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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온 후 산색이 환장하게 곱네요’

지리산에서 산야초 차 · 효소 만드는 전문희

‘비온 후 산색이 환장하게 곱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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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콧날이 곱고 눈매가 여린 노루 같은 여자 전문희의 지리산 산중살이. 병든 어머니 보살피려 서울 생활 정리하고 내려갔다가 그대로 눌러앉아서 차와 효소에 빠졌다.
  • 한때 통기타 가수이기도 해서 지금도 산에서 노래를 부르며 산다. 뱀도 무뢰배도 물리치며 자연처럼 강하게 산다.
‘비온 후 산색이 환장하게 곱네요’
머리맡에 개울물 소리가 요란하다. 다른 소리를 다 묻어버릴 기세다. 여기는 전문희의 방이고 그의 강권으로 나는 뜨끈뜨끈한 ‘황토 매트’에 길게 누웠다.

“장마철 아니라도 물소리가 늘 저러탕께. 여기가 시천면 아니오? 물이 화살처럼 흘러간다고 시천(矢川)이제!”

방은 곧 사람이다. 사는 방에 들어서보면 주인의 얼개가 대강은 보인다. 삶의 우선순위를 어디에 두는지, 관심사가 뭔지, 취향과 안목의 정도가 어떤지 등등이 얼추 짚어진다. 따로 옷장 없이 입을 옷을 윗목에 가지런히 개어뒀다. 면이나 마에 황토, 감, 숯으로 염색한 옷들은 납작납작 접어지니 서양식 옷장이 필요치 않은가 보다. 전각가 진공재가 애련설을 풀어 적은 병풍이 놓이고 차와 다기들이 즐비한데 다구를 올린 탁자의 품새도 예사롭지 않고 벽에 건 한희원의 그림 몇 점도 소슬하고 격조가 있다.

나는 전문희라는 사람을 다시 지긋이 보며 한가롭게 누웠다. 처음 그를 본 건 전주에서 열린 웨르너 사세와 홍신자 부부의 전시회 오프닝에서였다. 만장한 사람들 사이에서 웬 노루 같은 여자가 뛰어다니고 있었다. 노루 같다는 것은 팔 다리가 길쭉하다는 뜻도 있지만 눈동자가 유독 맑고 슬쩍 겁에 질린 듯도 하고 자연 속에서 문명으로 갓 빠져나온 듯한 어색함과 청신함이 두루 묶인 말이다. 그날 전화번호를 얻어왔다.

그런 지 한 달 후 나는 드디어 천왕봉에서 흘러온 물이 눈앞에 콸콸대고 그 너머로 대숲이 우거지고 여기저기 아름드리 바위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굴러다니는 이곳으로 왔다. 새삼 이것저것 짚어보려는 문답들은 부질없다. 천왕봉으로 오르는 중산리 입구 동당리에 숨어 있는 그의 집 황토방, 몸이 한없이 기분 좋게 풀리는 이 순간만으로도 나는 전문희가 왜 이곳에 둥지를 틀었는지 짐작할 수 있겠다. 황토방은 차를 발효하는 용도로 쓰인다. 전문희가 지난 계절 지리산 700고지 이상에서만 뜯어온 어린 새순들을 덖고 말리고 발효시키는 곳이다. 10여 개의 오지항아리 안에는 마치 된장이 익듯 창호지 봉지에 담긴 차가 익어가고 있었다.



“이게 오년 발효한 차랑께. 향기 한번 죽이제요?”

스님에게서 제다법 배우기도

‘비온 후 산색이 환장하게 곱네요’

전문희씨의 방을 장식하고 있는 다기와 소품들.

삼베보자기로 덮은 항아리 뚜껑을 열고 흡사 제가 낳은 아기를 자랑하듯 뿌듯한 낯빛을 짓는다. 그는 이쁘고 말간 눈과 고운 콧날을 가졌지만 말만은 거칠게 한다. 내가 ‘개’라고 불렀더니 얼른 “개가 아니라 개새끼랑께”라고 정정해놓고는 깔깔 웃는다. “이놈 상팔아!”라고 상좌를 부르듯 마당에 노는 개를 부른다. 개팔자가 상팔자라고 이름을 ‘상팔이’라고 지었단다. 그는 성정이 여리고 고와서 겉으로 짐짓 거칠게 군다. 그게 금방 읽힌다. 얘기 도중 맑은 눈에 일쑤 눈물이 확 고이는 것을 내게 여러 번 들켰고 그가 쓴 ‘산야초 차’와 ‘산야초 효소’ 책에도 여리고 예민한 감수성이 여러 군데서 말갛게 드러난다.

이 방에 들어오기 전엔 산야초 효소가 발효되고 있는 토굴을 구경했다. 뒷산 언덕을 파 들어간 토굴 안에는 술도가처럼 열말들이 독이 여럿 놓였고 거기 산야초 효소가 익고 있는데 허공 중엔 흡사 안개의 알갱이 같은 초파리들이 잔뜩 날아다녔다. 초파리가 있어야 발효가 제대로 이뤄진단다.

▼ 효소가 도대체 뭐예요?

“생명이 그것 없이는 하루도 살 수 없는 거지요. 잉태될 때부터 죽을 때까지 우리는 효소의 작용으로 산당께요. 발효효소, 호흡효소, 근육효소, 응혈효소, 이름만 들어도 하는 일을 알 만하잖아요? 내장활동, 근육활동, 신경활동, 두뇌활동에 효소는 필수지요.”

▼ 그건 몸 안에서 저절로 만들어지는 거 아닌가요?

“맞아요. 음식물의 소화과정에서 각 장기에서 필요한 효소가 만들어지는 게 맞지요. 그런데 그놈은 적당한 체온과 폐하, 유기산과 미네랄이 없으면 줄어들거나 활성이 저하한다네요. 지금 우리 사는 땅이 공기, 토양, 물이 오염되고 화학비료, 농약, 식품첨가제 투성이니까 효소가 감소하거나 활력이 심각하게 떨어져 있당께요. 효소가 활동을 못해 체내 균형이 깨지면 병이 나는 거지요. 그러니까 건강한 사람은 먹을 필요 없어요. 아픈 사람들, 특히 암환자에게 절실히 필요한 거제요. 그런 사람들 나눠 줄라고 맨든 거랑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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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령 | 칼럼니스트 psyche32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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