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 해결에 앞장선 건설사들
출산장려책, 오너 의지에 달려
현금 지원만큼 재택근무도 인기
“‘일·가정 병행’ 조직문화 만들어야”
한미글로벌 등 여러 기업이 파격적 출산 지원책으로 저출산 문제 해결에 나서고 있다. [Gettyimage]
상황이 이렇다 보니 다양한 기업이 경쟁적으로 출산장려책을 내놓고 있다. 기존에 있던 출산장려금 상한을 높이는 방식으로 업그레이드하거나 손자녀 출산 지원금까지 제공하며 타사와 차별화된 포인트를 만드는 등 출산·육아와 관련한 복지제도를 재조명하고 있다. 과거에는 저출산을 정부가 고민했다면, 이제는 기업이 주도하는 모양새다.
전문가들은 기업을 중심으로 한 출산 독려 분위기가 업종을 불문하고 대기업, 중소기업 할 것 없이 입체적으로 확산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더 세밀한 지원 정책을 내놔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무엇보다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가족 친화적 행위가 상사나 동료의 눈치를 보게끔 만드는 기존의 조직문화를 근본적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한미글로벌 지원자 1년 새 2배↑
건설사업관리 전문기업 한미글로벌은 지난해 6월 파격적인 출산장려 정책을 내놨다. 셋째 아이를 낳으면 업무 고과나 연차와 관계없이 한 직급을 승진시킨다는 방침이다.
한미글로벌은 첫째 출산 시 100만 원, 둘째 200만 원, 셋째 500만 원, 넷째 이상은 1000만 원의 출산 지원금도 주기로 했다. 주택 구매 지원(1억 원)도 신설했다. 5000만 원까지는 무이자로, 나머지 5000만 원은 연 2% 금리로 지급하기 시작한 것이다.
한미글로벌 측은 이 같은 출산장려책 발표 전후로 신규 입사 지원자 수가 2배나 늘었다고 설명한다. 이 회사에 경력직으로 입사한 한 직원은 “업계에서 가족 친화 제도가 가장 잘돼 있어서 가장으로서, 아버지로서 자랑스럽게 이야기할 수 있는 기업일 것”이라고 추켜세웠다.
부영그룹은 2월 자녀 출산 한 명당 1억 원을 지급하기로 해 화제가 됐다. 6월 경력 및 신입 사원을 공개 모집했는데 마지막 공채를 실시한 2017년과 비교해 지원자 수가 5배 이상 늘었다. 특히 경력 사원 모집에서 출산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20·30세대 지원자가 증가한 것으로 전해졌다. 부영그룹 관계자는 “출산장려금이 채용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출산장려책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음은 LS전선 사례를 보면 알 수 있다. 이 회사는 첫째 출산 시 500만 원, 둘째 750만 원, 셋째 이상 1000만 원을 지급하기로 하는 등 기존의 출생 축하금을 확대한 데 더해 손자녀 출산 시에도 250만 원을 지급하기로 했다. 출산장려금이 대체로 회사 내에서는 주니어 직원 위주로 지급되는데, 출산율을 끌어올린다는 대의를 살리면서 성인 자녀가 있는 시니어 직원을 위한 독려책까지 마련한 것이다. LS전선 관계자는 “대기업 중 손자녀 출산 지원금을 지급하는 경우는 처음”이라고 강조했다.
현금 지원 출산장려책, 인재 확보에 필수
현대자동차는 지난해 9월부터 첫째 300만 원, 둘째 400만 원, 셋째 이상부터는 500만 원을 주는 정책을, 포스코는 첫째 300만 원, 둘째부터 500만 원을 지급하는 정책을 유지하고 있다. HD현대는 임신 시 500만 원, 출산 시 500만 원을 주고, KT는 각각 200만 원, 300만 원을 준다.
인건비 부담이 크다 보니 결국 이 같은 출산장려책 시행은 오너의 의지에 달렸다는 설명이다. 한 건설사 인사팀 관계자는 “사주가 저출산 해결에 대한 의지가 강해 직접 지시를 내려 복지정책을 만들게 됐다”면서 “인사팀 실무자에서부터 고민하는 보텀업 방식이었다면 시간도 오래 걸리고 실현 가능성도 작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기업이 출산율 제고에 나서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근본적으로는 저출산이 기업 존립의 현실적 위협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파격적 출산장려책을 내놓은 곳 중에는 건설사가 많은데 저출산 기조가 지속되면 미래에 실질적 건설·부동산 수요가 줄어드는 점이 우려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경쟁력 있는 인재 확보를 위해 출산 지원책은 필수적인 복지가 돼가고 있다. 출산장려책 도입이 채용 경쟁률을 높인다는 것이 증명된 이상 경쟁사 입장에서는 유사한 제도를 정비할 수밖에 없다.
