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1월호

 “개는 내게 인생 가르쳐준 스승”

[경제사상가 이건희 탐구]

  • 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입력2025-11-09 09:00:02

  • 글자크기 설정 닫기
    • 고국 그리운 소년, 반려견 이름도 ‘한국’

    • 개를 키우며 ‘진심의 힘’을 배우다

    • 한국 최초 안내견학교 문 열고 수시로 찾아

    • 안내견 재목? 자극에 둔감하고 차분해야

    • 10마리 교육 받으면 3~4마리 수료

    • 사랑을 나누는 사람들 ‘퍼피 워커’

    고(故) 이건희 회장이 시각장애인 안내견으로 세계에서 가장 많이 길러지는 리트리버 견종을 돌보는 모습. 동아DB

    고(故) 이건희 회장이 시각장애인 안내견으로 세계에서 가장 많이 길러지는 리트리버 견종을 돌보는 모습. 동아DB

    지난 호에 소개한 박태진 삼성화재 안내견학교 교장과 본격적으로 안내견 이야기를 시작했다.

    국제결혼은 물론 산후조리원까지

    흔히 안내견 사업이라고 하면 강아지를 잘 훈련해 (시각장애인) 파트너와 맺어주는 일을 생각합니다. 지난 대화에서 ‘남들이 선뜻 하기 힘든 진입장벽이 높은 사회공헌사업’이라고 했는데, 왜 그럴까요. 

    “제일 중요한 건 건강하고 머리도 좋고 성격 좋은 부모견(犬)을 확보하는 일입니다. 그래야 우수한 새끼들이 나올 가능성이 크죠. 그래서 다양한 부모견을 확보하려고 합니다. 우선적으로는 저희들이 키우는 강아지들 사이에서 교배를 시키지만 근친 위험이 있어 때로 해외 안내견 학교를 통해 국제결혼(?)도 시킵니다. 밖에서 우수한 종자를 갖고 와 키우기도 하고요. 

    새끼가 태어나면 이곳에 있는 산후조리원(?)에서 3개월간 엄마 젖을 먹이며 키웁니다. 유전자 검사도 하고 성격도 테스트합니다. 매년 60여 마리가 태어나는데 8주가량 지나면 퍼피 워커(puppy walker·안내견의 사회 적응을 돕는 자원봉사자) 가정에 1년간 보냅니다. 

    경기 용인에 위치한 삼성화재 안내견학교에 걸린 게시판. 용인=허문명 기자

    경기 용인에 위치한 삼성화재 안내견학교에 걸린 게시판. 용인=허문명 기자

    사람도 그렇지만 강아지도 생후 1년 이내 양육 환경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 시기 동안 얼마나 다양한 경험을 하고 얼마나 사랑을 많이 받고 자라느냐가 성격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죠. 퍼피 워커 가정에서 강아지를 돌보는 핵심도 다양한 장소에 많이 데리고 갈 것, 그리고 그 장소에서 좋은 경험을 하게 할 것, 두 가지로 요약됩니다.”



    퍼피 워커를 하겠다는 분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현재 6개월에서 1년가량 기다리는 상황입니다. 몇가지 조건이 있어요. 24시간 집중적으로 돌봐야 하기 때문에 맞벌이는 힘들고, 교육 때문에 이곳 안내견학교와 가까운 곳에 사셔야 해서 서울 경기 지역에 있는 분들로 제한됩니다. 너무 어린 자녀가 있는 곳도 안 됩니다. 이 기간 동안엔 사료비를 포함해 병원비와 각종 용품비를 저희가 지원합니다.

    이렇게 퍼피 워커에게서 키워진 강아지는 14개월이 되면 안내견학교로 보내집니다. 사람 나이로 스무 살 성년이 되는 것이니 대학교에 입학하는 것이라 보면 됩니다(웃음).”

    그는 퍼피 워커 교육도 중요한 일이라고 했다.

    “선진국 안내견학교들은 모두 민간 기관이어서 기부금으로 운영됩니다. 시민들의 소중한 한푼 한푼이 모여 운영되다 보니 효율이 중요할 수밖에 없어요. 그렇다 보니 교육에 많은 노하우가 있어요. 이런 노하우를 공유하니 안내견 훈련에 관한 한 저희만 한 전문가가 없지요.

