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0년의 세계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미국은 향후 15년의 세계판도를 어떻게 전망할까. 미 CIA(중앙정보국), DIA(국방정보국), NSA(국가안보국) 등 정보기관의 협의기구인 국가정보위원회 (NIC·National Intelligence Council)가 1월 중순 이에 관한 보고서 ‘지구의 미래를 그려보다(Mapping the Global Future)’를 공개했다.
- 1년 동안 각계 전문가들의 전망을 종합해 작성한 이 보고서는특히 중국 등 아시아의 강력한 부상과 그에 따른 미국의 고민을 담아내는 데 주력했다. 관련부분을 발췌, 소개한다. [편집자]
[1부] 세계화(Globalization)의 상반된 결과
19세기와 20세기를 거치면서 자본주의가 변화해온 것처럼 전 지구를 휩쓸고 있는 ‘세계화 열풍’도 그 성격이 변화할 것이다. 더 많은 기업이 세계화될 것이고, 그 가운데 아시아 기업이 서구 기업을 넘어 다수를 차지할 것이다. 더 이상 한 국가의 통제범위 내에 있지 않을 이들 기업은 각국의 경제를 통합하고 개발도상국의 경제적 진보를 촉진시키며 새로운 기술을 전파하는 핵심역할을 맡게 될 것이다.
현재 가장 발전한 국가들, 특히 미국은 여전히 자본, 기술, 상품의 움직임을 좌우하는 주요세력으로 남겠지만 향후 15년 내에 세계화는 훨씬 ‘비서구적’인 성격을 띠게 될 것이다. 2020년까지 세계인구 증가와 소비수요 증대의 상당부분은 현재의 개발도상국들, 그중에서도 특히 중국과 인도, 인도네시아에서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오늘날 선진국을 기반으로 한 다국적 기업들은 이들 나라의 문화적 요구에 맞춰 자신의 사업방침을 정하고 기업운영 방향을 결정할 것이다. 요즘 사람들이 세계화를 곧 ‘미국화’로 생각하는 것처럼, 2020년에는 세계화가 ‘떠오르는 아시아’와 동일한 의미로 여겨질 것이다.
2020년 세계 경제규모는 2000년과 비교해 최대 80%가 증가하고 1인당 소득은 최대 50%가 높아진다. 21세기 초 가난했던 국가에선 처음으로 대규모 중산층이 등장하게 되며 이에 따라 개발도상국의 사회구조도 변화한다. 장기적으로 보면 세계화가 지속적으로 확장되면서 세계화의 자장 안으로 들어오는 빈곤국의 수가 늘 것이다.
반면 20세기 역사의 중심에 있던 유럽 및 러시아의 인구는 다른 지역에 비해 급격히 감소하고 있다. 인구가 증가하는 지역은 개발도상국들뿐이다. 중국과 인도의 실질적인 인구를 고려할 때(미국 통계청에 따르면 2020년경 중국의 인구는 14억, 인도의 인구는 13억에 달한다) 국민 개개인의 생활수준은 서구에 미치지 못한다 해도 이들 나라는 충분히 경제강국이 될 수 있다.
중국·인도, 환란 위험 피할까
예컨대 중국은 현재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제조업 생산국가다. 중국의 제조업 점유율은 지난 10년간 4%에서 12%로 성장했다. 향후 수년 내에 중국은 제조업 점유율뿐 아니라 세계 수출점유율에서도 일본을 따라잡을 것이다. 중국 제품의 가격경쟁력은 이미 전세계적으로 물가인상을 억제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인도는 아직 대부분의 경제지표에서 중국에 뒤처지만 경제학자들은 인도도 높은 수준의 경제성장을 유지할 것이라 믿고 있다.
막대한 인구를 고려할 때 2020년경 중국의 국민총생산(GNP)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규모가 될 것이다. 비슷한 이유로 인도의 GNP 역시 유럽 주요국가 수준에 이를 것이다. 브라질과 인도네시아 같은 다른 개발도상국들도 대부분 유럽국가 경제규모를 앞지를 것이다. 이들 나라가 세계경제에 통합되면서 무역과 투자의 흐름을 따라 수십억 노동인구가 세계노동시장으로 쏟아져 나오고, 이에 따라 생산, 무역, 고용, 임금의 세계적인 패턴이 변화한다.
