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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의 압박이냐, 김정일의 돌격이냐

北·美의 북핵 게임

부시의 압박이냐, 김정일의 돌격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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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국은 경수로 공사 중단시키고 重油발전소로 대치할 것”
  • ● 8억 달러에 이르는 경수로 건설대금 날리게 된 한국
  • ● 중유공급 중단 조치로 한순간에 북한 팔 비틀어버린 미국
  • ● 북한은 제네바 합의와 햇볕정책이라는 ‘낚시 바늘’을 삼켰다
  • ● 핵을 만들 수도, 만들지 않을 수도 없게 된 북한의 딜레마
  • ● 미국의 핸드 인 핸드 전술에 갇혀 버린 북한의 전격전 전술
  • ● 한국과 일본 자금으로 대 북한 개입전략 펼치려는 미국
  • ● 북한정권 섬멸 쪽으로 개정된 작전계획 5027
  • ● 김정일 향한 부시의 진심 “이놈을 생각하면 나는 배알이 뒤틀린다”
부시의 압박이냐, 김정일의 돌격이냐

94년 제네바 합의로 북한이 공사를 중단시킨 평북 태천의 20만kw급 원전 현장.<br> KEDO가 금호지구에 건설중인 경수로. 2003년 현재 25% 정도 공사진척도를 보이고 있다(아래).

“외교는 총성 없는 전쟁이다”

작금 한반도를 무대로 펼쳐지는 북핵 사태는 총성 없는 전쟁 그 자체다. 전쟁 중에서도 아주 속도 빠른 ‘전격전(電擊戰·Blitzkrieg)’이다.

2002년 12월12일 핵동결 해제 선언, 12월22일 핵시설 감시카메라 무력화와 봉인 제거, 12월31일 북한에 상주해온 IAEA(국제원자력기구) 사찰단 추방, 2003년 1월10일 NPT(핵확산금지조약) 탈퇴 선언 순으로 북한은 매우 빠르게 북핵 사태를 진전시켜왔기 때문이다.

전격전과 섬멸전

중간중간에 박의춘(朴義春) 러시아 주재 북한대사와 최진수(崔鎭洙) 중국 주재 북한대사, 한성렬 유엔주재 북한 차석대사 등이 기자회견을 갖고, “북한은 미사일 발사를 재개할 수 있다” “미국과 대화할 용의가 있다”는 등으로 초를 쳤으니, 북한이 펼치는 외교전은 더욱 빠르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전격전에 대한 명확한 정의는 없다. 일반적으로는 제2차 세계대전 때 프랑스 국경 부근에 123개의 사단을 배치한 독일군이, 이 국경선에 92개 사단을 중심으로 천하의 철벽(鐵壁)이라는 ‘마지노선’까지 구축한 프랑스군을 뚫고 들어가, 개전 한 달 만에 파리를 점령할 때 보여준 현란한 속도전을 가리키는 말로 이해한다.

1941년 12월7일 일본군의 진주만 습격과 개전 3일 만에 서울을 점령한 1950년 6월25일의 북한군 남침도 전격전의 범주에 들어갈 수가 있을 것이다.

전격전의 성패는 보급 능력에 의해 결정된다. 전차와 장갑차 등 기동장비는 방어망을 뚫는 데 전력해야 하므로, 많은 보급품을 싣지 못한다. 제 몸 하나 재빨리 놀리는 데 필요한 기름과 적의 방어망을 궤멸시킬 포탄, 그리고 승조원들이 먹고 마실 음식만 갖고 덤비는 것이다.

이러한 전차와 장갑차의 뒤를 비무장에 가까운 보급차량이 따라가며 즉시즉시 보급을 해준다. 보급망이 이어지고 피로해진 승조원을 제때에 교체할 수만 있다면, 기동부대는 시간당 평균 10여 ㎞씩 하루에 240여 ㎞를 돌파하는 놀라운 속도전을 펼칠 수 있다.

그러나 보급이 끊어지면 전선을 돌파한 전차와 장갑차는 ‘독 안에 든 쥐’가 되고 만다. 상대는 기름과 포탄과 식량이 떨어진 기동부대를 물샐 틈 없이 포위해 궤멸시키는 ‘섬멸전(殲滅戰)’을 구사한다.

‘모 아니면 도’. 전격전은 섬멸을 당할 수 있다는 부담을 안고 총력을 다해 펼치는 작전술이다. “전격전이냐 섬멸전이냐.” 비록 외교전의 형태이긴 하지만, 최근 북핵사태가 보여준 현상은 이것이다.

물 건너간 2003년 경수로 완공

이 싸움의 향방을 예측하려면 사태가 발생한 원인부터 살펴보아야 한다. 1994년 10월 미국과 북한은 북한의 모든 핵시설을 동결시키는 대신 미국은 KEDO(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를 만들어 2003년까지 북한 금호지구에 경수로 2기를 지어주기로 약속했다(제네바 합의). 그런데 지금의 금호지구 사정을 보면 ‘죽었다 깨어나도’ 2003년까지는 경수로 2기를 완성할 수가 없다. 공사 진척도가 25% 정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벌어진 원전 공사였으면 공기 단축을 거듭해 지금쯤은 시험 가동을 하고 있었을 시간이다. 그런데 금호 현장에는 이제 겨우 원자로를 설치할 격납 건물의 뼈대가 올라가고 있다. 왜 이렇게 지지부진한 것일까.

KEDO 대표로 금호지구에 1년을 상주했던 한 외교관은 그 이유를 북한의 ‘몰상식한 자본주의’ 탓으로 돌렸다.

“KEDO와 KEDO로부터 공사를 하청 받은 한국수력원자력(주) 등 회사들은 북한인을 노동자로 고용하려고 했다. 북한도 이를 원했다. 그런데 임금에서 합의점이 나오지 않았다. KEDO와 하청회사들이 북한 평균보다는 후한 임금을 제시했으나, 북한은 한국인 수준의 임금을 요구했다.

여기서 타협점이 나오지 않아 KEDO와 하청회사들은 애초 북한측에 제시했던 것보다 임금이 싼 우크라이나 노동자를 데려오기도 했다. 사사건건 이런 식으로 싸우다 보니 공사 속도가 늦어지게 되었다. 북한은 사회주의 국가라고 하는데 자본주의 국가보다 더 ‘돈독’이 올라 있다.”

금호지구의 공사상황은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에게도 보고되었다. 김정일은 1998년 조총련 대표를 만난 자리에서 “금호지구에 와서 일하는 남조선 놈들을 보면, 깝진깝진하며 건설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다가는 증손자를 볼 때까지 일할 것 같습니다”라며 불만을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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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정훈 h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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