    지금은 그런 경우가 없지만 초반에는 ‘내 식대로 키우면 안 되느냐’고 하신 분들이 있었어요. 하지만 어떤 개인도 저희보다 더 좋은 사회화를 시킬 수 없어요. 퍼피 워커 가정은 매달 저희에게 훈육 리포트도 내고 한 달에 한 번 저희가 방문도 합니다. 어떻게 보면 안내견학교는 강아지만 교육하는 곳이 아니죠.” 

    10마리 교육 받으면 3~4마리 수료

    퍼피 워커를 거쳐 이곳에서 본격적인 안내견 교육을 받아도 다 안내견이 되는 건 아니라면서요.

    “통계적으로 10마리 중에 3~4마리 정도입니다. 입학은 쉽지만 졸업이 어렵다고 볼 수 있지요(웃음)”

    안내견이 안 되는 아이들은 어디로 가나요.

    “반려견으로 일반 가정에 분양됩니다.”

    1년간 키워준 퍼피 워커 가정에서 다시 키우고 싶어 하지 않나요.

    “예전에는 드렸는데, 지금은 그렇게 하지 않고 있어요.” 

    왜죠.

    안내견학교가 있는 나라들을 세계지도에 표시해 놓았다. 주로 선진국들이다. 용인=허문명 기자

    안내견학교가 있는 나라들을 세계지도에 표시해 놓았다. 주로 선진국들이다. 용인=허문명 기자

    “퍼피 워커 기간이 끝나면 지원은 당연히 끊깁니다. 중간에 여러 가지 사정이 생기는 경우가 있고요. 저희로서도 그분들한테 부담을 드리는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맡기지 않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습니다. 다만 은퇴견이 된 경우에 그 강아지를 키워줬던 퍼피 워커 가정이 다시 원할 경우 반려견으로 데려갈 수 있어요. 어릴 때 키운 아이를 노후에 다시 만나 키우는 거죠. 이런 분들이 한 절반가량 됩니다. 

    1년을 놓고 볼 때 장차 부모견이 될 아이를 키워주는 자원봉사자 가족이 12~15, 퍼피 워커 가족이 70~80, 은퇴견을 맡는 가정이 40~50 가족 정도 됩니다. 매년 상시적으로 130~150곳의 자원봉사자 가족이 있다고 봐야죠. 이런 분들의 도움이 없으면 안내견 사업은 운영될 수 없습니다.”

    안내견 사업이 진입장벽이 높다는 말이 그 말이군요. 

    “이 사업에는 많은 요소가 필요합니다. 우선은 저희 같은 학교가 있어야 하지만 이걸 도와주는 시민사회가 없으면 안 됩니다. 그동안 안내견 사업이 이렇게 오랜 기간 지속된 데에는 정부와 지자체의 도움도 컸습니다.

    모든 사람이 다 개를 좋아할 수는 없잖아요. 특히 식당 같은 곳에서는 난처해하죠. 그런데 안내견들은 기차도 탈 수 있고, 식당도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런 법과 제도를 만들어준 국회의원들과 지자체 덕분이죠. 그리고 인도(人道) 같은 교통 인프라가 잘돼 있어야 해요. 후진국에서는 힘든 사업이죠. 

    아시아에서 안내견 사업을 하는 나라는 우리와 일본, 대만 정도예요. 중국, 홍콩, 싱가포르도 아직 잘 안되고 있습니다. 기후 요소도 있습니다. 동남아는 너무 덥고 하니까 활성화되기가 어렵습니다.”

    안내견 훈련이 이뤄지는 견사(犬舍)로 향했다. 견사 문을 열자 리트리버들이 꼬리를 흔들며 반겼다. 신기한 것은 낯선 사람이 들어왔는데도 짖지를 않았다.

