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오디션 프로그램 ‘위대한 탄생’은 이은미, 방시혁, 김태원, 김윤아, 신승훈(왼쪽부터) 등 5명의 뮤지션이 심사위원이자 멘토로 참가한다.
많은 시청자가 간과하는 부분이 있는데 ‘위대한 탄생’에 참가하는 이는 거의 대부분 굉장히 절박하다. 최근 10년간 가요계가 빠르게 산업화되면서 가수 대부분이 기획사의 연습생 시스템을 통해 데뷔하고 있다. 반대로 얘기하면 기획사의 연습생 시스템 안에 들어가지 못한 이들에게는 가수의 길이 너무나 좁아졌다는 이야기다.
이런 상황에서 방송사가 진행하는 오디션 프로그램은 기획사에서 거부당하거나 연습생이 될 수 있는 시점을 놓친 이들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나 마찬가지다. 그렇기에 참가자들은 추억이나 교훈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가수라는 평생의 꿈을 이루기 위해 무엇이라도 던지겠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프로그램에 참가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꿈을 이루기 위한 현실적인 답은 무엇일까? 너무 뻔하지만 우승을 하거나 최소한 우승 근처까지라도 가야 한다. 그렇기에 심사위원이자 멘토로 참여한 다섯 명의 뮤지션은 우승할 자질이 가장 많아 보이는 참가자를 찾아서 최선을 다해 그 재능을 꺼내줘야 한다. 그것이 참가자의 절박한 기대에 부응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심사위원들은 이러한 절박함을 너무나 잘 알기에 냉정하고 엄격한, 소위 독설을 던질 수밖에 없다.
첫째 이유는 현실을 인식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절박함이란 때론 너무나 애처롭고 처연해서 끊임없이 동정의 손길을 내밀고 싶은 유혹에 빠지게 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볼 때 어떤 시점에서 어느 정도 완성도를 갖추지 못한 사람이 그 벽을 뛰어넘어 프로 가수가 된다는 건 무리다. 혹은 아직 준비가 덜 되어 있는 사람이 섣불리 프로로서 준비를 시작하는 것 역시 독이 될 수 있다.
이 경우, 상황을 정확하게 알려주지 않고 그 절박함에 넘어가 자꾸 기회를 주는 것은 자칫 그 사람의 인생을 망치는 일이 될 수 있다. 그렇기에 듣는 이에게 상처가 되고 냉정하다고 느껴질지라도 때로는 진실을 명확하게 알려줘야 하는 순간이 있다.
둘째, 재능에 차이가 있는 참가자들을 공정하게 대함으로써 생기는 역차별을 최대한 막기 위해서다. 보통 이런 대규모 오디션에서는 하루 100명 이상의 인원이 참가한다. 이런 상황에서 앞 번호를 받은 재능 없는 참가자들에게까지 길고 자상하게 대해준다면 100번째 참가자는 노래를 제대로 할 수가 없다. 오전 10시에 와서 열악한 대기실 환경에서 기다리다 다음날 새벽 3시에 노래를 하면 제 컨디션이 나올 수 없다는 건 당연한 얘기다.
게다가 만약 100번째 참가자가 정말 재능이 출중한 이였다면 문제는 더 커진다. 오디션이란 재능을 발굴하는 자리인데 재능 없는 참가자에게 할애한 시간 때문에 재능 있는 이를 놓친다면 얼마나 아이러니인가? 결국 재능이 없다고 생각되는 참가자에게는 냉정하게 말할 수밖에 없다. 그것이 절박한 마음으로 참가한 재능 있는 이에 대한 예우이기 때문이다.
심사위원의 호된 독설을 들으며 성장한 Mnet ‘슈퍼스타 K2’의 참가자들.
물론 이 경우에 칭찬과 격려로 북돋워주며 같이 가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언제까지 그 사람의 재능을 믿으며 선생님이 되어줄 것인가. 아니, 칭찬을 해줘야만 앞으로 나가겠다는 사람에게 과연 가수가 되겠다는 절박함이 있긴 한 건가.
프로 가수가 되고 싶은 이에게는 프로로서 살아남는 법도 가르쳐야 한다. 즉 프로란 자기 자신과의 싸움을 통해 길을 개척해야 한다는 점도 가르쳐야 한다는 얘기다. 결국 따끔한 말 한마디를 듣고 통렬히 반성해 자신의 의지로 반 발짝 전진하는 것이, 칭찬과 격려를 받으며 선생님의 손을 잡고 앞으로 열 발짝 전진하는 것보다 낫다는 믿음하에 질타를 가할 수밖에 없다. 아름답진 않지만 인정해야 할 부분은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고 노력하는 사람만이 재능의 열매를 맺는다는 점이다.
마지막으로 방송 오디션이란 결국 시간과의 싸움이다. 에둘러 좋게 말해주면서 지나가기에는 한 사람에게 주어진 시간이나 방송기간이 너무나 짧다. 결국 방송 오디션의 승부는 ‘누가 주어진 시간 안에 더 많은 것을 깨닫고 받아들여 자신의 것으로 습득하느냐’에서 갈린다. 그렇다면 심사위원이자 멘토인 우리 역시 아파도 진실하고 정확한 얘기를 하나라도 더 해주는 것이 참가자의 절박함을 정면으로 받아주는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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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도 얘기했듯이 ‘독설’이란 상대방을 해치려는 의도를 전제하기에 필자의 말을 ‘독설’이라 하는 것에 동의할 수는 없다. 필자를 포함해 심사위원들의 한마디 한마디는 기본적으로 참가자에 대한 배려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혹 여전히 시청자들이 필자를 ‘독설가’라 부르고 필자의 심사태도를 비난한다 해도 심사의 자세를 바꿀 수는 없다. 필자의 ‘독설’은 재능에 대한 최고의 예우이자 동시에 오디션 참가자들의 ‘절박함’에 대해 필자가 해줄 수 있는 가장 진심 어린 대답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