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0월호

5대 은행장 전원 올해 임기 만료… 연임론·책임론·문책론 분분

[금융 인사이드] “호실적보단 무사고가 살아남을 가능성 높아”

  • 손희정 이투데이 기자 sonhj1220@etoday.co.kr

    입력2024-09-30 09: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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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한 정상혁, 하나 이승열 ‘파란불’

    • 우리 조병규, 농협 이석용 ‘빨간불’

    • 국민 이재근 ‘노란불’

    • 고금리에 예대마진으로 역대 최고 실적

    • 배임·횡령·부정 대출… 연이은 금융사고 ‘변수’

    • 9월 인선 작업 돌입, ‘은행 지배구조 모범 관행’ 첫 적용

    이재근 국민은행장, 정상혁 신한은행장, 이승열 하나은행장, 조병규 우리은행장, 이석용 농협은행장(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각 은행]

    이재근 국민은행장, 정상혁 신한은행장, 이승열 하나은행장, 조병규 우리은행장, 이석용 농협은행장(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각 은행]

    임기 만료를 앞둔 은행장들의 셈법이 최근 잇따른 대규모 금융사고로 복잡해졌다. 호실적에도 홍콩 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사태와 횡령·배임 등 내부통제 문제가 연임의 ‘변수’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KB국민(이하 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이하 농협) 5대 은행 은행장 임기는 올해 말 만료된다. 금융당국의 ‘은행지주·은행의 지배구조에 관한 모범 관행’에 따라 10월부터 차기 행장 선임 절차를 본격화할 방침이다.

    이재근 국민은행장과 정상혁 신한은행장, 이승열 하나은행장, 조병규 우리은행장, 이석용 농협은행장의 임기가 올해 12월 31일 종료된다. 지난해 연임에 성공한 이재근 행장을 제외하고는 모두 첫 임기다. 이승열 행장과 이석용 행장은 지난해 1월 취임해 임기 종료를 앞두고 있다. 정상혁 행장과 조병규 행장은 각각 지난해 2월과 지난해 7월 전임 행장의 잔여 임기를 물려받았다.

    연임 가능성 높지만 ‘내부통제 역량’ 변수

    통상 시중 은행장은 기본 2년 임기에 추가로 1년을 더해 3년 임기를 준다. 4년 임기를 지낸 사례도 있다. 진옥동 신한금융 회장은 신한은행장 시절 이례적으로 첫 임기(2년)를 마친 뒤 연임 임기도 2년을 받아 총 4년간 행장을 지냈다. 국민은행엔 연임을 넘어 ‘3연임’한 사례도 있다. 직전의 허인 전 행장(현 KB금융지주 부회장)은 3연임(2+1+1)에 성공했다.

    ‌5대 은행장의 경영 성적표는 최고 수준이다. 은행권은 올해 상반기 역대 최고 실적을 기록했다. 5대 은행의 상반기 당기순이익은 8조2505억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8조969억 원) 대비 1.9% 증가했다. 고금리에도 가계·기업 대출 수요가 늘면서 이자 이익이 큰 폭으로 증가한 것이 호실적을 견인했다. 은행별 연결 기준 당기순이익은 △신한은행 2조535억 원 △하나은행 1조7509억 원 △우리은행 1조6735억 원 △KB국민은행 1조5059억 원 △NH농협은행 1조2667억 원이다.

    ‌이처럼 은행권이 전반적으로 좋은 실적을 거둠에 따라 실적보다는 은행권에 잇따른 횡령·부당대출·배임 대규모 금융사고에 대한 리스크 관리, 내부통제 역량이 연임 여부를 가르는 핵심 변수가 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지난해부터 은행권이 호실적을 기록한 만큼 안정과 쇄신을 놓고 고민이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며 “금융당국이 내부통제에 고삐를 쥐는 모양새라 금융사고가 연이어 터지는 일부 은행의 경우 부담이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재근 ‘황신호’, 정상혁·이승열 ‘청신호’

    이재근 국민은행장은 현 5대 은행장 가운데 유일하게 3연임에 도전한다. 그는 2022년 1월 은행장에 올라 2년의 임기를 지냈고 지난해 11월 1년의 추가 임기를 받았다. 직전의 허인 전 행장이 3연임을 한 사례가 있는 만큼 이 행장 역시 3연임할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 나온다.

