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O(rea)+ME(asure)+LON(섬유제품 접미사)’의 합성어인 코메론(KOMELON)은 ‘한국에서 만든 대표적인 줄자’라는 뜻이다. 코메론은 국내 줄자 시장에서 60% 이상의 점유율을 올리고 있는 선두 업체. 해외 80여 개국에 수출도 하는 한국의 대표적 줄자 회사다. 1963년 창업 이래 줄자 한 분야에 열정을 쏟아 부으며 장인정신으로 똘똘 뭉친 회사다.
- 코메론은 줄자에서 거둔 성공을 바탕으로 세계적인 종합공구회사로 비상할 꿈을 꾸고 있다.
“주문자 상표부착 생산방식(OEM)으로 해왔으면 매출을 획기적으로 늘릴 수 있었겠지요. 그렇지만 세계 시장에서 오늘날과 같은 브랜드 가치를 인정받지는 못했을 겁니다. 규모는 작지만 최고 품질의 줄자를 개발해 철저하게 코메론 브랜드로 세계 시장에 나섰습니다.”
이 회사 강동헌 대표의 경영철학은 코메론 창립자이자 부친인 강의조 전 대표에게서 비롯됐다. 엄격한 가정교육을 받고 자란 강 대표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줄자 제조 현장에 투입됐다. 대학에 진학해 이론을 배우는 것에 앞서 현장에서 차근차근 경험을 쌓는 것이 더 낫다는 부친의 소신 때문이었다. 그 덕에 코메론에서는 지금도 줄자 지식에 관한 한 강 대표를 따라올 직원이 없을 정도라고 한다.
현장에서 실무 경험을 쌓은 뒤 대학에 입학, 경영 이론까지 겸비한 강 대표는 ‘품질이 갖춰지지 않으면 아무리 많이 팔아도 사상누각에 불과하다’는 신념으로 자체 브랜드를 고수, ‘KOMELON’을 세계적 브랜드로 일궈냈다.
특허, 실용신안권 200건 넘어
기자는 몇 해 전 경기도 파주의 농가주택을 구입해 증축했다. 그때 공사 현장에서 인부들이 줄자를 길게 늘어뜨려 길이를 재고 건축자재를 자르는 광경을 자주 봤다. 그래서 줄자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코메론 본사의 줄자 쇼룸을 보고 나서는 생각이 바뀌었다. ‘세상엔 내가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훨씬 많다’는 진리를 새삼 실감했다. 크기, 디자인, 기능이 제각각인 수십 종의 줄자가 걸려 있었다. 공사 현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줄자들에 비하면 무엇보다 디자인이 빼어났다.
“줄자는 단순해 보여서 그리 까다로운 제조 기술이 필요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기 쉬워요. 하지만 절대 그렇지가 않습니다. 차별화된 제품을 만들어내려면 디자인은 물론, 기능적인 면에서도 뛰어나야 합니다.”
강 대표는 코메론 제품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다. 코메론이 세계적 줄자 업체로 성장한 것은 그저 오랫동안 제품을 생산해왔기 때문만은 아니다. 코메론이 국내외에 출원하고 등록한 특허와 실용신안권이 200여 건에 달한다. 국내에서 KS마크를 획득한 데 이어 일본에서는 동종업계 외국 기업 중 유일하게 JIS 규격을 따냈다. 그뿐만 아니라 유럽연합의 통합규격과 ISO9001까지 획득하는 등 기술력과 품질의 우수성을 나라 안팎에서 인정받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흔히 명품과 짝퉁의 차이는 ‘보이지 않는 1%’에 있다고 한다. 코메론의 제품 하나하나에도 명품이 지녀야 할 각각의 특별함이 담겨 있다. 백승운 부장이 코메론에서 독자적으로 개발하고 특허를 낸 제품을 하나하나 보여주며 특성을 설명해줬다.
“호크에 자석이 부착된 자석 줄자는 배관이나 철로 된 소재에 고정시켜 길이를 잴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롤러 줄자인데, 바닥에 대고 밀면 롤러가 돌면서 자가 들락거려 편리하게 길이를 잴 수 있습니다.
스테인리스 소재로 된 이 줄자는 습기가 많은 작업 현장에서 사용해도 녹이 슬지 않습니다. 이 줄자엔 셀프록 기능을 넣어 안전도를 높였습니다. 이들 제품은 모두 저희 자체 기술력으로 만들어 특허를 내고 세계 최초로 상용화했습니다.”
