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親박근혜: 열린우리당식 주류 탈당→신당 창당
- 영남 보수: 5공 극우: 인사 배제한 뒤 호남과 연합
- 비주류: 대선후보 경선 전 이명박·손학규 이탈
- 소장파: 한나라당-열린우리당 중도개혁파 연대
- 하나의 유령이 한나라당을 배회하고 있다. 당 해체론이 그것이다. 소장 개혁파와 이들의 반대편에 있는 영남 보수파, 당 지도부와 비주류 모두 더 이상 해체론을 금기시하지 않으며, 오히려 자기 방식의 당 해체론을 밝히고 있다. 이명박 서울시장, 손학규 경기지사의 독자행보도 예사롭지 않다.
2005년 2월4일 충북 제천에서 열린 한나라당 의원 연찬회에서 박근혜 대표 등 의원들이 열띤 토의를 벌이고 있다.
“한나라당이 위기는 위기인 모양이다. 이방호가 당 해체론을 다 주장하고….”
주위에선 쓴웃음과 함께 동의하는 사람들의 탄식이 터져나왔다.
연찬회 전 이방호·이상배 의원은 한나라당의 발전적 해체를 통한 영남-호남-충청세력 연대론을 펼쳤다. 우연찮게 남경필 의원도 중도통합론을 한나라당의 지향점으로 언급했다. 천양지차 같지만 공통점이 있다. ‘현재의 한나라당은 해체수준의 근본적 변화가 필요하다. 그것 없이는 집권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이다. 위기상황이면 어김없이 등장한 ‘당 해체론’ 처방은 그렇게 다시 한나라당을 찾아왔다.
다음날, 연찬회 마지막 토론장에선 박근혜 대표와 당내 비주류 의원들 사이에 당명 개정을 놓고 신경전이 최고조로 치달았다. 박 대표는 마무리 발언을 겸해 발언대에 섰다.
“우리도 모르는 새 우리는 많이 변했습니다. 4·15총선 이후에 해먹은 게 있습니까? 부정적인 것 하나도 없습니다. 그래도 (국민이) 부정부패 정당이라고 보는 것은 옷을 안 갈아입은 데 이유가 있습니다. 기왕이면 향수도 뿌려 매력적으로 보여서 결혼해 달라고 해야지, 마음만 바꿨다고 애인이 알아주겠습니까. 옷 바꿔 입으면 행동도 더 잘하게 돼 있어요.”
그러면서 박 대표는 당내 비주류 의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4월 재보선이 끝난 뒤 당명 개정을 강행할 뜻을 내비쳤고, “찬반투표를 해보자”고 제안했다. 일순간 연찬회장이 벌집 쑤신 듯 소란스러워졌다. 비주류 의원들이 격렬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당명은 옷 바꿔 입는 것이 아니다. 당헌 제1조다. 대한민국이란 국호를 바꾸는 것은 옷 바꿔 입는 게 아니다. 당 자체의 존립 여부와 관련된 문제다”(김문수 의원), “지도부가 일방적으로 투표로 밀어붙이려는 것을 보고 박 대표의 오기 정치 아니냐고 한다”(이성권 의원), “오늘 투표 안 된다고 영원히 당명을 못 바꾸는 게 아니다. 정말 ‘결정적 계기’가 오면 바꿀 수 있다고 정리하고 마무리해야 한다”(이재오 의원)….
“당명개정 카드를 아껴두자”
결국 지도부는 구수회의 끝에 당명 개정 여부를 묻는 의원 투표를 포기했다. 재선 A의원은 “당명 개정 논란은 단순히 당의 이름을 바꾸느냐, 마느냐를 둘러싼 대립이 아니었다”고 해석했다. “당의 미래에 대한 서로 다른 시각, 특히 지도부와 비주류 의원들의 상이한 전망이 투영된 결과”라는 것이다. 지금 변화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박 대표의 논리에 영남 보수파, 이재오·김문수·홍준표 의원이 주축인 국가발전전략연구회, 소장파 의원들이 하나같이 ‘결정적 계기’가 올 때까지 미뤄야 한다고 반박한 모양새라는 것이다.
