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3월호

이달의 추천도서

윌리엄 더글라스 평전 外

  • 송홍근 기자, 구미화 | 출판편집자, 번역가, 정연호 | 한의사

    입력2016-03-09 13: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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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가에 들어온 한 권의 책

    윌리엄 더글라스 평전
    안경환 지음, 라이프맵, 428쪽, 2만2000원



    안경환(68)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학술적 글쓰기뿐 아니라 대중적 글쓰기에도 능하다. 자유주의자면서 낭만주의자의 면모도 지녔다. ‘법과 문학과 영화’(2000), ‘법, 셰익스피어를 읽다’(2012) 같은 저서에서는 법을 ‘인간이 그려놓은 무늬(人文)’를 통해 재해석한다. 법학자이자 저술가인 그가 인물전 한 편을 세상에 내놓았다.
    ‘윌리엄 더글라스 평전’은 위대한 이름을 가졌으나 불행한 삶을 산 한 인간의 이야기다. 윌리엄 더글라스(1898~1980)는 36년 7개월간 미국 연방대법원에서 대법관으로 일했다. 소수자와 약자의 편에 선 법률인이다. “헌법은 국민의 몸에서 국가를 떼어내기 위해 탄생한 것”이라는 신념을 가졌으며 “약한 자의 한숨과 눈물을 담아내지 못하는 법은 제대로 된 법이 아니다”라고 설파했다.
    더글라스는 흑인, 극빈자, 부랑자, 농민, 노동자도 각종 혜택을 동등하게 받을 권리가 있다고 강조한 진보적 대법관의 표본으로 꼽히지만 3차례 이혼했고 자식에게 냉혹했으며 비영리재단과의 유착 의혹 등으로 4차례나 탄핵됐다. “흠투성이지만 정의의 편에 서고자 노력한 인물”(안경환)이다. 그는 국가인권위원장, 서울대 법대 학장 등을 지낸 저자의 정신적·학문적 멘토 격이다.
    “유신 시절 대학원에서 법학을 배웠습니다. 그 시절 더글라스 판사는 제게 희망의 등불과도 같았어요. 처음에는 독일 헌법을 연구하려 했습니다. 독일은 시민혁명을 거치지 않은 국가인 터라 독일 헌법을 공부하다 보면 유신을 옹호하거나 관용하는 쪽으로 흐르기 쉬웠습니다. 더글라스 판사는 국가보다는 국민, 기업보다는 개인을 앞에 뒀습니다. 미국 대법원이 ‘국가의 주인은 국민’이라는 점을 확실하게 한 판결을 많이 내린 데는 더글라스 판사의 기여가 컸습니다. 제가 비슷한 연배의 헌법학자 중 거의 유일하게 ‘진보’라고 불리는 데도 더글라스 판사가 영향을 미쳤어요. 하지만 세상에 흠 없는 인간은 없습니다. 더글라스 판사의 무수히 많은 개인적 결함도 책에 썼습니다.”
    이 책을 통해 그가 세상에 말하고자 한 것의 핵심은 서문의 다음과 같은 문장에 응축돼 있다. ‘어느 나라에서나 90%의 법률가는 상위 10%의 국민의 이익에 기식해 삶을 영위한다. 그러나 나머지 10%만이라도 더글라스 판사처럼 지친 영혼에 연민의 눈길을 주는 나라, 그런 나라여야만 살 만한 가치가 있다.’ 
    이 책은 인권변호사 ‘조영래 평전’(2006), 박정희와 5·16군사정변을 함께 모의한 ‘황용주-그와 박정희의 시대’(2013)에 이은 저자의 세 번째 인물전이다.
    “조영래(1947~1990)와 저는 동시대를 살았습니다. ‘조영래 평전’은 다음 세대가 조영래가 살던 시대를 이해하는 것을 돕고자 쓴 글입니다. 특히 법률가를 지망하는 이들에게 법률가로서 할 수 있는 일의 상한과 하한을 보여주려 했습니다. 황용주에 대한 글은 저의 평가가 들어간 평전이 아니라 객관적으로 서술한 전기예요. 현대사에서 그야말로 잊힌 사람입니다. 무덤도 없이 외롭게 죽었는데, 글로 무덤을 대신해줘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송홍근 기자 | carrot@donga.com |

