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3월호

현대사 홍수’에 허우적대는 한국 영화

향수, 패러디, 공포, 판타지에 가려진 역사적 진실

  • 김경욱 영화평론가 nirvana1895@hanafos.com

    입력2005-02-24 13:4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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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근 수년간 현대사를 다룬 영화가 붐을 일으키고 있다. ‘역도산’처럼 흥행에 실패한 영화도 있지만, ‘살인의 추억’이나 ‘실미도’처럼 성공한 영화가 많은 편이다. 문제는 실패했든 성공했든 이 영화들이 과거를 다루면서 역사의 진실을 똑바로 바라보지 않을 뿐 아니라 더러는 왜곡도 서슴지 않는다는 점이다.
    현대사 홍수’에 허우적대는 한국 영화
    21세기의 입구에서 한국 영화는 자꾸만 뒤돌아본다. 한국인은 새로운 세기에 살고 있는데 한국 영화는 과거에 머문다.

    영화만 그런 것이 아니라 영화를 선택한 대중도 그렇다. 2004년 한국 영화 박스 오피스 1, 2, 3위를 차지한 ‘태극기 휘날리며’ ‘실미도’ ‘말죽거리 잔혹사’는 모두 한국 현대사를 배경으로 한 영화다. ‘하류인생’ ‘효자동 이발사’ ‘역도산’ ‘바람의 파이터’ ‘알 포인트’ ‘슈퍼스타 감사용’ ‘아홉살 인생’ ‘DMZ 비무장지대’ ‘도마 안중근’도 비슷한 부류의 작품들이다.

    지난해 개봉한 74편의 한국 영화 가운데 과거를 다룬 영화가 12편이라면 적지 않은 비율이라고 할 수 있다(반면 미래를 다룬 영화는 애니메이션 ‘망치’ 단 1편뿐이다). 또 ‘그때 그 사람들’은 현재 상영중이며, ‘초승달과 밤배’ ‘엄마 얼굴 예쁘네요’ ‘웰컴 투 동막골’ ‘천군’ ‘청연’ ‘무등산 타잔’ ‘박흥숙’ ‘혈의 누’ ‘형사’가 개봉을 준비하고 있거나 촬영중이어서 올해도 과거를 다룬 영화가 적지 않을 듯싶다.

    눈여겨봐야 할 것은 반만년의 기나긴 한국사에서 유독 현대사를 그린 영화가 많다는 점이다. 왜 한국 영화에서 갑자기 현대사가 중요해진 것일까. 물론 지금까지 한국 영화가 현대사에 아예 무관심했던 것은 아니다. 지난 10년을 돌아보면 박광수의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장선우의 ‘꽃잎’, 이창동의 ‘박하사탕’ 같은 영화를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영화들은 작가적인 관심의 결과물이었을 뿐 대중적인 신드롬을 이끌어내지는 못했다.

    아마도 현대사를 배경으로 해 대중의 열광적인 지지를 얻은 최초의 영화는 2001년 개봉한 곽경택의 ‘친구’일 것이다. 전국에서 800만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 당시 한국 영화의 흥행기록을 경신한 ‘친구’의 시대적 배경은 1970년대 말부터 1993년까지다. 영화에는 연기를 내뿜는 소독차부터 옛날 게임기, 롤러 스케이트장, 그리고 조오련이라는 이름에 이르기까지 주인공들이 통과하는 시대의 향수가 짙게 묻어난다.



    향수만 있을 뿐 역사가 없다

    자막을 통해 정확한 연도를 구체적으로 명시하는 영화는 그러나 역사의 기억을 돌아보지 않는다. 우리는 주인공들이 살던 시대가 박정희와 전두환과 노태우와 김영삼의 시대였다는 흔적을 찾을 수 없다. 영화는 그 시대에 벌어진 어떤 역사적 사건도 언급하지 않은 채 다만 억압과 폭력으로 얼룩진 그 시대로부터 향수만을 불러온다. 그러나 향수는 역사가 아니다.

    ‘한국형 블록버스터’라는 말을 유행시킨 ‘쉬리’와 ‘쉬리’의 흥행기록을 경신한 ‘공동경비구역 JSA’는 흥행에 크게 성공했음에도 비슷한 영화가 재생산되는 유행을 만들지는 못했다.

    반면 ‘친구’는 신기하게도 다양한 유형으로 확대 재생산됐다. ‘조폭영화’의 원형을 제시하면서 조폭영화 붐을 일으킨 것. 조폭영화는 다시 다양한 변주를 통해 재생산됐다. 그러나 조폭영화는 ‘친구’의 정서가 향수라는 사실을 간과했기에 흥행성공을 재생산하지는 못했다.

