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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탄일성(兩彈一星)으로 체제안정 시리아 전략으로 통일대전(統一大戰)”

김정은과 新권력파의 구상

  • 송홍근 기자|carrot@donga.com

“양탄일성(兩彈一星)으로 체제안정 시리아 전략으로 통일대전(統一大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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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말이 안 된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착잡하다. 빨치산 가계가 어떻게 날아가나. 김정일 충신들이 다 제거되고 있다. 신(新)권력파가 세긴 센 모양이다. 핵실험? 이제강 계열의 성향을 볼 때 반드시 할 것이다.”
지난해 12월 1일, 북한 노동당 중앙당에서 간부로 일하다 한국으로 망명한 인사가 11월 7일 사망한 이을설(북한군 원수)의 장의위원회 명단에서 최현의 아들 최룡해(노동당 비서)와 오진우의 아들 오일정(노동당 민방위부장)이 누락된 것을 두고 한 말이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사회주의 나라에서는 장의위원 명단이 대단한 것이다. 빨치산 아들 최룡해와 오일정이 빨치산 1세대인 이을설의 장의위원 명단에서 빠진 것은 아버지 장례식 때 아들을 파문한 것과 같다. 북한에선 계파라는 게 존재할 수 없지만 억지로 꼽는다면 ‘이제강계(系)’는 있다.”
최현과 오진우는 김일성의 빨치산 동지다. 최룡해는, 지난해 12월 29일 교통사고로 사망했다고 북한 당국이 밝힌 김양건(노동당 비서 겸 통일전선부장)의 장의위원 명단에는 포함됐으나 장례식에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1월 14일 석달 만에 공식 활동을 재개한 최룡해는 그간 혁명화 교육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공포통치의 효용성

북한은 1월 6일 “수소폭탄 실험에 성공했다”고 주장했다. 정보당국은 수소폭탄의 전 단계인 증폭핵분열탄으로 보인다면서, 폭발력을 고려할 때 그것도 실패한 것으로 봐야 한다는 견해를 내놓았다. 증폭핵분열탄은 수소폭탄으로 가는 중간 단계다. 북한이 핵무기의 소형화, 다종화, 경량화 시도를 계속해왔고 그 나름의 성과를 거둔 것이다. 냉정하게 볼 때 수소폭탄 문턱까지 갔다고 할 수 있다.
김정은은 김정일보다 공격적이면서 도발적이다. 김정은 집권 후 두 차례 핵실험(2013년 2월, 2016년 1월)이 진행됐다. 김정은과 북한의 권력집단은 도대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 걸까.
김정일 사망(2011년 12월 17일) 이후 북한의 권력집단 범위는 축소돼왔다. 김정일이 분할통치(divide and rule) 방식으로 세력 간 견제를 도모하면서 권력을 유지했다면, 김정은은 공포통치를 통해 권력을 강화했다. 장성택(노동당 행정부장)과 현영철(인민무력부장)을 처형한 것이 대표적이다. 김병연 서울대 교수(경제학)의 견해는 이렇다.
“김정은은 권력의 메커니즘을 잘 안다. 공포통치의 힘은 다음 차례가 누군지 알 수 없는 임의성과 처벌의 잔인성에서 나온다. 독재정권의 공포통치는 단기적으로 정권을 안정시킨다.”
김정일 시대의 북한을 장성택, 이제강(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의 정책 대결로 보는 시각이 있다. 2010년 6월 이제강이 교통사고로 사망하자 장성택 배후설이 나돈 까닭이다. 소련계와 연안계가 김일성 거세를 시도한 1956년 8월 종파사건 이후 북한에서 계파나 종파는 존재할 수 없다. 장성택이 2013년 12월 처형될 때의 죄목도 반당반혁명종파분자였다. 장성택은 알려졌듯 친(親)중국 성향을 보인 반면 이제강 계열은 민족주의 성향이 강한 공산주의자들이다.
2014년 4월 26일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이던 황병서가 북한군 총정치국장에 임명된 것으로 이제강 계열의 권력 핵심화가 완성된 것으로 보인다. 총정치국장이던 최룡해는 노동당 근로단체 비서로 사실상 좌천됐다. 김정은 집권 이후 황병서와 조연준, 김경옥(조직지도부 제1부부장), 조직지도부 출신인 이재일(선전선동부 제1부부장), 조용원(조직지도부 부부장)이 실세로 떠올랐다. 이제강 계열이 득세한 것이다. 특히 조연준의 역할에 주목하는 전문가가 많다.



