(1831년)에 발표된 빅토르 위고의 ‘파리의 노트르담’이 얼마나 낭만적인가를 생각해보라. 물론 스탕달의 주인공들 역시 낭만적 지향과 파국을 보여주지만, 그들을 에워싼 현실과 세태 묘사, 계급의식과 환경결정론의 대두, 무엇보다도 훗날 니체를 감동시킨 치밀한 심리 묘사 등은 가히 사실주의의 문을 연 소설답다. 이 경우 정치와 시대에 관한 배려는 필수적인데, 소설 속에 느닷없이 삽입된 한 인물의 말이 그 근거이다. “만약 당신의 인물들이 정치 얘기를 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1830년의 프랑스인이 아닙니다. 그리고 당신의 책은 당신이 주장하듯 거울이 될 수 없을 것입니다….”(2권, 19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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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로서 스탕달은 모방 욕망, 즉 ‘낭만적 거짓’에 맞서 ‘소설적 진실’을 구축하려 했다. 쥘리앵의 비극은 곧 모방 욕망의 비극이다. 한데 정작 스탕달 자신은 낭만적 가면을 쓴 채 댄디, 예술애호가, 1812년의 군인, 사랑에 빠진 연인, 정치가, 역사가 등 수시로 역할을 바꿔가면서 유희적인 삶을 살았다고 한다. 어쨌거나 그의 유언이자 묘비명이 보여주듯, 그의 삶에서 가장 중요했던 것은 글쓰기와 사랑-연애였으리라. “밀라노인 아리고 베일레, 살았고 썼고 사랑했다.”
(필자 사정으로 연재를 당분간 중단합니다-편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