    장정일의 악서총람
    장정일 지음, 책세상, 592쪽, 1만7800원



    작가이자 독서가, 수필가인 장정일의 새로운 ‘독서 일기’다. 이번에는 오로지 ‘음악’에만 초점을 맞췄다. 음악, 음악가를 다루거나 직간접으로 음악을 다룬 악서(樂書) 174권에 대한 평론 116개로 책 한 권을 꾸렸다. 장정일은 한국 문단의 형식과 내용에 파장을 일으킨 문제적 작가인 동시에 개성적 독서가, 서평가다. 음악은 인간의 본성에 깊숙이 자리한 강력하고 치명적인 ‘본능적’ 대상이면서 시대, 역사와 함께 호흡한 ‘사회적’ 대상이다. 저자는 사적 음악 취향을 드러내면서 음악이라는 창을 통해 인간과 사회의 관계를 성찰한다.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 책을 쓸 수 있게 해준 음악가들에게 감사한다. 음악 서적을 뒤적이는 것만큼 행복한 일은 없다. 이 책은 행복을 누린 끝에 나온 부산물이다.”

    아틀라스 중앙유라시아사
    김호동 지음, 사계절, 272쪽, 2만9800원





    서구 중심의 세계사에 외면당하고 소수민족의 역사를 흡수하려는 중국사의 그늘에 가려진 중앙유라시아 초원과 오아시스의 역사가 김호동 서울대 동양사학과 교수의 치밀한 사료 분석과 고증을 거쳐 세계사의 주역으로 되살아났다. 이 책은 시간의 축(역사)을 날줄, 공간의 축(지도)을 씨줄로 삼아 쓴 중앙유라시아 통사다. “지금껏 세계사는 농경 정주문명 중심으로 서술돼왔으나 초원의 유목민은 농경문화에 끊임없이 자극을 줬으며 오아시스의 도시민은 실크로드를 종횡무진하면서 세계사의 동맥 구실을 했다”고 이 책은 서술한다. 돌궐, 몽골, 흉노, 선비, 스키타이 등의 역사에 호기심을 가진 이라면 이 책이 훌륭한 길잡이가 될 것이다. 113컷의 역사지도와 22개의 계보도가 이해를 돕는다. 

    상처받을지라도 패배하지 않기 위하여
    원재훈 지음, 비채, 487쪽, 1만4500원



    파피루스에 적힌 ‘이솝우화’에서 셰익스피어의 희곡까지…. 시인 원재훈이 스물여덟 편의 고전을 뽑아 읽은 ‘독서 고백’이다. 이 책은 고전을 철학, 문학의 틀로 분석한 평론집이 아니며 ‘성공하려면 이런 책을 읽으라’는 처세서도 아니다. 저자는 자신의 실패담을 녹여내면서 상처를 입었을 때 함께한 고전을 소개한다. 고전에 등장한 작중 인물의 대사에 기대어 절망에서 일어났다는 것이다. 저자는 여는 글에서 이렇게 썼다. “이 책을 통해 이루어졌으면 하는 작은 바람이 있다. 책을 읽던 독자가 문득 책을 덮고 서점이나 도서관으로 뛰어가는 것이다. 내가 경험한 소설의 세계에서 그 어떤 작품이라도, 단 한 편이라도 읽고 감동을 받고 그 힘으로 버티고 살아가기를 바란다. 이러한 마음이 전해지기를 바란다.”