黨中黨의 등장

이제강 계열과 선군군부는 1990년대 말과 2000년대 초 김정은의 생모인 고영희 우상화를 시도하는 등 오래전부터 김정은의 우군 격이었다. 장성택이 2004년 혁명화 교육을 받으면서 실각한 것도 이제강 계열의 일시적 승리라는 분석이 많다. 2007년 장성택이 노동당 행정부장으로 복귀하면서 조직지도부의 권한 중 상당 부분이 행정부로 이관된다. 상황이 역전된 것이다. 박형중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의 가설은 이렇다.
“장성택은 조직지도부와 군부를 견제하는 역할을 했다. 김정일은 김정은의 후계 구축이 진행되는 동안 조직지도부-선군군부 계열의 인물을 중용하지 않았다. 장성택 세력의 권력 확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됐으며 장성택 개인이 관장하는 권력과 이권도 팽창했다. 김정일이 사망하면서 장성택 권력의 근원이 소멸됐다. 김정은이 집권하면서 장성택과 대척점에 있던 이제강 계열의 인물이 재득세했다.”





황병서는 1990년대 후반 이제강 계열이 김정은을 후계자로 내정하기 위한 작업을 추진할 때 고영희와 손발을 맞춘 대표적 인물로 알려져 있다. 김정은 시대의 조직지도부는 당중당(黨中黨)의 성격을 지녔다. 민족주의 성향이 강한 공산주의자들이 다른 인사들을 거세하면서 김정은 주변을 둘러싼 셈이다. 조직지도부+선군군부 조합이 신(新)권력파로 등장했다고 하겠다. 김정은과 신권력파의 구상을 크게 3갈래로 나눠 분석해볼 수 있다.
첫째, 중국이 1960년대 이뤄낸 ‘양탄일성(兩彈一星, 원자폭탄·수소폭탄과 인공위성)’을 답습해 독재체제의 안정을 이루는 것이다. 중국은 1964년 10월 첫 핵실험을 한 후 1966년 5월 강화형 핵무기, 1967년 6월 수소폭탄 시험에 성공했다. 중국은 양탄일성을 완성한 후 미국과의 관계 개선에도 성공했다. 1971년 헨리 키신저가 특사로 베이징을 방문한 후 이듬해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방중해 미중관계가 정상화된다. 중소 분쟁 등으로 인해 중국은 현재의 북한처럼 고립돼 있었다.  
북한은 수소폭탄 실험에 성공했다고 주장하면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 ①핵 국가의 반열에 당당히 올랐다. ②핵 실험을 한 것은 미국에 대한 자위책이다 ③먼저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을 것이며 어떤 경우에도 관련 수단과 기술을 이전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이 가운데 ③이 핵심이자 워싱턴에 보내는 메시지다. ‘선제 불사용’과 ‘확산 방지’는 NPT(핵확산금지조약)에서 핵보유국(미국 영국 프랑스 중국 러시아)에 부과된 핵심 의무다. 북한의 성명은 한마디로 핵보유국 대접을 해달라는 것이다.
김정은과 북한 신권력파의 의도는 “먼저 사용하지도, 수출하지도 않을 것”임을 전제로 북미 교섭에 나서 국교 정상화를 통해 기왕의 핵무기를 가진 채 체제 안정을 보장받겠다는 것이다.
중국이 선례를 남긴 양탄일성의 길은 북한과는 부합하지 않는 측면이 많다. 베이징이 6·25전쟁에 참전을 결정하고 대만과의 긴장을 조성한 이유 중에는 소련으로부터 핵 기술을 이전받겠다는 의도도 있었다. 반면 모스크바는 중국이 핵 무력을 갖추는 것을 원하지 않았으며, 중소 간 이념대결이 벌어지면서 중국은 핵무기 독자 개발에 나섰다. 미국은 소련과의 냉전에서 승리하려면 중국과의 관계 개선이 필요했다. 미중 데탕트는 체제 경쟁에서 미국이 소련에 승리하는 데도 영향을 미쳤다.


장량 중국청년정치학원 객좌교수는 “북한이 전략적 판단을 잘못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북한이 양탄일성을 가진다 한들 그들의 바람대로 미국이 평화협정을 맺어 북한 체제를 보장해줄 까닭이 없다. 1972년의 중국과 2016년의 북한은 다르다. 미국은 소련을 견제하고자 중국이 필요했다. 북한은 쓸 데가 없다. 북한으로 한국을 흔드나, 아니면 중국을 흔드나. 미국은 북한 문제를 앞장서서 해결할 의지가 없다. 북한 핵은 현재 수준에서 미국에 실질적 위협이 되지 않는다. 북한의 핵실험으로 인해 미국이 원하는 대로 한미일 공조가 오히려 강화될 것이다. 중국 포위 측면에서 워싱턴에 득이 되는 것이다. 거꾸로 중국은 북한이 도발하면서 대(對)한반도 정책에서 심각한 딜레마를 갖게 됐다.”
다른 견해도 있다.
“6·25전쟁을 끝내자는 논의에 거물 현역 의원들이 뛰어들었다. 주목할 대목이다. 지난해 7월 27일 한국전 참전용사 출신 미국 하원의원 3명이 ‘한국전쟁 종식 결의안’을 발의했다. 나는 이 결의안이 오바마 정부의 대북관계 시작점이 될 것으로 짐작한다. 국가 간 정상적인 관계의 첫 단추가 연락사무소일 것이다 어느 날 갑자기 미·북 간 연락사무소를 개설할 수도 있다.”(워싱턴 조야 사정에 밝은 것으로 알려진 재미 시민활동가 김동석 시민참여센터 상임이사, 월간중앙 2015년 12월호 참조)  
워싱턴의 친북 로비스트들은 북한과 미국이 평화협정을 맺어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바꾸자고 주장해왔다. 북한 또한 4차 핵실험 후 핵 기술의 비확산을 강조하면서 워싱턴을 향해 평화협정 공세를 펼치고 있다. 북한이 핵무기를 가졌든, 그렇지 않든 핵 보유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게 그간 미국의 일관된 자세다.


