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성전자가 세계 초일류 기업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던 것은 주지하다시피 메모리 반도체와 스마트폰의 성공 덕분이었다. 삼성전자는 1992년 D램 분야에서, 1993년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세계 1위에 올랐다. 휴대전화 분야에서는 2008년에 세계 2위, 그리고 2012년 마침내 노키아를 제치고 세계 1위 제조업자가 됐다. 2012년 삼성전자의 휴대전화 시장점유율은 29%, 스마트폰 점유율은 33%로 애플보다 3%p 더 높았다.
두 ‘세계 1위’의 운명
이러한 삼성전자의 성장은 1990년대 후반 노키아가 핀란드 최초로 세계 초일류 기업으로 발돋움한 것과 비견된다. 1980년대 말에서 1990년대 초에 핀란드는 금융위기, 최대 교역국 소련의 붕괴, 세계경기 후퇴라는 삼중고를 겪었다. 또한 당시 노키아는 가전사업 부문에 대한 대규모 투자 실패로 위기 상황에 놓였다.
그러나 노키아는 이러한 외적 어려움과 내적 위기를 극복하고 1990년대에 휴대전화와 통신장비 제조사로 이름을 드날리며 세계 초일류 기업으로 폭풍 성장했다. 1998년 휴대전화 제조업 세계 1위, 통신장비 제조업 세계 2위에 올랐다. 전 세계 언론은 이런 성장을 ‘노키아의 기적(Nokia Miracle)’이라며 극찬했다.
그러나 노키아의 기적보다 세간의 이목을 더 집중시킨 것은 노키아의 몰락이다. 노키아는 2010년까지 휴대전화 시장에서 세계 1위 자리를 고수했지만, 2011년부터 시장점유율이 급락했고, 마침내 2013년 11월 19일 주주총회에서 휴대전화 사업부문을 마이크로소프트에 38억 유로에 매각하기에 이른다. 1998년 이후 세계 휴대전화 시장의 최강자이던 노키아가 불과 3년 만에 역사의 뒤안길로 퇴장한 것이다.
그런데 최근 삼성전자의 스마트폰 점유율과 영업이익이 급속히 하락하고 있다. 세계 정상에 오른 지 불과 2년 만이다. 공시자료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2014년 매출액은 전년보다 9.83% 감소했고, 영업이익은 31.97% 급감했다. 이러한 매출과 영업이익 감소는 스마트폰 판매 부진 때문이다. 2014년 3분기에 스마트폰을 담당하는 IM(IT·모바일) 부문의 실적이 전 분기 대비 반 토막 이하로 급락했다. 4분기에는 반등했으나 역부족이었다. 더욱이 삼성전자가 회심의 카드로 2015년 4월 갤럭시S6를 출시했는데도 2015년 2분기 IM 부문 영업이익은 전 분기의 2조7400억 원보다 조금 오른 2조7600억 원에 그쳤다. 이는 2014년 2분기 영업이익(4조4200억 원)의 62% 수준이다.
삼성전자는 과연 노키아처럼 몰락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인가. 삼성전자와 노키아의 닮은 점과 다른 점은 무엇인가. 삼성전자가 노키아처럼 몰락한다면 한국 경제는 어떻게 될 것인가.
알고도 당한 노키아
2013년 세계지식포럼 참석차 방한한 프랑스 INSEAD 경영대학원의 이베스 도스 교수를 만난 적이 있다. 한국의 공공정책 현안과 거버넌스에 대해 대화해보고 싶다는 의사를 지인을 통해 전달해 와, 방한 기간에 두 차례 만나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눴다. 그런데 나로서는 경영전략이 전공인 이 프랑스 학자가 공공정책과 거버넌스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연유가 궁금했다.
도스 교수의 대답은 의외였다. 그는 2003년경 노키아 고위 임원의 요청으로 1년간 노키아에서 연구를 수행했고, 이를 계기로 공공정책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했다. 더 놀라운 것은 노키아가 도스 교수의 1년 급여를 부담하면서 자기 회사에 와달라고 부탁한 이유였다. 2003년은 노키아가 그야말로 전성기를 누리고 있을 때다. 그런데 바로 그때 노키아 고위 임원들은 노키아가 하루아침에 망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을 갖고 있었고, 그 때문에 이 프랑스 학자를 초대했다는 것이다. 노키아 고위 임원들은 왜 그런 불안감을 갖게 됐고, 그런 불안감 때문에 나름대로 대비했는데도 왜 노키아는 몰락의 길을 걷게 됐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