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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半)전세 늘고, 이삿짐 보관업체·하우스 메이트 알선 카페 성업

전세대란 新 풍속도

반(半)전세 늘고, 이삿짐 보관업체·하우스 메이트 알선 카페 성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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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괜찮은 전셋집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다. 2009년 글로벌 외환위기 이후 치솟기 시작한 전셋값이 진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으면서 주택 시장에는 새로운 풍속도가 나타나고 있다. 부족한 돈으로 살 만한 집을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서민들의 모습을 취재했다.
서른두 살 직장인 김우형씨는 최근 한 인터넷 카페에 자신의 ‘전세대란 체험기’를 생중계했다.

#1. 4000여만원의 여유자금에 대출 1억원 계획하고 부동산투어 시작. 성남시 수정구 빌라촌의 투룸 전세 찾았는데 단지 내 90% 이상이 법정 가압류 처분 상태라 전세자금 대출이 안 되는 관계로 통과. 계획한 돈에 맞춰 수서동의 20년 된 아파트를 봤다가 너무 낡아서 기겁. 야탑동 주공아파트 1층에 나온 집을 보러 갔더니 부동산 사장님 왈 “오늘 아침 계약했는데요.” 오피스텔 쪽은 전세자금 대출 안 돼 포기. 다음 주에 여자친구와 둘 다 회사에 휴가 내고 좀 더 본격적으로 부동산 투어에 나설 예정.

#2. ‘반월세’로 방향 선회. 일주일간 오피스텔 10여 곳 둘러본 뒤 비로소 맘에 드는 집 발견. 예비 장모님과 계약하러 가는 도중 중개소로부터 “이미 다른 사람과 계약했다”는 문자 받음. 서둘러 다른 집 계약하기 위해 장소 이동. 지하철역으로 픽업 나온 중개소 직원이 보자마자 씩씩 열을 냄. 30분 전에 내가 계약하려던 집을 바로 옆 부동산에서 채갔다고. 신혼집 구한다고 칼퇴근하는 것도 회사 눈치 보이고, 결혼식 날짜는 다가오는데 완전히 아노미 상태.

#3. 마지막 희망이던 투룸 오피스텔이 이틀 사이 다른 신혼부부에게 넘어감. 맥 빠진 출근길 지하철에서 중개소 직원의 전화 받음. 신혼부부가 방금 계약 취소했다고. 토요일 오후에 집 보러 가기로 했는데 그전에 누가 채갈까봐 금요일 하루 종일 안절부절. 마침내 계약서에 도장 찍고 중개소 사장님께 “감사합니다” 연발.

보름 동안 분당과 강남 일대를 누비며 수십 채의 집을 둘러본 김씨는 그 사이 계약을 중간에 가로채이는, 일명 “싸다구를 맞는” 경험을 세 번이나 했다. 보증금 5000만원에 월세 50만원인 방 2칸짜리 신혼집을 구하기까지 겪은 마음고생이 이만저만한 게 아니다. 그는 “결혼식을 두 달 넘게 남겨두고 집을 보러 다녔기 때문에 처음엔 여유가 있었다. 그런데 말로만 듣던 전세대란을 처절하게 겪으면서, 나중엔 자칫하면 집도 없이 결혼하게 될까봐 엄청 초조했다”고 혀를 내둘렀다.



전월세 전쟁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매달 가파르게 상승곡선을 그리는 전세금 때문에 국민 10명 중 4명이 ‘전월세 전쟁’을 치르고 있다. 부동산포털 닥터아파트에 따르면 올 초부터 9월 중순까지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아파트 전세가 상승률은 8.06%다. 지난 한 해 변동률 7.75%를 이미 넘어선 수치다. 국민주택기금으로 지원하는 전세자금 대출액은 1월 말 3677억원에서 8월말 7636억원으로 훌쩍 뛰었다. 시중은행의 전세자금 대출 잔액도 10월 말 기준으로 2년 전에 비해 5배 급증했다. 부랴부랴 대책 마련에 나선 정부가 올 초부터 8월까지 연이어 전월세 대책을 내놓았지만 시장의 반응은 냉담하다. 백약이 무효인 ‘전세대란’ 시대를 맞아 벼랑 끝으로 내몰린 사람들 사이에서 최근 좋은 집을 구하기 위한 새로운 풍속도가 펼쳐지고 있다.

30대 후반의 주부 김성아씨는 몇 달 전부터 8가구가 세 들어 사는 다가구주택의 ‘관리인’을 자처한다. 세입자 처지에 자발적으로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건 집주인이 집을 비우라고 하거나 전세금을 수천만원 올려달라고 하는 사태를 막기 위해서다. 김씨는 세입자 가구를 돌면서 입주자를 설득해 매달 1만원씩 걷고 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출입구와 계단을 청소할 사람을 구해 쓰기 위한 돈”이다. 이 외에도 공동주택의 쓰레기 분리수거를 도맡아 하고 집주인과 세입자 사이의 ‘연락원’ 노릇도 한다. 김씨는 “전세 만료 기간이 한 달이 채 안 남았는데 그동안 집주인한테서 아무 연락이 없었다”고 했다.

‘몸으로 때우기’는 돈 없는 세입자들이 흔히 구사하는 ‘전법’이다. 12평(약39㎡) 옥탑방에 사는 30대 중반의 싱글 이재진씨도 그렇다. 손재주가 좋아 평소에도 웬만한 물건이 고장 나면 스스로 고치는 편인 그는 최근 욕실 공사를 스스로 했다고 털어놓았다.

“욕실 수도 파이프가 고장 났는데 집주인한테 얘기하면 수리비를 핑계로 전세금을 올려달라고 하지 않을까 걱정되더라고요. 또 ‘여기저기 고장 났다며 귀찮게 한다’는 이유로 아예 방을 빼라고 하면 어떡하나 싶기도 하고요. 집주인과 얼굴 맞댈 일은 피하는 게 상책이다 싶어 직접 바닥 뜯고 배관을 고친 뒤 타일까지 새로 발랐습니다. 그 뒤에 싱크대 하수구가 막힌 것도 직접 고쳤고요.”

노후로 인한 전셋집 보수공사는 집주인이 수리비용을 내거나 입주자와 절충해 부담하는 게 보통이지만, 그는 아예 말도 꺼내지 않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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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경| 객원기자 siren5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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