단순해 보이지만 줄자 제조 공정은 고도의 기술력을 필요로 한다.
소재에서 유통까지 통합시스템
강동헌 대표는 “우리 회사는 디자인과 줄자 기능 기획 등 연구개발(R·D)에 강점을 갖고 있다”며 “줄곧 줄자 한 분야에 집중했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했다. 그는 “측정공구인 줄자는 공사 현장은 물론 일상생활에서도 널리 쓰인다. 체육시설 트랙 길이를 재는 데도 쓰이고 화구, 문구, 팬시 제품으로도 애용된다”며 줄자의 유용성을 강조했다.
코메론이 한 달에 생산하는 줄자는 60만~70만개. 1년이면 700만개 이상 생산하는 셈이다. 1963년 회사가 설립된 이후 지금까지 코메론이 생산한 1m에서 100m까지 다양한 줄자의 길이를 모두 합하면 지구를 30바퀴 이상 감을 수 있다고 한다. 해마다 이처럼 많은 줄자를 생산하고 판매할 수 있는 것은 새로운 수요를 창출해내는 코메론의 치밀한 전략 덕분이다.
줄자에 대한 수요는 국내보다 해외에서 훨씬 많다. DIY(Do It Yourself) 문화가 활성화되지 않은 국내에서는 줄자를 소비재라기보다는 산업재로 취급한다. 이 때문에 가정에서 한번 줄자를 구입하면 반영구적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코메론은 이런 국내 시장 상황을 감안해 일찌감치 내수보다 수출을 지향하는 판매 전략을 세웠다. 물론 국내 줄자 시장에서도 코메론의 지위는 독보적이다. 해외에서 거둔 성공을 바탕으로 국내에서도 60% 이상의 시장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다.
전세계 줄자 시장 규모는 10억달러 수준. 이 가운데 북미와 유럽의 비중이 특히 높다(각각 3억달러). 코메론은 80여 개국 에 줄자를 수출하고 있는데, 시장 규모가 큰 북미와 유럽에 집중하고 있다. 백승운 부장은 “북미 지역은 단일 시장으로는 가장 큰 규모”라며 “DIY가 활성화돼 있고, 건축과 측량 등 연관 사업들이 호황이라 앞으로도 시장이 계속 성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코메론은 북미 시장을 보다 효과적으로 공략하기 위해 1997년 100% 자체 출자한 현지법인 ‘코메론USA’를 설립했다. 이에 앞서 코메론은 고품질, 저가격 제품을 안정적으로 생산하기 위해 원자재와 완제품 생산, 그리고 유통과 판매에 이르기까지 일원화할 수 있는 통합시스템을 구축했다.
이를 위해 먼저 1995년 인천 남동공단에 소재 가공을 위한 압연공장을 설립했다. 최고의 품질을 유지하기 위한 설비 자동화 부문에도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줄자 제조기기의 자동화 설비는 고도의 기술을 요하는 공정이다. 그런 까닭에 생산기술연구원이나 전문기술 인력의 지원도 많이 받았다. 이렇게 해서 구축한 코메론의 자동화 설비는 ‘자동화 시범 공장’으로 선정될 만큼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렇게 원소재 가공에서부터 공장자동화 설비까지 갖춘 코메론은 코메론USA 등 해외 현지 판매법인까지 갖춤으로써 수직적 통합시스템을 완비하게 됐다.
‘KOMELON’ 브랜드 고수
코메론은 사업 초창기부터 자기 브랜드 전략을 고수했다. 브랜드에 대한 코메론의 애착은 자기 상표 수출을 고집하는 데서도 알 수 있다. 코메론은 제품을 수출할 때 바이어가 OEM을 요청하면 ‘KOMELON’ 상표를 단 제품보다 높은 가격을 요구한다고 한다. 또한 부득이하게 OEM 수출을 할 때도 겉에는 주문자 상표를 부착하지만, 줄자 안쪽에는 ‘KOMELON’상표를 함께 부착한다.
그뿐만 아니라 바이어에게 ‘KOMELON’ 브랜드에 대한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20~30개의 소량 주문을 해도 마다하지 않고 제품을 보내줬다고 한다. 일례로 10여 년 전 카리브해의 조그만 섬나라 아이티에서 바이어가 ‘시장이 작아 소량주문을 할 수밖에 없는’사정을 설명하며 470달러어치의 주문을 낸 적이 있다. 항공운임만 해도 제품가보다 많은 700달러가 들었지만 코메론은 기꺼이 제품을 보냈다. 브랜드 수출을 위해서라면 ‘밑지는 장사’도 기꺼이 감수하는 것이다.