    그렇게 한 해가 지나가자 이번에는 ‘친구’의 ‘시대’가 재생산되기 시작했다. 2002년 월드컵의 열기 속에 가까스로 흥행에 성공한 ‘해적, 디스코왕 되다’(이하 ‘해적’)를 비롯해 ‘몽정기’ ‘품행제로’가 등장한 것이다. 이들은 10대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일종의 하이틴 영화인데, ‘친구’의 영향이 아니라면 굳이 1980년대를 시대 배경으로 설정할 이유가 있는지 의문이다. 특히 ‘해적’과 ‘품행제로’는 ‘친구’ 주인공들의 20대 시절을 따로 떼어내 패러디하는 전략을 구사한 영화처럼 보인다. 또한 ‘친구’의 ‘향수’를 다시 불러와 재미의 장치로 버무린다.

    이 영화들은 누가 더 기억력이 좋은지 내기라도 하듯 그 시대를 표상하는 것을 더 많이 전시하려고 애쓴다. 남루한 달동네와 꼬불꼬불한 골목길, 쌓여있는 연탄재와 연탄아궁이, 쪼그려 앉아 일을 보는 ‘푸세식’ 변소, 이삿짐을 싣고 가는 리어카, 연탄 위에서 김을 내뿜는 호빵, 유리병에 든 우유, 발동기 붙인 딸딸이 자전거, 부채표 활명수 병, 녹색 포니 택시, 털실로 뜬 벙어리장갑과 판탈롱 바지, 디스코장과 롤러스케이트장, 나이키 신발과 커다란 뿔테안경, 핀컬 파마와 웰라폼, 화생방 훈련과 교련 수업, 하록 선장과 캔디, 오후 5시 정각을 알리는 국기 강하식, 클래식 기타 교습소와 ‘빽판’, 디스코장과 정독도서관, 김승진의 ‘스잔’과 박혜성의 ‘경아’까지.

    기억의 혼란

    그러나 기억은 종종 순서가 뒤바뀌거나 영화를 혼란에 빠뜨린다. 향수에 집착하다 보니 때로는 영화의 무대가 1970년대처럼 보인다. 또 1980년대와 1970년대가 뒤섞이면서 1970년대의 향수를 자극한다. 시대적 표상을 자질구레하게 재현하면서 1980년대라는 역사적 시간은 향수를 부르는 장치가 되지만 정작 역사는 기억 속에 묻혀버린다.

    패러디와 코미디, 유아성과 퇴행성, 도피주의와 판타지가 잡동사니와 뒤섞이면서 추억은 그 시대로부터 직면하고 싶지 않은 역사적 사건들을 가려버린다. 광주의 피눈물로 시작해 거리의 투쟁을 거쳐 1987년 6월민주항쟁과 1988년 서울올림픽, 기만적인 3당합당으로 끝장난 1980년대의 역사는 이 영화들의 어디에도 없다.

    그 결과 2002년 한국 ‘향수영화’에 그려진 1980년대는 10대와 20대에게는 낯선 것들과 촌스러움으로 웃음을 안겨주고, 386세대에게는 순수의 시대를 뒤돌아보는 위안을 선사한다. 그리고 마지막 정지화면 속에 그 시간을 봉인해버린다.

    웃음과 위안을 안겨주는 순수의 1980년대? 그러나 1980년대의 두려움이 모두 잊혀진 것은 아니다. 2003년 개봉한 봉준호의 ‘살인의 추억’은 그 1980년대를 연쇄살인마가 출몰하는 공포의 시간으로 뒤바꾼다.

    코미디가 공포영화로

    1980년대에 실제로 일어난 화성 연쇄살인사건을 다룬 이 영화는 공포 장르의 한 갈래인 난도질 영화(slasher movie)의 관습을 즐겨 사용한다. 거의 마지막까지 살인마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방식이나 에필로그 처리가 특히 그렇다. 현재의 시점으로 건너오는 마지막 장면에서 형사 박두만은 우연히 사건현장에 다시 서게 된다.

    시체가 놓여 있던 논도랑을 들여다보는 그에게 한 소녀가 말을 건다. 며칠 전 어떤 남자가 자기가 옛날에 했던 일이 생각나 그 논도랑을 들여다보았다는 것이다. 그 남자가 그냥 평범하게 생겼다고 소녀가 말할 때, 박두만은 고개를 돌려 관객을 응시한다. 얼굴을 보면 범인인지 아닌지 알 수 있다고 했던 그는 스크린을 넘어 평범한 관객들에게서 연쇄살인마의 얼굴을 찾아내려는 것처럼 보인다.

