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월2일. 경남 양산시에 위치한 BIP 본사에서 박동헌(53) 대표이사를 만났다. 서글서글한 아저씨 같은 외모지만 말 한 마디 한 마디는 젊은이 못지않은 열정과 의욕으로 넘쳐났다. 그가 대기업 대신 조그마한 중소기업에 불과하던 BIP 입사를 결정하고, 회사와 함께 성장해 대표이사에 오른 일화는 청년실업이 사회문제화한 가운데 중소기업은 인력난을 겪는 현 상황에서 시사하는 바가 컸다.
꿈이 있고 열정이 살아 숨 쉬는 사람에게 회사의 크고 작음은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가 아닐까 싶었다. 무조건 큰 회사만을 고집할 것이 아니라, 작더라도 자신의 노력을 보태 큰 회사로 키워나가겠다는 열정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박동헌 대표는 자신의 경험담으로 웅변했다.
‘국산화하고 싶다’
1983년. 박 대표는 현대중공업에 합격해 연수까지 마쳤지만 첫 출근을 앞두고 전격적으로 BIP 입사를 결정했다. 그가 BIP행을 택한 것은 “중소기업에 와서 함께 회사를 키워보자”는 선배의 조언이 결정적이었다.
“현대중공업에 입사하면 장가가기는 좋겠다고 생각했죠. 그때도 현대중공업은 큰 회사였고, 좋은 회사였으니까요. 그렇지만 회사가 울산에 있어 집(부산)에서 떨어져 있어야 한다는 게 부담이었죠. 또 현대중공업에는 조선공학과 출신 선배가 많이 계셨는데 쟁쟁한 선배들 밑에서 언제 사장까지 오르겠느냐는 생각도 했지요. 중소기업에 입사하면 장가가기는 어려울지 몰라도 사장까지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졌죠.”
박 대표가 BIP에 합류한 1980년대 초반만 해도 선박 자재 대부분은 수입에 의존하고 있었고 국산화율은 채 10%에도 미치지 못했다.
“당시 한국의 조선소들은 인건비 정도를 건지는 수준이었어요. 대부분의 자재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었으니까요. 철 구조물이나 설계, 건축 관련 선박 인테리어와 재료, 전기, 전자 등에서 국산 자재는 전무한 실정이었습니다. 그래서 현대중공업 입사를 위해 치른 면접에서도 ‘선박 자재의 국산화에 도전해보고 싶다’고 밝혔죠. 또 합격하고 나서도 ‘선박 자재를 국산화할 수 있는 부서로 보내달라’고 요청했고요. 현대중공업 입사와 BIP 입사 사이에서 고민할 때에도 BIP가 중소기업이기는 하지만, 선박 자재를 국산화하는 회사라는 점이 매력으로 다가왔죠.”
박 대표가 BIP에 입사한 1983년에는 BIP가 이제 막 방화벽과 천장 패널을 만들어내던 때로, 국내 중소기업들이 육상용 가구에서 선박 기자재로 눈을 돌리던 시점이었다.
“선박 기자재는 선주의 요구가 까다롭고, 국제 규격에 맞춰야 하기 때문에 더 어렵습니다. 그때에는 일본과 독일, 미국과 노르웨이 등 4개국 중심이었죠.”

BIP가 생산하는 조립식 객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