그 결정적 계기란 무엇일까. A의원의 말이다.
“당이 근본부터 재탄생하는 순간에 당명 개정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한나라당은 ‘당 해체’에 버금가는 큰 변화가 필요하고, 2007년 대선 전 언젠가는 그 순간이 도래할 것이란 게 상당수 의원의 공통된 인식이었다. 그때를 위해 당명 개정 카드를 아껴두자는 것이다.”
당 해체론은 사실 오래 전부터 한나라당을 배회했다. 대선 링에서 무릎을 꿇을 때마다 “이대로는 안 된다” “뭔가 그림을 다시 그려야 한다”며 갖가지 해법이 분출했다. 쇄신, 혁신, 개혁…. 그러나 그 모두를 아우르는 가장 명료한 해결 방법은 당을 해체하고 새로운 당을 만드는 것이었다.
2002년 겨울 ‘절대 패할 수 없는 경기에 패한’ 한나라당은 추운 겨울을 보내고 있었다. 영남 출신 구(舊)여권세력과 수도권 중심 소장 개혁파 세력의 내부 갈등은 폭발 직전에 다다랐다. “개혁파가 이탈하고 당이 조만간 깨질 것”이란 전망이 비등했다. 다음해인 2003년 6·26전당대회를 통해 최병렬 대표가 등장한다. 그러나 최병렬 체제는 ‘차떼기’로 상징되는 불법 대선자금 정국에 휘말리면서 당 쇄신에 실패한다. 그러자 당 해체 및 재창당론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2003년 11월 지구당위원장 국회의원 연찬회 석상에서 권오을 의원은 이렇게 말했다.
“한나라당은 부정부패 이미지를 씻을 수 없다. 기존 틀을 깨고 재창당해야 한다. 한나라당에 얽매이지 말아야 한다. 한나라당에 집착하면 다 없어진다.”
2004년 초 최 대표 체제는 소장파가 주축이 된 반란군에 의해 무너졌다. 반란군은 “이 참에 당 해체 후 재창당으로 가자”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당 해체론은 ‘구당(救黨)모임’에서 상당한 공감대가 형성됐다. 민정당-민자당-신한국당으로 이어져온 법통을 끊는 구체적 방안까지 거론됐다. 당시 비주류 김덕룡 의원도 ‘신당 창당론’을 들고 나와 가세했다. 그는 “임시 전당대회를 통해 신당 창당을 위한 창당준비위원장을 뽑고 당명과 당의 얼굴을 함께 바꿔 새로운 집을 지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시간이 갈수록 무르익고 있다”
그러나 결국 “최 대표를 완전 퇴진시키고 전당대회를 열어 당을 쇄신하자”는 리모델링 방안으로 결론이 났다. 당시 구당모임 관계자의 말이다.
“총선을 앞두고 시간이 별로 없었다. 총선이 임박해 새로운 당을 만들면 국민에게는 눈속임으로 비쳐질 것이란 논리가 설득력을 얻었다. 영남 의원들의 반발도 만만치 않았다. 결국 당 해체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탄핵 사태와 총선 국면은 당 해체론을 다시 수면 아래로 밀어넣었다. 그리고 박근혜 대표 체제가 등장했다.
박 대표 체제 11개월째. 잠잠하던 당 해체론이 다시 한나라당에 불어닥쳤다. 4대 입법 쟁투 국면을 보내고 맞은 2005년 초, 한나라당을 찾아온 것은 지지율 하락과 집권 회의론이었다. 각 계파는 자신의 입장에서 각기 다른 당 해체론을 그리고 있었다.
당 해체론은 한나라당의 바닥에 늘 깔려 있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구체화하고 뚜렷해지는 양상이다. 분위기가 점점 고양되고 있다는 얘기다. 2월3, 4일 연찬회를 전후해 당내 각 세력과 모임들이 해체론에 대해 보인 반응은 이전과 같은 ‘부정’이 아니었다. 오히려 자기 식의 해석과 그림을 내보이며 화답했다.
