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3월호

MB가 주머니에서 꺼내준 3만원

  • 허만섭|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shue@donga.com

    입력2011-02-23 11:2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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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B가 주머니에서 꺼내준 3만원

    2005년 당시 서울 남산 실내 테니스장 내부 모습.

    이명박 대통령은 테니스를 즐겨 친다. 서울시장 재임 시절 서울 남산 실내테니스장을 자주 찾았다. ‘황제테니스’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던 곳이다.

    지금은 없어진 서울시 산하 이 실내테니스장에서 80대 김재붕씨는 임시직 관리원으로 일했다. 테니스장 안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경비, 청소, 전기 수선 일을 했다. 김씨는 여기를 찾는 이 대통령,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등 VIP 회원들을 자연스럽게 보게 됐다고 한다.

    박근혜가 준 올리브 선물

    그에 따르면 박 전 대표는 토요일 오전에 가끔 테니스를 치러 왔다. 자기와 눈이 마주치면 먼발치에서 먼저 허리를 굽히며 “안녕하세요? 건강하시죠?”라고 인사하더라는 거다. 2004년 말 박 전 대표는 비누와 올리브유를 5만원이 든 봉투와 함께 포장한 선물을 준비해와 이 고령의 관리원에게 줬다고 한다. 2005년 추석 땐 잣을 보자기에 싸서 “건강에 유념하시라”는 말과 함께 줬다.

    그러나 이 대통령에 대한 김씨의 기억은 그리 유쾌한 편이 못되는 것 같다. 이 대통령이 박 전 대표보다 코트를 훨씬 자주 찾지만 인사나 말을 건넨 적이 한 번도 없었다고 한다. 명절 선물을 준 적도 물론 없었다. 2005년 12월31일경이었다. 서울시가 테니스장에 전기와 수도를 끊을 참이었다. 김씨에게 계약해지를 통보해두고 있었다.



    마침 이 대통령(당시 서울시장)이 일행과 함께 테니스를 치러 왔다고 한다. 그는 이 대통령에게 다가가서 “테니스장은 내가 먹고 자는 곳이고 나는 갈 데가 없다. 이렇게 한겨울에 길거리로 쫓아내면 어떻게 살라는 거냐”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별다른 대꾸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 대통령 일행이 테니스 게임 중간에 휴식 시간을 가졌다. 김씨는 그때까지 부근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이 대통령은 하의 주머니에서 3만원을 꺼내 김씨에게 주었다고 한다. 이때도 이 대통령은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김씨는 “너무 형편이 어려워 그 돈을 받아들기는 했지만 그때만큼 비참한 기분이 들었던 적이 없다”고 말했다.

    마음, MB에게 없는 것

    이 대통령은 ‘공정한 사회’를 자주 이야기한다. 공정이란 흔히 ‘기회의 균등’을 의미한다. 그러나 잘 생각해보면 경쟁자들을 동일한 출발선에 세우는 기회의 균등은 애초부터 불가능하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사람은 부모를 선택할 수 없다. 유복한 계층의 자제는 그렇지 못한 계층의 자제보다 몇 십 발 앞서 출발한다. 그렇기 때문에 명문대학에 진학하기가 훨씬 쉽다. 사람은 또한 타고난 재능을 선택할 수도 없다. 재능이 뛰어난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수십m 앞에서 출발하는 것과 같다.

    존 롤스가, 혹은 ‘정의란 무엇인가’의 마이클 샌델이 탁월한 점은, 부유한 계층의 사람이나 뛰어난 재능을 타고난 사람은 앞서 출발하는 이익을 얻는 대가로 뒤처져 있는 사회적 약자들을 헌신적으로 도와주어야 하며 그럴 때 진정한 기회의 균등이 완성된다고 간파한 데 있다.

    MB가 주머니에서 꺼내준 3만원
    승자는 기회 균등의 장이 계속 작동되는 게 유리하므로 승자가 약자를 돕는 게 일방적 시혜가 아니다. 따라서 승자는 약자를 도울 때도 약자를 대등한 존재로 존중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이럴 때 약자도 승자를 존중하게 된다. 이것이 자유경쟁의 효율과 약자의 생존이 공존하는 길이다.

    이 대통령의 공정한 사회는 사람들에게 울림을 주지 못하고 때로는 상처를 안겨준다. 그 안에 약자를 생각하는 ‘진정한 마음’이 없기 때문인지 모른다. 호주머니에서 꺼낸 3만원이 80대 노인을 울게 했다는 점을 이제라도 알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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