    “사랑을 많이 받고 자라서 그렇습니다. 얘네들에게 이 세상은 불안과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즐거운 것으로 가득한 곳이에요. 퍼피 워커들의 헌신적인 돌봄 덕이죠. 안내견의 다수를 차지하는 품종인 리트리버는 종 자체가 워낙 낙천적이기도 하고요.”

    안내견학교 견사 내부. 짖는 강아지가 없었다. 오른쪽은 박태진 교장. 용인=허문명 기자

    안내견학교 견사 내부. 짖는 강아지가 없었다. 오른쪽은 박태진 교장. 용인=허문명 기자

    자극에 둔감하고 차분하면 안내견에 제격

    강아지들에게도 MBTI가 있나요(웃음).

    “MBTI까지는 아니더라도 성격이 다 다릅니다. 저는 강아지 성격을 파도에 비유합니다. 파도가 잔잔할 때 자극이 오면 어떤 아이는 흥분도가 높고 그 수치도 잘 안 떨어져요. 두려움이 많은 애들은 자극이 오면 겁쟁이로 변하죠. 성격이 좋다, 나쁘다의 개념이 아니라 안내견에 적합하냐, 그렇지 않으냐 하는 기준에서 말씀드리는 겁니다. 

    외부 자극에 둔감하고 차분한 아이들이 안내견으로 제격입니다. 너무 활발하거나 겁이 많으면 파트너들을 힘들게 하니까요. 훌륭한 훈련사는 훈련을 잘 하는 사람이 아니라 강아지를 딱 보는 순간, 안내견이 될 재목인지 아닌지를 골라내는 눈을 가진 사람입니다.”

    견사 한가운데에서 마침 훈련사 한 명이 안내견 한 마리를 데리고 클리커(딸깍 소리가 나는 도구) 트레이닝을 하고 있었다. 옆에 서 있던 박 교장의 설명이 이어졌다.

    먹을 것을 보고도 달려들지 않도록 하는 클리커 교육을 하는 모습. 용인=허문명 기자

    먹을 것을 보고도 달려들지 않도록 하는 클리커 교육을 하는 모습. 용인=허문명 기자

    “들어온 지 일주일 되는 아이예요. 길 안내를 해야 할 안내견들이 길을 걷다가 맛있는 게 보여 흥분하거나 덤비면 난처한 일이 되지요. 그래서 먹을 것을 봐도 흥분하지 않고 기다리는 것을 훈련하고 있어요.” 

    견사를 나와 다른 건물로 들어서니 학교 강의실 같은 교실이 많았다. 퍼피 워커 교육에서부터 시각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교육 같은 ‘사람 교육’이 이뤄지는 공간이라고 한다.

    안내견으로 성장한 강아지들은 어떻게 파트너들과 매칭이 되나요.

    “일일이 파트너 한분 한분 인터뷰합니다. 안내견의 임무는 반려견이 아니라 파트너들의 자활을 돕는 겁니다. 그래서 반드시 학교나 직장 같은 사회생활을 하셔야 해요. 물론 건강하셔야 하고요. 매칭할 때에는 궁합(?)도 봅니다. 사람에 따라 보폭의 넓이와 걷는 속도가 다 다르잖아요. 강아지를 대하는 태도도 스킨십을 좋아하는 분이 있는가 하면 어느 정도 거리 두기를 원하는 분 등 제각각이죠. 

    저희가 최소 3주에서 한 달가량을 파트너와 안내견이 함께 지내는 법을 교육하는데 이 기간 중 열흘은 이곳에서 함께 숙식을 하도록 돼있습니다. 방에서 강아지와 함께 자고 일어나며 안내견을 다루는 법에서부터 사료 먹이는 법, 배변과 배뇨를 도와주고 처리하는 법 등을 교육하죠.” 

    이렇게 초반 교육이 끝나면 직원들이 파트너가 사는 집 근처까지 출장을 가서 돕는다고 한다.

    “파트너 교육 한 달 중 마지막 2주는 전국 어디든 파트너 댁으로 직접 갑니다. 인근에 모텔을 잡아놓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강아지를 케어하는 걸 지켜보면서 교육합니다. 김예지 국민의힘 의원의 경우 미국 유학 중에 안내견을 배정받았는데 저희가 미국까지 출장을 갔습니다. 이후에도 1년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방문해 불편한 부분은 없는지, 강아지 상태는 어떤지 등을 정기적으로 체크합니다. 안내견과 오래 함께한 분들은 30년 가까이 총 서너 마리와 함께하신 분도 많아요.”

