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3월호

2014

8장 조선성(朝鮮省)

  • 입력2011-02-22 13: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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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군이 북한땅에 진주하자 미국과 한국 정부 사이에 묘한 이질감이 생성된다. 북한 핵 문제에 골머리를 앓아왔고 중국과 무력충돌을 원치 않는 미국으로서는 북한이중국의 한 성(省)으로 편입되는 것이 편하기 때문이다.
    • 반면 이 기회에 완전한 통일을 이뤄야 한다고 이를 악물고 있는 한국군 지휘부는 북한 반란군과 합세한 이동일 부대를 움직여 북한의 내분을 심화시킨다. 한편 북한 425기계화군단 전차대는
    • 북한에 들어온 중국군 제16집단군 소속 4장갑사단을 공격해 전멸시키는데…. <편집자>
    2014

    일러스트 · 박용인

    2014년 7월26일 토요일 06시30분, 개전 19시간40분25초 경과.

    미국 워싱턴 시각은 7월25일 금요일 16시30분이다. 백악관 대통령 집무실에서 미국 대통령 오바마와 국무장관 빌 스튜어트, 국방장관 제임스 코넬, 합참의장 마크 핸슨과 백악관 비서실장 패트릭 어윈 다섯이 둘러앉아 있다. 그들은 백악관의 전시 상황실인 지하 워룸(war room)에서 방금 올라온 것이다. 의자 등받이에 등을 기대고 앉은 오바마가 웃음 띤 얼굴로 넷을 둘러보며 말한다.

    “코리아 미스터 박은 64년 전 남북한 전쟁 때도 중국군이 내려왔다고 불평을 하더군. 만일 그때 중국군이 내려오지 않았다면 한반도는 한국이 통일했겠지요?”

    “그렇습니다.”

    국방장관 코넬이 정색하고 오바마를 본다.



    “그때 북한은 없어졌습니다.”

    “어쨌든.”

    어깨를 편 국무장관 스튜어트가 나섰다.

    “이제 한숨 돌렸습니다. 난생 처음 중국군이 고맙게 느껴지는군요.”

    “그래요?”

    커피잔을 든 오바마가 다시 웃는다. 방 안 분위기는 밝다. 워룸에서는 각 군 지휘관에다 보좌관까지 모여 있는 바람에 속에 있는 말을 다 내놓지 못했다. 오바마가 넷을 둘러보며 묻는다.

    “한국은 운이 없어요.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한텐 다행이라니깐요, 각하.”

    스튜어트가 손까지 저으며 말을 잇는다.

    “더 이상 미국의 재산과 인명의 피해는 없을 겁니다. 북한이 중국의 조선성(朝鮮省)으로 편입되는 것이 미국에는 가장 바람직한 일입니다.”

    “그 말을 한국인들이 들으면 화내겠군.”

    쓴웃음을 지은 핸슨 합참의장이 혼잣소리처럼 말하더니 오바마를 힐끗 보았다.

    “하긴 이것으로 북한 핵 문제도 함께 풀리게 되었습니다.”

    북한이 중국의 조선성으로 편입되면 그렇게 애를 먹였던 북핵 문제도 단숨에 해결되는 것이다. 머리를 끄덕인 오바마가 어깨를 흔들며 심호흡을 했다.

    “어젯밤은 잠을 설쳤는데 오늘밤은 좀 편히 잘 것 같군요, 그렇죠?”

    그러자 코넬이 먼저 대답했다.

    “남북한 내부의 혼란이 있겠지만 전면전은 사실상 끝났다고 봐도 될 것입니다, 각하.”

    워룸에서의 결론도 그렇다. 중국 군부와 비밀 접촉한 결과 중국 군부는 미군과의 전쟁을 극력 회피할 것이라는 정보를 받았다. 당연한 일인 것이다. 내분으로 갈라진 북한 정권을 흡수, 귀속시킬 천재일우의 기회인데 무슨 전쟁인가?

    7월26일 07시, 개전 20시간10분25초 경과.

    봉산 교외의 보급대 건물 안. 식사를 마친 이동일이 양치질을 하고 있을 때 강성일이 다가왔다.

    “대위, 내부 반란이 심각해.”

    다가선 강성일이 말을 잇는다.

    “삐라 때문이야. 저 위쪽의 함경남북도까지 삐라가 날아가 노농적위대, 교도대가 반란을 일으키고 있는데 제압하려고 나서는 부대가 없어.”

    이동일의 시선을 받은 강성일이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웃는다.

    “김정일, 김경식 양측이 서로 상대방만 신경을 쓰고 있기 때문이야. 반란군 진압에 전력을 손상하지 않으려는 의도지.”

    “중국군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오늘 오후면 3개 집단군이 모두 진입해올 거네.”

    입맛을 다신 강성일이 외면한 채 말을 잇는다.

    “김경식은 중국식 개방을 하겠다고 끌어들였지만 호랑이를 집안에 끌어들인 셈이지. 중국놈들이 이용만 당하고 물러갈 것 같나? 어림도 없지.”

    김경식이 그것까지 계산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이동일도 대꾸하지 않았다. 그때 휴대전화가 울렸으므로 이동일은 주머니에서 꺼내 보았다. 최재창이다. 몸을 돌린 이동일이 휴대전화를 귀에 붙였다. 방금 강성일한테 들은 정보도 전해줘야 할 것이다.

    군단본부의 전시(戰時) 벙커가 막사에서 100m 위치에 있었지만 경비병만 세워놓고 비워져 있다. 다만 훈련으로 소집된 군단의 전차대가 아침부터 요란한 소음을 내는 바람에 전시 분위기는 난다. 뜬눈으로 밤을 새운 425기계화군단장 박정근 대장은 침실에서 나와 옆쪽 상황실로 들어섰다. 그러자 기다리고 있던 참모장 윤성 중장이 휴대전화를 건네주었다. 윤성의 개인 휴대전화다. 휴대전화를 귀에 붙인 박정근이 옆쪽 의자에 앉는다.

    “예, 전화 바꿨습니다.”

    “나, 이기준이요.”

    이미 알고 있었으므로 박정근은 대뜸 묻는다.

    “무슨 일이오?”

    박정근과 이기준은 같은 60대 중반으로 둘 다 40여 년이나 군 생활을 했지만 친교가 없다. 군단장 회의에서 만나 서너 번 이야기를 나눴을 뿐이다. 그러나 비슷한 점도 있다. 둘 다 권력 외곽으로만 돌았다는 것, 이기준이 전연지대 군단장이 못된 것처럼 박정근도 정예인 820전차군단, 815기계화군단, 806기계화군단장을 해본 적이 없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때 이기준이 물었다.

    “나, 중립으로 물러났소. 알고 계시지요?”

    “압니다.”

    “그런데 그쪽은 왜 그렇습니까?”

    “뭘 말입니까?”

    “김경식이한테 붙을 이유가 뭡니까?”

    “아니, 이보시오.”

    했다가 박정근이 호흡을 가눈다. 참모들이 제각기 딴전을 피우고 있었지만 방안은 조용하다. 모두 귀가 곤두서 있을 것이다. 박정근이 뱉듯이 말했다.

    “나도 중립이오. 누구도 나한테 명령할 수 없소.”

    그러고는 덧붙였다.

    “중국군도 말이오.”

    “이 통화도 어차피 도청이 되겠지만.”

    이기준의 목소리도 굵어졌다.

    “다행이오. 중국군이 와줘서 말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박정근은 대답하지 않았고 이기준은 곧 전화를 끊었다.

    자강도 회천시는 날이 밝으면서 무법지대가 되어가기 시작했다. 시내 중심부에 위치한 보위부와 일부 공장교도대를 제외하고 교도대, 노농적위대, 10군단 예하의 파견대까지 반란군으로 돌아섰기 때문이다. 반란군이라기보다 약탈대가 맞다. 교외의 교도사단 창고는 새벽이 되자 불길에 휩싸였고 개미떼처럼 달려든 약탈자들에 의해 깨끗이 청소되었다. 시내는 물론이고 교외의 산비탈까지 흰 눈이 내린 것처럼 삐라가 흩어져 있었는데 그것이 점령지 표시처럼 느껴졌다.

    “수천 군데서 반란이 일어난 거야.”

    삐라와 함께 떨어진 라디오를 귀에서 뗀 최기상이 소리쳤다.

    “이제 이 지긋지긋한 세상 끝났어! 김씨 세상이 끝났다고!”

    최기상이 다른 손에 쥔 AK-47을 치켜들고 흔들었다. 회천 서남방 부산리에는 2개의 노농적위대가 편성되어 있었는데 모두 반란군이 되어 뭉쳤다. 예비역 대위 최기상은 이제 2개 중대, 300여 명의 적위대 지휘관이다.

    “대장!”

    하고 소대장 격인 오대길이 달려왔으므로 최기상이 머리를 들었다. 그들은 지금 농가 마당에 모여 있는 것이다.

    “내 대답을 들으려는 질문이 아니지요?”

    “그렇습니다, 대통령님.”

    정색한 채로 임기태가 덧붙였다.

    “이 통신은 미국은 물론 일본, 중국까지 다 듣습니다. 그것을 알고 있는 김정일은 할 말을 다 하지 못하겠지만 삐라 이야기는 했어야 합니다. 중국군이 곧 철수한다고 말할 정도라면 말씀입니다.”

    “그것이 암시란 말인가?”

    “중국군에 대한 불만 같습니다.”

    그러자 박성훈이 의자에 등을 붙이며 말한다.

    “과연 국방장관은 다르시군. 하지만 기다려 보십시다. 우리야 급할 거 없으니까.”