    업계에서는 양종희 KB금융지주 회장 체제 출범 후 두 번째 인사이기 때문에 그룹이 ‘조직 쇄신’과 ‘조직 안정’ 가운데 어느 것에 무게를 두는지에 따라 이 행장의 거취가 달라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경영 성적표는 양호하다. 취임 첫해인 2022년엔 2021년 대비 15.6% 증가한 2조9960억 원의 순이익을 올렸고, 지난해엔 여기에 8.9% 더 늘어난 3조2615억 원의 순이익을 거뒀다. 다만 리딩뱅크(금융업계에서 선도적 역할을 하는 은행. 국내에선 대개 순익 규모가 가장 큰 은행을 일컬음) 탈환 실패, 은행권에서 홍콩 ELS 판매 규모가 가장 크다는 점은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또 올해 상반기 100억 원대 대형 대출 배임 사고가 3건 적발된 것도 악재다.

    정상혁 신한은행장은 연임 가능성이 가장 크다. 그는 지난해 2월부터 고(故) 한용구 행장의 잔여 임기를 수행하고 있다. 진옥동 신한금융지주 회장이 신한은행장일 당시 비서실장직과 경영기획그룹장(CFO)을 지내며 그의 최측근으로 자리한 만큼 진옥동-정상혁 체제가 유지되리라는 예측이 나온다. 진 회장의 임기는 2026년 3월까지다.

    우수한 성적표도 호재다. 올해 신한은행은 리딩뱅크 자리를 탈환했다. 상반기 순이익 2조535억 원으로 시중은행 가운데 유일하게 2조 원을 넘겼다. 특히 2분기 순이익이 1조1248억 원으로 1분기 대비 21.1% 늘었다.

    이승열 하나은행장은 함영주 하나금융지주 회장의 거취가 연임 여부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함 회장의 임기는 내년 3월까지로 얼마 남지 않았다. 이 점을 제외하면 연임 가능성은 높다고 평가된다.

    이 행장은 취임 첫해인 지난해 사상 최대 순이익(3조4766억 원)을 기록하면서 취임 당시 영업력에 대한 의문을 불식했다. 또 첫 외환은행 출신 하나은행장으로서 자산관리, 연금 사업에 더해 글로벌 분야 경쟁력을 한층 높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더욱이 올해 신한은행과 하나은행에서는 횡령, 배임, 부정 대출 등 대규모 금융사고가 발생하지 않았기에 두 은행장은 리스크 관리, 내부통제 역량 측면에서 높은 점수를 받을 전망이다.



    잇따른 금융사고 발생, 조병규·이석용 ‘적신호’

    조병규 우리은행장은 연이어 발생한 횡령·부당 대출 사고가 발목을 잡을 것으로 예측된다. 조 행장은 올해 상반기 1조6735억 원의 순이익으로 반기 기준 역대 최대 실적을 내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그러나 대규모 금융사고가 잇따르며 현재 상황이 좋지 않다.

    특히 2년 사이 대규모 횡령 사건이 터져 충격을 안긴 것은 뼈아프다. 6월 우리은행 영업점에서 대출 신청서와 입금 관련 서류를 위조하는 방식으로 100억 원대의 고객 자금을 횡령했다. 2022년 우리은행 본점에서 700억 원 규모 횡령 사건이 발생한 지 불과 2년 만이다.