한나라당 내에서 당 해체의 추동력으로는 세 가지가 꼽힌다. 영남에 고립화한 지역적 한계, 구성원들의 넓디넓은 이념적 스펙트럼, ‘잠룡(潛龍·대권후보)’들의 사활을 건 쟁투. 여기에 외부적 요인으로, 개헌론과 여당의 정계개편 기도가 더해진다.
한나라당의 지역적 한계는 호남과 충청의 지지를 잃어버린 채 영남과 수도권일부의 지지에 기대고 있는 상황을 가리킨다. 이런 형국으로는 차기 대선에서 도저히 이길 수 없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헤쳐모여’의 수순을 밟아 전국정당의 꼴을 갖춰야만 승리의 가능성이라도 찾아볼 수 있다는 데 당 안팎의 진단이 일치한다.
한나라당 내 이념 정체성도 한 간판 아래 있기엔 간극이 너무 크다. ‘중도 지향’이라며 대충 얼버무려 놓았지만 양 극단은 서로를 집권의 걸림돌로 지목한다. 2007년 대선이 다가올수록 그 파열음은 더욱 커질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박근혜 대표, 이명박 서울시장, 손학규 경기지사 등 대권 유력후보간 경쟁도 강도가 더해질 것이 분명하다. 후보군 중 일부가 어느 순간 당을 뛰쳐나갈 수도 있다.
이 같은 추동력을 고려한다면 2007년 대선 전에 어떤 식으로든 한나라당이 새롭게 재편되는 상황은 필연적 운명으로 받아들여진다. “어떤 그림이 그려질지는 모르지만 2007년 대선 국면에서 현재의 한나라당으로 선거를 치르는 일은 없을 것”이란 얘기가 공공연하게 나돈다. 이런 가운데 여권이 정계개편 구도와 개헌론으로 ‘범 한나라당 세력’의 위축을 기도할 것이라는 게 한나라당 인사들의 생각. 최근 한나라당 안팎에서 거론되는 한나라당 해체론은 크게 네 가지로 그려진다.
열린우리당식 해체 모델
[시나리오 1 : 주류탈당론]
17대 총선이 끝난 직후인 2004년 4월29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한나라당 당선자 연찬회가 열렸다. 박세일 당선자가 ‘한나라당이 나아갈 길’이란 제목으로 기조 발제를 했다. 그는 ‘당 해체후 재창당론’을 제기했다. 그의 해체론은 구체적이었다. ‘법률적 단절’ ‘정치적 단절’이란 해법도 제시됐다. 법률적 단절과 관련, 그는 “당을 법률적으로 해산(청산)하고 새 정당을 창당해야 한다”며 청산위원회 구성, 창당준비위원회 구성, 17대 교섭단체 등록, 원내대표 선출 등의 로드맵을 내놓았다. 그는 이어 “법률적으로 단절하지 않으면서 전당대회에서 당명과 정강, 정책을 새롭게 바꿀 수도 있다”며 정치적 단절을 제2안으로 제시했다.
박근혜 대표 체제 초기라 그의 해체 주장은 뜬금없어 보였다. 오비이락(烏飛梨落)이었을까. 이 시기를 즈음해 주류 탈당론이 당 안팎에 유포되기 시작했다. 박 대표측이 모종의 탈당, 신당 창당 시나리오를 갖고 있다는 얘기였다. 박세일 당선자는 박 대표가 영입한 정책 브레인인 만큼 그의 언급은 예사롭지 않다는 얘기가 나왔다. 한나라당 관계자는 “당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선 일부 인사들을 배제해야 하고 그 방법으로 열린우리당식 주류 탈당-신당 창당 모델도 거론됐다”고 했다.
2004년 6월 염창동 당사 시대를 연 한나라당은 최근 당의 진로를 놓고 또다시 내홍에 휩싸였다. 당사도 다시 옮길 계획이다.
