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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의 전쟁’ 잣대로 본 이라크 침공 4년

개전에서 종전까지, 어디에도 정당성은 없었다

‘정의의 전쟁’ 잣대로 본 이라크 침공 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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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한 지 벌써 4년. 그러나 이라크의 혼란상은 변한 것이 없다. 무엇이 문제인가. 근본적으로, 미국은 이라크에서 과연 정의의 전쟁을 수행했는가. 뒤늦게라도 전쟁을 정당하게 마무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정의의 전쟁’ 잣대로 본 이라크 침공 4년
2003년 3월19일 미국이 바그다드에 대규모 공습을 시작함으로써 이라크의 비극이 벌어진 뒤 벌써 4년이 흘렀다. 지금 이라크는 더는 나빠질 것이 없을 정도로 열악한 상황이다. 갖가지 유혈사태로 말미암아 이라크 사람은 하루 평균 100명, 한 달에 3000명쯤 희생당하고 있다. 미국이 지출하는 전쟁비용도 천문학적이다. 한 달에 100억달러 가까이 지출하는 것으로 집계된다. 이와 관련, 미국 군사(軍史) 전문가인 리처드 가브리엘(다니엘 웹스터대 교수)의 지적은 눈여겨볼 만하다.

“일반적으로 국가는 전쟁을 치르면서 돈이 얼마나 들었고 사상자가 몇 명인지에 관심을 둔다. 그러나 (전쟁에 휘말린) 개개인이 얼마나 정신적인 고통을 겪고 있는지에 대해선 그다지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인간’을 기준으로 전쟁비용을 계산한다면, 전쟁이 남긴 정신적 상흔이 가장 비싼 비용이라는 게 가브리엘의 지적이다. 적의 포화에 팔다리가 부러진 부상병보다 눈에 안 보이는 정신적 상처(외상후 스트레스 증후군·PTSD)를 더 심각하게 여겨야 한다. 전투원뿐만이 아니다. 파괴력 높은 살상무기 탓에 전후방이 따로 없는 현대 전쟁의 회오리에 민간인까지 휘말려 고통을 받는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은 21세기를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정의의 전쟁(just war)이란 과연 어떠한 것인가’라는 화두를 던졌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미국이 ‘정의의 전쟁’을 벌인다고 주장해왔다. 반면 비판적인 사람들은 그 전쟁이 정의의 전쟁 요건에 들어맞는 것이 거의 없다고 지적해왔다. 독일 철학자 위르겐 하버마스는 “미국의 이라크 침공은 국제법을 패권주의 정치학으로 갈음하는 뚜렷한 일탈행위”라고 비판했다.

미국의 부시 행정부는 제2차 걸프전쟁(미국-이라크전쟁, 2003년)이 ‘테러와의 전쟁’ 성격을 지닌 아프간전쟁의 연장선에 있다고 주장해왔다. 부시 대통령의 세계관은 미국이 9·11테러를 당한 뒤 벌이는 ‘테러와의 전쟁’은 ‘정의로운 전쟁’이라는 것이다. 그는 기회 있을 때마다 “우리는 이라크에서 테러와 전쟁을 벌이고 있다”며 알 카에다 요원들이 이라크에서 활동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도덕신학자 케네스 하임스(워싱턴 가톨릭신학대 교수)는 “이는 침략의 정당화 구실에 지나지 않는다”고 반론을 폈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테러와의 전쟁으로 볼 수 있을 것인가. 미국의 안보 전문가인 제프리 리코드는 미 육군대학 웹사이트에 발표한 글에서 “알 카에다의 위협과 이라크 사담 후세인 체제의 위협의 차이점을 구별하지 않고 뭉뚱그려 하나로 파악하는 기본적인 전략적 오류를 저질렀다”고 지적했다. 나아가 “유엔 경제제재와 비행금지 구역 설정 등으로 사담 후세인 체제에 대한 억제가 가능했음에도 불필요한 예방전쟁을 일으킴에 따라 중동지역에 새로운 테러 전선이 형성되는 결과를 낳았다”고 꼬집었다.

미국은 후세인 체제의 변화(정확히는 ‘체제붕괴’)를 꾀했다. 체제변화를 위한 선제공격은 정의의 전쟁 요건에 맞는가. 미국은 이라크를 북한, 이란과 더불어 미국의 안보를 위협하는 ‘악의 축’으로 규정했다. 북한은 이라크보다 훨씬 앞선 미사일과 핵무기 제조기술을 지녔고, 이란은 이라크보다 사정거리가 더 긴 미사일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미국의 안보를 위협하는 세력을 쳐야 한다며 이라크를 침공한 것은 충분한 설명이 되지 못한다(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숨겨진 요인으로는 석유가 꼽힌다). 그럼에도 부시 행정부와 네오콘(신보수주의자) 진영에서는 “이라크 침공은 정의의 전쟁”이라는 논리를 고집해왔다.

‘정의의 전쟁’은 이론일 뿐

정의의 전쟁론은 서양에서나 동양에서나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서양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 동양에서는 춘추전국시대의 공자와 맹자로 거슬러 올라간다. 많은 정의의 전쟁론자가 “전쟁은 이렇게 치러야 정의롭다”고 설파했고 그 말을 듣는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런 전쟁론은 어디까지나 이론에 그쳤다.

현실의 전쟁은 살이 찢어지고 뼈가 부서지는 잔혹함 속에서 전사들이 저마다 생존을 위해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상대를 죽여야 했다. 병사들에겐 생존이, 지도자들에겐 승리가 중요했기에 정의의 전쟁론은 부차적인 것, 아니면 승리를 치장하고 살육과 파괴행위를 덮는 이론적 도구에 지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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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명 국제분쟁 전문기자, 정치학박사 kimsphot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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