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1월호

새롭고도 친숙한 모험의 세계

  • 함정임│소설가·동아대 문예창작과 교수 etrelajiham@empal.com

    입력2011-10-19 16: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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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롭고도 친숙한 모험의 세계

    ‘제1회 웹진문지문학상 수상작품집’<br>이장욱 외 지음, 문학과지성사, 400쪽, 1만1000원

    그러고 보니, 어느덧, 2011년도 한 달밖에 남지 않았다. 가끔, 길을 걷다가, 발밑에 와 부딪치는 낙엽들을 처음 본 것인 양 바라보다가 뜬금없이 뒤를 돌아본다. 도대체, 언제, 2000년대란 것이 되었던가, 지금 내가 서 있는 이 시간대는 무엇일까. 2000년을 앞둔 1999년의 여름과 가을날들이 떠오른다. 당시 파리에 체류하던 나는 하루도 빠짐없이 허공을 향해 치솟은 300m 높이의 에펠탑과 맞닥뜨리곤 했고, 자연스럽게 탑신(塔身) 정중앙에 박힌 숫자를 보곤 했다. 숫자는 365에서 시작해 0을 향해 하루하루 줄어들고 있었고, 나는 줄어드는 숫자만큼 알 수 없는 무엇에 은근히 쫓기며 발걸음이 빨라졌다. 숫자가 줄어들고 줄어들어 0에 가까워진 어느 초겨울날, 나는 서울행 비행기에 올랐고, 그리고 2000년대가 시작됐다. 동시에 나는 20세기와 21세기 두 세기를 살아가는 인간이 됐다.

    파리에서처럼 길을 걷는 일은 드물어졌지만, 곳곳에서 21세기를 알리는 폭죽이 터졌다. 발신처와 발신인을 알 수 없는 새로운 언어가 도착했고, 새로운 감수성이 나타났다. 한동안 하루하루는 새로움의 기호들로 축조됐고, 그렇게 10년, 2012년을 목전에 두고 있다.

    새롭고도 친숙한 모험의 세계

    ‘제2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br>김애란 외 지음, 문학동네, 342쪽, 5500원

    다시, 길을 걷는다. 발끝에 낙엽들이 와 부딪친다. 잠시 발길을 멈추고 유심히 낙엽 하나를 들여다본다. 그리하여 무엇이 남았나. 지금 무엇이 새로운가. 작가는, 아니 독자는 21세기를 어떻게 알아보는가. 대답 대신 우선, 몇 편의 소설 문장들을 만나볼 필요가 있다.

    장마는 지속되고 수박은 맛없어진다. 여름이니까 그럴 수 있다. 전에도 이런 날이 있었다. 태양 아래, 잘 익은 단감처럼 단단했던 지구가 당도를 잃고 물러지던 날들이. 아주 먼 데서 형성된 기류가 이곳까지 흘러와 내게 영향을 주던 시간이. 비가 내리고. 계속 내리고, 자꾸 내리던 시절이. 말하자면 세계가 점점 싱거워지던 날들이 말이다.

    -김애란, ‘물속 골리앗’ 중에서



    “사람들은 누구나 추한 것을 미워하지. 그러니 어떤 생명체보다도 추한 내가 얼마나 혐오스러울까! 그대, 나의 창조자여, 하물며 당신까지도 자신의 피조물인 나를 혐오하고 멸시하고 있소. 그래도 그대와 나는 둘 중의 하나가 죽어야만 풀릴 끈으로 묶여 있소. … 삶은 비록 고뇌 덩어리라고 해도 내겐 소중한 것이오. 그러니 난 삶을 지킬 것이오. 명심하시오. 당신은 나를 당신 자신보다 더 강하게 만들었다는 것을.”

    -최제훈, ‘괴물을 위한 변명’ 중에서

    L의 여자 친구는 거실 한가운데 서서 몸을 반으로 접고 있었다. 그녀의 두 팔이 원숭이의 것처럼 길게 늘어졌다. 이마가 정강이에 붙었다. 마르고 단단한 등, 튀어나온 목뼈와 척추를 중심으로 잎맥처럼 갈라진 근육이 보였다. 그녀는 등이 깊게 파인 레오타드에 몸매가 드러나는 실크 팬츠를 입고 있었다. 내 발소리를 듣고는 허리를 곧게 펴 몸을 일으키며 좋은 아침, 이라고 말했다. 나는 그녀의 인사에 답하지 않았다. 오늘은 좋은 아침이 아니었고, 내 거실을 제집처럼 드나드는 그녀가 마음에 들지도 않았다. 신체의 어느 부위에서 나오는지 알 길이 없이 거실 전체에 울리는 숨소리도 거슬렸다. 나는 이 모든 적대감을 숨김없이 얼굴에 드러냈다고 믿었다. 그러나 그녀는 나의 표정에 영향받지 않았다.

    -김유진, ‘희미한 빛’ 중에서

    그 세 사람은 유리문을 밀고 들어와 엉거주춤한 자세로 실내를 둘러보고 돈을 지불할 때부터, 김상태는 뭔가 찜찜한 느낌이었다. 불그죽죽한 얼굴에 쥐색 양복을 차려입었지만 어딘지 모르게 가난뱅이 냄새가 나는 중년이 하나, 작은 몸피에 이십대인지 삼십대인지 가늠이 되지 않는 데다 어디서 마주쳐도 기억나지 않을 것 같은 얼굴의 여자가 하나, 그리고 낡은 베이지색 점퍼를 되는 대로 걸친 채 다른 두 사람의 표정을 데면데면 살펴보고 있는 중키의 남자가 하나.