    단란한 가정을 꾸린 평범한 가장이 추수를 앞둔 가을 들판을 걸어가는 지극히 평화로운 이미지는 박두만이 그 속에서 무엇인가를 찾으려 하자마자 바로 깨져버린다. 또한 그의 응시는 ‘살인의 추억’을 간직한 살인마와 함께 영화를 보고 있을지 모른다는 의심을 일으키며 관객을 허구에서 현실로 불러온다.

    연쇄살인을 저지른 괴물이 세월을 건너뛰어 아직도 우리 곁에서 살아 숨쉬고 있다는 암시는 분명 무시무시한 괴물이 언제든 ‘다시 돌아올 수 있는’ 난도질 영화를 닮았다. 여기서 주의를 기울여야 할 점은 1980년대로부터 실화를 끌어들이자 코미디가 공포영화로 바뀐다는 사실이다.

    사례에서 보듯 현대사를 다루는 한국 영화는 크게 두 가지, 즉 역사의 향수·추억을 다루는 영화와 역사의 기억을 다루는 영화로 나눌 수 있다. 예를 들어 ‘말죽거리 잔혹사’는 ‘해적’이나 ‘품행제로’와는 다른 방식으로 참혹했던 1970년대 말의 고교시절을 그린다. 웃음을 거두고 정색을 한 채 그때를 살아간 인물들을 조명하지만, ‘친구’처럼 감독 자신의 경험이 녹아들어 있기에 그 시절을 추억하는 향수영화의 범주에 들어간다.

    반면 4·19와 5·16, 10월유신으로 이어지는 현대사의 격랑을 보여주는 ‘하류인생’과 ‘효자동 이발사’, 베트남전을 배경으로 한 ‘알 포인트’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역사의 기억을 다룬 영화다.

    그러나 이 구분이 항상 명확한 것은 아니다. 남한 인구 4700만명 중 1250만명이 본 ‘태극기 휘날리며’는 이 구분을 모호하게 만든다. 그것은 역사 속의 개인이 아니라 기억 속의 역사를 다루기 때문이다.

    영화는 동생의 플래시백(flashback·장면의 순간적인 전환을 반복하는 수법) 구조인데, 이상하게도 플래시백 속의 이야기는 형의 관점으로 진행된다. 기이하게도 기억의 상호 주관성이라는 플래시백 형식으로 전개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영화는 6·25전쟁을 기억하는 척하면서 형제애가 핵심인 멜로드라마의 틀 속에 6·25전쟁이라는 역사를 가둬버린다. 6·25전쟁은 스펙터클을 위한 장치의 기능을 가질 뿐이며, 영화의 관심은 오로지 극단적인, 그야말로 잔혹한 외부 환경 속에서 핏줄을 지키고 가문의 영광을 구현하려는 형제의 악전고투를 신파조로 그려내는 데 집중한다.

    ‘살인의 추억’이 대중적으로, 그리고 비평적으로 성공한 다음 ‘실미도’가 도착했고, 한국 영화로선 꿈의 숫자이던 1000만 관객을 동원했다. ‘살인의 추억’과 ‘실미도’의 성공은 실재 사건을 소재로 한 실화영화 붐을 일으키는 원동력이 됐다.

    그러나 ‘바람의 파이터’는 성공했지만 ‘슈퍼스타 감사용’은 실패했으며, 지난해 하반기 최고 기대작으로 100억원이 넘는 제작비가 들어간 ‘역도산’은 서울 관객 38만명을 동원하는 데 그쳤다. 왜 한쪽은 성공하고 다른 한쪽은 실패한 것일까. 역사와의 대면에서 대중이 쳐다보고 싶은 것과 마주하기 싫은 것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실미도’는 1971년 8월23일에 일어난 ‘실미도 사건’을 그렸으며, ‘역도산’은 1925년부터 1963년까지 살다 간 실존인물 김신락이 주인공이다. 제목 자체에서 실화영화임을 알리는 ‘실미도’와 ‘역도산’, 이 두 편은 각각 성공한 블록버스터와 실패한 블록버스터로 자리매김했다.

    현대사 홍수’에 허우적대는 한국 영화

    ‘실미도’는 북파공작요원들을 1970년대라는 ‘역사의 희생’이 아니라 ‘역사를 위한 희생’으로 몰아넣는다.

    여기서 질문하고 싶은 것은 ‘실미도’가 끔찍한 실화를 다루고 있음에도 어떻게 그토록 대중의 관심을 끄는 영화가 됐는지다. 영화는 군사독재 시절 ‘실미도 난동사건’으로 불리며 지난 30여 년간 진상이 밝혀지지 않은 사건을 다뤘다.