    7월26일 낮 12시 정각, 개전 25시간10분25초 경과.

    상황판을 올려다본 박우종 상장이 참모에게 지시했다.

    “충원할 필요 없어, 놔둬라.”

    “예. 참모장 동지.”

    대좌 계급장을 붙인 참모가 어깨를 늘어뜨리며 다시 묻는다.

    “구산리의 보급대는 반군을 격퇴했지만 병력의 3분의 2가 손실을 입었습니다. 이곳에는….”

    “보급대 창고는 괜찮나?”

    박우종이 말을 끊고 묻자 대좌가 시선을 내렸다.

    “창고는 화재로 소실되었습니다.”

    “그럼 충원할 필요 없잖아?”

    목소리를 높인 박우종이 몸을 돌렸다. 평산의 2군단사령부 벙커 안이다. 군단장 김경식이 평양 근교의 제55호위대 벙커로 가 있었기 때문에 군단 벙커는 참모장 박우종이 지휘하고 있다.

    “군단장 동지께 보고할 내용을 정리해오라우.”

    안쪽 테이블에 앉은 박우종이 소리쳐 말한다. 전연지대의 제2군단은 최정예 군단이다. 4개 군단이 전연지대에 늘어서 있지만 2군단의 전력이 가장 강하다. 그것은 남북한전쟁 발발시 2군단이 서울 진입을 맡게 돼 있기 때문이다. 의자에 등을 붙인 박우종이 상황판을 바라보며 혼잣소리처럼 말했다.

    “저 반란군 새끼들도 이제 중국군이 내려오면 꼬랑지를 내리게 돼.”

    중국군을 부른 것은 군단장 김경식이다. 이제 북조선의 실권은 중국군과 2군단이 쥐게 되었다. 김경식의 오른팔인 박우종은 심호흡을 했다. 이제 새 시대가 열리는 것이다. 김씨 일족은 이곳에서 처형되지 않는다면 중국으로 망명을 떠나게 된다. 그때였다. 벙커가 흔들리는 느낌이 들었으므로 박우종은 머리를 들었다. 그 순간 이제는 의자가 흔들리면서 옅은 진동음도 들렸다.

    “뭬야?”

    하고 박우종이 물었을 때였다.

    “쿠쿠쿵!”

    둔하고 굵은 폭음이 울리더니 벽에서 시멘트 가루가 떨어져 책상 위를 덮는다. 놀란 박우종이 자리를 차고 일어섰다.

    “뭐냔 말야!”

    박우종이 버럭 고함을 쳤을 때였다.

    “콰콰쾅!”

    이번에는 엄청난 폭음과 함께 벙커 옆쪽의 벽이 무너지면서 박우종의 몸을 덮쳤다. 박우종의 몸은 시멘트 더미에 묻혀 보이지 않았지만 그때 다시 폭음과 함께 상황실 안에서 대폭발이 일어났다. 포탄이 상황실을 직격한 것이다.

    “됐다!”

    RPG7V를 개량한 RPG77은 북한의 최신형 휴대용 미사일 발사관이다. 강성일이 RPG77을 쥐고 일어섰다. 두 눈이 번들거리고 있다. 그가 방금 마지막 미사일을 발사한 것이다.

    “철수!”

    강성일이 소리치자 옆에 엎드려있던 이동일이 몸을 솟구쳐 일어섰다. 150m쯤 앞쪽 군단사령부 벙커는 화산 분화구처럼 되어서 검붉은 연기를 내뿜고 있다. 주위에 엎드린 대원들이 따라 일어섰고 신호를 받은 옆쪽 능선의 부하들도 움직이고 있다. 강성일이 데려온 10여 명의 부하는 모두 RPG77으로 무장하고 있었는데 정예군이었다. 명령 한마디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였고 명사수였다.

    이동일은 강성일을 따라 뛰었다. 2군단사령부 벙커가 함몰된 것이다. 좌우에서 20여 발의 미사일을 맞은 벙커는 지하 20m 깊이에 있었지만 입구부터 파괴되더니 차례로 양파 껍질이 벗겨지듯이 해체되고 나서 가라앉아 대폭발을 일으켰다. 지근거리에서 열린 입구를 뚫고 들어간 것이어서 벙커가 수십m 깊이에 있다고 해도 무용지물이다. 강성일은 벙커 격파 방법을 알고 있었다. 500여 m 숲길을 달려 군단사령부 외곽으로 나왔을 때는 10분쯤 후였다. 가쁜 숨은 몰아쉬면서 강성일이 이동일에게 다가왔다.

    “폭발이 컸는데 보았겠지요?”

    땀으로 범벅이 된 얼굴로 강성일이 헐떡이며 물었다.

    “봤을 겁니다.”

    역시 헐떡이며 말한 이동일이 아직 햇살이 따가운 하늘을 힐끗 보았다. 위성을 말하는 것이다. 주위로 병사들이 모여들고 있다. 지친 얼굴들이지만 눈이 번들거린다.

    “인원 파악!”

    옆쪽에서 선임하사가 악을 쓰듯 소리쳤다. 이곳까지 오는데 두 번 전투를 치렀고 사상자가 4명이다. 그래서 해병대는 33명으로 2군단 사령부를 공격했다. 이곳에서는 총격전이 짧았는데 다 돌아왔는가?

    그 시간에 오산의 한미연합사 벙커 상황실에서는 환성과 탄성이 그치면서 제대로 된 대화가 이뤄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직도 소리치듯 말한다. 먼저 우드워드 대장이 소리쳐 묻는다.

    “미사일을 쏜 것을 보면 정규군 같아! 어느 부대야?”

    “지금 철수하고 있습니다.”

    위성사진을 보면서 해리슨 참모장이 소리 높여 대답했는데 물음에 대한 답은 아니다.

    “완전히 붕괴되었습니다!”

    장군 하나가 소리쳤고 또 누가 거든다.

    “몰사당했을 것입니다.”

    “김경식이는 저곳에 없겠지?”

    우드워드가 세 번째 같은 말을 물었고 이번에는 해리슨이 정확히 대답했다.

    “예, 하지만 2군단 수뇌부는 몰살당했습니다. 이제 2군단은 머리 잃은 뱀 꼴이 되었어요.”

    “도대체 어느 부대야?”

    “근처 직할대인 것 같습니다.”

    “미사일을 20발이나 쏘았어. 저것 RPG77 최신형이 분명하지?”

    “그렇습니다.”

    “저것 봐. 트럭에 타고 빠져나가는군. 모두 네 대야!”

    그러고는 우드워드가 어깨를 늘어뜨리면서 테이블에 앉는다.

    “자, 전략!”

    우드워드가 손바닥으로 테이블을 두드리며 말했다.

    “2군단사령부가 붕괴된 상황에서의 전략이 필요하다! 다 머리를 굴려봐!”

    우드워드가 소리를 지르는 동안 해병사령관 정용우, 육본작참부장 박진상이 벽 쪽에 서 있는 합참의장 장세윤, 육참총장 조현호 앞으로 다가갔다. 두 대장은 우연인지 똑같이 팔짱을 끼고 서서 두 중장을 맞는다.

    “잘했어.”

    먼저 장세윤이 정용우에게 말했다.

    “해병대 과연 대단하다.”

    “감사합니다.”

    자주 듣는 칭찬이라 평소 같으면 그냥 넘겼을 정용우가 갑자기 주르르 눈물을 쏟는다. 그러고는 제 눈물에 놀라 황급히 손등으로 얼굴을 닦고는 눈을 치켜떴다.

    “37명이 이번 작전에 투입되었다는데 얼마나 손실을 입었는지 모르겠네요.”

    “훌륭해.”

    이번에는 조현호가 말했다.

    “이것으로 전황이, 아니, 역사가 바뀔 거야. 대단해.”

    “미군 측에서는 아직 모르고 있지?”

    하고 장세윤이 정색하고 묻는 바람에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그 대답은 박진상이 했다.

    “예, 모르고 있습니다. 이동일이 아직 봉산에 있는 줄로만 압니다.”

    “조심해, 그리고.”

    힐끗 미군 쪽에 시선을 준 장세윤이 목소리를 더 낮췄다.

    “설령 발각되더라도 우리는 모르고 있었던 일로 하란 말이야.”

    “알겠습니다.”

    중국군 진주를 보면서 미군과 한국군 지휘부 사이에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았어도 이질감이 쌓이고 있다. 미군은 중국군 진입으로 전면전 가능성이 희박해졌다는 안도감을 갖는 반면 한국군은 중국군 때문에 또다시 통일의 기회가 무산될 것 같다는 분노가 퍼지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중국군에 대한 양측 감정을 간단히 표현하면 호감과 증오다. 한국군에서는 증오심을 품고 있다. 그리고 여론도 마찬가지. 그래서 장세윤까지 이동일의 비밀공작을 지지하게 된 것이다.

    7월26일 오후 12시30분, 개전 25시간40분25초 경과.

    눈을 치켜뜬 김경식이 전화기를 귀에 붙이고 소리쳤다.

    “백 중장, 알았나! 동요하지 마라! 이제 모든 명령은 내가 직접 내릴 테니까 그렇게만 알고 있으면 된다!”

    “예, 군단장 동지.”

    대답한 사내는 2군단 산하의 제17사단장 백기승 중장이다. 김경식은 지금 여섯 번째로 지휘관과 직접 통화를 한다. 10분쯤 전에 군단사령부 벙커가 화산 분화구 모양으로 붕괴된 후에 김경식의 흥분은 아직 가라앉지 않았다. 그러나 제일 먼저 수습해야 할 것이 군단의 재정비다. 전화기를 귀에서 뗀 김경식이 핏발 선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제 각 부대 지휘관 단속은 끝났다. 2군단의 주전력은 보병사단 5개와 전차여단 1개인 것이다. 그때 김경식의 시선과 부딪친 대좌 하나가 말했다.