    편집자가 말하는 “내 책은…”

    법륜 스님의 행복
    법륜 지음, 나무의마음, 280쪽, 1만4000원




    법륜 스님을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스님은 ‘부처님 법을 세상에 전하기 위해 1년에 100회 이상 전국 곳곳은 물론 세계 각지를 돌며 낯선 사람들의 온갖 속사정을 들어주는 수행자’로 유명하다. 특히 불교 신자가 아니며, 개인의 내밀한 고민을 공개석상에서 털어놓고 해답을 기다리는 방식이 선뜻 내키지 않는 사람들 중에도 그의 말에 귀 기울이는 이가 적지 않다. 그러니 출판편집자에게 법륜 스님은 ‘꼭 붙잡아야 할 저자’다.
    그간 스님의 ‘즉문즉설(卽問卽說)’ 강연 녹취록을 바탕으로 여러 권의 책이 출간됐다. 그중에서도 ‘스님의 주례사’ ‘엄마수업’처럼 하나의 주제를 잡아서 내용을 정리하고 감각적인 그림으로 읽는 즐거움을 더한 책들이 지금까지 큰 사랑을 받고 있다. 그래서 이번에 ‘법륜 스님의 행복’을 내놓기까지 전작들의 장점을 이어가되 아쉬웠던 점을 보완하고, 고정 독자들의 높아진 기대치를 충족시켜야 한다는 부담이 크게 작용했다. 무엇보다 ‘행복’이라는 것이 누구에게나 간절한 바람이면서도 한없이 모호해질 수 있는 주제라 한계를 정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다행히 ‘스님의 주례사’와 ‘엄마수업’을 만든 베테랑들이 기획과 편집을 주도하고, 저자가 적극적으로 퇴고 작업을 한 덕분에 새해 첫 달에 책을 내놓을 수 있었다.
    “인생에는 정답이 없습니다. 자기가 선택한 대로 사는 것뿐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럴까 저럴까 망설이는 것은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지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안 되는 걸 해보라고 다그치거나, 누가 뭐래도 당신이 최고라고 가볍게 위로하지 않는다는 게 이 책의 장점이다. 그런데도 희한하게 위로가 되고, 지금까지와 다르게 살아보고 싶은 욕구가 생긴다.
    “제가 많은 분의 질문에 해답을 드리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다른 관점에서 한 번 살펴보라고 말하는 것뿐이에요. (…) 어느 한쪽만을 바라보며 움켜쥐고 있던 것을 놓음으로써 자기가 문제 삼던 것이 문제가 안 된다는 것을 알게 되는 거예요. 사물의 전모를 볼 줄 아는 지혜가 생기면 그동안 갖고 있던 많은 고뇌들이 저절로 없어집니다.”
    사람은 마음이 수시로 변하게 마련이고 누구나 이기적인 면이 있는데, 그 마음이 변하지 않길 바라니 괴롭고, 이기심을 버려야 한다고 생각하니 나만 손해라는 억울함이 생길 수밖에 없는 원리를 일깨워준다. 또한 이기심을 버려야 세상에 평화가 오는 게 아니라 내가 이기적이듯 다른 사람도 이기적일 수 있음을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갈등이 크게 줄어든다고 스님은 말한다. 
    이 책은 전작들과 다르게 개인의 마음과 사회적 조건을 함께 가꿔야 온전한 행복에 이를 수 있다고 강조한다. 경제적 불평등과 각종 사회 부조리, 남북통일에 이르기까지 대중의 관심을 필요로 하는 여러 문제를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보고, 합리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한다.
    “너무 잘하려고 애쓰지 말고 너무 잘 보이려고도 하지 말고 그냥 내 능력껏 하는 게 좋습니다. 다만 결과는 평가하는 사람 몫이니 그 결과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됩니다.”         
    구미화 | 출판편집자, 번역가 |

    정신의학의 탄생
    하지현 지음 해냄, 428쪽, 1만9800원



    우울증이나 공황장애와 같은 정신질환적 증상이 널리 알려지면서 정신과적 치료의 필요성에 공감하는 이가 많아졌지만 정신과 치료 병력이 취업에 영향을 미친다거나 치료제가 건강을 해친다는 등의 정신의학에 대한 오해와 편견의 벽은 여전하다. 정신의학이 광기나 미신과 분리돼 합리적이고 유용한 과학으로서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거쳐온 과정을 본격적으로 탐구한 책이다. 네이버캐스트에 '정신의학의 결정적 순간‘이라는 제목으로 2014년 1월부터 2015년 11월까지 42회 연재된 글을 묶은 것인데, 누적 조회수 440만 회, 댓글 4000건을 돌파하는 등 온라인, 모바일에서 호평을 받았다. 하지현 건국대 의대 교수는 ‘마음의 과학’을 주제로 한 대중적 글쓰기에 능하다.