    1968년 1월21일 일어난 남파 공작원 김신조 일당의 청와대 습격사건을 계기로 684 북파공작원 부대가 창설됐고, 실미도에서 혹독한 훈련을 받던 부대원들이 정치적 상황 변화로 오히려 제거대상이 되자 탈출을 시도, 서울로 진입했다가 대부분 자폭으로 사망한 사건이다.

    사건 초기, 당국은 무장공비 21명이 침투한 사건이라고 발표했다가 나중에는 공군이 실미도에서 관리하던 특수범 23명의 난동이라고 정정했다. 그러나 이 사건을 직접 경험하거나 목격한 사람이 꽤 있고 부대원 가운데 생존자도 있기 때문에 권위주의 정권 시대의 다른 여러 사건이 그랬듯이 ‘카더라 통신’을 통해 사건의 이면에 대한 얘기가 은밀하게 회자됐다.

    영화가 개봉되고 ‘실미도 사건’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면서 사건의 진상을 밝히려는 시도들(예를 들어 제물포고교 황재순 교감이 인천광역시 교육청에 공개한 ‘실미도사건 일지’가 있고, 영화 제작 이전에는 MBC가 1999년 12월19일 ‘이제는 말할 수 있다’에서 방영한 ‘실미도 특수부대’가 있다)이 이어졌다.

    그러나 지금도 사건의 전말이 완전히 밝혀진 것은 아니다. 영화와 밝혀진 사실을 비교하면, 부대원들은 영화에서보다 훨씬 혹독한 훈련을 받았고, 훈련중 사망자가 영화에서는 세 명이지만 실제로는 일곱 명이며, 영화 속 인물과 실재인물의 행동이 많이 다르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물론 영화 ‘실미도’는 다큐멘터리가 아니며, 자막을 통해 일부 내용을 각색한 사실을 알리고 있다. 여기서 핵심은 각색과정에 생성된 가해자와 희생자에 대한 관점이다. 주인공 강인찬(설경구 분)은 월북한 아버지 탓에 연좌제에 걸려 정상적인 사회생활이 어렵자 조폭으로 활동하다 살인미수로 수감돼 사형선고를 받는다. 죽음을 눈앞에 둔 그 앞에 최재현 준위(안성기 분)가 찾아와 ‘이 칼, 나라를 위해 다시 잡을 수 있겠냐’고 말한 뒤 ‘사형을 집행하라’고 명령한다.

    다음 장면에서 교수형이 집행되는 인물은 강인찬이 아니라 한상필(정재영 분)이다. 한상필이 교수형에 처해졌지만 죽지 않았음을 알려주는 장면 다음에 실미도로 향하는 배가 나타난다. 조 중사(허준호 분)를 비롯한 군인들을 제외하고 그 배에 탄 31명의 남자 중에 강인찬과 한상필이 보인다. 영화에서는 684북파공작원부대에 소속될 31명의 남자는 모두 사형에 처해질 정도로 극악한 범죄자임을 암묵적으로 드러낸다. 그러나 실제로는 일반인과 공군 출신이 절반이었다고 한다.

    실재 사건을 영화화하는 과정에 극적 장치를 위해 허구의 인물이 만들어질 수 있고 실존인물이 다소 각색될 수도 있다. 하지만 주인공을 빨갱이의 아들로 설정하고 684부대원 전원을 사형수로 각색해 대중에게 호소하는 심리적 효과는 무엇일까.

    강인찬은 “그 새끼(아버지) 찾아가서 머리통에 구멍 내서 빨갱이 피는 어떻게 다른지 내 눈으로 꼭 볼 거야… 김일성 모가지 따서 그 새끼 앞에 들이대려면 나 북한 가야 돼” 같은 대사를 통해 자신의 삶을 망가뜨린 아버지를 뼛속 깊이 증오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만일 빨갱이가 아니었다면 아무리 자식을 버린 아버지라 해도 ‘그 새끼’라는 표현이 가능했을까. 남북한의 화해 분위기가 상당히 진전된 2003년의 남한에서 거듭 반복되는 ‘김일성 모가지를 딴다’는 대사와 형언할 수 없는 빨갱이 혐오증은 역사의 상처를 깊이 자극한다.

    고민 없는 냉전논리 차용

    강인찬은 연좌제나 분단의 현실을 불평하거나 북파공작의 부당성을 돌아보는 대신 빨갱이 아버지에게 복수하는 것만이 자신의 목숨을 바칠 만한 일생일대의 소임이라고 믿는다. 다른 대원들도 사형수의 멍에를 걷고 당당한 사회인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북한에 가서 임무를 완수해야 한다는 강력한 동기를 부여받는다. 심지어 그들은 정치적 상황 변화로 북한행을 가로막는 기간병들에게 ‘무조건 보내만 달라’고 한 목소리로 절규한다.