그러나 이러한 급격한 성장에도 중국이나 인도 같은 아시아의 ‘거인’들은 질적인 면에서 미국이나 다른 주요 선진국의 경제수준에는 미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국가경제의 일부분은 역동적이고 세계적인 수준의 첨단산업분야를 확보하겠지만 상당수 인구는 여전히 농업분야에 종사할 것이다. 자본구조 역시 비교적 단순하고 금융시스템도 선진국과 비교해 효율이 떨어지는 형태일 가능성이 높다.
역사적으로 고도성장을 경험한 나라가 갑작스러운 경제적 퇴보를 겪는 예가 많다. 이러한 난기류는 앞으로 더 넓은 범위의 국제관계에 작용하며 악영향을 끼칠 것이다. 그 예로 1990년대 중반의 멕시코, 1990년대 후반의 아시아에서 새롭게 부상했던 시장이 자본 흐름의 갑작스러운 변화로 희생자가 된 바 있다.
중국과 인도도 비슷한 문제에 직면할 수 있다. 사실 자본 흐름이 어떻게 변화할지는 예측이 불가능하며 현재의 국제금융시스템이 광범위한 경제적 환란을 예측할 수 있는지 여부도 불확실하다.
[2부] 떠오르는 세력들 : 지정학적(Geopolitical) 판도의 변화
아시아 국가들의 경제적 성장은 전세계의 지정학적 판도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다. 중국과 인도는 20세기 초반의 미국이나 19세기 독일이 세계사에 미친 영향만큼이나 파급효과가 클 것이다. 흔히 말하듯 20세기가 ‘미국의 세기’였다면, 21세기는 중국과 인도가 주축인 ‘아시아의 세기’가 되리라는 점에 이견이 없다.
그러나 중국과 인도가 증가하는 힘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국제질서 속에서 다른 세력과 협력적인 관계를 유지할지 아니면 경쟁적인 관계로 돌아설지 여부는 미지수다. 중국과 인도, 브라질과 인도네시아 등 급부상하는 신진세력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창설된 세계기구나 그 정책과 뚜렷하게 구별되는 새로운 종류의 국제동맹을 형성할 수도 있다.
다른 변화들도 새로운 지정학적 환경 형성에 일조할 수 있다. 이를테면 브라질, 남아프리카, 인도네시아, 러시아의 경제성장은 그 자체만으로는 대세에 별다른 영향을 주지 못하겠지만 중국과 인도 양국의 세력증강을 억제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는 있다. 한편 유럽과 일본, 러시아 3국 모두가 인구 노령화에 따라 심각한 압박을 받고 있지만 유럽연합이 더 강력해지거나 일본이 국제적으로 활발한 역할을 담당하게 될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
이러한 세력변화로 인해 2020년 세계의 모습에 대한 밑그림은 극적으로 달라진다. 동서남북의 지역적 구분을 포함해 동맹·비동맹, 개발도상국·선진국 같은 기존의 분류방식은 모두 무용지물이 될 수도 있다. 전통적인 형태의 지역구분도 국제정치에서 유용성을 잃게 될 것이다.
중국 성장의 위협요소
세계무대에서 중심이 되고자 하는 야심을 갖고 있는 중국은 아시아뿐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도 경제적 영향력을 확장하고 군사력을 증강하는 일련의 조치를 취할 것이다. 동아시아 국가들은 대만문제처럼 민감한 이슈에 대해 중국의 눈치를 살피고 있다. 중국과 경제·정치적으로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으로 인식되기를 원한다. 이들은 벌써 강력한 중국의 등장에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 일본과 대만, 몇몇 동남아 국가는 상호협력과 미국의 힘을 이용해 점차 커지는 중국의 영향력에 맞서 세력균형을 유지하고자 애쓰고 있다.
중국은 신예전투기나 잠수함, 다량의 탄도미사일 등 새로운 무기를 계속 획득하고 개발해 군사력을 증강시킬 것이다. 그리하여 향후 20년 내에 러시아 등을 제치고 미국 다음으로 국방비를 많이 지출하는 나라가 될 것이며, 어떤 기준에서도 최고 수준의 군사력을 보유한 국가가 될 것이다.