    시각장애인 파트너와 안내견이 함께 훈련받는 숙소. 용인=허문명 기자

    시각장애인 파트너와 안내견이 함께 훈련받는 숙소. 용인=허문명 기자

    은퇴 나이가 8~9살 사이라고 들었는데 좀 빠른 것 아닌가요.

    “강아지 입장에서는 건강에 아무런 문제가 없을 때 은퇴하는 것이 파트너를 도와주는 것이죠. 은퇴견의 노후를 함께할 자원봉사자 처지에서도 조금이라도 건강할 때 함께하는 게 좋지요.”

    안내견 숫자를 좀 늘려야 하지 않을까요. 

    “지금 신청하시면 2년가량 기다려야 하니까 조금 더 늘려야 되는 시점이긴 합니다만 마냥 늘릴 수는 없어요. 우리나라 시각장애인이 25만 명 정도이고, 실제로 안내견을 쓸 정도로 시력을 완전히 잃은 분이 4만여 명이라고 하는데, 이분들에게 아직은 일자리가 충분히 주어지지 않는 것 같아요. 시각장애인분들은 의사소통에 전혀 문제가 없기 때문에 일처리에 문제가 없어요. 저희 직장에도 계신데 전 직원 중에서 컴퓨터를 제일 잘 다룹니다.” 

    안내견을 배정받는 가정도 지원을 받나요.

    “사료비만 본인 부담이고, 병원비 등은 저희가 부담합니다. 은퇴견도 사료비만 견주 부담이고, 나머지는 다 저희가 부담해요.”

    안내견 수명이 긴 까닭

    그는 이 대목에서 안내견에 대한 오해가 있다고 했다.  

    “안내견을 불쌍하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어요. 뭔가 큰 수고를 한다는 느낌을 갖는 거죠. 하지만 사람 생각과 개의 생각은 다릅니다. 얘네들은 의무감이 없어요. 얼마 전 지하철 안에서 주인 옆자리 승객 발아래 잠들어 있는 안내견 모습이 사진으로 찍혀 공개된 적이 있어요. 댓글에 보니 ‘강아지가 얼마나 힘들면 지하철에서 저렇게 자겠느냐’ 하는 게 있던데, 이건 전혀 아닙니다. 

    안내견 훈련 시범을 하는 모습. 용인=허문명 기자

    안내견 훈련 시범을 하는 모습. 용인=허문명 기자

    어떤 동물도 불안하면 자지 못합니다. 스트레스가 전혀 없고 안전한 상태라는 확신이 들어야 눕지요. 사진에 나온 안내견은 지하철 안이 정말 편했던 겁니다. 게다가 자기 주인 앞도 아니고 타인의 발 앞에 누웠다는 건 그만큼 사람에 대한 경계심이 없다는 거죠. 저는 그 사진을 보며 마음에 안도가 왔어요. 

    여기 안내견 리트리버들 평균수명이 일반 리트리버들보다 2, 3년 긴 것만 봐도 삶의 행복도가 높다는 걸 보여주죠. 본능을 억제하고 스트레스를 받으면 당연히 단명하지요. 

    실제로 강아지 입장에서는 주인하고 24시간 같이 있지, 밖에 나가 산책하지, 사람들이 칭찬해 주지 정말 행복하지요. 그러니까 외국에서는 그렇게 기부금을 내는 거 아닐까요. 안내견 사업이 강아지를 학대하는 일이라면 헌금을 하겠습니까. 구조견이나 탐지견도 동물 학대라고 생각하는 건 오해입니다. 

    여기서 제가 질문을 하나 하고 싶습니다. 안내견이 어떻게 일을 하는지 생각해 본 적이 있나요?”

    글쎄요. 길 안내를 해주는 것 아닌가요.