    “4군단 소속 제85 미사일전대가 이번 남조선군 공격에서 살아남았습니다. 그놈들일지도 모릅니다.”

    상황실 안이 조용해졌고 대좌의 목소리가 시멘트벽을 울린다.

    “또 배천의 제2여단 미사일전대가 올라왔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해주의 제4군단사령부에는 군단장 우장선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군단 사령부 벙커를 공격한 것은 4군단 병력이 확실하다. 김정일의 지시를 받고 우장선이 특공대를 보낸 것이다.

    “좋아.”

    마침내 김경식이 잇사이로 말한 순간에 옆쪽에 서 있던 심철 상장이 와락 긴장했다. 안쪽 테이블에 앉아있던 무력부장 성종구도 늘어진 눈시울을 치켜 올렸다. 김경식이 한마디씩 또박또박 말한다.

    “정전이 되기 전에 내 전력을 약화해 주도권을 쥐겠다는 수작인 것 같은데 당하고만 있다면 사기에 영향이 있지.”

    그러고는 김경식이 앞에 선 대좌에게 지시했다.

    “제437미사일전대를 불러.”

    “예, 군단장 동지.”

    “해주 4군단사령부 벙커를 집중 포격하라고 해.”

    “예, 군단장 동지.”

    “모든 화력을 동원하도록! 미사일을 한 발도 남기지 말고 쏘라고 해!”

    “예, 군단장 동지.”

    그때 성종구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얼굴이 일그러져 있다.

    “이보오, 김경식 대장. 그렇게 되면 전면전이야. 4군단과 2군단이 붙게 되면 5군단과 1군단은 가만히 있을 거 같은가?”

    “전력은 우리가 강합니다.”

    김경식이 쏘아붙이듯 말을 잇는다.

    “1 ,2군단은 정예요! 그깐 놈들은 상대가 안 됩니다!”

    그 말은 맞다. 1, 2군단은 4, 5군단보다 격이 높고 무장도 잘 되어서 1군단장이 동부전선사령관, 2군단장인 김경식이 4군단을 지휘하는 서부전선사령관이었다. 그런데 4군단장 우장선이 김정일에게 붙으면서 친위대 행세를 한다. 어깨를 편 김경식이 상황실을 둘러보았다. 이제 김경식의 자세에는 권위까지 풍긴다.

    “속전속결이야! 놈들이 우리가 감히 반격해오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을 할 때 등을 찌르는 것이라고! 그리고 절대로 전면전은 일어나지 않아! 심장이 약한 놈이 먼저 나가떨어지게 된다고!”

    전화기를 귀에 붙인 김정일이 소리죽여 숨을 뱉는다.

    “이보시오, 사령관. 난 2군단사령부를 공격하지 않았소. 그러니 김경식에게 먼저 해명할 필요도 없단 말이오.”

    김정일이 말하는 동안 주위에 둘러선 장군들은 숨까지 죽이고 있다. 지금 김정일은 중국군 진주군사령관 후성궈의 전화를 받고 있다. 그때 후성궈가 말했고 통역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하지만 위원장 동지. 김경식 대장이 곧 보복 공격을 해올 것 같습니다. 북한군끼리의 전쟁은 막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중국군이 와 있으니 이젠 마음 놓고 전쟁을 하는 거지, 남조선군이 쳐들어올 걱정은 없으니까 말이요.”

    대뜸 말을 받은 김정일이 의자에 등을 붙이더니 주위를 둘러보며 웃는다. 웃는 얼굴이 일그러져 있다. 통역이 중국어로 말하는 동안 김정일이 평양방위사령관 전백준 차수를 보았다.

    “4군단장한테 다른 곳으로 피하라고 하시오. 저 미친놈이 날뛰기 전에 말이오.”

    “예, 지도자 동지.”

    몸을 돌리는 전백준의 얼굴은 일그러져 있었다. 마치 시궁창에 빠진 것 같은 표정이다. 그때 후성궈의 중국어가 끝나더니 통역이 말했다.

    “위원장 동지, 이 분란을 즉각 중지할 방법이 있습니다. 제 충고를 들어주시겠습니까?”

    “말하시오.”

    짧게 대답했더니 곧 후성궈의 목소리가 신중해졌다. 그리고 통역도 신중하게 말한다.

    “위원장 동지, 위원장 동지께서 잠깐 동안만 중국에 가 계시지요. 응낙하신다면 저희 중국군이 안전하게 모시겠습니다. 한미 양국에도 통보해서 안전을 확보해드리겠습니다. 김경식이 장난을 친다면 그 즉시로 멸망할 것입니다.”

    한국어 통역이 끝났으나 김정일은 눈을 응시한 채 움직이지 않았고 넓은 상황실 안에서는 숨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벽에 걸린 시계가 오후 12시40분을 가리키고 있다.

    개전 25시간50분25초가 지났다.

    425기계화군단이 전연지대에서 훨씬 후방인 평안북도 정주에 배치된 이유는 한국군 공수부대의 후방 교란 작전에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둘째는 서해안을 돌아 평양 후방으로 진입해온 상륙부대를 저지하기 위해서였는데 제2차 세계대전시 노르망디상륙작전과 6·25 때 평양 북방으로 낙하된 공수부대에 충격을 받아 설립되었다는 말이 있다. 후방에 위치해 있지만 425군단도 정규 기계화 군단이다. 기계화 보병여단 5개를 주축으로 편성된 기계화군단은 각 여단에 1개씩 전차대대를 보유하고 있었는데 군단장 박정근은 정주의 군단사령부에 5개 여단의 전차대대를 모아 전차전 훈련을 하던 중에 이번 전쟁을 만났다. 그래서 사령부 서쪽 황무지에는 150대에 가까운 전차가 대기 중이었다.

    “군단장님. 고문관이 전차를 부대로 돌려보내라는데요.”

    참모장 윤성 중장이 말하자 박정근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지금 두 번째 재촉을 하는 것이다. 창가로 다가선 박정근이 황무지를 보았다. 황무지 한쪽이 전차로 가득 차 있다. 검은 차체가 위압적이다. 소련제 T-64를 개량한 천마호는 125㎜ 할강포를 탑재한 전투중량 40t, 750마력으로 도로주행속도는 시속 70㎞, 7.62㎜ 기관총과 12.7㎜ 기관총을 장비하고 있다.

    “저것 봐.”

    박정근이 턱으로 전차대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 실은 할강포탄만 해도 6000발 가깝게 되겠구먼, 그렇지?”

    맞다. 천마호에는 할강포탄의 탑재탄수가 39발이다. 지금 모든 전차는 탑재탄을 가득 채워 넣고 아직 한 발도 발사하지 않았기 때문에 계산이 맞다. 그때 부관이 서둘러 방안으로 들어섰으므로 둘은 긴장했다. 부관이 박정근에게 무선전화기를 내밀며 말했다.

    “군단장 동지, 12군단장입니다.”

    이기준이다. 그 말을 들은 순간 박정근의 이맛살이 와락 찌푸려졌다. 그것을 본 부관의 손이 내려갔다. 그러나 멈춰선 부관이 말을 잇는다.

    “제2군단사령부 벙커가 미사일 공격을 받아 폭발했답니다. 참모장 이하 2군단 지휘관 전원이 폭사했답니다.”

    “이리 내라.”

    그때서야 박정근이 손을 내밀어 전화기를 받는다. 도청이 되고 있겠지만 어쩔 수 없다.

    “전화 바꿨습니다.”

    박정근이 말하자 이기준의 목소리가 송화구에서 울린다.

    “들으셨겠지만 2군단 평산 지휘부는 미사일 공격을 받아 괴멸했습니다.”

    “누가 했습니까?”

    대뜸 박정근이 물었고 이기준도 바로 대답했다.

    “주석궁 지시를 받고 특공대가 움직인 것 같소.”

    “잘돼가고 있구먼.”

    박정근이 잇사이로 말하고는 묻는다.

    “그런데 왜 전화하신 거요?”

    “조금 전에 우리가 감청을 했소.”

    잠깐 뜸을 들였던 이기준이 말을 잇는다.

    “중국 진주군 사령관 후성궈가 주석궁에 있는 위원장한테 조선을 떠나라고 하더군요. 김경식이 4군단을 공격하려는 것을 겨우 말렸다고 했소. 조금 전에 두 번째로 독촉 전화를 하면서 그럽디다.”

    “….”

    “지금 북조선 전국에서 노농적위대, 교도사단, 청년근위대까지 들고 일어나 무정부 상태가 되어 있소. 정규군단만 제 구역을 지키고 있을 뿐이오.”

    “….”

    “위원장을 내보내면 중국군과 김경식이 조선 땅을 통치할 수 있을 것 같소?”

    “요점을 말하시오.”

    갈라진 목소리로 박정근이 말했을 때 이기준은 짧게 웃는다.

    “이렇게 웅크리고만 있다가 죽는 것보다는 군인답게 한번 움직여보지 않겠소? 내가 할 말은 그뿐이오, 그리고.”

    이기준이 잊었다는 듯이 덧붙였다.

    “동무가 움직이면 나도 즉시 따르겠소.”

    7월26일 13시10분, 개전 26시간20분25초 경과.