    아시아의 힘
    조 스터드웰 지음, 김태훈 옮김 프롬북스, 504쪽, 2만3000원



    동북아시아는 어떻게 적은 부존자원으로도 부국의 기반을 다졌을까. 동남아시아는 왜 동북아시아의 길을 걷지 못했을까. 중국 경제와 대(對)중국 투자를 다루는 경제전문지 차이나이코노믹쿼털리의 편집장인 저자의 공식은 간단하다. ①토지를 재분배하고 가족농을 지원하라 ②잉여 수입을 저축으로 유도하고 그 자금이 제조업으로 흘러가도록 해라 ③금융을 개방하지 말고, 은행을 정부의 통제 아래 두어라. 빌 게이츠는 이 공식을 두고 “상쾌할 만큼 명확하다”고 평했다. 스터드웰은 동북아시아의 경제 발전 역사를 통찰하면서 개발에 나선 국가의 운명은 시장이 아닌 정부의 손안에 있다고 결론을 내리고는 정부 주도로 국제 경쟁력을 확보한 이후에는 추가적 발전을 위해 규제를 풀어야 한다고 첨언한다.

    혁신의 시간
    김영배·정구현 외 지음, RHK, 304쪽, 1만7000원



    “대전환의 파고를 넘으려면 우리는 무엇을 파괴해야 할까?” 경영학자 15인이 답한 침체한 경제를 돌파하기 위한 생존 전략이다. 무한경쟁 자본주의가 기존의 체제를 흔들고 있다. 모바일 혁명으로 경제와 사회의 운영 방식이 새롭게 바뀌는가 하면 인공지능 등의 기술 혁신은 더 큰 패러다임 전환을 예고한다. 석유화학, 조선, 중공업 등 전통산업이 지고 무인자동차, 사물인터넷, 신(新)재생 에너지 등 미래 산업이 부상한다. 한국 기업은 과연 미래 비전을 갖고 변화에 전략적으로 대응하는가. 한국의 노동시장과 자본시장은 자원의 재배치를 가능하게 할 만큼 유연한가. 경제의 재도약을 위한 새로운 성장동력은 무엇인가. 김영배 KAIST 경영대학 교수, 정구현 전 삼성경제연구소장 등 15명이 통찰을 제시한다.


