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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나라 시리아의 눈물

죽음의 나라 시리아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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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리아는 흰개미에게 잠식당한 거대한 나무처럼 속이 비어가고 있다.
  • 상황이 이렇게 불리하게 돌아가는데도 바샤르 알 아사드 대통령은 여전히 국민은 자신을 지지한다고 말하고 있다.
  • 알 아사드의 이런 믿음이 무너지는 순간이 시리아에서 평화가 시작되는 때일 것이다.
지난해 3월 요르단과 인접한 시리아의 남부 국경도시 다라에서 채 17세가 안 된 청소년 열다섯이 장난삼아 담벼락에 낙서를 했다. 낙서 내용은 “시리아 국민은 정권의 전복을 원한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당시 아랍의 각 나라에서 유행하던 구호다. 아이들은 인터넷과 위성방송에서 주워들은 대로 아무 뜻 없이 글을 적었는데 비밀경찰이 이 녀석들을 신속히 잡아들였다. 비밀경찰은 시리아에서 무소불위의 힘을 가졌다. 독재정권의 버팀목이면서 국민에게는 공포의 대상이다. 부모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이 장난삼아 한 일이니 자식들을 석방해달라고 시위를 벌였다. 3월 15일이었다. 이 사건이 민주화 투쟁으로 이어질지는 당시에는 아무도 예상치 못했다.

지난해 4월 15일엔 아부 칼릴이라는 사람이 ‘시리아 다라청년그룹’이라는 블로그에 자신의 요구사항을 올렸다. 정권 교체 및 언론의 자유, 최저임금 보장 등 20여 가지였다. 칼릴의 요구사항은 곧 시위 현장의 구호가 됐다. ‘시리아 다라 청년그룹’의 한 멤버인 마지드는 “우리는 요구사항을 심사숙고 끝에 결정했다. 시위 현장에서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우리가 제안한 요구를 구호로 외치자 우리는 감격했다. 아마 시리아 국민 모두가 그것을 원했기 때문에 우리의 구호가 흘러나오게 되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연이어 일어난 시위에 당황한 바샤르 알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은 아버지에 이어 자신까지 내려오는 세습 과정에서 48년 동안 유지해온 국가비상사태법을 폐지했다. 국가비상사태법이란 계엄령과 비슷한 것으로 영장 없이도 통신망을 감청하고 보안 사범을 구속할 수 있게 하는 등 그간 시리아 정권이 국민의 자유를 억압하는 데 악용됐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긴급조치법과 비슷하다. 자신들을 옥죄던 법이 폐지됐다는 소식에 시리아 국민은 환호했고, 새로운 세상이 열릴 것으로 기대했다. 예상보다 시리아의 민주화가 빨리 다가오는 듯했다. 하지만 이러한 기대는 비상사태법이 폐지되고 불과 하루 만에 무참히 깨졌다. 시리아 정부가 시위대에 무차별 발포를 다시 시작하면서 사태가 원점으로 되돌아간 것이다. 이후 시리아에서는 정부군의 잔인한 진압과 그에 맞서는 시리아 국민의 응전이 계속되고 있다.