    현재 인원 39명. 강성일 중좌가 지휘하는 북한군 12군단 소속 특수정찰대원 8명. 그리고 이동일 포함 해병이 31명이다. 이동일이 나무에 등을 기대고 앉은 조한철을 보았다. 조한철은 허리에 관통상을 입었다. 평산의 2군단사령부 벙커를 공격하고 철수하는 도중에 당한 것이다. 응급치료를 받아 허리에 압박붕대는 감고 있었지만 출혈이 심해서 얼굴이 창백했다. 조한철이 나중에야 부상당한 사실을 말했기 때문에 치료가 늦은 탓도 있다.

    “조 중위, 조금만 견뎌. 봉산 교외에 군단 의무지대가 있다니까 그곳에서 치료를 받을 수 있을 거다.”

    이동일이 말했지만 말끝에서는 외면했다. 의무대가 남아 있을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곳은 봉산 동쪽으로 20㎞쯤 떨어진 국도변이다. 오전 9시에 37명이 출발한 해병은 제2군단사령부에 도착했을 때는 33명으로 줄었고 지금은 31명, 그중 3명이 부상자다.

    “중대장님.”

    조한철이 창백한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웃었다.

    “신경 쓰지 마십시오. 그런데 부탁이 있습니다, 중대장님.”

    “뭐냐?”

    “의무대가 없으면 절 그냥 데려가주십시오.”

    “어디로 말이냐?”

    “막사로 말입니다.”

    봉산 교외 보급대 건물을 말하는 것이다. 막사에는 최 하사를 포함한 9명의 해병이 남아 있다.

    “알았다.”

    막사로 돌아가는 길이었으므로 선뜻 대답했던 이동일이 문득 머리를 돌려 조한철을 보았다. 압박붕대 밖으로 피가 배어나와 있다. 출혈이 그치지 않는 것이다. 그때 도로 정찰을 나갔던 강성일이 부하들과 함께 다가왔다. 국도는 도처에 반란군이 바리케이드를 쌓아놓고 도로를 차단해놓았기 때문에 수시로 멈춰서 전방 정찰을 해야 한다.

    그 시간에 김정은은 상황판 앞에 서 있다가 문득 옆을 지나는 장군을 불러 세웠다. 소장 계급장을 붙인 50대 장군은 호휘총국 소속이어서 안면이 있다.

    “민 소장, 반란군은 진압해야 하지 않소?”

    불쑥 물었더니 소장이 눈을 껌벅이며 김정은을 보았다. 주석궁 상황실 안은 여전히 장군들로 들끓었지만 조용하다. 안쪽 테이블에 김정일이 전백준 등 군 고위층과 당 간부까지 모아놓고 앉아 있었지만 회의 중은 아니다. 그때 김정은이 다시 물었다.

    “왜 지휘부에서 위원장 동지께 반란군 진압을 건의하지 않는 거요? 나는 그것이 이상하오.”

    질책이다. 이런 질책을 받는다면 당연히 온몸을 굳히고 얼굴이 하얗게 질려야 정상이다. 그때였다. 소장이 시선을 들고 똑바로 김정은을 보았다.

    “대장 동지께서 위원장 동지께 건의해보시지요.”

    소장의 시선을 받은 김정은이 눈만 껌벅였다. 전쟁이 일어난 지 만 하루가 지났다. 그동안 김정은은 철저히 소외당했다. 평시에는 지도를 받으려고 군과 당 간부들이 줄을 설 정도였는데 단 한 명도 다가오지 않았다. 그 순간 또 예기치 못한 일이 일어났다. 김정은이 망설이는 사이에 소장이 몸을 돌려 가버린 것이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쪽에서 가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가버렸다. 머리를 돌린 김정은이 안쪽 테이블을 보았다. 그러고 보면 아버지 김정일도 그렇다. 전쟁이 일어난 후에 모든 일을 독점해버렸다. 자신이 할 일이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그러니 그들이 김정은을 업신여기지 않겠는가?

    7월26일 13시30분, 개전 26시간40분25초 경과.

    “이제야 부대로 돌아가는군.”

    쓴웃음을 지은 왕이안 중장이 옆에 선 위밍 대교(大校)를 보았다. 캐터필러의 소음이 컸으므로 왕이안은 목소리를 높였다.

    “저런 것들이 무슨 전차라고, 저기 매연 나오는 것 좀 봐.”

    전차 뒤로 검은 매연이 마치 불이 난 것처럼 뿜어나오고 있다. 불량 디젤유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 웃은 위밍이 옆에 세워둔 99식(式) 전차의 철갑판을 두드리며 말했다.

    “우리보다 30년이 뒤져 있지요.”

    99식 전차는 2000년대부터 배급된 최신형으로, 1970년대에 보급된 T-64의 개량형인 북한군 전차 천마호와 30년 차이가 나는 것은 맞다. 왕이안 중장이 지휘하는 제16집단군 소속 4장갑사단은 3개 전차연대로 구성되었는데 각 연대는 3개 전차대대를 보유하고 있다. 따라서 각 대대가 30대의 99식 전차를 보유하고 있었으니 9개 대대의 전차 대수만 270대다. 거기에다 99식 전차는 54t의 중량에 125㎜ 할강포가 레이더로 조준 사격되며 주행 속도는 시속 80㎞, 1분에 8발을 발사하는 가공할 전력을 갖추고 있다. 왕이안이 앞쪽 길로 끝없이 이어져가는 북한 425군단의 전차들을 보면서 다시 소리쳐 말했다.

    “425군단장이 결국 김경식 편에 붙은 모양이군.”

    “어쩔 수 없지요.”

    작전참모 위밍도 소리쳐 말을 잇는다.

    “어차피 김정일은 이 땅을 떠나야 하지 않겠습니까? 김경식이 조선성 성장(省長)이 되는 것으로 이 전쟁은 끝나게 될 테니까요.”

    그때였다. 대기를 가르는 파공음이 들렸으므로 둘은 번쩍 머리를 들었다. 이 파공음은 너무도 귀에 익숙했기 때문이다. 다음 순간,

    “꽈앙! 꽝!”

    옆쪽에서 엄청난 폭발음이 울리면서 99식 전차 한 대가 폭발했다. 놀란 왕이안과 위밍이 전차 캐터필러 옆으로 몸을 붙였을 때 다시 폭발음이 일어났다. 이번에는 그들이 몸을 붙인 전차가 폭발한 것이다. 철판 조각들과 함께 허공으로 치솟은 둘은 그 후부터는 듣지도 보지도 못했다.

    “공격입니다!”

    그 시간에 오산의 한미연합사 벙커에서 환호성과 함께 외침이 울렸다. 위성 화면에 전차대의 포격전이 선명하게 비치고 있는 것이다. 곽산 근교에 포진했던 중국 제16집단군 소속 4장갑사단이 공격을 받고 있다.

    “아이구! 잘한다!”

    누군가가 버럭 소리쳤고 미군 장성은 주먹을 치켜들고 환호성을 지른다. 한미 양국군이 함께 소리 지르고 박수를 친다. 평안북도 정주 서쪽에 포진했던 북한 425군단의 전차대는 모두 150대 정도, 그 150대가 각 부대로 철수하는 것 같더니 갑자기 중국군 전차대를 3면에서 에워싸고 포격해버린 것이다.

    “전멸이다!”

    누군가가 다시 소리쳤다. 갑작스러운 기습이라 이것은 마치 도살이나 같다. 더욱이 중국군 전차는 연대별로 한데 모여 정차되어 있는데다 전차병들도 탑승하지 않은 전차가 대부분이다. 지금도 대응사격을 하는 중국군 전차는 한두 대뿐이다.

    “저놈들이 기습을 잘한다니까!”

    한국군 장군 하나가 버럭 소리쳤지만 이번에는 호응하는 사람이 없다. 북한군 칭찬을 한 것은 맞지만 비꼬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도살이군.”

    육참총장 조현호가 상황 화면을 보면서 잇사이로 말했다. 아직도 상황실 안은 떠들썩한 환성과 소음으로 가득 차 있었으나 조현호의 얼굴은 굳어 있다.

    “중국군은 425군단과 전면전을 벌이지 못합니다.”

    옆에 바짝 붙어선 작참부장 박진상이 말했다. 그는 조현호의 말을 들은 것이다. 박진상이 말을 잇는다.

    “이것으로 중국 정부는 깜짝 놀라 대책을 강구하겠지요. 김정일도 한숨 돌리게 되었습니다.”

    그때 그들 옆으로 연합사 참모장 해리슨이 서둘러 다가왔다.

    “시진핑이 김정일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가서 들읍시다!”

    해리슨이 소리치듯 말한다. 그 순간 조현호와 박진상이 서로의 얼굴을 보았다. 이런 친절은 처음이다. 그러나 둘은 동시에 발을 떼면서 위성 화면을 다시 보았다. 북한군의 고물 T-64 개량형 천마호가 절대적인 열세의 전차대수로 중국군 최신형 99식 전차 270여 대를 거의 전멸시키고 있다. 불을 뿜고 있는 전차는 모두 중국 전차다. 대승리다. 벼락같은 기습전으로 지근거리까지 접근해서 철저하게 몰사시켰다. 전차전 역사에 남을 전투가 될 것이다. 감동으로 가슴이 먹먹해진 박진상이 상황판 시계를 보았다.

    7월26일 오후 13시55분(개전 27시간5분25초 경과)이다.

    전차전이 일어난 지 20분이 조금 넘었을 뿐이다.

    그 시간에 이동일이 차에서 들려 내리는 조한철 중위를 향해 뛰어간다. 이곳은 봉산 교외의 12군단 보급대 막사. 오전 9시에 출발했다가 지금 돌아온 것이다.