이를 지연시킬 만한 요소는 중국의 경제성장 속도가 느려지는 것뿐이다. 예를 들어 중국 정부가 직업창출에 대한 국민적 요구를 만족시키지 못하면 정치적 불안이 야기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경우 중국뿐 아니라 전세계 모든 국가의 경제성장이 지연될 것이므로 국제관계에서 중국의 위상이 달라질 가능성은 별로 없다.
2020년대에 이르면 중국은 빠르게 진행되는 인구 고령화 문제에 직면할 것이다. 인구학적 현안은 중국 정부에 큰 압박이 될 것이 분명하지만, 중국이 그때까지 서구사회와 같은 정교한 연금체계나 의료보장 시스템 등을 준비할 가능성은 낮다. 이에 따라 중국 경제가 하향곡선을 그리기 시작하면 지역적 안정기반이 취약해지면서 정치적 불안이나 범죄, 마약, 밀수, 불법이민 등의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
2003년 미국의 랜드연구소(RAND Corporation)는 향후 10년간 중국의 고속성장을 방해할 만한 8가지 위협요소를 다음과 같이 정리한 바 있다. ▲국영기업과 금융업의 취약성 ▲부정부패가 경제에 미치는 악영향 ▲수자원 문제와 공해 ▲외국인 직접투자 감소 가능성 ▲에이즈를 비롯한 전염병 ▲실업, 빈곤, 사회불안 ▲에너지 소비 및 그 가격 ▲대만문제 등 지역갈등의 가능성.
외교·국방정책의 기준은 ‘에너지’
이러한 요소들이 한번에 하나씩 발생한다고 가정할 경우 가난, 사회불안, 실업이 야기하는 마이너스 성장률은 0.3~0.8%로 비교적 낮은 반면 전염병은 1.8~2.2%로 영향력이 크다. 2015년까지 이런 문제들이 전혀 발생하지 않으리라고 보기는 어렵고, 일단 문제가 발생하면 각 항목이 연쇄적으로 불거질 개연성이 크다. 금융위기로 인해 부정부패가 심해지고 복합적인 실업요인이 발생하며 그에 따른 빈곤과 사회불안은 결과적으로 외국인 직접투자 감소로 이어지는 식이다. 가능성은 매우 낮지만, 2015년 이전에 이들 문제가 모두 발생할 경우 누적효과는 그간의 성장을 물거품으로 만들면서 중국의 경제성장률을 7.4~10.7%까지 감소시킬 것이다.
남아시아 지역은 인도의 성장으로 인해 전략적으로 복잡하게 탈바꿈한다. 인도 역시 중국과 마찬가지로 지역경제의 중심으로 성장하면서 북쪽의 중앙아시아나 이란 등의 중동국가에까지 영향을 끼칠 것이다. 인도는 서구와의 세력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전략적으로 지역 내 협력을 추구하고 있다. 인도 경제가 성장함에 따라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 타이 등 동남아 국가들은 인도와 협력적인 관계를 구축하려 할 것이고, 그 결과 인도는 중국의 지정학적 세력 균형자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현재 76억달러에 불과한 중국-인도간 무역금액은 급격하게 증가할 것이다.
그러나 인도는 근대화가 진행되면서 토지, 물, 에너지공급 등 자원관련 문제로 인해 정치적·경제적 곤란을 겪을 공산이 크다. 인구는 점점 증가하는데 지표수 및 지하수는 계속해서 심각하게 오염되고 있어 멀지 않은 장래에 이와 관련해 어려운 선택을 하지 않으면 안 될 상황에 놓이게 될 것이다.
증가하는 에너지 수요, 특히 새롭게 부상하는 국가들의 에너지 수요 증가는 2020년까지 지정학적 관계에 핵심적 요소로 작용할 것이다.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사용하려는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전체 에너지 사용량은 앞으로 20년 동안 약 50% 가량 증가할 것이며 그중 석유가 차지하는 비율은 더욱 증가할 것이다. 참고로 1980년부터 2000년까지 20년간의 에너지소비량은 34% 증가했다.