    서가에 들어온 한 권의 책

    청일·러일전쟁 어떻게 볼 것인가
    하라 아키라 지음, 김연옥 옮김, 살림, 290쪽, 1만7000원



    “일청전쟁과 일러전쟁의 목적은 한반도를 차지하는 데 있었다. 따라서 일청전쟁은 제1차 조선전쟁, 일러전쟁은 제2차 조선전쟁이라고 부르는 게 맞다.”
    하라 아키라 일본 도쿄대 명예교수는 청일전쟁(1894~1895)·러일전쟁(1904~1905)을 두고 전쟁 목적과 전쟁터 위치를 고려할 때 명칭을 바로잡아야 한다면서 이같이 말했다(지난해 12월 7일 고려대 강연 참조).
    한국에서 최근 번역·출간된 하라 교수의 ‘청일·러일전쟁 어떻게 볼 것인가’는 두 전쟁을 주제로 삼아 ‘근대 일본’을 고찰한 일본인을 위해 서술한 역사서다. 저자는 복고·국수주의에 입각해 이웃 나라의 기억을 고려하지 않은 일본의 현행 역사교과서를 비판하면서 이렇게 강조한다.
    “일본이 이웃 나라와 평화를 유지하려면 과거에 벌인 전쟁에 대해 정확하게 알 필요가 있다. 일본은 침략전쟁과 식민지 지배를 반성하고 사과해야 한다.”
    청일전쟁, 러일전쟁을 거치면서 일본은 제국주의 국가 대열에 뒤늦게 합류한다. 한반도, 대만, 다롄·뤼순 일대(관동주)를 식민지로 삼는다. 러시아 영토이던 남사할린도 장악한다. 저자는 교전국 이름(청, 러시아)만 강조한 명칭 탓에 두 전쟁의 실제를 21세기를 사는 일본인이 잘못 인식한다고 말한다.
    “아베 담화(전후 70년 총리담화)는 일러전쟁이 조선 지배를 강력하게 추진했음을 간과한 내용으로 스스로 역사 인식이 결여돼 있음을 드러냈다. 일러전쟁이 세계의 반(反)식민지 운동을 격려한 것이라고 했으나 일러전쟁이 한창이던 때 일본이 한반도의 식민지화를 급속하게 진행했다는 사실을 전혀 인지하고 있지 못하다는 방증이다.”
    이 책은 ‘근대 일본’이 처음으로 일으킨 두 개의 대외전쟁(청일전쟁, 러일전쟁)과 제1차 세계대전을 고찰한 후 제2차 세계대전이 개전되기 전까지의 상황을 다룬다. 헤이그 밀사, 명성황후 시해, 경술국치, 3·1운동 등 한국사도 엮어 다루는 터라 한국인 독자에게도 잘 읽힌다. 일본인이 같은 시기의 역사를 어떻게 인지하는지를 한국인의 그것과 비교하며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대만, 관동주 등 옛 일본 식민지의 역사를 훑어보는 것은 덤이다.
    저자는 70년간 지속된 일본의 평화로운 ‘전후’ 시대가 앞으로도 지속될 것인지에 대해 우려를 나타낸다. ‘근대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으로 폭주하던 때와 현재 일본의 모습이 비슷하다는 것이다. 일본어판 서문에서 저자는 일본인에게 이렇게 묻는다. 
    “이웃을 나타내는 말로 ‘맞은편 세 집과 좌우의 두 집’이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말뿐 아니라 실제로도 자신의 집과 맞은편 집, 맞은편 집의 양옆과 자택의 양옆, 이렇게 여섯 가구가 실제 생활하는 데 관련이 깊게 마련입니다. 마주 보는 한국 북한 중국, 양 옆집이라고 할 러시아 동부와 동남아시아 사람들의 생활과 감정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구체적으로 알고 있는지요?”                  
    송홍근 기자 | carrot@donga.com  |

    옛사람이 건넨 네 글자
    정민 지음, 휴머니스트, 272쪽, 1만5000원



    옛사람이 건넨 네 글자에서 사람과 세상을 만나보자. 정민 한양대 국문과 교수의 신작이다. 저자는 현대인의 마음에 지침이 될 옛사람들의 사유와 성찰을 대중이 이해하기 쉬운 방식으로 알리는 데 능숙하다. 그는 옛일을 빌려와 지금을 말한다. 이 책은 고전에서 뽑은 사자성어를 통해 현대를 사는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지혜가 무엇인지 깨우쳐준다. 옛글을 넓고 깊게 살핀 저자의 글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고전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선인의 지혜를 현실에 어떻게 적용할지 고민하게 된다. 저자는 말한다. “무선 랜은 없었지만 생각의 힘은 광속으로 날았다. 인터넷이 아니라도 통찰은 빛났다. 후진 것은 옛날이 아니라 지금이다.”

    30금 쌍담
    강신주·이상용 지음, 민음사, 272쪽, 1만4000원



    금기의 노예로 살 것인가, 인생의 주인이 될 것인가. ‘진짜 성숙’은 ‘나쁜 사람’이 되는 것이다. 강신주와 이상용은 섹스, 폭력, 정치, 종교는 금기시할 것이 아니라 우리가 정면으로 맞닥뜨려야 할 인생의 주제라고 강조한다. ‘30금 쌍담’은 말 잘 듣는 노예로 성장한 우리에게 ‘명랑 시민’이 될 것을 주문한다. 더는 착한 사람으로 살지 말라는 것이다. 저자들은 “부조리한 사회에 저항하고, 권력을 고발하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단지 나이를 먹었다고, ‘출세’했다고 성숙한 시민이 되는 게 아니다. 진정으로 성숙한 사람은, 우리 사회를 더욱 나은 민주주의로 이끄는 명랑 시민, 다시 말해 자신의 민얼굴을 똑똑히 들여다볼 수 있는 인간이어야 한다는 게 저자들의 일갈이다.