    “조 중위!”

    소리쳐 불렀으나 조한철은 눈을 뜨지 않았다.

    “조금 전부터 눈을 뜨지 않습니다.”

    같은 트럭에 타고 있던 김 하사가 충혈된 눈으로 이동일을 보았다. 해병들에게 들린 조한철은 막사 안의 마룻바닥에 눕혀졌다. 압박붕대는 피범벅이 되어 있다. 벌써 세 개째 바꿔 감겼어도 그렇다.

    “조 중위! 야! 들리나!”

    조한철 옆에 앉은 이동일이 다시 소리쳐 불렀을 때였다. 둘러선 해병들을 헤치고 윤미옥이 다가와 조한철의 옆에 바짝 붙어 앉았다. 기세가 사나워서 해병들이 주춤거렸고 이동일도 시선을 들었다. 그때 윤미옥이 조한철의 손을 움켜쥐더니 소리쳤다.

    “이봐요! 조한철 중위!”

    날카로운 외침이 막사 안을 울렸다.

    “조 중위! 눈 떠!”

    군단 의무지대는 비워 있었던 것이다. 군단본부 의무대로 가려면 봉산 서쪽으로 20㎞를 더 가야만 한다.

    “눈 뜨란 말야! 약속을 지켜!”

    하고 윤미옥이 다시 소리쳤을 때였다. 이동일은 숨을 삼켰고 둘러선 해병들 사이에서 탄성이 터졌다. 조한철이 눈을 뜬 것이다. 석고상 같은 조한철의 얼굴에 검은 눈동자가 번들거리고 있다. 그 순간 윤미옥이 울음을 터뜨리며 조한철의 어깨를 두 손으로 움켜쥐었다.

    “봐! 떴잖아! 약속 지켜줘서 고마워! 돌아와줘서 고마워!”

    윤미옥이 울부짖었다. 조한철이 그런 윤미옥을 똑바로 올려다본다.

    “자, 이젠 나하고 같이 가! 군단본부 의무대로 가란 말이야!”

    조한철의 입술이 조금 열렸다. 그것을 본 이동일이 틈을 이용해서 소리쳤다.

    “야! 말할 필요 없다!”

    여러 가지 단어가 머릿속을 떠돌아 뒤죽박죽이 되어 있었지만 그렇게 말이 나와버렸다. 조한철은 지금 죽어가고 있는 것이다. 말할 기력도 없는 것 같다. 그때 윤미옥이 다시 말한다.

    “사랑해! 이제는 떨어지지마! 내가 옆에 있어줄게!”

    숨을 들이쉰 이동일은 조한철의 눈동자가 움직이지 않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얼굴은 평온하다. 입을 조금 벌린 채 있는 것이 가볍게 웃는 것 같다. 둘러선 병사들도 어느덧 숨을 죽이고 있다. 막사 안은 조용해졌다. 끝 쪽에선 강성일 중좌의 얼굴도 보인다. 어느새 늙은 노농적위대원 오규성도 와 있다. 이윽고 윤미옥이 몸을 굽혀 조한철의 얼굴을 똑바로 내려다본다. 그러자 초점이 멀어진 조한철의 눈동자가 윤미옥의 시선과 맞춰진 것 같았다. 숨소리도 들리지 않는 막사 안에 다시 윤미옥의 말이 울린다.

    “나도 곧 따라갈 테니까 기다려.”

    (9장에 계속)

    이원호

    2014
    1947년 전북 전주에서 태어나 전주고, 전북대를 졸업했다. (주)백양에서 중동과 아프리카 지역 무역 일을 했고, (주)경세무역을 설립해 직접 경영했다. 1992년 ‘황제의 꿈’과 ‘밤의 대통령’이 100만부 이상 팔리며 최고의 대중문학 작가로 떠올랐다. 간결하고 힘 있는 문체, 스케일이 큰 구성, 속도감 넘치는 전개는 그의 소설에서만 볼 수 있는 매력이다. 기업, 협객, 정치, 역사, 연애 등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며 지금까지 50여 편의 소설을 냈으며 1000만부 이상의 판매고를 기록했다. 주요 작품으로 ‘할증인간’ ‘바람의 칼’ ‘강한 여자’ ‘보스’ ‘무법자’ ‘프로페셔널’ ‘황제의 꿈’ ‘밤의 대통령’ ‘강안남자’ 등이 있다.


    “중국군이 박천에 사령부를 두었고 곧 회천으로 40집단군이 온다는 거야!”

    마당에 선 오대길이 손에 쥔 라디오를 흔들면서 말을 잇는다.

    “선양군구(軍區)의 3개 집단군이 오늘 중으로 진주를 끝낸다고 했어!”

    한국에서 방송한 내용이다. 마당에는 30여 명의 적위대원이 모여 있었는데 여자들은 약탈이 끝난 후에 모두 돌려보냈다. 그때 나이든 박장서가 말했다.

    “잘됐어. 전부터 중국놈들이 북조선 땅을 조선성(朝鮮省)으로 만든다고 하던데 잘된 일이야. 우리도 조선족 놈들처럼 잘 먹고 잘살아보자고!”

    “그게 무슨 말씀이오?”

    최기상이 버럭 소리쳤으므로 모두 조용해졌다. 50대 초반인 최기상이 저보다 여섯 살 연상인 박장서를 노려보았다. 박장서는 먼 친척이기도 하다.

    “그럼 우리가 중국놈 상전을 모시고 살란 말이오? 일본놈 식민지에서 겨우 벗어났다가 이제는 중국 식민지가 되어?”

    최기상의 목소리가 마당을 울렸다. 그러자 박장서도 지지 않는다.

    “굶어 죽고 맞아 죽는 것보단 낫다! 이게 사람 사는 세상이냐? 짐승도 이렇게 안 산다! 나는 내 자식 굶겨 죽이고 피눈물을 낸 사람이여!”

    “누군 안 그렇습니까?”

    하고 최기상이 맞받아 소리쳤을 때였다.

    “삐라다!”

    누군가 소리쳤으므로 모두 그가 가리키는 하늘을 보았다. 하늘에서 흰 삐라가 눈처럼 내려오고 있다.

    “좋다!”

    어디선가 그런 외침이 울렸고 서너 명은 삐라가 떨어지는 방향으로 달려갔다.

    7월26일 08시30분, 개전 21시간40분25초 경과.

    “도처에서 반란이 일어납니다. 조용한 곳은 평양과 그 주변뿐입니다.”

    상황실로 들어온 대통령 박성훈에게 합참의장 장세윤이 성의 있게 보고했다. 그 옆쪽에 앉은 한미연합사령관 제임스 우드워드는 박성훈과 시선을 부딪치지 않는다. 장세윤이 말을 이었다.

    “김정일과 김경식, 그리고 12군단 등 정규군단은 거의 동요하지 않지만 주변 소요를 진압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병력을 분산, 소모시키지 않으려는 의도 같습니다.”

    박성훈의 앞쪽에는 거대한 전광 상황판이 펼쳐져 있다. 북한 땅은 붉은 점으로 뒤덮여 있었는데 그것이 반란군의 준동 지역이다. 박성훈이 상황판을 응시하며 물었다.

    “중국군은?”

    그러자 상황판 옆에 선 대령이 레이저빔으로 박천을 가리켰다. 박천과 개천, 덕천, 회천에 노란점이 반짝였고 그 주변으로 노란색이 번져 있다.

    “선양군구 사령부는 이곳입니다. 그리고 지금도 3개 집단군이 남하하고 있는데 오후 6시까지는 이동을 끝낼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박성훈의 시선이 힐끗 우드워드를 스치고 지나갔다. 이미 오바마하고 통화를 마친 후여서 미국 측 분위기를 알고 있는 것이다. 그때 앞쪽에 앉아 있던 육참총장 조현호가 불쑥 말했다.

    “이제 변수는 북한 인민, 즉 반란 세력이 쥐고 있습니다. 중국군의 상대는 그들이 된 것입니다. 김경식 일당은 말할 것도 없고 김정일도 중국군 비위를 거스르지 않으려고 할 테니까요.”

    한미합동회의여서 모두 영어를 사용하고 있다. 조현호의 말이 이어졌다.

    “반란군이 중국군을 어떻게 대할지가 앞으로 전세를 결정지을 것입니다.”

    회의를 마친 육본작참부장 박진상 중장과 해병사령관 정용우 중장이 구석쪽 벽 앞에 마주보고 섰다.

    “그래, 12군단하고 425군단 이야기를 꺼내지 않은 건 잘한 거야.”

    박진상이 머리를 끄덕이며 말했다.

    “미국 측이 지금 가장 신경을 쏟고 있는 게 그들이니까 말이야.”

    “근데 어떻게 될 것 같소?”

    목소리를 낮춘 정용우가 묻자 박진상은 입맛부터 다셨다.

    “12군단장 이기준이 425군단 박정근한테 한 통화를 우드워드가 듣고 해리슨한테 그랬다는군. 저자식이 지금 뭐 하려고 개수작을 부리느냐고 말이야. 그건 우리한테 들으라고 한 말이요.”

    “안보수석한테 들었는데 오바마는 중국군 진입이 잘된 것 같다는 뉘앙스를 풍겼다던데.”

    “당연하지.”

    안쪽의 미군 지휘부를 힐끗 바라본 박진상이 말을 잇는다.

    “미국은 북한이 중국 조선성(朝鮮省)으로 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해결책으로 봐요. 그건 한국 측이나 북한 주민들한테도 모두 이득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뿐만 아니다. 미국은 물론이고 일본, 거기에다 중국은 말할 것도 없는 윈윈 전략인 것이다.