그러나 박 대표의 한 측근은 최근 기자와 만나 “박 대표는 상식에 벗어나는 일은 하지 않는다”며 당시 주류탈당론은 검토조차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주류탈당론은 2004년 여름을 기점으로 박 대표가 국가정체성을 거론하고, 4대 입법 국면에 강경대처하는 과정에서 사그라들었다. 박 대표와 당내 소장파의 관계가 역대 최악으로 치달은 현 상황에선 물 건너갔다는 게 정설이다.
[시나리오 2 : 영호남 연정을 위한 발전적 해체론]
최근 영남 출신 보수파 의원들이 일제히 펴기 시작한 논리다. 한나라당의 지역적 한계를 극복하고 전국정당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한다. 다음은 영남 보수파 의원으로 분류되는 이방호 의원의 말이다.
“한나라당이 다음 대선에서 승리하기 위해선 충청도나 호남과 연계돼야 한다. 특정 정당과 합당하든지 아니면 그 지역의 인재를 수혈하는 절차를 밟아야 한다. 한나라당도 열린 마음으로 발전적 해체를 해서 호남, 충청과 연합한 새로운 정당을 만들어야 한다.”
이 의원은 18대 총선에서 비례대표를 영남 호남 충청에 3분의 1씩 배정하는 방안, 국무총리와 당대표를 지역안배하는 방안 등을 방법론으로 거론했다. 이 의원이 얘기하는 발전적 해체란 영남 세력의 기득권 포기를 의미한다. “그냥 들어오라고 하면 안 들어올 테니 우리부터 가진 것을 내놓자”는 논리다.
또 다른 영남 보수파인 이상배 의원은 “민주당, 자민련, 뉴라이트 등을 모두 끌어들여야 한다. 이를 위해 한나라당은 기득권을 버리고 삼고초려의 길을 가야 한다. 그렇게 해서 범보수세력의 결집과 통합을 이뤄내고 그때 당 이름을 바꾸면 된다”고 말한다.
홍준표 의원도 이 방식을 거론한다. “호남을 대표하는 세력에게 차기 연합정권을 약속하고 지지를 호소하는 것이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는 길이다. 영호남 연합정권을 탄생시켜야만 차기 대권을 가질 수 있다. 이를 위해 한나라당에서 5공과 극우를 대표하는 몇몇 인사를 정리할 필요가 있다”는 것. 홍 의원은 영호남 연대의 사전 절차로 당내 일부 세력의 ‘배제’ 필요성을 명시적으로 주장한다. 그는 호남과 손잡기 위해 ‘손봐야 할’ 의원들을 구체적으로 거명하기도 했다.
이들의 주장을 엄밀한 의미의 ‘해체’로 보기는 어렵다. 전국정당화를 실현하기 위한 당내 사전 정지작업을 발전적 해체로 일컫는 것이다. 이 같은 시나리오에 대해 ‘평면적 발상’이니 ‘실현 가능성 제로’니 하는 비판이 나오는 것도 사실이다.
대권-당권 분리론이 나온 배경
[시나리오 3 : 대권 잠룡 탈당론]
2006년 6월 지방자치단체장선거는 한나라당의 터닝 포인트가 될 것이다. 한 달 뒤인 7월 박근혜 대표의 대표직 2년 임기가 끝나면서 새로운 대표를 선출하는 전당대회도 예정돼 있다. 이 시점에서 한나라당은 격렬하게 요동칠 수밖에 없다.
이명박 서울시장, 손학규 경기지사가 임기를 끝내고 당으로 복귀하면 당을 지키던 박 대표와 당권 경쟁이 불가피하다. 대권 후보 경쟁의 중요한 전초전이기 때문이다. 당권을 잡지 못한 후보가 탈당하는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에 참여하는 대신 일찌감치 자기 세력을 끌고 나가 딴살림을 차리는 조기 탈당이 벌어질 개연성도 있다. 이런 가설은 특히 이 시장과 손 지사, 두 잠룡을 중심으로 광범위하게 유포돼 있다.