    -이장욱, ‘곡란’ 중에서

    위에서 만난 네 작품은 정통 문학전문출판사 문학동네와 문학과지성사가 지난해와 올해 제정한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과 ‘웹진문지문학상 수상작품집’에 수록된, 그야말로 ‘젊은’ ‘소설들’이다. 두말할 나위도 없이, 이 두 상에는 기존의 ‘이상문학상’이나 ‘동인문학상’과 차별화된 하나의 장치가 작동되는데, ‘젊은 소설’을 대상으로 삼고 있는 점이 그렇다. 곧, 새로운 작가들의 새로운 언어가 빚어내는 세상, 또는 문학(풍경). 여기에서, 독자들은 작품을 읽기 전 ‘젊음’에 대한 두 출판사가 제시한 기준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이 작품들은 모두 2010년 문예지에 발표된 소설을 대상으로 하고, 작가 경력 10년 이내(문학동네)와 7년 이내(웹진문지)를 기준으로 삼고 있다.

    지금-이곳의 본질

    문학동네의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에는 7편이, 문학과지성사의 ‘웹진문지문학상 수상작품집’에는 11편의 단편이 수록돼 있다. 김애란(31)의 ‘물속 골리앗’은 문학동네 ‘젊은작가상’ 대상 작품이고, 이장욱(43)의 ‘곡란’은 ‘웹진문지작품상’의 대상작이다. 2011년 한국 소설계의 지형도를 살펴볼 때, 가장 젊은 소설들, 곧 신인작가의 주목받는 작품 18편이 수록된 두 권을 통해 21세기의 분출하는 새로운 에너지와 육성을 접할 수 있다. 특히 아래의 두 작품.

    사라지길 원해. 혀끝이 입술에 부딪히지 않고 발음되는 단어들, 입천장에 혀가 닿지 않고 태어나는 부드러운 언어들, 입술 사이에 암초처럼 걸려 빠져나오지 않는 커다랗고 단단한 단어들, 이런 것들이 사전과 인간의 기억에서 모조리 지워졌으면 좋겠어. 아라비아, 암모니아, 에너지, 에스컬레이터, 메머드, 엘리베이터, 안나 카레니나, 옐로, 에어플레인, 윌리엄, 헬로, 27, 예스터데이, 파인애플, 테이블, 탁구…

    -정용준, ‘떠떠떠, 떠’ 중에서

    어릴 적 아버지는 말했다.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열심히 살지 않으면 뒤처지고 뒤처지면 끝장이라고 말이다. 난 언제나 그게 개소리라고 생각했는데 돌아보면 결국 그 말대로 살아왔다. 단지 뒤처지지 않는 데 인생을 바쳐온 것이다. 어떤 사람들이 거대한 야망을 이루기 위해 애쓰는 동안 난 단지 삶을 지속하기 위해 애썼다. 이제 와서 이렇게 그 모든 노력을 별것 아니었다는 듯이 말하는 건 아주 쉬운 일이다. 정말이지 아주 쉬운 일이다.

    -김사과,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이상한 일이 벌어지는 오늘은 참으로 신기한 날이다’

    정용준의 ‘떠떠떠, 떠’는 ‘말더듬이 서사’로 불릴 정도로 현대 개인의 소통 문제에 집중하고, 김사과의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이상한 일이 벌어지는 오늘은 참으로 신기한 날이다’는 ‘분노의 서사’로 느껴질 만큼 격렬하게 절망적이고, 격렬하게 반항적이고, 격렬하게 냉소적이다.

    신인이란, 달리 말하면, 막 작가가 된 존재, 그리하여 대중적으로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작가이다. 신인의 작품을 읽는 일은 설레지만, 인내력이 필요한 작업이다. 강렬하지만, 미정형의 모색기이기 때문이다. 한국 비평계의 거목이자 독보적인 문학사가(文學史家)인 김윤식은 평생 매년 1월1일 발표되는 신춘문예 당선작과 매달 발표되는 신진 및 중견·원로 작가들의 모든 작품을 읽고, 월평을 발표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김윤식 스스로 ‘월평 행위’라 일컫는 그의 지속적인 작업이 한국 문학, 그것도 소설계에 끼친 영향은 대단히 크다. 김윤식의 월평을 통해 수많은 신인 작가의 개성이 드러났고, 그 개성으로 소설사에 입지를 굳건히 다졌다.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수행하는 소설 읽기와 소설평 쓰기. 김윤식의 월평 쓰기가 하나의 소설사를 이루는 장관에까지 이르고 있는데, 이는 1930년대 이원조의 월평 행위로부터 맥을 잇는다. 이들의 월평 행위는, 기본적으로 문학작품에 대한 이해와 평가를 바탕으로, 작가들의 시대정신이나 태도를 파악하는 작업이다. 소설 작품을 통해 지금-이곳의 현상을 점검하고, 나아가 장차 어떤 세상이 도래할 것인지 가늠하고, 현실과 가까운 미래의 문제에 대해 작가는 어떻게 대처(생각)하는지까지 엿볼 수 있다.

    ‘인간희극’이라는 총체소설로 인간의 삶과 세상을 묘파한 작가 발자크는 개인의 능력을 넘어서는 초개인성의 작가로 미켈란젤로 베토벤 등의 천재적인 예술가들과 함께 ‘창조자’의 반열에 올라 있다. 1830년대 전후의 프랑스와 프랑스 사람들을 알기 위해 발자크 소설을 읽는 것처럼, 21세기 지금-이곳의 본질과 현상을 파악하는 방법 중 하나로 2011년 젊은 작가들의 소설 읽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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