    “시발.”

    정용우가 잇사이로 욕을 뱉더니 목소리를 낮추고 말했다.

    “변수가 또 하나 있지.”

    7월26일 09시 정각, 개전 22시간10분25초 경과.

    “집합 완료했습니다.”

    선임 소대장 조한철이 말했으므로 이동일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막사를 나온 이동일은 마당에 정렬한 해병 부하들을 보았다. 모두 37명, 부상자와 경비병을 뺀 전력이다. 모두 인민군복을 입고 있는데다 이제는 화기까지 완전히 AK-47 등 북한제로 바꿨다. 마당에는 지휘 장갑차와 트럭 석 대가 세워져 있었는데 이미 강성일의 부하 10여 명이 탑승하고 있다. 강성일이 정렬한 병사들을 사열하듯이 훑어보며 지나더니 이동일에게로 다가왔다.

    “앞으로 시간이 얼마 남았소?”

    강성일이 묻자 이동일이 손목시계를 보고나서 대답했다.

    “15분.”

    그러고는 이동일이 옆쪽에 서 있는 최 하사를 보았다. 최 하사가 이제 이곳의 지휘관이다.

    “우리가 떠난 후에 막사 밖으로 나오지 말도록, 알았나?”

    “예, 중대장님.”

    병사들의 눈빛이 아침 햇살을 받아 번들거리고 있다. 이제 출동이다. 트럭 안에는 12군단 사령부에서 가져온 각종 최신 화기가 가득 차 있다. 이동일이 강성일과 시선을 맞추고는 지시했다.

    “출동!”

    김경식은 한 시간 가깝게 상황실을 비웠는데 개전 이후로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만큼 긴장이 풀렸다는 의미도 될 것이다. 다시 상황실로 들어선 김경식에게 상황실 당직인 대화가 보고했다.

    “곽산에 제16집단군 소속 4장갑사단이 진주했습니다.”

    “4장갑사단이?”

    눈을 크게 떴던 김경식이 곧 얼굴을 펴고 웃었다.

    “그렇군. 전차사단이 누르고 있으면 425군단은 꼼짝 못하게 되겠지.”

    제55호위대 벙커 상황실에서도 12군단장 이기준과 425군단장 박정근의 통신을 감청한 것이다. 역시 둘의 통신을 감청한 중국군이 재빨리 손을 쓴 것이다. 이제 425기계화군단은 옆에서 칼끝을 들이대고 있는 형편이니 가만히 있는 것이 사는 길이다. 머리를 든 김경식이 상황판을 보았다. 425군단 사령부가 위치한 평안북도 정주에서 곽산까지는 직선거리로 10㎞ 정도였다. 거의 모든 야포의 사정거리 안인 것이다. 시선을 내린 김경식이 황해북도 봉산을 보았다. 12군단 사령부가 위치한 곳이다. 그곳은 회색으로 표시되어 있었는데 동쪽의 평산이 붉은색이어서 구분이 잘 되었다. 평산은 바로 김경식의 2군단 사령부가 위치한 곳이다. 김경식이 봉산을 노려보며 혼잣소리처럼 말했다.

    “중국군 진입에 가장 불안한 놈이 바로 저놈이야. 이쪽도 저쪽도 아닌 회색분자놈.”

    그래서 봉산에 회색 표시를 해놓은 것이다.

    “잘된 일이야.”

    노동민족당 국회의원 임민희는 지금 벽에 기대앉아 남편 오종구의 말을 듣고 있다. 웃음 띤 얼굴이다. 오종구가 말을 잇는다.

    “북한이 조선성으로 되면 또 어때? 미제의 주구가 된 한국으로 통일되는 것보다는 낫지.”

    “아휴, 십년감수했어.”

    임민희가 웃음 띤 얼굴로 말했다.

    “중국군이 오기 전까지 말이야. 만일 내분으로 북한이 붕괴된다면 우린 북한 놈들한테 맞아 죽었을 거야.”

    “지금도 안심할 수는 없어.”

    문을 열어놓아서 마당이 보였고 개집 앞에 쪼그리고 앉아 개를 쓰다듬는 아들 오연수가 보였다. 오종구가 오연수에게서 시선을 돌려 임민희를 보았다.

    “이 기회에 공안당국은 우리들 뿌리까지 뽑으려고 하니까 말이야.”

    “중국의 조선성이 된다면 내가 북한 땅으로 들어갈 용의가 있어.”

    불쑥 말한 임민희가 오종구를 보았다.

    “당신은 어때?”

    “그야 김정은 체제보다는 낫겠지.”

    입맛을 다신 오종구가 어깨를 치켜세웠다가 내렸다.

    “어휴, 김정일 위원장까지는 그냥 넘기겠는데 김정은을 보니깐 말이야. 이건 도대체 뭐냐는 생각이 들고 창피해지더라고.”

    “결국은 이렇게 되는 거였어.”

    쓴웃음을 지은 임민희가 말을 잇는다.

    “주체네 뭐네, 개소리였어. 중국 식민지가 되는 것 좀 봐. 어휴, 연수 보기가 부끄러워.”

    같은 시간에 일산 대호식당 사장 김대호는 TV를 노려보면서 소리쳤다.

    “이런 뭐 허는겨? 북진혀야 될 것 아녀?”

    아직 식당에는 손님이 한 사람도 없었고 부인 박민옥과 일하러 나온 파주댁까지 셋뿐이다. 김대호는 주먹으로 테이블을 내려쳤다.

    “또 중국놈들 때미 통일이 안 되는 거 아녀? 저런 개 같은.”

    “아, 시끄럽소!”

    하고 대파를 다듬던 박민옥이 맞받아 소리친다.

    “중국 놈들이 북한 땅에 들어왔응께 전쟁이 끝난 것이나 같다고 허잖여? 글먼 잘된 일이지 무신 놈의 북진?”

    “저런 무식헌.”

    “혼자 북진혀.”

    그러자 파주댁이 큭큭 웃었고 김대호의 얼굴이 붉게 상기되었다.

    “저런 것이 있응께 통일이 안 되는 겨.”

    “뭐? 저런 것?”

    대파를 내던진 박민옥이 벌떡 일어섰다.

    “그려, 전쟁이 일어나서 식당이 문 닫어야 되겄단 말이지? 저런 철딱서니를 내가 30년이나 데꼬 살았당께.”

    “머셔? 말 다혔냐?”

    그때 파주댁이 TV를 보면서 말했다.

    “저기 화면 좀 보세요.”

    둘의 시선이 TV로 옮겨졌다. 아나운서의 말은 끝났지만 밑의 자막은 아직 남아 있었다.

    ‘46용사 실종되다.’

    7월26일 10시 정각, 개전 23시간10분25초 경과.

    석 대의 차량이 평양-개성 간 고속도로를 질주하고 있다. 고속도로는 드문드문 군용차량만 오갈 뿐 한산한 편이다. 선두를 달리는 장갑차 안에서 강성일이 옆에 앉은 이동일에게 말했다.

    “곧 갈림길이요.”

    그러나 길 양쪽으로는 황량한 황무지가 펼쳐져 있을 뿐이다. 맑은 날씨였다. 푸른 하늘에 흰 구름이 서너 점 뭉쳐 있었고 장갑차의 옆쪽 창으로 몰려든 바람결에 흙냄새가 맡아졌다. 장갑차는 위쪽에 두 정의 기관포가 설치되었고 사방이 철판으로 보호된 6인승이다. 장갑 사이로 앞쪽을 살핀 강성일이 혼잣말을 했다.

    “정규군은 모두 제 부대 단속만 하느라 이동을 하지 않는구먼.”

    “탓탓탓탓탓.”

    요란한 기관총 소리에 놀란 이금봉 대위가 머리를 든 순간이었다. 천장 한쪽이 무너지면서 시멘트 부스러기가 쏟아져 내렸다.

    “꽝! 꽈광!”

    포탄 폭발음이 울리면서 옆쪽 유리창이 창틀까지 박살이 났다. 몸을 굽힌 이금봉이 문을 박차고 나왔을 때 이번에는 수십 정의 총성이 울려 퍼졌다.

    “타타타타타.”

    기습이다. 앞쪽 시멘트 초소에서 뛰쳐나온 병사 둘이 마치 춤을 추듯이 두 손을 흔들면서 쓰러졌다.

    “타타타! 타타타!”

    이쪽 초소 하나는 살았다. 초소에서 기관총으로 응사하고 있었지만 이금봉에게 적은 보이지 않았다.

    “대장님!”

    옆쪽에서 외치는 소리에 막사 귀퉁이로 몸을 날렸던 이금봉이 머리를 들었다. 제1초소장 안 중위가 부서진 막사 뒤에서 손을 흔들었다. 사방은 총성과 폭음으로 뒤덮여 있었으므로 안 중위는 악을 썼다. 그러고 보니 한쪽 볼이 피투성이다.

    “반란군의 기습입니다!”

    예상은 했다. 공격해올 놈들은 그놈들뿐이다. 그런데 정규군의 고속도로 경비대를 기습하다니. 이를 악문 이금봉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 순간 총탄이 날아와 바로 머리 옆 벽에 맞아 파편이 튀었다. 안 중위가 다시 소리쳤다.

    “놈들 병력이 우세합니다!”

    그것도 안다. 이미 60여 명의 경비대원 대부분이 죽거나 부상당했다는 것도 알겠다.

    “개새끼들. 우리 식량을 탈취하려는 것이다.”

    잇사이로 말한 이금봉이 머리를 들고 힘껏 소리쳤다.

    “놈들은 오합지졸이야! 뚫고 나가!”

