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태준(44)씨가 건넨 명함에는 네 가지 직업이 일렬종대로 씌어 있었다. ‘뽈랄라수집관 관장’과 ‘뽈랄라상회 대표’도 맡고 있는 그는 자신이 모은 ‘우리나라 장난감’을 분석·정리할 때는 ‘장난감 연구가’가 된다. 잠정 휴업 중인 공방 ‘신식공작소’에서 온갖 장난감과 시시껄렁한 물건을 만들어 팔 때는 미술 작가였고, 차차 밝히겠지만 머지않아 영화 시나리오 작가 겸 감독, ‘서민문화연구소’ 소장이 될 예정이다.
그의 명함이 그나마 단출한 건 끝없이 이어지는 직업 메들리를 듣다 못한 지인이 “얘야, 직업이란 돈 되는 일을 가리키는 말이야” 하고 일러줬기 때문이다. 이 정의에 따르자니 명함에 적을 수 있는 직함이 확 줄었다. 그간 벌여놓은 일 중 돈 되는 것만 추리고, 늘 직업이라고 생각해온 ‘아저씨’는 뒷면에 카툰으로 그렸다. 그의 명함을 뒤집으면 파란 양복을 입은 아저씨가 ‘실내 포장마차’ 간판을 보며 헤~ 침 흘리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한잔 거나하게 걸치고 2차 장소를 물색하는, 딱 대한민국의 보통 아저씨다.
“신기하고 괴상망측한 아저씨”
“하고 싶은 일은 다 하고 하기 싫은 일은 안 한다.”
현씨를 만나기 전 들은 그에 대한 인물평이다. 만화가 이우일은 그를 보고 “도대체 어떻게 젊은 시절을 보내면 이렇게 신기하고 괴상망측한 아저씨가 될 수 있단 말인가”라고 했다. 사람들은 그를 보며 때로 경탄하고, 때로는 혀를 찬다.
그가 ‘하고 싶어서 하는’ 홍대 앞 이색 공간 ‘뽈랄라수집관’에서 현씨를 만났다. 키 182㎝에 0.1t을 ‘살짝’ 넘는 몸무게, 뱅글뱅글 돌아갈 듯 크고 두꺼운 안경을 쓴 그는 막 인형극에서 튀어나온 캐릭터 같았다. 심술쟁이 두꺼비 퉁퉁이 혹은 말썽꾸러기 개구리 투투. 마침 그의 옆에 입 안이 새빨간 악어 인형이 놓여 있어 그렇게 느껴졌는지도 모른다. 등 뒤로는 ‘대낮에 키스하여 밝은 사회 이룩하자(불건전키스방지협회)’ 따위의 문구가 적힌 포스터가 몇 장 붙어 있었다.
‘뽈랄라수집관’을 ‘이색 공간’이라고 소개한 건 대략 이런 분위기여서다. 현씨 자신도 뭐라고 딱히 설명하기 곤란했던지, 입구 간판에 ‘최첨단 홍대 앞의 서브컬처 명소’ ‘the world best unique museum’ ‘세상의 잡동사니 보물섬’ 등 온갖 미사여구를 적어놓았다. 이 중 실제에 가장 근접한 표현을 찾는다면 ‘잡동사니 보물섬’ 정도가 될 것 같다.
100㎡ 규모의 지하 공간 속, 촘촘히 늘어선 유리장 안에는 현씨가 모은 잡동사니가 빼곡히 전시돼 있다. 한때 우리 주위 어디서나 볼 수 있었지만 이제는 사라진 것들, 청순한 소녀가 그려진 껌 종이, 손바닥 반만한 크기의 구둣주걱, 불량식품 쫀드기 포장지, 울상을 짓고 있는 못난이 인형 따위가 반들반들 닦인 채 ‘소장품’ 자격으로 들어앉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