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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팔로군 출신 기공 연구가 윤금선

“울며 태어났는데, 살며 울 일 많았는데, 갈 땐 울지 말아야지…”

중국 팔로군 출신 기공 연구가 윤금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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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나 소설 속 같은 상황이 실제로 벌어졌다. 국민당군과 직접 교전하는 부대였다. 마오쩌둥의 인민해방군이 이기는 중이었다. 전선이 바뀌므로 야전병원도 같이 이동해야 했다. 무조건 걸어야 했다. 24시간 안에 180리를 긴급 행군하는 날도 있었다. 높은 산도 넘었다. 산으로 이동할 때 기압이 낮아 다들 코에서 탁탁 소리가 나더니 코피가 터졌다. 대열에서 떨어지면 죽음이었다. 여름 두 벌, 겨울 한 벌 지급되는 군복이 보급품의 전부였다.

부대는 말할 수 없이 가난했다. 그러나 인민의 물건은 바늘 한 개라도 탐할 수 없었다. 이동하다 빈 집에 자물쇠가 채워져 있고 그 방안에 두터운 솜이불이 켜켜이 쌓였어도, 그 앞에서 떨며 밤을 지새울지언정 빈 집에 맘대로 들어가지 못하는 게 규율이었다.

“어느 집에서 물 한 모금을 얻어먹으려면 반드시 그 집 물독에 물을 가득 채워줘야 했어요. 마당도 쓸어주고 집안청소도 깨끗이 해주고 나오라고 했어. 한번은 내가 어떤 마을에서 물을 긷다 두레박 끈이 뚝 끊어져 쇠로 된 바가지를 우물에 빠뜨렸어. 그럴 때 아무리 부대이동이 급해도 바가지를 건져놓지 않고는 마을을 떠날 수가 없거든. 선발대는 이미 출발했는데 두레박을 빠뜨렸으니. 간신히 두레박을 건져놓고 먼저 출발한 부대를 허겁지겁 따라가느라고 얼마나 애를 태웠던지….”

마침내 황하를 건넜다. 물이 목까지 차는 바다 같은 강이었다. 부대원이 다같이 손을 잡고 한 발 한 발 거대한 물살을 헤치며 건넜다. 황하 도강 중 숱한 사람이 죽었다. 지역사람들이 국민당군 몰래 배를 저어 와서 12명 한 반이 뱃전을 잡고 물을 건너게 도와주기도 했다. 그런 배가 뒤집어져 반원이 몰살하기도 했다. 윤금선의 반원은 한 톨도 흠결 없이 무사히 강을 건넜다. 그는 아래 전사를 잘 보살핀 공로로 훈장을 받는다.

“인민군대엔 열서너 살짜리 어린애도 많았어요. 그 애들은 눈만 감으면 사는 줄 알고 위기가 닥치면 ‘마야(엄마)’ 하면서 눈을 꼭 감지요.”



그렇게 늘 죽음이 목전에 있고 헐벗었어도, 아니 바로 그랬기에 부대원끼리 나누는 정은 하늘 아래 그만큼 뜨거울 수 없을 정도로 절절했다.

“밥을 서로 먹으려고 하는 게 아니에요. 나이든 반장들은 제 밥을 한 숟갈이라도 덜어내서 어린 병사에게 나눠주죠. 행군을 하고 나면 발바닥에 콩알같이 물집이 잡혀요. 이걸 그냥 두면 탈이 나거든요. 소독한 바늘에 머리카락을 꿰서 물집에다 살살 통과시켜요. 머리카락만 남기고 바늘을 빼버리면 그 머리카락을 타고 밤새 진물이 빠져나오거든요. 발바닥에 다들 스무 개 남짓의 머리카락을 늘이고 잠이 들지요. 날 좋으면 그걸 햇볕에 꾸덕꾸덕하게 말리고. 그런 걸 서로 해주면서 걷는 거지요. 반장이나 패장들은 반원들 발목 주물러주느라고 밤에 거의 잠도 안 자요.”

업힌 부상자를 뚫고 간 총알

큰 부상을 당하면 부상 자체보다 후방으로 후송되어 부대원들과 떨어지게 되는 걸 더 겁낼 만큼 부대원끼리 감정적으로 밀착해 있었다. 어려운 전투를 마치고 나면 서로 어깨를 붙잡고 울었다.

“꼭 월드컵 때 축구공 하나 넣으면 서로 붙잡고 우는 것 같았지.”

인민해방군은 연이어 승리했다. 사기가 하늘을 찔렀다. 그런 만큼 부상자도 많았다. 일선의 야전 이동병원은 붐비고 바빴다.

“야전병원이야 다 외과 환자지. 의사, 간호사 구별도 없어. 그저 지혈하고 소독하고 피 모자라면 수혈하고 15분 간격으로 붕대 갈아매주고 부상이 심한 환자는 후방 병원으로 이송하는 거거든. 핀셋으로 붕대를 집어주다 서로 꾸벅꾸벅 조느라고 허공에서 핀셋이 부딪치면 깜짝 놀라 깨어나고…. 각자 제 피를 100ml 주사기로 빼내서 돌아서서 환자에게 수혈하는 거예요. 피가 있어도 보관할 수가 없으니 그때 수혈은 다 호리반 전사들 피를 즉석에서 빼서 모자라는 사람에게 넣어주는 식이었지. 모자와 군복에 다들 제 혈액형을 써붙이고 다녔거든.

팔다리가 끊어진 상병자도 많아. 그러면 일일이 밥도 떠먹여야 해요. 대변 보면 닦아줘야 하고. 아휴, 그걸 어찌 말로 다해요. 그래놓고는 금방 다시 행군을 시작하는 거지요.”

부대에서 군의(軍醫)학교를 다녔다. 군사외과와 내과를 배웠다. 사상교육이 특히 철저했다. ‘3개 기율, 8대주의’를 늘 외고 다녔다. ‘인민의 물건을 건드려선 안 된다. 인민에게 손톱 끝만치라도 폐를 끼쳐서는 인민해방을 위한 군대가 아니다’는 것이 첫째 기율이었다.

한번은 그가 쓰러진 부상병을 등에 업고 달렸다. 업힌 중에 그 부상자의 몸으로 다시 한 번 탄알이 관통하는 게 느껴졌다. 더욱 죽을 힘으로 달렸다. 막사 안에 내려놓으니 부상자는 이미 죽은 후였다. 몸이 피투성이가 된 것은 물론이었다. 나중 생각하니 업힌 부상자가 아니었으면 그 탄알은 자기 몸을 뚫고 지나갔을지도 모른다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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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령 자유기고가 psyche325@hanmail.net / 사진·김성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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