이 시장의 경우 당내 지지기반이 비교적 단단하다. “내년 전당대회에서 박 대표와의 일합(一合) 결과, 기대에 못미치는 결론이 나면 얼마든지 당내 세력을 빼내 움직일 것”이란 전망이 떠돈다. 이 시장의 당내 지지기반으로 꼽히는 이재오·홍준표·김문수 의원이 주축인 국가발전전략연구회 조직을 ‘당내 당’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손 지사를 두고도 당내에 여러 설이 파다하다. “당내 지지기반이 취약한 손 지사의 경우 한나라당에 뿌리내리기 쉽지 않다. 오히려 자신의 개혁적 이미지를 십분 활용해 수도권 소장파 세력과 연계, 새로운 당을 만들 수도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이와 관련, 2월 의원 연찬회에서 소장파와 국가발전전략연구회측이 일제히 제기한 ‘대권-당권 분리론’이 주목된다. 한 재선 의원의 말이다.
“당권-대권 분리론은 당이 깨져서는 안 된다는 염려에서 나온 것이다. 잠룡들 사이에 공정한 대선 레이스를 보장해줌으로써 당을 깨지 말자는 충정의 발로다.”
벌써 이런 얘기가 나온다는 것은 그만큼 잠룡간 충돌로 당이 흔들릴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보여준다.
2월 연찬회를 잠룡의 세(勢) 대결이 본격화한 신호탄으로 받아들이는 시각도 있다. 손 지사는 일찌감치 대권 행보에 들어갔으며, 이 시장도 최근 눈에 띄게 잰걸음이다. “이인제 의원의 전례가 있기에 쉽게 뛰쳐나갈 수 없을 것”이란 전망과 “빅3의 충돌은 이미 시작됐다”는 관측이 엇갈린다.
그러나 대권후보의 한나라당 이탈은 ‘집권(執權) 해법’으로서의 당 해체가 아닌 ‘적전(敵前) 분열’로서의 해체가 되는 셈이다. 이럴 경우 한나라당의 집권 가능성은 더욱 멀어진다는 관측이 많다. 어쨌든 당내에선 내년 전당대회를 당 해체의 최대 고비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생존을 위한 결합은 안 된다”
[시나리오 4 : 중도 신당 창당론]
남경필·원희룡·정병국 의원 등 한나라당내 소장파는 호남-충청 연대론, 영-호남 연합정권론에 대해 “정치공학적 발상”이라면서 손사래를 친다. 본질이 변하지 않는 미봉책일 뿐이라는 것이다. 이구동성으로 “실현 가능성도 지극히 낮다”고 한다. 정병국 의원은 “같은 신념과 생각을 가진 결합인지, 생존을 위한 결합인지 구분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소장파 의원들의 머릿속엔 ‘신념과 생각을 같이하는 결합’이 들어 있다. 한나라당 소장파의 좌장 격인 남경필 의원은 최근 한 인터뷰에서 “당내 대선후보군을 박 대표, 이 시장, 손 지사를 넘어 고건 전 총리, 정몽준 의원 등 외부 인사와 원희룡·박진 의원 등 당내 소장파까지 확대해야 한다”며 ‘다른 길’을 언급했다. 그는 열린우리당 중도파와의 연대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한나라당 내부의 힘으로 변화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하겠지만,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모르는 일”이라며 그 가능성을 열어뒀다.
열린우리당 중도파와의 연대란 곧 여야를 아우르는 새로운 중도통합 정당의 출현을 의미한다. 대선 전 여당 중도파와 한나라당내 개혁-중도파의 연합 정당이 탄생할 수 있다는 얘기다. 어느 쪽에서 키를 쥐고 추진하냐에 따라 사태의 추이는 천양지차로 달라질 수 있다. 정치권의 한 인사는 “이 방식은 여권이 만지작대는 2007년 정권재창출 카드 중 하나”라고 말했다.