중소기업들도 출산 독려에 나서고 있다. 금속 표면처리 업체 영광YKMC는 셋째를 낳으면 1000만 원의 특별 상여금을 지급한다. 지역 중소기업체 특성상 나이 많은 최고경영자(CEO)가 회사를 이끄는 경우가 많은데, 이들은 저출산의 심각성을 다른 세대보다 더 깊이 공감한다는 것이다. 또 상대적으로 인력 유출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는 중소기업 처지에서 출산장려금은 직원들을 붙잡아두는 유인책으로도 기능하고 있다.
이종원 호서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는 “만병통치약은 아니겠지만 다자녀에 세제, 매칭 자금, 정부 조달 등 자금 지원을 한다면 출산을 꺼리는 사회 전반 분위기를 바꾸는 데 역할을 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정부도 세제 혜택 등 저출산 대책 대거 내놔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는 6월 19일 ‘저출생 추세 반전을 위한 대책’을 통해 육아휴직 월 급여 상한을 현 150만 원에서 최대 250만 원으로 인상하기로 했다. 사진은 주형환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이 본회의에 앞서 브리핑을 하는 모습. [뉴스1]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는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더욱 실효성 높은 대책을 내놓기도 했다. 6월 ‘저출생 추세 반전을 위한 대책’을 통해 육아휴직 월 급여 상한을 현 150만 원에서 최대 250만 원으로 인상하고 사후지급금을 폐지하기로 했다. 또 연 1회, 부모 각각 2주씩 총 4주 사용할 수 있는 단기 육아휴직을 도입하고, 육아휴직 분할 횟수를 2회에서 3회로 확대하기로 했다.
아빠 출산휴가 기간을 근무일 기준 현 10일에서 20일로 늘리고, 아빠가 육아휴직을 3개월 이상 사용하면 엄마의 육아휴직 총 기간을 1년에서 1년 6개월로 연장한다.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관련 업무를 분담한 동료에게 주는 업무 분담 지원금(매월 20만 원)도 신설했다. 이 같은 대책이 부족하다고 평가받자, 7월에는 추가 대책을 내놨다. 공공건설임대주택 우선 공급 시 출산 가구를 최우선으로 입주할 수 있도록 기존 가점제에서 향후 1순위로 선정하기로 하고, 공공임대주택 가구원 수에 따른 면적 기준을 폐지해 1자녀 가구도 36~50㎡를 초과하는 면적의 주택 신청을 가능하게 했다. 이렇게 만든 151개 과제 중 76개가 7월 말 현재 추진 또는 시행되고 있다.
“현금 좋지만… 근본적 조직문화 바뀌어야”
직장 내 어린이집은 출산과 육아를 고민하는 이들에게 실질적 도움이 되고 있다. [뉴스1]
총 1만3640명의 참여자 중 57.21%(7804명)는 여성, 58.79%(8020명)는 자신이 기혼이라고 답했다. 30대가 응답자의 60.52%(8256명)에 달했고 40대가 14.36%(1960명), 20대가 13.74%(1875명)였다.
출산장려책을 운영하는 기업은 출산, 육아로 급여가 줄거나 없어지는 ‘소득 절벽 기간’에 이뤄지는 유동성 지원이 해당 직원의 생활 안정에 실질적 도움이 된다고 설명한다. 현장에서는 어린이집 설치 여부도 출산율 제고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코로나19 사태 전후로 한때 정보기술(IT) 기업이 인기를 끈 적이 있다. 이들 회사의 특징은 어린 자녀를 둔 젊은 직원이 많이 다닌다는 점이다. 그래서 핵심 복지 중 하나가 회사 내 어린이집 마련이었다. “어린이집 때문에 회사를 못 그만둔다”는 사람이 많았다.
어린이집이 없다면 재택근무를 활성화하는 것도 방법이다. 한미글로벌의 경우 가장 호응도가 높은 출산장려 제도가 금전적 지원보다 육아기 재택근무 제도라고 설명한다. 이 회사 인사팀 관계자는 “기존에 육아기 단축 근무를 실시한 구성원들이 업무량을 소화하기 위해 퇴근 후 집에서 초과 근무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종종 발생하는 것에 착안해 구성원들이 개인별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재택근무를 할 수 있게 했다”면서 “주말을 앞둔 금요일에 재택근무를 하거나, 평일 오전에는 사무실에 있다가 오후에 재택근무를 하는 식으로 시간을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어 구성원의 만족도가 높은 편”이라고 전했다.
기업, 정부 차원의 물질적·제도적 지원도 좋지만 저출산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문화적 변화를 끌어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지혜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는 “회사에 입사한 뒤 출산·육아를 연거푸 하게 되면 업무적, 정신적으로 상사나 동료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며 “출산 관련 보상도 중요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일과 가정을 병행하는 것을 당연하게 느끼는 조직문화를 만들어나가는 데 정부와 기업이 더 큰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