브랜드에 오점을 남기지 않기 위해 품질도 철저하게 관리한다. 100m짜리 줄자에 단 1cm의 불량이 나도 예외없이 폐기한다.
이제 종합공구 브랜드로
코메론은 1963년 강의조 전 대표가 설립한 절연테이프 생산업체 ‘한국엠파이어 공업사’가 모태다. 이후 1974년 ‘한국도량기공업사’로 사명을 바꾸면서 줄자 제조업체로 본격 변신했다. 코메론이 줄자 제조에 뛰어든 당시만 해도 국내에선 변변한 기술은 물론 설비 하나 제대로 구하기 힘들어 제품 개발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길이를 재는 계측기기로서 줄자는 정밀성과 정확성, 내구성과 복원력 등이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그저 ‘테이프에 눈금만 표시하면 줄자가 되겠지’ 하는 생각으로 시작했다가 고생을 많이 했어요. 외국 줄자 제조업체로부터 노하우를 전수받는 것도 쉽지 않았고요. 결국 홀로서기를 할 수밖에 없었어요. 초보적인 수준의 기술부터 하나하나 익혀 나갔죠.”
강 대표도 이때부터 부친과 형, 누나와 함께 줄자 만들기에 매달렸다고 한다. 철강재를 줄자 테이프로 가공하는 기술에서 시작해 끊임없는 연구를 거듭한 끝에 1년여 만에 자체 기술로 섬유제 줄자를 만들어 냈다. 이 제품을 호주에 5000달러어치 수출한 것이 첫 성과였다. 눈물겨운 노력의 결과물이지만, 그 제품은 해외 선두 기업들이 이미 판매하고 있던 것이었다.
“경쟁사와 같은 수준의 제품으로는 해외 시장 공략에 한계가 있음을 절감했어요. 결국 더 높은 기술력을 갖추는 수밖에 없었지요. 고유 브랜드가 있어야 당당하게 경쟁할 수 있다는 생각도 했고요.”
자체 브랜드 필요성을 절감하고 줄자 상표로 ‘KOMELON’을 등록한 것이 1978년이다. 1990년에는 회사명도 (주)KOME LON으로 제품명과 일치시켰다. 철저한 브랜드화를 통해 해외에서 인지도를 높이고, 바이어들이 쉽게 기억하고 부를 수 있도록 통일된 브랜드 전략을 구사한 것이다.
상표 등록은 했지만 ‘KOMELON’ 브랜드를 알리는 일은 쉽지 않았다. 강 대표는 ‘발로 뛰는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제품에 대한 자신감 하나로 전세계 바이어들을 찾아 나섰지요. 80여 개국을 돌아다니느라 비행기를 1400번 정도 탔습니다.”
강 대표는 한꺼번에 여러 바이어에게 제품을 소개할 수 있는 박람회나 전시회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빠지지 않고 참가했다. 또 영어, 독일어, 불어, 스페인어, 이탈리아어, 네덜란드어 등 6개 외국어로 쓰인 카탈로그를 만들어 배포했다. 최근에는 영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이탈리아어, 일본어, 중국어로 제작된 홍보용 CD도 제작해 카탈로그와 함께 각국 바이어들에게 배포하고 있다. 이런 노력에 힘입어 이제 세계 어디에서든 줄자를 얘기할 때는 코메론을 빼고선 대화가 안 될 정도가 됐다.
앞으로 코메론은 줄자와 함께 사용되는 측정공구와 작업공구로 아이템을 점차 확대해갈 생각이다.
“줄자에 계속 집중하면서 줄자와 연관되는 제품을 하나 하나 아웃소싱할 계획입니다. 회사를 인수하거나 아니면 새로 설립해서 아이템을 넓힐 수도 있겠지요. 물론 ‘KOMELON’이라는 브랜드는 유지할 겁니다. 우리는 세계적인 종합공구회사로 뻗어 나가기 위해 이미 글로벌 조직을 갖춰놓고 있습니다.”
줄자업계 세계 최강에 이어 세계적인 종합공구회사로 비상하려는 코메론의 도전은 이미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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