    여기서 영화의 기이한 논리가 성립한다. 문제의 초점이 북파공작을 펼친 ‘잘못된’ 정책에서 684부대원들을 북한에 가지 못하게 막은 ‘잘못된’ 정책으로 이동하는 것이다.

    그런데 당국의 정책 변화는 대립 일변도의 남북관계가 대화를 통해 완화될 조짐이 생겼기 때문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684부대원 제거 공작에 관련된 중앙정보부 차장으로 추정되는 인물은 ‘실미도 난동사건 진상보고서’를 옆으로 치우고 ‘남북적십자 예비회담 준비보고서’를 집어든다. 이와 동시에 영화의 비극은 완성된다.

    그러나 영화는 남북간 대화가 이루어지지 않고 끝내 684부대가 월북해 주석궁을 기습했다면 어떻게 됐을지는 전혀 염두에 두지 않는다. 한반도 전체가 불바다로 초토화할 수 있는 끔찍한 가정에 대해 영화는 단 한 번도 질문하지 않는다.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선구자로 자리매김한 ‘쉬리’와 ‘공동경비구역 JSA’처럼, 그리고 한국 영화 사상 최고의 흥행작인 ‘태극기 휘날리며’처럼, ‘실미도’는 역사의 상처와 분단의 현실을 매개로 한 냉전논리를 내세우고 있다.

    영화는 결국 북한에 가지 못한 대원들이 실미도를 탈출, 버스를 탈취해 청와대로 향하다가 여의치 않자 자폭하는 것으로 끝난다. 그들이 죽음에 이르는 과정은 이 영화의 절정이다. 수류탄 폭파로 곧 공중분해될 버스에 자신의 이름을 남기겠다며 대원들이 혈서를 쓰는 부조리한 행위까지 극적 장치로 동원된다.

    강인찬이 다른 대원들에게 버스에서 내려 살길을 찾으라고 권유하자 다들 전우애를 내세우며 비장한 어조로 단호히 거부한다. 그러나 황재순 교감의 자료를 보면, 버스가 폭파한 것은 타고 가던 버스가 가로수에 충돌하자 대원 하나가 수류탄을 떨어뜨렸고 이어 다른 대원 세 명도 수류탄을 떨어뜨린 탓이다. 다시 말해 그들은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우발적인 사고로 죽은 것이다.

    비록 극적 장치로서 영화의 흥미를 더하기 위해 그들의 죽음을 각색했고 ‘수류탄 폭발로 죽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고 해도, 역사적 사건을 왜곡했다는 비판은 피할 수 없다. 실미도에서 극도로 비인간적인 훈련을 받고 인간병기가 됐으나 전우애를 위해서라면 기꺼이 목숨도 버릴 수 있는 의리의 사내들. 그들이 인간의 숭고함과 존엄성을 빼앗은 잔혹한 훈련을 거치고 나서도 여전히 인간적인 면모를 간직하고 있는 것은 사건 자체의 폭력성을 완화한다.

    여기서 생각해볼 문제는 실화의 각색 과정에 684부대원들의 최후가 다르게 묘사될 수도 있었다는 점이다. 군대와 교전하던 끝에 전사하는 것으로 설정할 수도 있었겠지만, 감독 강우석과 시나리오 작가는 그들에게 ‘자살’이라는 결정을 내리게 했다.

    그리하여 그들을 1970년대라는 ‘역사에 의한’ 희생이 아니라 ‘역사를 위한’ 희생으로 몰아넣는다. 그들이 수동적으로 희생당한 게 아니라 능동적으로 희생했다는 설정을 통해 그들의 죽음은 필연이 아니라 선택이 된다. 그 속에서 우리는 역사의 죄의식으로부터 슬그머니 빠져나오고 대신 그들에게 영웅신화의 자리를 넘겨준다. 이것은 허구를 방패 삼아 역사의 희생자들을 두 번 죽이는 것이 아닐까.

    이 지점에서 ‘실미도’는 어떤 관점에서 역사적 사건을 바라보고 있느냐는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영화에서는 684부대를 창설하고 나중에 제거를 명령한 사람들의 이름이 한번도 언급되지 않는다. 현실적으로 완전히 밝혀지지 않은 부분이 있어 그렇다고 하더라도 684부대의 책임자인 최재현 준위는 상부의 명령을 실행에 옮기는 일차적인 가해자의 위치에 있는 인물이다.

    그러나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최 준위와 강인찬 사이에는 미묘한 ‘유사 부자관계’가 성립한다. 최 준위는 훈련과정에 강인찬에게 호의를 베풀다가 나중에는 상부에서 제거 명령이 떨어졌다는 사실을 은밀하게 알려준다. 그는 총을 들고 항의하는 강인찬에게 “이제 내 임무는 너를 죽이는 것이며, 국가의 명령에 따라 네가 쏘지 않으면 내가 너를 쏘아야 한다”고 말하면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그러나 현실에서 최 준위의 모델 김준웅 부대장은 대원들에게 살해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실과 다른 이러한 각색을 통해 가해자의 행위는 면죄부를 받는다.