2020년이 되어도 수소나 풍력, 태양열 같은 재생 가능한 자원이 전체 에너지소비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8% 정도에 그칠 것이다. 러시아, 중국, 인도는 원자력발전을 늘릴 계획을 가지고 있다(그러나 전세계를 놓고 보면 원자력 발전은 향후 10년 이내에 쇠퇴의 길을 걸을 것이 확실시된다). 인도와 중국은 모두 국내 에너지자원이 충분하지 못하므로 확실한 외부 공급처를 확보해둘 필요가 있다. 이처럼 에너지 수급문제는 이들 국가의 해군력 증강을 유도하는 등 외교 및 국방정책의 향방을 결정하는 주요요소가 될 것이다.
전문가들은 중국과 인도가 현재의 경제성장률을 유지한다면 2020년까지 중국의 에너지 소비량은 현재의 150%, 인도는 200%까지 급증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이에 따라 중국은 에너지 공급원이 될 중동, 아프리카, 남미, 유라시아 대륙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칠 것이다. 에너지 공급처를 최대화, 다양화하려는 중국은 미국이 자신들에게 적대적인 에너지정책을 선택할 가능성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한반도·대만해협 위기 고조
지난 20년간 일본의 경제적 관심은 동남아에서 동북아로, 특히 중국-일본-한국의 삼각구도로 이동했다. 전문가들은 일본은 노동력이 고령화하고 있기 때문에 점차 해외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동북아 경제, 특히 중국 경제와의 협력을 강화할 것으로 보고 있다. 동북아에서 도전요소가 다양해짐에 따라 지역안정에 관한 일본의 관심은 점증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특히 성장을 거듭하는 중국 경제는 일본이 세계무대에서 좀더 적극적인 행동주의를 표방하고 나서게 하는 자극제가 될 것이다.
여론조사 결과 전보다 많은 이들이 일본이 순응적인 대외정책을 펴는 ‘평범한’ 국가가 되기를 원했다. 전문가들은 일본의 진로를 결정할 요인으로 중국의 성장정도, 일본경제의 활력이 되살아나느냐 혹은 더 떨어지느냐 여부, 일본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 크기, 한국과 대만의 성장이 하게 될 역할 등을 꼽았다. 어떤 시점에 이르면 일본은 중국과 맞서는 권력의 균형점이 될 것인지 아니면 중국의 승승장구 분위기에 편승하는 편이 나을지 양자택일해야 하는 상황에 놓일 것이다.
동남아 일부 국가들은 계속해서 뿌리깊은 인종·종교분규에 시달려 경제 성장이 더딜 공산이 크지만, 동북아는 경제적으로 더 부유해지고 정치적으로 더 강력해질 전망이다. 동북아가 아시아 국가들의 정치·경제적 중심이 되면 동남아 일부지역은 동북아 국가들의 국경을 넘나드는 조직범죄와 테러의 양산지가 될 가능성이 있다.
세계화 추세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동북아(비이슬람 지역)와 이슬람 근본주의가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는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필리핀 일부 등 동남아의 문화적인 차이는 두 지역의 미래를 결정짓는 역할을 할 것이다. 반면 인도와 중국에 대한 국제사회의 투자흐름은 동남아 국가 단일경제구역 구성을 유도하는 자극제가 될 수 있다.
지역 전문가들은 아시아가 다른 지역에 비해 중대한 분규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하고 있다. 우선 2020년 전에 북한과 관련해 위기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한반도의 통일과 대만해협의 긴장을 둘러싼 구원(舊怨)과 근심은 지역내 평화를 달성하기 위해 아시아 국가들이 거쳐야 할 매우 복잡하고도 미묘한 과제다. 한반도와 대만해협의 위기는 2020년 무렵 최고조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 지역의 긴장은 세계정세에 큰 영향을 끼칠 것이다. 동남아 일부 국가에선 분리주의자들의 폭동과 테러로 인해 국내 상황이 악화될 것이다. 중국 역시 국경의 서부 경계를 따라 무장 분리주의 세력의 지속적인 위협에 처하게 될 것이다.
현재 이 지역의 주요 세력인 중국·일본과 미국의 상호관계 역시 2020년까지 중대한 변화를 맞게 될 것이다. 미국과 중국은 가능하면 서로 부딪치지 않으려 하겠지만, 중국내 민족주의가 점점 확산되고 미국이 전략적 경쟁자인 중국의 성장에 대해 두려움을 갖게 됨에 따라 양국간 반목과 갈등이 심화될 가능성이 높다. 두 나라에 대한 일본의 관계 설정은 중국이 얼마나 성장하는지, 한반도와 대만해협 문제가 어떻게 매듭지어질지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3부] 통치(Governance)에 대한 새로운 도전
세계 곳곳에서 정부의 통치는 다양성과 자율성을 요구하는 개인의 반발에 부딪히게 될 것이다. ‘통치에 대한 도전’으로 요약할 수 있는 이러한 흐름을 야기하는 첫 번째 요소는 거듭되는 신기술의 개발이다.
