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9월호

설채현의 ‘반려견 마음 읽기’

유전, 경험, 교육 반려견 행동 교정 3요소

  • | 설채현 수의사·동물행동전문가 dvm.seol@gmail.com

    입력2018-09-12 17: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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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복한 반려 생활을 원하는 보호자가 늘면서 반려견 행동 문제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개의 문제 행동을 해결하는 첫걸음은 문제를 일으키는 근본 이유를 찾는 것이다. 이때 행동의 기본 요소인 유전, 경험, 교육을 각각 살펴보는 게 필요하다.
    먼저 유전부터 이야기해보자. 사람과 마찬가지로 개도 유전자의 영향을 받는다. 사실 우리가 선호하는 순종 개 대부분은 사람의 목적과 필요에 따라 만들어진 것이다. 사냥견은 사냥을 잘하는 개체끼리 교배해 만든 것이고, 양치기개 또한 움직이는 동물을 잘 쫓아가는 개체끼리 반복 교배해 만들었다. 투견은 싸움을 잘하게 만들려고 강하고 공격적인 개체끼리만 교배한 결과물이다. 이런 유전자가 대대손손 내려온 만큼, 그 자손 개 또한 그런 특성을 보일 확률이 높다. 그래서 행동전문가들은 강아지를 분양받을 때 반드시 모견과 부견을 확인하라고 강조한다. 강아지는, 100%는 아니라도 모견과 부견의 특성을 물려받을 개연성이 크고, 이런 유전적 특성은 개의 행동에 큰 영향을 미친다. 물론 유전적으로는 사람과 살기 조금 까다로운 종이라도 행동의 다른 요소인 경험과 교육을 통해 어느 정도 문제를 해결할 수는 있다. 하지만 이 과정은 매우 힘들 수 있고, 때로는 사실상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개의 행동 좌우하는 유전자의 힘

    동물 행동학 분야 전문가들이 개의 문제 행동에 대해 가장 많이 쓰는 비유는 ‘양동이 이론’이다. 개가 참을 수 있는 스트레스 크기를 양동이 크기로 보고, 스트레스를 그 양동이에 들어가는 물로 표현한다. 스트레스라는 물이 계속 늘어나 양동이에 넘치면 개가 문제 행동을 한다는 의미다. 유전적으로 타고난 양동이가 큰 개는 많은 스트레스도 문제없이 참아낼 수 있다. 반면 양동이가 작은 개는 작은 스트레스만 받아도 문제 행동을 할 수 있다. 

    유전적으로 볼 때 반려견으로 부적합한 개는 양동이가 작게 태어난 개라고 할 수 있다. 현대사회에서는 예민한 개가 이에 해당한다. 예전에는 집을 지키거나 사냥을 잘하려면 개가 예민해야 했다. 즉 양동이가 작아야 했다. 그래야 아주 작은 소리나 다른 동물의 움직임에 예민하게 반응해 짖거나 쉽게 따라잡을 수 있었다. 

    하지만 현대사회에서는 반려견의 이런 품성이 환영받지 못한다. 개가 접하는 일상생활에는 매우 많은 자극이 도사리고 있는데, 그때마다 예민하게 반응하고, 그 결과 양동이가 쉽게 차버리면 수많은 문제 행동으로 보호자를 곤란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행동학 책에 따르면 개가 문제 행동을 하는 가장 큰 이유는 그것을 정상 행동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면 개에게는 지극히 정상적인 행동이 사람이 보기에만 문제인 경우가 많다. 주위에서 아주 작은 소리만 들려도 크게 짖어대는 것, 주변 동물의 작은 반응에 거칠게 반응하는 것 등이 바로 이에 해당한다. 개가 유전적으로 이런 특징을 갖고 있는 경우 고치기가 쉽지 않다. 



    최근 문제 행동을 보이는 반려견에 대한 솔루션 프로그램을 보면 가장 많이 나오는 말이 ‘보호자의 잘못’이다. 보호자가 잘못해서 개가 문제 행동을 한다는 것인데, 이 말은 반은 맞지만 반은 틀린 말이다. 개의 문제 행동이 유전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그건 절대 보호자 탓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개의 행동이 유전으로 인한 것인지 아니면 뒤에 다시 이야기할 경험, 교육 등의 영향인지 어떻게 구별할 수 있을까. 사실 양자를 구별하기가 쉽지는 않다. 가장 먼저 따져볼 것은 문제 행동이 나타난 시점이다. 