벽창호 같은 나라

취재를 위해 시리아에 여러 차례 들어간 필자로서는 시리아인이 시위를 한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통제와 감시가 생활화돼 있어서 말 한마디 잘못하면 쥐도 새도 모르게 끌려가는 나라였다. 특히 정치적 성향이 담긴 발언이나 행동을 하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아무리 아랍 전반에 걸쳐 민주화 바람이 불어도 시리아에는 별 영향이 없을 줄 알았다. 그런 나라에서 시위가 일어난다 해도 얼마 못 가 정부군과 비밀경찰에게 이내 진압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만큼 시리아는 굳게 닫힌 벽창호 같은 나라였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시민들은 들불처럼 일어났다. 관영 방송은 처음에는 아무런 보도를 하지 않고 있다가 시위가 시작된 지 한 달 정도 지나 “무장 테러단체들이 국민을 선동하고 있으며 정부가 곧 진압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시리아 소식이 국제 뉴스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점차 줄어갈 때 유튜브에 충격적인 동영상이 올라왔다. 평화적으로 시위하는 이들에게 정부군이 무차별 총격을 가하는 장면이 그것이다. 동영상 속 풍경은 여기저기 시신과 신발이 흩어져 있고, 비명이 난무하는 가운데 시민들은 이리저리 도망가고 있었다. 대부분 비전문가가 휴대전화 카메라나 홈비디오로 촬영한 조잡한 영상이었지만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정부군이 사살한 시신 수십 구가 길거리에 방치되고 있었으며 아이들까지 학살당하는 놀라운 영상도 올라왔다. 트위터를 통해서도 시리아의 시위소식이 전해졌다. 어느 지역에 시위군중이 몇 명 모였으며 정부군에게 몇 명이 사살됐는지 같은 사항을 실시간으로 소상하게 전했다.

시위를 촉발한 원인 중 하나는 위성방송과 인터넷, 휴대전화 등 정보통신 기술의 발달이다. 이전에는 관제 언론이 전하는 세상이 시민들이 아는 세상의 모든 것이었다. 남부 도시 다라에 사는 청년 아하마드 사르프(24)는 “1년 전 위성방송에서 파업을 하고 정부를 향해 시위를 하는 프랑스 사람을 본 적 있다. 그때 나는 충격을 받았다. 정부 관계자들에게 저렇게 불만을 표시해도 프랑스에서는 용납되는구나, 프랑스 정부는 그 사람들을 잡아가두거나 죽이지 않는구나 하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리고 프랑스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도 똑같다는 사실을 파악했다. 오직 우리 시리아 사람만 엉뚱한 세상에서 살고 있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시리아의 1인당 GNP(국내총생산)는 3000달러에 못 미친다. 인플레이션이 날로 심해져 돈의 가치가 떨어지고 물가는 오르고 있다. 다른 나라의 잘사는 모습을 위성방송이나 인터넷을 통해 보면서 시리아 국민은 괴리감을 느꼈다. 지난해 4월 시리아 북서부고속도로 한가운데서 검정색 히잡을 두른 여성 수천 명이 모여 길을 막고 시위를 했다. 이들의 요구는 빵 값을 내려달라는 것이었다. 여성이 모여 정부에 무언가 요구한다는 것은 시리아에서 처음 있는 일이었다. 시위대는 대부분 가정주부들로 생활비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빵 값이 올라 살기 힘들어 시위에 나선 것이다. 이 시위를 두고 한 시리아 정부 관리는 “세상이 얼마나 말세면 여자들이 고속도로를 막고 시위를 합니까? 저 여자들은 불순분자이고 나쁜 사람입니다”라고 했다. 하지만 이 시위에 참가했던 나디아(29)는 “우리는 나쁜 사람이 아니다. 오죽했으면 우리가 거리에 나왔겠는가. 정부는 우리의 말을 전혀 들어주지 않고 체포하는 일에만 바쁘다”고 말했다. 주부들은 체포돼 끌려가면서도 “우리는 아이들을 굶겨 죽일 수 없다”고 울부짖었다.

2대에 걸친 세습 독재

시리아는 2대에 걸친 세습 독재 국가다. 올해 46세인 알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은 1970년 무혈 쿠데타로 권력을 쥔 부친 하페즈 알 아사드 전 대통령의 둘째 아들이다. 학창시절 그는 조용한 성격의 모범생이었다. 알 아사드는 영국의 한 의대로 진학해 웨스턴 안과병원에서 전문의로 일했다. 그가 안과를 택한 것은 ‘끔찍하게 여기는 피를 보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었다. 그는 순수한 의사였고 평범한 영국인의 삶을 누리고 있었다. 그러나 아버지에게 대권을 물려받은 후 모든 게 바뀌었다. 잔혹한 독재로 시리아를 통치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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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미│분쟁지역 전문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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