    “길 안내를 강아지가 다 해주는 것같이 생각하는데 그건 아닙니다. 한마디로 내비게이션 역할은 사람이 하고, 강아지는 운전자 역할을 합니다. 

    시각장애인은 눈이 안보여도 촉감, 바람, 온도로 공간을 파악합니다. 예를 들어 매일 가는 지하철 역사 안으로 들어오면 익숙한 냄새와 공기가 있죠. 에스컬레이터 소리, 사람들 발걸음 소리를 들으며 아 여기는 내가 매일 가는 지하철이구나 인식합니다. 

    파트너들이 안내견한테 ‘에스컬레이터 찾아’ ‘횡단보도 앞에 서’ 이렇게 말하면 안내견들은 그렇게 하는 거죠. 시각장애인을 상징하는 흰색 지팡이를 사용한 보행과 안내견의 도움을 얻는 보행의 결정적 차이는 지팡이 보행자는 운전자와 내비게이션 역할을 인간이 다 하지만 안내견의 경우 사람이 내비게이션 역할만 하면 됩니다. 긴장이 훨씬 덜하지요. 파트너들이 안내견과 함께 걸으면서 이른바 ‘공상’이란 걸 할 수 있었다고 말씀하실 때 크게 공감한 적이 있습니다.”

    수시로 안내견학교 찾아가 경청

    한편 이건희 회장은 안내견에 대해서도 깊은 지식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안내견 사업을 진정으로 보람 있고 값진 일로 생각했다. 수시로 안내견학교를 찾아 도움을 받은 시각장애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마음이 평온했다고 한다. 그의 육성이다. 

    세상 한가운데로

    세상의 많은 일이 그렇듯 개를 맹인 안내견으로 활용하는 것 역시 우연히 발견되었다고 한다.

    제1차 세계대전 직후 독일의 한 의사가 시각장애인 부상병과 함께 병원의 정원을 걷고 있다가 긴급 연락을 받게 되었다. 그래서 자신의 셰퍼드를 환자에게 맡기고 자리를 떴는데, 잠시 후 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환자가 시각장애인이었기 때문에 피하지도 못한 채 비를 맞고 있을까 봐 걱정되어 황급히 돌아온 의사는 놀라운 장면을 목격하게 되었다.

    자신의 셰퍼드가 시각장애인 환자의 옷자락을 물고 비를 피할 수 있는 건물로 대피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이후 1923년 안내견 훈련센터가 독일 포츠담에 세워졌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안내견을 최초로 분양한 것은 1994년 삼성 안내견학교에서였다. 나는 틈이 나는 대로 안내견학교 직원들의 이야기를 즐겨 듣는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어느새 내 마음이 평온해져 있는 것을 깨닫는다. 

    자기 앞가림도 하기 힘든 각박한 시대라고 하지만, 아직도 구석진 어딘가에서는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고, 다른 사람의 느린 발걸음에 맞추기 위해 잠시 멈춰 기다릴 줄 아는 아름다운 사람들이 세상의 그늘을 환하게 밝히고 있다. 그들의 이야기를 전해 듣는 것만으로도 내 마음까지 따뜻하게 젖어온다.

    안내견학교 뒤편에 마련된 추모공원. 박태진 교장이 공원이 조성된 배경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위). 조각상 아래에는 세상을 떠난 안내견들의 이름이 빼곡하게 적혀 있다. 용인=허문명 기자

    안내견학교 뒤편에 마련된 추모공원. 박태진 교장이 공원이 조성된 배경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위). 조각상 아래에는 세상을 떠난 안내견들의 이름이 빼곡하게 적혀 있다. 용인=허문명 기자

    1996년 가을, 경희대 정외과 학생인 최대환 씨가 덕유산 향적봉을 등정했다고 한다. 보통 사람보다 네 배의 시간이 더 걸린 끝에 가까스로 오른 정상이었다. 그는 얌전하게 발치에 엎드려 몸을 쉬고 있던 ‘웅대’를 끌어안았다. 웅대가 아니었다면 꿈도 꾸지 못했을 산행이었다.