    ‘실미도’는 권위주의 시대, 역사의 희생자를 제대로 그려내지 못하고, ‘카더라’ 통신으로 회자된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려고도 하지 않는다. 물론 이 영화가 역사의 뒤안길에 머무르던 ‘실미도 사건’을 역사의 전면으로 끌어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엄청난 흥행 성공 속에 모든 것이 알려졌다는 착각이 역사의 진실을 저기 저 너머로 밀어낸다. 2004년의 한국 대중은 역사의 진실을 정면으로 마주하기보다는 은연중에 수동적으로 가해자의 처지에 동조한 것은 아닐까.

    현대사의 고통과 무관한 ‘역도산’

    영화 주인공보다 더 극적인 삶을 산 역도산을 그린 ‘역도산’도 영화화 과정에 각색됐다. 그 결과 실재 역도산과 영화의 역도산에는 적지 않은 차이가 발생했다. 감독 송해성의 인터뷰에 따르면 ‘역도산’은 실재 인물의 역사를 담은 영화가 아니라 낯선 땅에서 성공을 위해 처절하게 몸부림치며 치열하게 살아간 한 사내에 대한 이야기다.

    역도산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으로 건너가 스모 선수로 성공하려다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좌절하자 레슬링계에 입문했다. 그는 미국 프로레슬러들을 끌어들여 연전연승을 거두는 쇼를 연출해 패전의 시름에 잠긴 일본 국민에게 영웅 대접을 받다가 야쿠자와의 우발적인 다툼 끝에 칼에 맞아 서른여덟의 나이로 세상을 떴다.

    영화는 감독의 말처럼 영웅적인 역도산이 아니라 전후 일본에서 살아남기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은 ‘조선인’ 역도산을 그리고 있다. 역도산은 성공을 위해서라면 권모술수도 마다하지 않으며 정상에서 추락하지 않기 위해 아버지 같은 후원자를 배신할 수도 있는 인물이다. 그는 헌신적인 아내를 버리면서까지 오로지 성공을 향해 달려간다. 그의 뒤틀린 이미지는 아무리 영웅이라 해도 인간적인 약점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일깨우면서 인간 존재의 한계를 성찰하게 만든다.

    물론 영화는 이런 식으로 역사적인 인물의 한 부분을 강조해서 다루거나 인간적인 면에서 심층 해석할 수도 있다. 그러나 문제는 실재 역도산과 영화 속 역도산의 차이에서 빚어진 결과다.

    역도산은 성공하고 나서 은밀하게 만난 고향친구에게 “조선이 나한테 해준 게 뭔데? 난 일본인이고 조선인이고 그런 거 몰라. 난 역도산이고 세계인이다”고 말한다. 스모 도장에서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밥 먹듯이 구타당하고 결국에는 오랜 꿈을 접어야 했으면서도 왜 일본 사회에서 조선인으로는 성공할 수 없는지에 대해 전혀 생각하지 않은 듯한 말투다.

    그런데 몇 마디 안 되는 한국말로 전해지는 이 대사는 영화가 실재 역도산 캐릭터에서 생략하거나 지워버린 부분들과 연결되면서 또 다른 울림을 갖는다. 실재의 역도산은 세 번 결혼했으며, 고향인 함경남도를 떠나기 전 첫 결혼에서 딸을 하나 뒀다.

    역도산은 1961년에 딸을 만났고, 이듬해에는 김일성 주석의 50세 생일을 맞아 최고급 승용차를 선물로 보냈으며, 1964년에 개최될 도쿄올림픽에 참가하는 북측 선수단의 비용을 대겠다고 약속했다.

    뿐만 아니라 북한의 영웅 역도산은 남한과의 교류도 추구해 1963년 문교부 장관 초청으로 남한을 방문한 적이 있다. 그러나 영화에는 역도산의 고향이 어디인지 언급되지 않으며, 아야라는 일본인 여자와의 결혼생활에서도 아이는 등장하지 않는다.

    영화가 가린 역도산의 조국애

    남한과 북한을 오간 그의 행적은 전혀 그려지지 않고, 조국이라는 존재는 그가 일본으로 건너오기 전의 고향이라는 기억으로 축소된다. 패전의 고통으로 신음하던 일본인들에게 희망을 안겨준 조선인. 하지만 조선인이라는 사실을 숨겨야 했고, 조선인을 무자비하게 탄압하던 일본인들의 영웅으로 살아야 했으며, 일본 우익의 열렬한 지지를 받으면서도 북한과 접촉한 모순덩어리의 인물을 영화는 다만 지나치게 성공을 갈망하다 강박증으로 스스로 무너져버린, 다소 이상한 인물로 그린다.