여권이 내부의 강경파를 털어내고 야당 개혁세력과의 연대를 통해 중도통합 정당을 창당, 차기 정권을 다시 만들어낸다는 시나리오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한나라당만큼이나 복잡한 여당내 이념 지향과 세력 분포를 감안하면 가능성 있는 얘기다. 여권이 맘먹고 작업에 착수할 경우 현실화 가능성이 상당히 높은 편. 한나라당 내에서도 이 시나리오에 대해 “가장 현실성 높다”는 평가가 나오는 마당이다. 한 3선 의원은 “2007년 대선에서는 어느 한쪽이 100% 만족하는 승리는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러나 통합 정당 출범의 주도권을 여권이 쥐는 것은 현재의 한나라당으로선 최악의 시나리오다. 한 재선 의원은 “한나라당은 여권에 철저히 이용당하고 쪼개질 수밖에 없는 그림”이라고 평가했다.
한나라당 해체론을 들여다볼 때 가장 주목해야 할 세력은 당내 소장파다. 해체론이 불거질 때면 어김없이 그 중심에 소장파가 있다. 소장파측 한 관계자는 “지난 대선 패배 직후부터 소장파는 당 해체 그림을 그렸다”고 말했다. 최병렬 대표의 개혁 가능성을 보고 소장파가 적극 지원했지만 최 대표는 말뿐이었다. 결국 소장파는 그를 버렸다. 그 이후 소장파는 박근혜 대표와 손을 잡았지만 박 대표 역시 소장파의 시각으로는 한계를 보이는 상황이다. 이 관계자의 말이다.
해체론의 핵은 소장파
“최후엔 열린우리당 중도세력과의 연합도 가능하지 않겠나. 소장파를 가리켜 ‘배신을 밥 먹듯 하는 기회주의 세력’이라고 비난하지만 정치적 소신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을 기회주의로 몰아서는 안 된다.”
지난해 12월22일. 여의도 63빌딩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과 한나라당 몇몇 의원은 송년회를 겸한 모임을 열었다. 이 자리에서 ‘당내 정체성을 흐린다’는 몇몇 개혁파 의원이 화제로 올랐다. 한참을 듣고 있던 YS가 빙긋이 웃으며 한 마디 던졌다.
“나가라고 해도 안 나가면 우리는 새로 만들었다.”
1987년 ‘이민우 파동’ 이후 양 김씨가 신민당에 이민우 총재 계열만을 남겨둔 채 통일민주당을 만들어낸 과정을 상기시킨 것이다. 그러나 그 자리서 YS의 훈수를 들은 C의원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때니까 가능했지. 요즘에는 말이 쉽지, 그게….” C의원은 계파별로 그리는 해체론 시나리오에 대해 “어느 하나 현실화하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야당발(發) 정계개편은 요즘 상황에선 불가능에 가깝다. YS, DJ 이후 야당에서 신당 창당은 어려운 일이다. 돈과 세력이 없는 상황에서 해체하고 나가 새로운 집을 짓기는 어렵다. 결국 지금의 틀에서 2007년 대선을 치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맹형규 의원도 “당 해체 주장은 하나의 아이디어일 뿐 현실화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YS, DJ시절과는 다르다. 돈과 세력으로 뭉쳐 있던 그때와는 상황이 딴판”이라는 것이다. 또 다른 한나라당 관계자의 얘기도 일맥상통한다.
“한나라당은 뿌리가 깊다. 한나라당 구성원의 면면을 보면 여기서 뛰쳐나간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보수파는 물론, 개혁소장파도 당의 울타리를 뛰쳐나가면 고사(枯死)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한나라당에선 ‘당을 해체해야 한다’는 원심력만큼 ‘울타리 밖을 나서면 안 된다’는 구심력도 만만찮게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한나라당 소장파 의원들은 연찬회에서 “전국적 선거가 없는 2005년은 한나라당이 변화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부르짖었다. 한나라당 의원들은 ‘당 해체 이후’에 대한 불안감에서 점차 벗어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