오늘날 개인들은 미 항공우주국이 처음 달에 우주선을 보낼 때 사용한 컴퓨터보다 월등한 성능을 가진 PC를 별 어려움 없이 사용한다. 기술의 진보는 정치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다. 이전에는 큰 힘을 낼 수 없던 파편화된 개인이나 소규모 그룹의 사람들이 서로 접촉하고 연결되어 의사를 결정하고 계획을 추진해, 정부보다 효과적이고 만족스러운 성과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정부에 대한 개인의 위상에 큰 영향을 줄 것이고 국민의 요구에 부응하도록 정부를 압박하는 요소가 될 것이다.
통치에 대한 또 다른 도전은 종교적 신념과 인종적 연대를 중심으로 한 ‘정체성(Identity)의 정치학’에서 나올 것이다. 향후 15년간 종교적 정체성은 사람들이 자신을 정의하는 요소로서 그 중요성이 점증할 것으로 보인다. 인구의 이동이 자유로워지고 한 국가 내에 다양한 적대 그룹이 혼재하며, 고도의 통신기술이 보급되는 점도 정체성의 정치학을 주요한 변화요인으로 만드는 요인이다.
전통적으로 가톨릭의 뿌리가 깊은 남미에서는 신교로의 개종비율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그런가 하면 중국과 나이지리아는 2020년까지 세계에서 가장 큰 기독교 사회를 이룰 것으로 전망된다. 이런 변화로 인해 전통적으로 서구문화에 기초를 둔 기독교 기구들은 좀더 아프리카·아시아적으로, 포괄적으로는 개발도상국에 적합한 모습으로 변모할 것이다.
국제전기통신연합(ITU)에 따르면 중국은 세계에서 인터넷과 휴대전화 사용인구가 가장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고 광대역(broadband) 통신의 주도적인 시장이다. 또한 마르크시즘이 쇠퇴함에 따라 기독교나 불교뿐 아니라 다양한 종교와 관습이 널리 퍼져나가고 있다.
중국의 정치 지도자들은 정치적 통제를 완화하라는 대중의 요구를 계속 수용하지 않으면 반발에 부닥칠 공산이 크다. 중국 지도자들이 정치개혁을 시도한다면 세계무대의 주역이 되려는 중국의 목표달성에 큰 도움이 되겠지만 중국 정부가 이를 선택할지는 불분명하다.
중국의 젊은 지도자들, 각 지방의 관료와 공무원으로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엘리트들은 서구식 대학교육을 받아 통치에 대한 국제적인 기준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개최한 해당지역 컨퍼런스에서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현재뿐 아니라 미래의 중국 지도자들 역시 민주주의라는 주제에 대해 무관심하고 중국의 체제가 가장 효과적인 통치모델이라고 역설하는 데 주력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4부] 증가하는 안보위협
앞으로 15년 내에 주요 국가들 사이의 갈등이 전면전으로 확대될 가능성은 이전 세기에 비해 훨씬 낮다. 제1차 세계대전 이전이나 두 세계대전 사이, 이후의 냉전시기 등 20세기에는 동맹체계가 공고해 작은 분쟁도 쉽게 진영간의 대립으로 확대되곤 했다. 그러나 지금은 특정지역에서 문제가 불거져도 당사국이나 주변국가 모두 문제를 확대시키고 싶어하지 않는다. 금융과 무역망이 세계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도 강대국간에 분쟁이 촉발하는 것을 억제한다.
그렇다고 해서 심각한 갈등이 발생할 소지가 완전히 없어진 것은 아니다. 일부 지역에는 갈등을 조정할 효과적인 메커니즘이 없기 때문에, 민족주의가 발호하고 양 진영 사이에 감정적인 대립이 노골화하면 섣부른 결단이 내려질 가능성도 증가할 것이다.