    한국 현대사의 질곡과 그의 운명은 떼어내기 어려운 것이지만, 영화의 역도산에게는 분단 조국이나 자아 정체성에 대한 고민의 흔적은 전혀 없다. 그래서 역도산이란 존재의 모순에서 발생한, 아직 진실이 밝혀지지 않은 비극적인 죽음의 원인도 역사적인 희생이 아니라 개인의 강박적인 성격 탓으로 돌려진다.

    역도산의 죽음을 둘러싼 미스터리를 포함한 역사의 진실은 한 인간의 심층 해부라는 명목 아래 언급조차 되지 않는다. 일본의 전설적인 프로레슬러라는 신화에 걸맞게 멋진 영웅으로 그려지지 않은 역도산, 한국 현대사의 고통과 무관한 역도산은 한국 영화를 자막을 통해 봐야 했던 관객과 소통할 접점을 잃은 채 흥행에 참패했다.

    반면 ‘실미도’는 그것이 부정적이라 할지라도 우리의 마음속 깊이 각인된 역사의 심적 상처(trauma)를 자극함으로써 관객과 미묘한 공감대를 만들어냈다.

    ‘역도산’이 일본 영화시장에서의 성공을 노려 그가 ‘조선인’이라는 사실을 피하고 있다면, 역도산이 일본에서 성공하기 위해 김신락이라는 정체성을 숨긴 행위를 고스란히 반복하는 것이다. 이러한 반복은 나쁜 선택에 대한 더 나쁜 선택이다. 왜냐하면 나쁜 선택 속에서, 역도산이 나쁜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역사성은 또다시 상실되기 때문이다.

    ‘역도산’ 다음에 우리 앞에는 한국 현대사 전대미문의 사건을 다룬 임상수 감독의 ‘그때 그 사람들’이 등장했다. 이 영화는 ‘실미도’나 ‘역도산’과 달리 역사를 정면으로 마주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

    영화는 1979년 10월26일, 궁정동 만찬장에서 김재규가 박정희를 살해하는 과정과 그 직후의 상황을 ‘블랙코미디’의 시선으로 그려나간다. 그러나 앞의 두 영화처럼, 사건에 대한 역사적 해석도 없고 진실에 대한 새로운 시선도 없다.

    우리는 김재규가 왜 박정희를 살해할 수밖에 없었는지 끝내 알 수 없다. 경호실장 차지철과의 암투로 대통령을 살해한 국사범인지, 대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 영웅인지, 계획적인 사건인지 우발적인 사건인지, 영화는 알려주지 않는다. 엄청난 역사적 사건 앞에서 인물들은 저마다 허둥거리고 우왕좌왕할 뿐이다.

    두려움을 피하려는 웃음

    결국 김재규는 박정희를 죽이는 데는 성공하지만 다음의 행동에서는 실패한다. 그러나 김재규가 무엇에 실패했는지 우리는 끝내 알 수 없다. 그 모든 실패의 의미를 묻지 않은 채, 영화는 다만 그 사건이 지닌 엄청난 역사의 무게를 최대한 희화화하는 데 주력한다. 박정희 시대를 다룬 또 다른 영화 ‘효자동 이발사’도 이 영화와 마찬가지로 어린이를 고문하는 장면까지 코믹하게 그린다.

    물론 역사적 사건을 블랙코미디로 다룰지, 사실주의적 관점에서 볼지는 예술적 선택이다. 이상한 점은 ‘그때 그 사람들’과 ‘효자동 이발사’는 모두 웃음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웃음은 풍자나 아이러니라기보다는 그 무시무시한 시대의 실재에 대한 두려움을 피하려는 웃음처럼 보인다. 역사에 대해 아무런 관점이 없는 영화의 웃음은 역설적으로 2005년의 우리에게 한국 현대사는 여전히 무서운 공포의 대상임을 환기시켜 준다.

    현대사 홍수’에 허우적대는 한국 영화

    ‘그때 그 사람들’의 ‘웃음’은 풍자나 아이러니라기보다 그 무시무시하던 시대의 실재에 대한 두려움을 피하려는 웃음처럼 보인다.

    단도직입적으로 다시 질문해 보자. 한국 영화는 왜 과거에 관심이 많은가. 영화기획 차원에서 보면 역사상 문제적 사건이나 인물은 영화의 소재로 선택하기에 매력적인 면이 있다. 특히 한국 현대사에는 영화보다 더 영화적인 실화가 널려 있지 않은가!