    개의 공격성을 예로 들어보자. 행동학적으로 볼 때 출생 후 2~4개월에 공격성이 나타나는 건 비정상적이다. 이 시기 개는 말 그대로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 세상 모든 것을 신기하게 여기며 겁 없이 탐험해야 할 때다. 이 시기에 과도한 불안을 드러내거나 공격성을 보이는 개는 유전적으로 양동이가 지나치게 작게 태어났을 개연성이 높다. 반대로 7~8개월까지는 별다른 문제 행동을 보이지 않던 개가 이후 점점 문제를 일으킨다면 경험과 교육과정에 문제가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1차 접종 끝나면 세상과 만나도록!

    강아지가 유전적으로 매우 예민하게 태어났다면, 이를 보완할 가장 좋은 방법은 ‘좋은 경험’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태어날 때부터 양동이가 작은 개라도 그 안에 들어가는 물, 즉 스트레스가 적으면 문제 행동을 하지 않는다. 따라서 개에게 스트레스가 될 수 있는 자극을 좋은 기억과 연결해주는 게 중요하다. 개가 외부 자극을 스트레스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아무리 양동이가 작아도 그 안에 결코 물이 가득 차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특정 자극을 특정 기억과 연결 짓는 시기다. 개의 생애 초기에 이런 작업이 이뤄져야 한다. 

    동물 사회화의 황금 시기, 이른바 골든 피리어드(golden period)는 생후 2~4개월이다. 앞서 얘기한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는’ 바로 그때다. 이때 개는 세상 모든 것을 탐험하고 경험한다. 이 시기가 지나면 자기가 경험하지 못한 것에 대해 두려움을 갖게 된다. 생존을 위한 당연한 과정이다. 물론 개도 사람처럼 생의 전 과정 동안 사회화를 경험한다. 하지만 ‘골든 피리어드’를 놓치면 그때보다 10~20배의 노력을 더 해야 좋은 기억을 만들어줄 수 있다. 따라서 유전적으로 양동이가 작게 태어난 개는 특히 생후 2~4개월을 잘 보내도록 도와줘야 한다. 

    문제는 사회화의 골든 피리어드가 개들의 백신 접종 시기와 겹친다는 점이다. 이 시기의 개는 면역학적으로 매우 약하다. 그래서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심지어 지금도 많은 수의사가 ‘접종이 끝날 때까지는 강아지를 밖에 데리고 나가지 마세요’라고 조언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백신 접종을 5차까지 진행하는데 이 과정을 순조롭게 끝내려면 보통 4~5개월이 걸린다. 이 시기에 강아지를 집 안에만 두면 사회화의 골든 피리어드가 다 끝나고 마는 것이다. 

    강아지의 접종이 다 끝나는 때는 사람으로 보면 8세 정도에 해당한다. 사람이 생후 8세가 됐을 때 처음 집 밖으로 나간다면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할 수 있을까. 개 또한 마찬가지다. 접종이 끝난 뒤 처음 집 밖 세상을 경험한 개는 평생 바깥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게 될 수 있다. 이에 따라 각종 자극을 스트레스로 여기게 되고, 그것이 문제 행동으로 이어질 소지가 크다. 

    그렇다면 ‘접종이 끝날 때까지는 외출하지 말라’고 말하는 수의사가 틀렸다는 말인가. 그건 또 아니다. 수의사는 반려견의 건강을 중시한다. 전염병에 대한 방어력이 완전히 생기지 않은 상태에서 밖에 데리고 나가는 것은 분명 반려견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 이 기간 동안 혹시라도 개가 전염병에 걸리기라도 하면 그 책임은 오롯이 수의사 몫이 된다. 그러니 보수적으로 말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필자는 수의사이면서 동시에 동물 행동트레이너로서 이 문제에 대해 고민이 컸다. 그때 힌트가 된 것이 스승님 중 한 분인 멜리사 베인(Melissa Bain) 미국 UC데이비스 교수님의 말씀이었다. 