    놈들은 삼면에서 공격해오고 있는 것이다. 숲과 도로 양쪽 언덕에 엄폐한 놈들에게 이곳은 그야말로 좋은 표적이다.

    “도로 끝으로 물러나!”

    하고 이금봉이 소리친 순간이다. 이금봉은 온몸이 허공으로 떠오르는 것을 느꼈다. 이미 청각은 마비되어서 소리는 듣지 못했다.

    김정일이 전화기를 귀에 붙였을 때 시진핑의 목소리가 울렸다. 20초쯤 이어진 말이 끝나자 곧 통역이 말한다.

    “김경식 대장은 중국군의 통제를 받겠다고 약속을 했습니다. 따라서 위원장께서도 사태의 수습을 위해서는 후성궈 사령관에게 중재 역할을 맡겨주시지요.”

    통역의 말이 끝났을 때 김정일이 웃음 띤 얼굴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주석궁의 상황실 안이다. 이번은 김정일이 시진핑과의 통화를 공개했으므로 스피커에서 울린 통역의 말을 모두 들었다. 그러나 아무도 김정일과 시선을 마주치지 않는다. 평양방위사령관 전백준 차수도, 호위총국 부사령관 윤국순 상장도, 평양경비사령관 오종구 대장도 제각기 외면하고 있다. 그러나 앞쪽에 선 단 한 명 김정은만 김정일의 시선을 받는다. 그때 김정일이 말했다.

    “주석 동지, 잘 알겠습니다. 중재 역할을 후성궈 사령관에게 맡기지요. 북한군 사이에 전쟁이 일어나지는 않을 것입니다.”

    말이 끝나자 벽 쪽에 앉아 있던 통역이 한마디씩 중국어로 통역을 한다. 그 사이에 전화기를 내려놓은 김정일이 김정은에게 물었다.

    “이제 중국이 누구를 거북하게 생각하겠느냐? 나? 아니면 김경식?”

    “위원장님이십니다.”

    몸을 굳힌 김정은이 대답했을 때 스피커에서 시진핑의 대답이 울려나왔다. 그것을 무시한 김정일이 김정은에게 말을 잇는다.

    “그럼 나를 어떻게 할 것 같으냐?”

    그때 시진핑의 말이 끝나고 통역의 목소리가 울렸다.

    “위원장 동지, 감사합니다. 그럼 12군단 처리 문제가 남았는데 그것도 중국군이 잘 수습하겠습니다.”

    “잘 부탁합니다, 주석 동지.”

    그렇게 대답하고 난 김정일이 아예 전화기를 내려놓고는 김정은을 보았다. 정색한 표정이다. 김정일의 시선을 받은 김정은이 대답을 했다.

    “중국이 위원장님을 무시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아직도 평방사, 호위총국, 그리고 충성을 맹세한 군단이 많지 않습니까? 반역자 김경식보다 우리가 강합니다.”

    “내가 중국으로 망명하는 것이 그들에게 가장 좋은 해결책이지.”

    김정일이 낮게 말했지만 모두 들었다. 그러나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고 시선도 보내지 않는다. 의자에 등을 붙인 김정일이 말을 이었다.

    “아직 변수가 많아. 아직 끝난 것이 아니란 말이야.”

    상황판 아래쪽에서 전광시계가 깜박이고 있다.

    7월26일 오전 10시30분. 개전 23시간40분25초가 지난 시점이다.

    “일제 식민지 36년을 거치고 이제는 다시 중국 놈의 식민지 조선성이 된단 말입니까?”

    라디오에 넣어진 녹음테이프에서 낭랑한 여자의 목소리가 마당을 울렸다.

    “지금부터는 여러분의 손에 여러분의 미래가 걸려 있는 것입니다. 60여 년이 넘도록 이밥에 고깃국을 먹여주겠다는 그 하찮은 약속 하나 지키지 못한 김씨 일당의 압제에 고통 받던 여러분, 이제 여러분의 손에는 총이 쥐어졌습니다. 지금은 여러분이 선택하셔야 됩니다. 또다시 중국 놈을 주인으로 모시고 개처럼 얻어먹을 것이냐? 아니면 중국보다 몇 배 더 잘사는 대한민국과 동포로 뭉쳐 지금까지 비웃던 중국 놈들에게 이보라는 듯이 살 것이냐? 여러분이 지금 선택하셔야 됩니다!”

    이곳은 평안북도 연변군의 하성마을, 청천강 줄기가 마을 왼쪽으로 흐르고 묘향산맥 자락이 뒤쪽에 병풍처럼 둘러서 있다. 170여 호의 마을 복판에 자리 잡은 협동창고 앞마당은 조용하다. 노농적위대와 근처의 교도대, 거기에다 30여 명의 붉은 청년근위대까지 포함된 400여 명이 모여 있는데도 그렇다. 붉은청년근위대는 고등중학교 4학년에서 6학년까지의 나이인 14세에서 16세의 학생이다. 그들도 모두 총을 쥐고 있다. 다시 목소리가 이어진다. 이 라디오는 어젯밤 삐라와 함께 떨어졌다.

    “여러분! 지금 북한군은 김정일과 제2군단장 김경식 일파로 나뉘어 있습니다. 김경식은 권력을 잡기 위해서는 중국 놈의 종이 되어도 좋다는 심보로 중국군을 끌어들인 매국노입니다. 이 두 김씨가 권력 다툼을 하는 바람에 여러분은 부모 없는 아이처럼 버려졌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미 북조선 전국에서 노농적위대, 교도사단이 봉기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제 북조선의 주인이 되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부대별로 뭉쳐 부대를 정비하십시오. 그리고 중국군을 몰아내십시오. 여러분에게 기회가 온 것입니다. 중국군을 끌어들인 김경식 일당을 공격하십시오. 그렇게 되면 김정일은 고립되어 여러분 앞에 자연히 무릎을 꿇게 될 것입니다.”

    낭랑한 목소리가 끝났을 때 조기춘이 머리를 들고 말했다.

    “중국 놈들이 우리가 이렇게 나설 줄은 상상하지도 못했을 거야.”

    그러자 교도사단 지구대장 이경식이 쓴웃음을 짓고 대답했다.

    “그건 김정일이나 김경식이도 마찬가지였을 거요.”

    이경식은 1개 중대 병력을 이끌고 노농적위대 300여 명과 합류했다. 둘 다 예비역 대위였지만 조기춘이 10년 가까이 연상이었기 때문에 합동군의 지휘를 맡은 것이다. 그렇다. 붉은청년근위대까지 합류시킨 합동군이다. 한국에서 삐라와 함께 보낸 라디오에서 일러주기도 전에 반란군은 합류하고 부대를 정비하고 있다. 군 생활을 10여 년씩 해오기 때문만은 아니다. 굶어 죽지 않으려고 기를 써온 생존본능이 그렇게 만든 것 같다.

    7월26일 오전 11시 정각, 개전 24시간10분25초 경과.

    송아현이 다가서자 사회부장 홍동수가 물었다.

    “결과는 어때?”

    “놀랐어요.”

    먼저 그렇게 말한 송아현이 홍동수를 빤히 보았다. 홍동수의 시선을 받은 송아현이 말을 잇는다.

    “휴전 반대가 78%, 찬성이 22%예요.”

    “그것 웃기는군.”

    눈을 가늘게 뜬 홍동수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조선성.”

    송아현이 짧게 말하자 홍동수는 입을 다물었다. 지금 송아현이 말한 것은 국제신문이 여론조사기관에 의뢰해 조사한 휴전에 대한 여론이다. 전국의 19세 이상 시민 5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다. 중국군이 진주하자 휴전에 대한 여론이 180도 바뀌었다. 송아현이 말을 이었다.

    “미국에 대한 여론도 급격하게 나빠지고 있어요. 미국이 중국군 북한 진주를 비밀리에 요구했다는 소문도 돌고 있습니다.”

    “좌익에서인가?”

    “동방뉴스 측에서는 우익 보수층에서도 노골적으로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많다고 합니다.”

    “미국이 억울한 부분도 있겠는데.”

    “현실적으로 북한이란 괴물이 중국의 한 개 성(省)으로 되는 것이 미국으로서는 관리하기 쉽거든요.”

    “이봐, 한미연합사의 미군들 처지를 생각하고 말해, 그 사람들 잠도 못 자고 같이 싸우는 중이야.”

    “이때 밀고 올라가야 합니다.”

    뱉듯이 송아현이 덧붙였다.

    “이건 제 생각이지만요.”

    그러자 입을 막 벌렸던 홍동수가 다시 다물었다. 지금 북한 땅에서 실종 상태가 된 송아현의 애인이며 ‘46영웅’의 지휘관 이동일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편집국을 나온 송아현이 복도에 서서 바지 주머니에 두 손을 찌른다. 오른손에 휴대전화가 잡혔으므로 송아현은 어금니를 물었다. 휴대전화가 바뀌었다. 계엄군 측이 휴대전화를 가져간 것이다. 이동일의 안전을 고려한 것일 테니 별 유감은 없다. 그러나 허전하고 외롭다. 창가로 다가선 송아현이 북쪽 하늘을 보았다. 오늘은 하늘이 맑다. 파란 하늘에 구름 몇 점이 떠 있을 뿐이다.

    불에 탄 고속도로 검문소를 네 대의 차량이 속도를 줄이지 않고 통과했다. 그러나 탑승자는 모두 긴장하고 있다. 길가에 10여 구의 인민군 시체가 뒹굴고 있는데다 부서진 막사에서 아직도 연기가 솟아오르고 있다. 전투가 벌어진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다.