    많은 사람에게 알려진 실화를 영화화하는 것은 대중의 관심을 끄는 홍보 효과와 더불어 흥행이 보증되는 장점이 있다. 예를 들어 ‘실미도’ 개봉 당시 언론은 영화와 ‘실미도 사건’을 연결하면서 ‘기사거리’로 다뤘다. 게다가 지금 충무로 영화제작의 중심에 있는 386세대는 다른 어느 시대보다 의문의 사건이 많았던 1970~1980년대를 이제는 말하고 싶을 것이다.

    권위주의 정권에 맞서 싸웠든, 주변의 방관자로 지켜보았든, 그 시대를 통과한 것은 고통스러운 경험이었으며, ‘살아남은 자’의 의무를 다하고 부채를 청산하고 싶을 수도 있다.

    여기에는 두 가지 문제가 있다. 하나는 현대사를 다룬 영화들이 필연적으로 시장의 규칙에 따라 제작되고 소비된다는 것이다. 지금 한국 영화의 평균 제작비는 27억원이며 제작비에 버금가는 마케팅비가 더해진다. 이를 기준으로 추산하면 한국 영화 한 편의 총 제작비는 50억원 안팎이며, 손익분기점에 도달하는 데 250만명의 관객이 필요한 실정이다.

    이처럼 엄청난 제작비를 감당하려면 영화 시장의 규모 자체가 확장돼야 한다. 가장 현실적인 대안은 할리우드가 전세계를 대상으로 설정한 시장개념을 도입, 한류스타를 내세워 아시아 영화시장을 겨냥하는 것이다.

    문제는 역사적 사건이나 인물을 다룬 영화의 시장을 아시아로 확장할 경우 한국 현대사의 성격상 인접국가들과의 관계가 불편해질 수 있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역도산’에서, 역도산의 친북행적은 일본 우익의 반발을 살 수 있기에 묘사하기가 어려웠던 것으로 보인다.

    다른 하나는 현실과의 마찰이다. 관객에게는 자신이 경험한 사건을 영화로 보는 것이 흥미진진할 수 있다. 그러나 다루는 시대가 가까울수록 영화의 소재가 된 사건에 연루된 사람이 많이 살아 있게 마련이다. 더구나 광복 이후 제6공화국에 이르는 한국 현대사의 문제적 사건들은 대부분 권위주의정권이 은폐한 정치적 사건이며, 사건의 진상도 여전히 공식적으로 밝혀지지 않은 상태이므로 영화가 진실에 접근하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진실을 모르면서 아는 것처럼

    실미도 사건의 진실도, 역도산 죽음의 비밀도, 김재규의 진실도 우리는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한국 현대사의 모든 진실을 밝히는 것은 미국 역사의 X파일로 남아 있는 케네디 암살사건처럼 불가능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한국 현대사를 다룬 영화들에서 이상한 점은 알려지지 않은 진실에 대해 질문하는 대신 마치 전모를 완전히 알고 있는 것처럼 재구성한다는 것이다. 전부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사건이나 인물의 극적 모티프에만 관심을 두고 어떤 해석도 없이 재구성에 매달리면서 역사의 진실을 정면으로 마주하지 못하고 슬그머니 피해간다.

    역사적 진실을 직시하면서 대중의 지지를 받는 것은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일 것이다. 그러나 전자를 포기하고 후자를 선택했는데도 성공하지 못한다면?

    정말 난처한 점은 우리 사회의 중심에는 386세대가 있지만 소비의 중심에는 1970~1980년대와 무관하고 그 시대에 대해 관심도 없는 ‘블로그세대’가 있다는 것이다. 개봉 전 거의 열흘 이상 대부분의 매체에서 뉴스거리가 된 ‘그때 그 사람들’은 개봉 첫 주 흥행순위에서 ‘말아톤’과 ‘공공의 적 2’는 말할 것도 없고 ‘B형 남자친구’마저 앞서지 못했다.



    현대사를 다룬 영화들의 실망스러운 흥행결과는 역사 앞에 선 한국 영화의 무능력을 드러낸다. 그런데 이것이 현재의 진실마저 다루지 못하는 무능력으로 전이되면 어떻게 될까. 프레드릭 제임슨이 미국의 향수영화를 논하면서 한 말을 각색해서 인용하면 이렇다.

    ‘과거에 대한 집착은 우리 자신이 현재에 집중할 수 없음을 보여주며, 우리 자신의 경험을 심미적으로 재현하는 것이 불가능함을 가리킨다. 만일 이것이 사실이라면 소비자본주의 자체에 대한 무서운 고발장이자 시간과 역사를 제대로 다룰 수 없게 된 사회의 걱정스러운 병리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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