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러나 리얼 스토리를 보는 관전 포인트는, 자살로 끝나는 소설 결말을 보며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식이 돼선 곤란하다. 80조 원의 매출, 10만 명의 임직원, 한국 재계 5위 기업의 이해와 생사가 달린 문제인 만큼 단순한 호기심, 의혹 제기 식의 조롱, 맹목적 민족주의 같은 감정적 대응이나 호사가, 정치인의 ‘씹을 거리’로 치부되는 것도 바람직하지 못하다.
우리에겐 소설보다 더 나은 결말이 필요하고, 롯데는 이번 사태 이후에도 우리 경제의 버팀목이 돼야 한다. 따라서 롯데의 실제 드라마를 정신 바짝 차리고 논리적으로 이해해야 하며, 더 높은 경쟁력을 갖춘 롯데의 미래가 가능한지 점검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
롯데 사태에 대한 감정적 대응의 첫 번째 사례는 지배구조와 맞물린 기업의 국적 문제에 대한 논란이다. 글로벌 경제가 활성화한 상황에서 기업 국적을 따지는 문제는 생각보다 복잡하다. 통상 4가지 기준이 있는데, 법인 등록지, 주요 사업지역, 관리 주체의 국적, 대주주의 국적 등이다. 단순히 총수와 기업 경영진이 사용하는 일상 언어로 국적 문제를 판단하는 것은 매우 비논리적인 처사다.
무의미한 국적 시비
그런데 기업의 국적이 이슈가 되는 데에는 특별한 이유와 목적이 있다. 예를 들면 최근 법인세를 높인 미국은 그 부담을 지우기 위해 기업 국적을 따지고 있으며, 국경을 넘어선 합병(cross-border merger)에서 자국 주주를 보호하기 위해, 혹은 국가 안보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산업 부문에서 해외 기업의 진입을 저지하려 할 때 국적을 따지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최근 정치권에서 논의 중인, 롯데의 국적 정리를 위한 조처들이 어떤 경영적 혹은 경제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에 대해 뚜렷한 대답을 내놓았다고 보기는 어렵다. 국민연금 등이 롯데 계열 상장사에 대해 주주권을 적극 행사하라는 주문을 내놓기도 하지만, 이것도 문제의 본질을 잘못 본 것이다. 소유와 경영을 분리하는 것이 ‘근대적인’ 기업의 거버넌스 형태라고 주장하면서, 대주주로서 소유 자격을 가졌다는 이유로 경영에까지 간섭하려고 한다면 ‘자기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말과 같다.
‘정치권의 말을 잘 듣는 대기업을 만들자’는 게 목표라면 더 큰 문제다. 다양한 이해단체들의 요구를 들어주는 부담은 글로벌 기업보다 국내 대기업이 크다는 점을 부정하기 어렵다. 같은 시장에서 한국 기업에 대한 이 같은 역차별 현상이 존재하는 마당에 ‘국적 찾기’는 자칫 ‘국적 씌우기’가 될 수도 있다.
한국 기업이라는 자격을 취득할 때 국내시장은 물론 세계시장 진출에 더 유리하다고 여긴다면 한국 국적은 선망의 대상일지언정 회피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특히 많은 국가와 자유무역협정(FTA)을 맺고 있는데도 한국을 세계시장 진출의 교두보로 활용하려는 글로벌 기업이 생겨나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국적 찾기의 올바른 목적을 생각해볼 시점이다.
더 나아가, 기업의 국적 무용론이 대두되는 마당에 국적 자체가 ‘깜’이 안 된다는 주장도 있다. 유럽연합(EU)이 구성되면서 유럽의 특정 국가에 속하지 않고 EU 법에 따른 ‘유럽 회사(European Company)‘가 설립되고 있다. 유럽 회사는 유럽에서 사업을 하기에 더욱 단순하고 효율적인 회사로, EU 전체 시장을 두고 필요한 자원을 손쉽게 이동시킬 수 있는 회사다. 아울러 웹에서만 활동하는 가상기업(virtual corporation)이 존재하고, 해외 생산이 보편화하는 마당에 글로벌 경영에서 국적을 따진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되묻는 사람도 많다.
롯데가 일본 기업이 된다면
설사 대주주가 외국인이라 한들, 이들의 자본이 국내에 투자돼 공장과 건물을 짓고, 사람을 고용하고, 세금을 꼬박꼬박 낸다면 그 해외 자본이 국내 경제에 해악을 끼친다고 할 수 있는지 따져봐야 할 것이다. 해외 자본을 부정적으로 보는 이들은 국부 유출을 문제점으로 지적하는데, 그렇다면 해외에 투자해 경쟁력을 갖추고 많은 수익을 내는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외국 처지에선 국부를 유출하는 기업일까. 한국에서 활동하는 한국GM은 우리의 국부 유출에 앞장서는 기업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