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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케이트 결혼 英 침체 관광산업 · 노쇠 왕실 살렸다

영국 왕실 결혼의 정치경제학

윌리엄-케이트 결혼 英 침체 관광산업 · 노쇠 왕실 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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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세계 20억 시청자를 사로잡은 한 시간짜리 결혼 드라마는 영국 관광산업의 먹구름을 걷었고, 스러져가던 왕실 재정에도 밝은 빛을 비추었다. 평민 케이트와 왕자 윌리엄의 결혼은 군주제에 회의적이던 영국민의 생각을 바꿔놓았다.
  • 그러나 결혼과 이혼의 역사로 점철된 왕실에 과연 지속가능한 미래가 펼쳐질까.
윌리엄-케이트 결혼 英 침체 관광산업 · 노쇠 왕실 살렸다
잔치는 끝났다. 영국 왕실의 전통에 따라 케이트 미들턴, 아니 케임브리지 공작 부인(Duchess of Cambridge)의 웨딩 부케는 결혼식이 열렸던 웨스트민스터 사원으로 돌아와 무명용사의 묘 앞에 다시 놓여졌다. 무명용사의 묘에 부케를 가져다놓는 것은 1923년 현재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어머니인 엘리자베스 모후가 남편인 조지 6세와 결혼하던 당시부터 내려온 전통이다. 전세계 수십억 인구를 열광시킨 21세기의 초대형 이벤트는 이렇게 막을 내렸다.

21세기판 신데렐라의 주인공이 된 캐서린 엘리자베스 미들턴은 세계 인구의 3분의 1이나 되는 20억 시청자의 시선을 한 몸에 받은 동화 속 주인공에서 공군 대위의 평범한 아내로 되돌아갔다. 결혼식 며칠 후 영국 신문이 게재한 케임브리지 공작 부인의 사진은 슈퍼마켓에서 쇼핑 카트를 미는 평범한 주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도대체 누구의 결혼식이 이처럼 많은 사람을 열광과 환호의 도가니로 몰아넣을 수 있을까. 4월29일 불과 한 시간 남짓 진행된, 지루해 보이는 영국 국교회의 혼인 예식은 전세계인의 관심을 이 저물어가는 섬나라로 집중시켰다. 이 사실만으로도 이번 로열 웨딩은 영국인들에게 커다란 선물을 안겨준 것이 분명하다.

발코니 키스 기다린 50만 인파

그만큼 영국인이 로열 웨딩에 갖는 관심도 유별났다. 우선 몇 가지 수치를 보자. 결혼식이 생중계된 시각에 BBC나 ITV를 시청한 영국인은 2400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됐다. 결혼식 당일 아침 전국적인 전력 소모 추이는 흥미로운 삽화를 보여준다. 결혼식과 마차 행진을 모두 마치고 로열 커플이 버킹엄궁 안으로 사라진 직후 전력 소모량이 갑자기 치솟았다.



영국 언론은 이를 텔레비전 앞에서 숨죽이고 이들 커플을 지켜보던 시청자들이 그제야 한숨 돌리고 차를 마시기 위해 커피포트를 동시에 켰기 때문으로 해석한다(영국인들이 얼마나 홍차를 즐겨 마시는지는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으리라). 100만개의 커피포트가 일제히 켜졌다는 그럴싸한 수치를 제시한 신문도 있었다.

반면 결혼식 후 공식 오찬이 진행되던 도중 윌리엄-케이트 커플이 버킹엄궁 발코니에 등장해 광장을 메운 관객에게 인사하고 키스를 나누던 순간 전력 소모량은 다시 급감했다. 모든 사람이 하던 일을 멈추고 다시 TV 앞으로 돌아왔다는 것이다.

로열 웨딩의 열성팬들은 물론 텔레비전 시청에 만족하지 않았다. 15분 정도의 마차 행진 (웨스트민스터 사원-버킹엄궁)을 보기 위해 수십만 명이 런던 중심가 곳곳을 메웠다. 그뿐 아니라 단 몇 초도 되지 않는 ‘발코니 키스’를 놓치지 않으려고 50만명이나 되는 인파가 버킹엄궁 광장 앞에서 어깨를 부딪치며 발을 동동 굴렀다.

좋은 자리를 차지하지 못한 시민들과 관광객들은 하이드 파크와 성 제임스 파크 등 중심가 대형 공원에 운집해 런던시에서 설치한 대형 스크린으로 생중계를 지켜보기도 했다. 결혼식 당일 이들 공원 주변에서 2파운드에 판매된 결혼식 프로그램 15만부는 삽시간에 동이 났다.

결혼식날 길거리 파티 5500건

현대 자본주의에서 ‘관심’은 곧 ‘소비’로 이어지는 법. 로열 웨딩에 대한 극성스러운 열기는 고스란히 경제적 효과로 나타났다. 컨설팅 업체 프라이스 워터하우스 쿠퍼스(PwC)는 로열 웨딩에 따른 관광객 증가로 인해 런던의 호텔과 레스토랑 등이 누릴 수 있는 추가 수입을 1억 파운드(약 1800억원) 이상으로 추계하기도 했다.

또 영국 소매업협회는 결혼식 당일 전국적으로 5억파운드 정도의 수익을 기록했다는 통계를 내놓았다. 평상시 하루 수익의 수백 배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소매점 매출에 큰 효자 노릇을 한 것은 영국인들의 거리 축제 문화다.

‘번팅(bunting)’이라고 하는 만국기 스타일의 깃발을 내걸어놓고 길거리에서 파티를 여는 것은 영국인의 오랜 전통이다. 다우닝가 10번지 총리 공관 앞에서도 예외 없이 길거리 파티가 열릴 정도였다. 심지어 동네 초등학교에서도 로열 웨딩을 축하하기 위한 길거리 파티가 줄을 이었다.

결혼식 당일 영국 전역에서는 대략 5500건의 길거리 파티가 열린 것으로 추산된다. 이런 소규모 파티로 길거리가 들썩거리면서 당연히 가장 짭짤한 수입을 올린 곳은 중소형 슈퍼마켓들이다. 각종 케이크나 스낵류에 ‘로열’자를 얹은 기획상품들은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말하자면 ‘미들턴 소시지롤’이나 ‘빅토리아 스펀지케이크’같은 먹을거리들이 인기상품 리스트의 맨 앞자리를 차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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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런던=성기영│워릭대 국제정치학 박사 sung.kiyou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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