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당시 서울 남산 실내 테니스장 내부 모습.
지금은 없어진 서울시 산하 이 실내테니스장에서 80대 김재붕씨는 임시직 관리원으로 일했다. 테니스장 안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경비, 청소, 전기 수선 일을 했다. 김씨는 여기를 찾는 이 대통령,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등 VIP 회원들을 자연스럽게 보게 됐다고 한다.
박근혜가 준 올리브 선물
그에 따르면 박 전 대표는 토요일 오전에 가끔 테니스를 치러 왔다. 자기와 눈이 마주치면 먼발치에서 먼저 허리를 굽히며 “안녕하세요? 건강하시죠?”라고 인사하더라는 거다. 2004년 말 박 전 대표는 비누와 올리브유를 5만원이 든 봉투와 함께 포장한 선물을 준비해와 이 고령의 관리원에게 줬다고 한다. 2005년 추석 땐 잣을 보자기에 싸서 “건강에 유념하시라”는 말과 함께 줬다.
그러나 이 대통령에 대한 김씨의 기억은 그리 유쾌한 편이 못되는 것 같다. 이 대통령이 박 전 대표보다 코트를 훨씬 자주 찾지만 인사나 말을 건넨 적이 한 번도 없었다고 한다. 명절 선물을 준 적도 물론 없었다. 2005년 12월31일경이었다. 서울시가 테니스장에 전기와 수도를 끊을 참이었다. 김씨에게 계약해지를 통보해두고 있었다.
마침 이 대통령(당시 서울시장)이 일행과 함께 테니스를 치러 왔다고 한다. 그는 이 대통령에게 다가가서 “테니스장은 내가 먹고 자는 곳이고 나는 갈 데가 없다. 이렇게 한겨울에 길거리로 쫓아내면 어떻게 살라는 거냐”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별다른 대꾸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 대통령 일행이 테니스 게임 중간에 휴식 시간을 가졌다. 김씨는 그때까지 부근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이 대통령은 하의 주머니에서 3만원을 꺼내 김씨에게 주었다고 한다. 이때도 이 대통령은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김씨는 “너무 형편이 어려워 그 돈을 받아들기는 했지만 그때만큼 비참한 기분이 들었던 적이 없다”고 말했다.
마음, MB에게 없는 것
이 대통령은 ‘공정한 사회’를 자주 이야기한다. 공정이란 흔히 ‘기회의 균등’을 의미한다. 그러나 잘 생각해보면 경쟁자들을 동일한 출발선에 세우는 기회의 균등은 애초부터 불가능하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사람은 부모를 선택할 수 없다. 유복한 계층의 자제는 그렇지 못한 계층의 자제보다 몇 십 발 앞서 출발한다. 그렇기 때문에 명문대학에 진학하기가 훨씬 쉽다. 사람은 또한 타고난 재능을 선택할 수도 없다. 재능이 뛰어난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수십m 앞에서 출발하는 것과 같다.
존 롤스가, 혹은 ‘정의란 무엇인가’의 마이클 샌델이 탁월한 점은, 부유한 계층의 사람이나 뛰어난 재능을 타고난 사람은 앞서 출발하는 이익을 얻는 대가로 뒤처져 있는 사회적 약자들을 헌신적으로 도와주어야 하며 그럴 때 진정한 기회의 균등이 완성된다고 간파한 데 있다.
승자는 기회 균등의 장이 계속 작동되는 게 유리하므로 승자가 약자를 돕는 게 일방적 시혜가 아니다. 따라서 승자는 약자를 도울 때도 약자를 대등한 존재로 존중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이럴 때 약자도 승자를 존중하게 된다. 이것이 자유경쟁의 효율과 약자의 생존이 공존하는 길이다.
이 대통령의 공정한 사회는 사람들에게 울림을 주지 못하고 때로는 상처를 안겨준다. 그 안에 약자를 생각하는 ‘진정한 마음’이 없기 때문인지 모른다. 호주머니에서 꺼낸 3만원이 80대 노인을 울게 했다는 점을 이제라도 알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