    그가 웅대를 처음 만난 것은 그해 여름이었다. 대학에 입학하고 보통 사람처럼 군대에 갔다가 녹내장을 앓게 되었는데, 외관상으로는 별 이상이 없어 보였지만 시신경이 위축되어 시력을 잃게 되는 무서운 병이었다. 2년 동안 안 가본 병원이 없었고, 안 써본 방법이 없었지만 결과는 실명이었다.

    대환 씨는 흰 지팡이에 의지해서 세상과 맞부딪쳤다. 눈이 멀지 않았을 때 지극히 정상이라고 생각되었던 세상이 시각장애인에게는 온통 장애물 투성이였다. 그제서야 시각장애인들 중에 왜 치아가 성한 사람이 없는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지팡이에 의지해서 걷다 보면 수없이 어딘가에 얼굴을 부딪치고 넘어져서 무릎이 깨졌다. 세상은 그에게 미로나 다름없었다.

    독한 마음으로 자신의 운명을 감당하겠노라 다짐했던 그는 하루에도 몇 번씩 절망을 거듭했다. 눈을 감고도 다닐 수 있던 집 앞 골목길조차도 쉽게 나설 엄두가 나지 않았던 것이다. 휴학했던 대학을 계속 다닐 자신도 없었다. 그 많은 강의실을 무슨 수로 찾아다닌단 말인가?

    어느 날, 그가 다니던 교회의 목사가 맹인 안내견이 있다는 말을 해주었다. 국내에는 안내견을 분양하는 곳이 없어 미국으로까지 연락을 취해 보았지만 헛일이었다. 그러던 차에 우리나라에도 맹인 안내견학교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는 용인의 안내견학교에서 한 달간 개와 함께 생활하는 훈련을 받았다. 그리고 웅대와 함께 세상으로 돌아온 것이다. 웅대는 그의 충실한 눈이 되어주었다. 물론 대학도 다시 다닐 수 있었다.

    웅대와 함께 생활하면서 세상에 대한 자신감을 회복했다. 그리고 그런 자신의 각오를 확인하는 의미에서 웅대와 함께하는 산행을 계획한 것이다. 웅대와 함께하는 산행은 시각장애인으로 남은 생을 살아가야 할 대환 씨의 세상에 대한 첫 도전이었다. 그날, 그는 웅대를 끌어안고 다짐했다. 웅대와 함께라면 자신도 세상과 부딪쳐보겠노라고. 

    시각장애인에게 안내견은 단순한 개가 아니다. 안내견은 힘겨운 상처를 안고 살아온 시각장애인과 마음을 나누는 친구이며, 시각장애인의 눈이고 발이다. 

    웅대가 그랬듯 안내견은 시각장애인을 세상으로 인도한다. 도로며 전철 같은 일상의 길에서부터 사람들의 따뜻하게 열린 마음에 이르는 길까지 시각장애인과 안내견은 세상의 모든 길을 함께 가는 진정한 동반자인 것이다.

    앞서 박 교장 말에 소개된 것처럼 퍼피 워커 가정에 대한 고마움을 담은 글도 있다. 

    안내견들에게 고마움을 표현한 각종 글과 사진. 용인=허문명 기자

    안내견들에게 고마움을 표현한 각종 글과 사진. 용인=허문명 기자

    사랑을 나누는 사람들 ‘퍼피 워커’

    생후 6, 7주 된 강아지는 일반 가정에 1년간 위탁되어 사회화 과정을 거친다. 이들 위탁 사육자들을 ‘퍼피 워커’라 하는데 전원 무보수자원 봉사자다. 

    어린 강아지가 안내견의 역할을 해낼 수 있도록 특별한 생활 습관을 형성해 주어야 하기 때문에 퍼피 워커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 그만큼 어렵기도 하다. 

    개가 좋다는 단순한 이유로 퍼피 워커 자원봉사를 하게 된 어떤 사람은 특별한 생활 지침 때문에 중도에서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힘들었다고 한다. 

    우선 봄가을로 하는 털갈이가 문제였다. 몸집이 크고 털도 많아 온 집안이 개털로 뒤덮일 지경이었다. 집 밖에 내놓고 키우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사람과 함께 생활해야 한다는 원칙 때문에 그럴 수도 없었다. 