    내가 “생후 2~4개월이 개의 사회화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인데, 이때 개가 밖에 나갔다가 전염병에 걸리면 어쩌죠”라고 질문하자 교수님은 “개가 사회화 시기에 산책을 나가서 전염병에 걸려 죽을 확률보다, 그때 사회화를 하지 않아서 문제 행동을 보이고 그로 인해 버려져 안락사당할 확률이 훨씬 높다”고 말씀하셨다. 즉 사회화의 골든 피리어드에 개가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산책을 하는 편이 집 안에만 두는 것보다 낫다는 조언이었다. 

    이 말씀을 들은 뒤부터 나는 보호자들에게 ‘1차 접종만 끝나면 밖에 데리고 나가 개가 많은 경험을 하도록 해주라’고 조언한다. 대신 그 시기엔 개가 전염병에 걸릴 수도 있음을 알려주고, 최대한 안전하게 바깥 경험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소개한다. 

    또 하나 보호자가 주의할 것은 이 시기에 최대한 많은 경험을 하도록 하는 것이 최선은 아니라는 점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중립적인 경험이 아니라 긍정적인 경험을 많이 하도록 해주는 것이다. 특히 이 시기에는 부정적인 경험을 확실히 피해야 한다. 이 시기에 부정적인 경험을 하면 뇌에 각인돼 평생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따라서 골든 피리어드에는 반려견에 대한 체벌을 더더욱 피해야 한다. 

    앞선 이야기를 다시 한번 검토해보자. 유전은 타고나는 것이다. 이 부분에서는 보호자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경험 또한 매우 빠른 시기에 상당 부분이 결정돼버린다. 이미 유전도, 경험도 정해진 개의 경우 가장 중요한 건 교육이다. 교육은 행동 3요소 가운데 평생 해야 하는 요소이며 개의 행동에 미치는 영향도 적잖다. 유전이 양동이의 크기를 결정하고 경험이 그 안에 차는 물의 양을 결정한다면, 교육은 이 두 가지 모두에 영향을 미친다. 교육을 잘 하면 타고난 양동이의 크기를 키울 수도, 물의 양을 줄일 수도 있다는 뜻이다. 

    우리나라에는 교육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가진 보호자가 적잖다. ‘개에게 과도한 스트레스를 주는 것이 아닐까’ 우려하는 것이다. 하지만 사실 현대 사회의 개는 아무것도 할 일이 없고 생각할 기회 또한 없어 그 무료함에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더 많다. 체벌 등 잘못된 방법으로 교육하면 분명 개가 스트레스를 받는다. 하지만 올바른 방법으로 이뤄지는 교육은 개에게 재미있는 놀이가 된다. 그 놀이를 통해 개는 자기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생각’하게 되고, 그 과정은 개에게 즐거움을 준다. 생각하는 개는 행동이 유연해지며 행복을 느낀다.

    ‘기다려’만 잘 가르쳐도 문제 풀린다

    사실 개의 문제 행동은 아주 다양하고 솔루션도 개별 사례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모든 개에게 꼭 해야 하는 교육도 있다. 딱 한 가지만 고르라면 나는 ‘기다려’를 꼽겠다. 

    개의 문제 행동은 대부분 절제력 부족에서 비롯된다. 동물 뇌에서 절제력에 영향을 미치는 부위는 대뇌 전두엽 피질인데, 동물 중 이 부위가 가장 발달한 게 사람이다. 개는 사람에 비해 대뇌 전두엽 피질이 덜 발달해 있고, 그만큼 절제력도 적다. 개의 절제력을 키워주는 건 바로 양동이를 크게 해주는 것이다. 따라서 ‘기다려’ 교육만 제대로 해도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여기서 핵심은 ‘제대로’다. 보호자와의 거리가 멀어져도,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져도, 각종 방해 요소가 있어도 개가 보호자의 ‘기다려’라는 신호를 따를 수 있도록 해야 ‘제대로 된’ 기다려 교육이라고 할 수 있다. 

    개의 행동은 결코 간단치 않다. 기다려 교육을 제대로 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단 하나 확실한 것은 지금 나의 반려견이 성견이라면 보호자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교육이라는 것이다. 개의 유전적인 특성에서 비롯된 문제 행동은 보호자 탓이 아니더라도, 교육을 통해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지 않는 것은 보호자 탓이 될 수 있다.


    설채현
    ● 1985년생
    ● 건국대 수의대 졸업
    ● 미국 UC데이비스, 미네소타대 동물행동치료 연수
    ● 미국 KPA(Karen Pryor Academy) 공인 트레이너
    ● 現 ‘그녀의 동물병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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