    “이곳이 2군단 지역이요.”

    주위를 둘러보며 강성일이 말했다.

    “경비대가 반란군 습격을 받은 것 같은데.”

    멀어져가는 막사를 힐끗 뒤돌아본 강성일이 말을 이었다.

    “뒤쪽 창고가 약탈당했어. 정규군 경비대 창고는 양곡이 충분히 있으니까 그것을 노린 것이지.”

    그때 운전병이 소리치듯 보고했다.

    “좌측 길가에 인민군이 있습니다!”

    머리를 든 이동일이 앞쪽의 좌측에서 흩어지는 일단의 인민군을 보았다. 대충 20여 명, 그중 절반은 제각기 짐을 들었는데 흰색 쌀포대다.

    “저놈들이군.”

    강성일이 잇사이로 말하더니 지시했다.

    “통과!”

    그러자 선두 장갑차는 더 속력을 내었고 좌측 길옆으로 흩어진 인민군들을 스치고 지나갔다. 길에서 30m쯤 떨어진 개울가에 어지럽게 엎어지고 쪼그리며 은폐하던 인민군 무리가 스쳐지나는 차량을 본다. 만일 그들이 공격 자세를 취했다면 한바탕 전투를 치러야만 했을 것이다.

    “저놈들이 우리한테 길을 틔워준 셈이구먼.”

    차량 네 대는 이제 고속도로를 벗어나 국도를 달리고 있다.

    “현재 33곳에서 총격전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위성사진에서 시선을 뗀 상황장교 존 크로스 중령이 보고했다.

    “한 시간 전에는 47곳이었는데 22곳의 상황이 종결되었고 한 시간 사이에 8곳에서 새 전투가 일어난 것입니다.”

    크로스가 컴퓨터를 두드리더니 모니터를 읽는다.

    “현재까지 반란군 준동 지점은 277곳, 북한 전역에 퍼져 있습니다.”

    크로스 뒤쪽에 선 지휘관들은 벽에 붙은 상황판을 응시한 채 아직 입을 열지 않는다. 한미연합사 사령관 제임스 우드워드 대장, 부사령관 이성호 대장, 한국군 합참의장 장세윤 대장, 육참총장 조현호 대장 등은 모두 어젯밤에 이곳에서 지냈다. 잠을 서너 시간밖에 자지 못했지만 모두 멀쩡한 모습이다. 이윽고 먼저 입을 연 것은 우드워드다.

    “그렇다면 전투가 늘어나는 셈인가?”

    “예, 아침 7시 이후로 한 시간당 10%가량 늘어나고 있습니다.”

    크로스가 대답하자 구석에 서 있던 참모장 모건 해리슨 중장이 거들었다.

    “교전 상대는 대부분 보위부, 후방 군단의 보급대, 파견대였는데 그중 몇 건은 전연지대 군단 파견대, 경비대를 기습한 경우도 있습니다.”

    해리슨이 레이저로 상황판의 황해북도 평산 근처 고속도로를 가리켰다. 그곳에 붉은 점이 켜져 있었는데 교전이 있었다는 표시다. 30분쯤 전만 해도 그 붉은 점이 교전 중이라는 표시로 깜박였다. 지금은 끝난 것이다.

    “이곳이 2군단 관할 고속도로 경비중대였는데 반란군의 기습을 받아 전멸했습니다. 이제 반란군은 전연지대 근처까지 습격하고 있습니다.”

    머리를 끄덕인 우드워드가 상황판을 둘러보다가 불쑥 묻는다.

    “그, 46명은?”

    그때 뒤쪽에 서있던 해병사령관 정용우 중장이 퍼뜩 머리를 들었다. 어젯밤까지만 해도 우드워드는 그들을 ‘히어로들’이라고 불렀던 것이다. 그러자 크로스가 컴퓨터를 조작해서 상황판 한 지점을 확대시켰다. 봉산 교외에 위치한 이동일의 은신처다. 확대한 막사를 보면서 크로스가 대답했다.

    “09시 이후로 모두 막사 안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사령관님.”

    정확히 말하면 09시15분부터다. 08시45분부터 09시15분까지 30분 동안 위성 교대로 공백 상태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우드워드가 머리를 돌려 합참의장 장세윤을 보았다.

    “김정일이 아직도 전화를 받지 않습니까?”

    대통령 박성훈의 전화를 받지 않느냐고 묻는 것이다. 자존심이 상한 장세윤이 눈만 껌벅였을 때 옆에 서 있던 연합사 부사령관 이성호가 대신 대답했다.

    “대통령께서 한 번 전화통화를 시도하셨다가 불통이 되었을 뿐이죠. ‘아직도’라는 표현은 맞지 않습니다.”

    상황판 앞에서 떠난 정용우가 벽쪽 테이블로 돌아왔을 때 박진상이 다가오더니 옆에 앉는다.

    “이 대위는 지금 어디에 있는 거요?”

    낮게 묻자 정용우가 힐끗 주위를 보고나서 말했다.

    “평산 근처에 가 있을 거요. 이젠 위성도 표적을 놓친 상태라 나도 연락을 해봐야 돼.”

    “위성 판독관 이야기를 들으니까 이 대위가 잘 빠져나온 것 같긴 한데.”

    “이젠 반란군이 되어서 돌아다녀야겠지.”

    혼잣소리처럼 말한 정용우가 길게 숨을 뱉는다.

    “군소리 한마디 않고 사지로 들어가는 그놈들한테 미안해.”

    7월26일 오전 11시30분, 개전 24시간40분25초 경과.

    대통령 박성훈이 전화기를 귀에 붙이면서 호흡을 조절한다. 이곳은 산본장 지하에 마련된 전시(戰時)행정부 벙커. 테이블 주위에는 비서실장 한창호, 안보수석 주명성, 국방장관 임기태까지 둘러서 있다. 박성훈은 오늘 새벽에야 오산 한미연합사령부 지휘벙커에서 이곳으로 돌아온 것이다.

    “예, 박성훈입니다.”

    박성훈이 송화구에 대고 말했다. 상대는 김정일. 이번에는 김정일이 전화를 걸어온 것이다.

    “예, 대통령 각하. 김정일입니다.”

    김정일의 목소리가 울린 순간 갑자기 박성훈은 가슴이 찌르르 흔들리는 느낌을 받는다. 왠지 안타깝고 서글프고 외롭다는 분위기가 덮인 것 같다. 그러나 턱을 든 박성훈이 대뜸 말했다.

    “위원장님. 중국군 진입은 유감입니다.”

    “나도 유감으로 생각합니다.”

    바로 말을 받은 김정일의 가라앉은 목소리가 귀를 울렸다.

    “북조선 상황을 알고 계시지요? 군부는 세 쪽으로 나누어졌고 전국에서 반란이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아무도 반란군에게 전력을 소모시키려고 하지 않습니다.”

    “…….”

    “이 난국을 수습할 수 있는 건 중국군뿐인 것 같습니다.”

    “수습하고 물러갈까요?”

    다시 불쑥 박성훈이 물었지만 김정일은 이번에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대답했다.

    “김경식이 중국식 개방을 내걸고 패거리를 끌어 모았다는군요.”

    물음에 대한 대답이 아니었지만 박성훈이 말을 잇는다.

    “대한민국에서는 북한이 조선성(朝鮮省)이 되는 것이 아닌가 하고 걱정하고 있습니다. 이건 시중의 소문입니다만 만일 그렇게 된다면 아버님인 고(故) 김 주석님께서 항일투쟁을 하며 겨우 이룩하신 그 업적이 다시 허사가 되지 않겠습니까?”

    “허, 그럴 리가요.”

    헛웃음 소리를 낸 김정일이 서두르듯 말했다.

    “나는 대통령각하께 중국군이 어쩔 수 없이 진입했다는 말씀을 드리려고 전화한 겁니다. 이 상황이 정리되면 중국군은 철수할 것입니다. 따라서 휴전 상태도 지켜질 것이니 한국군도 가볍게 움직이지 말기를 부탁드립니다.”

    “알겠습니다. 잘 수습되기를 바랍니다.”

    “그럼 전화 끊습니다.”

    그러고는 전화가 끊겼으므로 박성훈이 머리를 들고 앞에 선 세 각료를 보았다. 그들도 모두 스피커를 통해 통화 내용을 다 들은 것이다.

    “어때요? 감상이?”

    박성훈이 묻자 먼저 안보수석 주명성이 대답했다.

    “김정일과 시진핑의 통화 내용을 들으면 철군에 대한 이야기는 없습니다. 시진핑은 김경식의 손을 쥐고 있는 상황입니다. 김정일의 지금 이야기는 허장성세일 뿐입니다.”

    미리 정리해놓듯 조목조목 메모 내용을 읽으며 말했을 때 비서실장 한창호가 이었다.

    “지금 가장 절박한 상태가 된 세력이 김정일입니다. 그런데 지금 말한 내용에 알맹이가 없습니다. 중국군은 곧 철수할 것이니 한국군이 가볍게 움직이지 말라는 부탁을 하려고 전화를 한 것일까요?”

    그때 국방장관 임기태가 테이블 앞으로 바짝 붙어 섰다.

    “지금 북한의 세력 모두가, 중국군까지 가장 위협적으로 간주하는 것이 바로 삐라입니다. 그런데 김정일은 삐라 이야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박성훈의 시선을 받은 임기태가 말을 잇는다.

    “그 삐라에는 중국군을 공격하라는 녹음테이프까지 들어 있습니다. 김정일이 삐라에 대한 보고를 받지 못했을까요?”

    그러자 박성훈이 쓴웃음을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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