    그럭저럭 온 집안에 흩날리는 털에 익숙해지고 났더니 이번에는 음식이 문제였다. 전에 애완견을 키울 때는 고기를 먹다가 몇 점 주기도 했는데 그러지 못하는 것도 고역이었다.

    정이 들어 예쁜 강아지가 식탁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먹고 싶어 하는데 마음대로 고기 한 점 줄 수 없으니 미안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했던 것이다. 

    그 외에도 모든 퍼피 워커들이 그만한 고통을 감수하고 강아지들을 맡아서 훌륭한 안내견 후보자로 길러주었다. 대소변 가리기 연습을 위해 걸레를 30개씩 준비해 둔 분도 있었고 , 아끼던 신발을 죄다 물어뜯겨 폐기 처분해야 했던 분도 있었으며, 화분이며 화장품을 수없이 버릴 수밖에 없었던 분도 있었다 . 

    탁자나 소파 등 가구를 죄다 물어뜯는 통에 나름대로 노하우가 생겼다며 자주 물어뜯는 곳에 겨자를 발라두면 효과가 있다고 정보를 알려주신 분도 있었고 , 심지어 퍼피 워킹을 끝마치기 위해 혼사를 늦춘 분도 있었다고 한다. 

    위탁 사육 기간 동안 예방접종 및 기본 사육 장구 등은 안내견 학교에서 무상으로 공급하고, 정기적으로 방문하여 건강과 성장 상태를 점검하지만 그래도 갑작스레 개가 아파 마음 고생, 몸 고생을 한 분들도 많았다. 

    신문에서 퍼피 워커를 모집한다는 광고를 보고 곧장 연락한 어떤 사람은 강아지 ‘별이’가 데려온 날부터 달라진 환경 탓인지 묽은 변을 쏟아내는 바람에 사흘 밤을 꼬박 지새웠다. 지쳐서 잠깐 잠들었던 그녀는 비척거리며 일어난 별이가 얼굴을 핥는 바람에 잠에서 깨어났다 . 사흘 밤 잠 못 잔 것은 생각지도 않고 그녀는 건강을 되찾은 별이가 그저 고맙기만 했단다. 

    장난기가 심한 별이와 함께 있을 때는 스타킹도 신지 못했던 그녀는 눈물범벅이 되어 별이를 돌려준 후에도 하루가 멀다 하고 안부 전화를 걸어 왔다고 한다. 이런 분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안내견 사업을 지속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삼성안내견학교 최초의 퍼피 워커는 삼성 직원인 남편을 통해 이 사업을 알고 자원한 사람이었다. 그녀는 일본에서 공부할 때 주변에서 퍼피 워킹하는 것을 보았다고 한다. 우리나라에도 그런 게 있다는 것을 알고는 곧바로 연락을 해온 것이다. 

    그녀의 사랑 덕에 강아지 ‘단비’는 3개월 만에 몸무게가 10kg이나 늘었다 . 반면 그녀의 몸무게는 2kg이나 줄었다 . 그만큼 돌보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1년 후 단비와 정이 듬뿍 든 그녀는 눈물을 글썽이며 단비를 돌려보냈다. 살까지 빠져가며 단비를 잘 돌봐준 그녀는 오히려 “사랑을 나누는 삶은 행복하다는 것을 배웠다”며 고마워했다. 그녀가 한 그 말을 그 후에도 대부분의 퍼피 워커들에게 다시 들었다. 

    그분들을 직접 뵌 적은 없지만 늘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 그분들이 사랑과 정성으로 개를 키워준 것은 물론이거니와 , 그분들을 통해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안내견을 이해하고 사랑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 효과는 수억을 들인 광고 못지않다. 그것도 마음 깊숙한 곳에서 우러난 사랑으로 한 일이 아닌가 ? 

    그분들을 통해 이기적인 것만 같은 우리 사회 곳곳에 소리 없이 사랑을 나누고자 하는 아름다운 사람들이 무수히 많다는 것을 알았다. 뭐니 뭐니 해도 아직 이 땅은 살 만한 곳이다.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