    ‌우리은행이 손태승 전 우리금융 회장의 친인척(차주)에게 350억 원대 규모의 부당 대출을 해준 사실도 적발됐다. 허위 증빙서류 제출, 부동산 담보가치 부족, 담보물 부재 등에도 신용도를 상향 평가해 수십억 원의 대출을 실행했다. 이로 인해 우리은행은 158억 원 상당의 피해를 봤다. 우리은행은 올해 초 이러한 부당 대출 사고를 인지해 관계자들을 징계 조치했으나, 금융감독원에는 따로 보고하지 않았다. 특히 이 사건은 지난해 7월 조 행장이 취임한 이후에도 이뤄진 것으로 파악돼 책임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 사건으로 우리은행은 금융감독원과 날을 세우고 있다. 8월 20일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에서 열린 임원 회의에서 이복현 금융감독원 원장은 우리은행·우리금융 경영진을 두고 “더는 신뢰할 수 없는 수준”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8월 25일에는 한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해 부당 대출 의혹에 대해 “법상 보고를 제때 안 한 것은 명확하게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한다”며 경영진 제재 가능성을 시사했다.

    이석용 농협은행장의 연임 여부는 실적보다는 농협중앙회-금융지주로 이어지는 지배구조가 핵심 변수다. 올해 3월 강호동 농협중앙회장이 취임하면서 자회사 가운데 핵심인 농협은행 수장이 바뀔 것이란 예측이 나온다. 이석준 NH농협금융지주 회장의 임기도 올해 말까지다. 농협은행장 가운데 ‘2+1년’ 연임을 한 사례가 없진 않지만 대개 2년으로 임기를 마치는 게 통상적이다. 올해 농협은행에서 총 네 차례의 횡령 사고가 적발된 것 역시 부담이다.

    그럼에도 이 행장이 임기 가운데 역대 최대 실적을 달성할 수 있다는 기대감은 임기 연장 가능성을 높일 수 있는 요소로 꼽힌다. 올해 상반기 농협은행의 순이익은 1조2667억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조2469억 원) 대비 개선됐다. 하반기에도 지난해 하반기 실적을 웃돌면 2년차에 1년차 실적을 넘어설 수 있다.

    9월 인선 작업 돌입… “모든 건 절차대로”

    [Gettyimage, 각 은행]

    [Gettyimage, 각 은행]

    한편 각 은행은 9월부터 차기 행장 후보군 추천과 검증 등 인선 작업을 시작한다. 금융당국이 지난해 말 발표한 ‘은행 지주와 은행 지배구조에 관한 모범 관행’에 따라 최고경영자(CEO) 경영 승계 절차를 임기 만료 3개월 전에 시작해야 하기 때문이다.

    금융지주는 은행장 선임을 위한 자회사대표이사후보추천위원회(자추위)를 구성하고 최종 은행장 후보를 추천한다. 은행 임원추천위원회는 후보들의 자격요건 등을 심사해 주주총회에 추천한다. 올해는 지배구조 모범 관행에 적시된 원칙에 따라 은행권에서 CEO 후보군 관리, 육성, 최종 선정 단계를 포괄하는 승계 계획을 마련하고 문서로 만들어야 한다. 실제 일부 금융지주는 연중 자추위와 관련된 회의를 4~7차례 열고 차기 CEO 후보군을 상시 관리하는 등 모범 관행 관련 절차를 강화하고 있다.

    CEO 자격요건을 구체화하는 것도 모범 관행 원칙이다. 금융감독원은 은행 중장기 경영전략과 비전에 적합한 CEO 자격요건을 구체적으로 정의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후보의 평가·검증 체계도 마련한다. 일부 은행은 후보 평가·검증 시 외부 전문가 활용 등의 계획을 제시했고, 대부분 은행은 세부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적합한 CEO 선임을 위해 내·외부 후보군에 대한 체계적 검증 절차도 마련하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자추위 등 이미 승계 절차가 정비돼 있으므로 첫 사례라 해서 절차상 어려움을 겪진 않을 것을 보인다”면서 “연임이든 교체든 절차대로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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