    리 컬렉션
    이종선 지음, 김영사, 320쪽, 1만8000원



    삼성가(家)는 150점이 넘는 국보급 문화재를 수집했다. 리움미술관과 호암미술관에 국보 37점, 보물 115점이 전시되거나 보관돼 있다. 일개 가문의 수집으로 볼 때 국보급 문화재 152점이라는 숫자는 전무후무한 일이다. 이건희 회장 일가의 수집을 보는 시선에는 의혹과 시샘, 질타가 있었다. 구설도 뒤따랐다. 이 책을 통해 ‘삼성가 국보 컬렉션’의 막후 이야기가 비로소 세상 밖으로 나왔다. 이 책의 저자는 20년 넘게 이병철 창업주와 이건희 회장의 지근거리에서 삼성가의 명품 컬렉션을 주도하고 박물관의 건립과 성장을 이끌던 이다. 호암미술관 부관장을 지냈다. 이병철-이건희 회장의 수집벽을 ‘수집’한 저자의 기록이 흥미진진하다.


    저자가 말하는 “내 책은…”

    날뛰는 감정 날뛰는 생각
    정연호 지음, 지상사, 254쪽, 1만4900원



    이미 자신에게 귀한 것이 있음에도 그것을 모른 채 남의 집 문 앞에서 기웃거리는 사람은 어리석다. 물론 자신이 가진 것을 과장하는 것은 경계해야 할 일이지만, 자기가 가진 것의 가치에 어두운 것도 마땅히 조심해야 한다. 혹시 우리는 우리가 가진 것에 어둡고, 그러면서도 자신의 그런 어두움마저 모르는 건 아닐까.
    이 책은 한의학에서 말하는 동양의 심리학에 대한 이야기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한의학에도 심리학이 있느냐?’ ‘동양에도 심리학이 있느냐?’라고 의아해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정기신(精氣神)의 순서로 목차를 만든 ‘동의보감’뿐 아니라 대부분의 한의학 고전은 정신(精神) 즉, 마음을 병의 근본 치료를 위한 뿌리로 본다. 그런 까닭에 몸의 병을 다룰 때도 ‘마음의 오르내림을 관찰하라(審七情之浮沈)’고 했다. 안타까운 것은 이러한 동양(한의학)의 정신이 지금은 거의 사장(死藏)되다시피 한 점이다. 
    불안증이 있는 사람은 불안할 일이 아닌데도 과도하게 불안을 느낀다. 우울증이 있는 사람은 우울할 일이 아닌데도 지나치게 우울을 느낀다. 그러면서 그들은 ‘이유 없이 불안해요’ ‘이유 없이 우울해요’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들이 제대로 보지 못한 자신의 마음이 있다. 그들은 그것을 더 많이 불안할 일로 여겼고, 더 많이 우울할 일로 여겼다. 그렇게까지 불안해하고 우울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더 크게 그럴 필요를 느낀다. 이것은 강박증에서도 똑같이 적용된다.
    생각은 자신을 속일 수 있다. 왜냐하면 우리는 무의식을 뺀 의식적인 부분만 생각으로 감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의식과는 다른 생각이 무의식에 가득할지도 모르며, 정말 그렇다면 우리는 자신의 생각에 속을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감정은 속일 수 없다. 감정은 의식과 무의식 모두로부터 신호를 받아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율곡은 ‘성학집요’에서 ‘성의(誠意, 생각의 진실함)’라는 말은 있지만 ‘성정(誠情·, 감정의 진실함)’이라는 말은 없다고 했다.
    감정은 애초에 진실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 없다. 감정은 언제나 진실하다. 상황에 처해 순간순간 움직이며 순식간에 돌변하는 감정은 스스로의 수준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결국 감정을 자신의 마음으로 보고 그를통해 (무의식적인) 생각을 더듬어보면 마음의 문제는 한결 쉽게 풀어나갈 수 있다. 이런 과정을 통해 무의식이 의식으로 드러나며, 의식으로 드러난 자신의 치우친 생각은 비로소 치유의 기회를 얻는다.
    현재 불안이 느껴진다면 자신은 그것을 불안하게 여긴다는 뜻이며, 지금 우울이 느껴진다면 스스로는 그것을 우울하게 생각한다는 뜻이다. ‘이유 없이 불안해요’ ‘이유 없이 우울해요’라고 말하는 사람은 어리석다. 이유를 보지 못할 수는 있지만, 이유가 없을 수는 없다. 스스로 ‘이유가 없다’고 단정하는 사람은 자신의 그런 믿음 때문에 불안과 우울의 원인을 보지 못한다. 책에는 이러한 것들을 설명하는 동양의 심리학이 그 이론과 함께 진료실에서 실제로 있었던 사례를 바탕으로 설명돼 있다. ‘마음병’이 있는 분들에게는 마음병 치료의 단초가, 마음병이 없는 분들에게는 마음을 이해하고 다룰 수 있는 열쇠가 되기를 바란다.                                                                
    정연호 | 한의사 |