대만해협 문제를 예로 들어보자. 대만이 독립을 선언할 경우 중국은 그간 국제사회에서의 입지강화를 위해 피해왔던 군사조치를 취할 공산이 크다. 대만을 압도적으로 제압할 수 있게 강화된 중국의 군사력은 양안(兩岸)의 무력충돌에 대한 긴장을 한층 고조시키고 있다.
2020년까지 많은 국가가 핵무기나 화학무기, 생물학무기 개발을 시도할 것이며 몇몇 국가의 경우에는 실제로 이러한 무기를 확보하게 될 것이다. 현재의 핵 보유국들은 자국이 보유한 핵무기를 통해 전쟁억제력을 더욱 확고하게 만들고자 할 것이다.
한 국가가 핵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공공연히 선언하면 주변 비보유국들의 불안은 고조될 수밖에 없고 지역내 세력균형이 깨져 핵 경쟁이 가속화된다. 주변국이 핵무기를 개발하고 있다는 사실이 분명해지면 동북아와 중동의 비핵무장 국가들은 서둘러 핵개발을 추진할 것이다. 이미 핵을 보유한 세력들- 파키스탄의 A. Q. 칸 박사가 운용했던 네트워크처럼 이전에는 민영기업이었던 곳을 포함해서 -의 도움을 받는다면 이들 나라가 핵을 개발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이전에 비해 크게 단축될 것이다.
탄도미사일과 크루즈미사일, 무인항공기(UAV) 분야의 기술이 크게 향상되고 공격력이 가공할 만한 수준으로 높아지는 것 역시 안보를 위협하는 요인이다.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몇몇 국가는 2020년 전에 LACM(Land-Attack Cruise Missile)을 확보해 미국 본토를 위협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북한과 이란은, 현재의 정권이 바뀌지 않는다면, 2020년 이전에 대륙간탄도미사일(ICMB)을 보유하게 될 것이며 보유무기의 기능을 향상하는 데 국가 역량을 집중할 것이다. 다른 나라들도 2020년까지 위성방송을 위한 발사체(SLV) 기술을 확보해 자국의 위상을 높이고자 할 것이다. 위성발사체 기술은 대륙간탄도미사일 개발을 위한 전초단계로 활용될 수 있으므로 향후 무력증강에 이용될 가능성이 높다.
[5부] 정책적 고려사항
아직 국제질서에 완전히 모습을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세계 수준의 정치·경제적 힘을 가진 두 거인(중국과 인도)이 부상함에 따라 아시아와의 관계정립은 향후 미국 정부가 가장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의제가 될 것이다. 여러 갈등세력 사이의 조정자라는 미국의 역할이 강화될 가능성이 있지만 반대로 국제사회에서 영향력을 잃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2020년까지 미국의 군사력에 비견할 만한 단일국가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미국의 군사정책에 대항해 모종의 조치를 취할 능력을 가진 나라가 지금보다는 더 많아질 것이다. 이란과 북한이 생화학무기 및 핵무기를 보유했을 가능성과 2020년까지 다른 세력들이 대량살상무기를 보유하게 될 가능성을 생각하면, 미국이 이들 나라나 그 동맹세력에 대해 군사행동을 취하기로 결정할 경우 사전에 검토해야 할 비용이나 감수해야 할 피해는 점점 더 커진다고 할 수 있다.
극단주의자의 수는 줄고 있지만 테러리스트들의 위협은 여전히 남아 있다. 생물학무기 등 많은 이들에게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기술이 매우 빠르게 전파되고 있기 때문에, 심지어는 테러조직에 속하지 않은 평범한 개인이라도 마음만 먹으면 숱한 인명을 빼앗는 일이 가능해질 것이다. 기술발전의 도움으로 테러리스트를 검거하고 추적하는 작업은 예전보다 쉬워지겠지만 방어하는 쪽은 모든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여전히 공격자가 유리한 위치에 설 것이다.
팔레스타인, 북한, 대만, 카슈미르 등지에서 평화를 정착시키는 데 실패할 경우 이들이 어떤 상황을 몰고 올지 알 수 없으므로 미국은 여전히 이 지역에서 갈등해결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 그러나 앞에서 분석한 경향과 가상 시나리오에 의하면 중국 등 새롭게 부상하는 세력이 세계 안보에 대한 책임을 나누어 가짐으로써 미국의 부담을 경감시켜줄 가능성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