先안보, 後경제

둘째, 김정은과 북한 신권력파는 핵·경제 병진 정책으로 체제안정과 경제발전을 동시에 이뤄내려고 한다. 병진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만 ‘선(先)안보, 후(後)경제’ 구상이라고 봐야 한다. 다수의 한반도 전문가는 이를 “체제 유지가 핵심 목표인 북한 독재정권 처지에서 보면 합리적 선택”이라고 본다. 체제 안보를 확보해야 마음 놓고 경제 발전에 나설 수 있다. 중국도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통해 고립무원의 처지에서 벗어난 후 1978년 개혁·개방에 나섰다.
김정은과 신권력파는 중국을 상대로도 민족주의 성향을 보인다. 김정일은 사망하기 직전 1년 동안 3차례나 방중했다. 중국과의 관계가 북한의 안보에 중요하다고 본 것이다. 반면 김정은은 김정일 사후 4년 동안 중국을 단 한 차례도 찾지 않았다. 지난해 12월 12일 베이징 공연 예정 당일 모란봉 악단을 철수시키는 등 감정적 대응까지 했다.  
중국에 주재하는 외교부 당국자는 “김정은 집권 이후 북한 내부에서 반중 정서가 상당히 고조됐다. 반면 한국과 중국은 항일전승 열병식에 박근혜 대통령이 참석하는 등 가까워졌다. 중국과 감정적으로 등지는 모습까지 보인 것은 북한의 전략적 실패로 보인다”고 평했다.   
2006년 10월 1차, 2009년 5월 2차, 2013년 2월 3차 핵실험 이후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효용은 크지 않았다.
“3차 핵실험 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제재에도 북한의 경제 사정은 상대적으로 호전됐다는 게 다수 북한 경제 전문가의 평가다. 대북 확성기 방송도 북한 지도부를 불편하게 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핵 포기를 이끌어낼 만큼의 고통을 주는 것은 아니다.”(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연구전략실장)
북한 경제는 북중 무역이라는 ‘숨구멍’을 통해 유지돼왔다. 중국이 원유 공급을 끊어버리면 북한 경제는 무너질 수밖에 없다. 문제는 중국이 북한의 붕괴를 원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북한이 혼란에 빠지면 중국의 안정도 위협받는다. 동북 3성의 경제도 타격을 입는다.
난민 유입, 미군 개입, 일본 자위대 출병 등으로 정세가 출렁이는 것을 베이징은 원하지 않는다. 아직 미국에 맞설 힘을 갖추지 못한 중국으로서는 순망치한(脣亡齒寒) 격인 북한의 안정이 필요한 것이다. 베이징의 한반도 전문가는 이렇게 말했다.
“중국은 북한이 핵실험을 했대서 한국처럼 안보 위협을 느끼지 않는다. 베이징은 선양군구의 1개 집단군만으로 북한의 재래식 병력 전체를 무력화할 수 있다고 본다. 핵실험으로 인한 동북 3성의 환경 재앙 등은 우려하지만 상황을 충분히 관리할 수 있다고 본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 제제 결의에 참여하기로 한 중국이 적극적으로 북한을 압박하지 않으면 앞서 핵실험 때처럼 대북 제재는 또 한 번 한계를 드러낼 공산이 크다.



“3년 내 무력통일”

셋째, 평양은 북한 주도의 한반도 적화통일 전략을 버린 적이 없다. 핵 또한 북한 주도 통일의 수단으로 보는 것이다. 정보당국에 따르면 북한은 시리아 내전을 바탕으로 전쟁 계획을 일신했다. 김정은은 2014년 “통일대전을 준비하라”고 지시하면서 “3년 내 무력통일”을 장담했다. 북한 당국은 ‘2015 통일대전’ ‘3일전쟁’ 등의 표현을 썼다.
북한 주도의 통일은 실현 가능성이 극히 낮겠으나 핵을 보유한 북한의 군사력은 한국에 충분히 위협적이다.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단거리탄도미사일(SRBM)로 미국과 일본의 참전을 억제하고 재래식 전력으로 부산까지 점령한다는 게 북한군 작전 계획의 골자다. 핵무기의 경량화, 소형화에 성공한다면 위협은 더 커진다.
한국은 확성기를 트는 것 등 외에는 독자적 징치 수단을 갖고 있지 못하다. 박근혜 정부를 포함한 역대 정부가 공히 북한 핵을 관리하는 데 실패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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