    청춘의 노래들
    최성철 지음, 뮤진트리, 274쪽, 1만3500원



    신촌블루스, 사랑과 평화, 동물원, 이문세, 이승환, 조용필, 들국화, 김광석, 김현식, 정태춘…. 1980~90년대 한국 대중음악의 마스터피스를 부른 스물아홉 아티스트(팀 포함)에 대한 에세이다. 1부 ‘어두운 시대의 예술혼’, 2부 ‘연민, 저항, 그리고 탐미’, 3부 ‘상실의 시대를 품다’, 4부 ‘K-Pop의 미래를 부른 노래’로 갈래를 나눴다. 저자는 ‘페이퍼레코드 레이블’의 대표다. 절판된 대중음악 명반과 한국영화 OST를 한정판 LP로 발매하는 작업과 일본, 중국 등 해외에 국내 앨범을 라이선스하는 일을 한다.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노래가 있다. 1980~90년대 노래에 익숙한 이들은 이 책을 읽으면서 반드시 자신의 청춘으로 되돌아갈 것이다.”

    프로액티즘
    이대희 지음, 연경문화사, 300쪽, 1만4000원



    “길이 있는 곳에 가지 말고, 길이 없는 곳에 가서 흔적을 남겨라.” 저자는 학창 시절부터 미국의 사상가 랄프 에머슨의 이 말을 좋아했다고 한다. 저자는 종합상사를 거쳐, 중견 기업 여러 곳에서 경영자와 마케터의 길을 걸어왔다. “그 길은 항상 새로운 길이었으며, 그야말로 없는 길을 찾아 흔적을 만들어내는 과정의 연속이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 책은 초경쟁 시대가 요구하는 전향적인 프로페셔널의 모습을 그린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프로액티즘’이라는 낱말을 세상에 내놓았다. 무한경쟁 시대의 진취적 프로가 갖춰야 할 전향적 패러다임이 프로액티즘이라는 것이다. “이기기를 꿈꾸는가. 두려워 말고 떠나라. 그 길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만물과학
    마커스 초운 지음, 김소정 옮김 교양인, 468쪽, 1만8000원



    우리는 왜 숨을 쉴까? 뇌는 어떻게 작동할까? 생명체가 성(性)을 발견한 이유는 뭘까? 시간은 실제로 존재할까? 어떻게 우주가 생겨났을까? 우리는 왜 지금 이 모습으로 존재하게 됐을까? 이 책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작은 영역에서 상상할 수 있는 가장 큰 세계까지, 우리 눈앞에 펼쳐진 생생한 현실에서부터 마음의 눈으로만 관찰할 수 있는 보이지 않는 세계까지 미시와 거시의 모든 공간을 들여다보고 전체를 조망한다. 우주를 떠돌던 먼지에서 원자로, 별과 행성으로, 세포와 생명으로, 유인원에서 인간으로, 그리고 인간이 만든 문명으로 이어지는 한 편의 장대한 서사시를 읽는 듯하다. 이 세상 모든 것이 궁금한 이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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