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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토레 전 뉴욕 양키스 감독

몰락하던 왕조 부활시킨 그라운드의 ‘잭 웰치’

조 토레 전 뉴욕 양키스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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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수 시절에는 스타플레이어가 즐비한 미국 메이저리그 야구(MLB)에서 9번이나 올스타에 뽑히고, ‘최우수선수(MVP)’를 수상할 정도로 잘나갔다. 메이저리그 최고 인기 팀인 뉴욕 양키스의 감독을 맡으며 지도자로 변신한 첫 해에는 18년 만의 월드시리즈 우승이라는 값진 선물을 팀에 안겼다. ‘감독 갈아치우기’가 취미인 고집불통 구단주와 까칠하고 제멋대로인 슈퍼스타 선수들 사이에서 조용한 카리스마를 빛내며 12년간 양키스의 4회 우승을 일군 그는 바로 조 토레 전 뉴욕 양키스 감독이다. 선수와 지도자로 모두 유례없는 성공을 거둔 그에게 미국 경영주간지 ‘포천’은 “잭 웰치 전 제너럴일렉트릭(GE) 회장에 버금가는 경영자”라는 찬사를 보냈다.
조 토레  전 뉴욕 양키스 감독

조 토레(왼쪽) 전 뉴욕 양키스 감독이 지난 1월 양키스구장에서 열린 올드타이머데이 행사에 참석해 팬들의 환호를 받고 있다.

“부하 직원의 잠재된 역량을 최대한 끌어내는 동시에 상사를 만족시키는 전천후 일꾼. 게다가 경쟁에 나서면 십중팔구 승리로 이끈다.”

스포츠 지도자에게 이보다 더 큰 칭찬이 있을까. 게다가 경영계의 살아 있는 전설이라 불리는 잭 웰치 전(前) 제너럴일렉트릭(GE) 회장보다 더 훌륭하다는 평가를 받았다면 어떨까. 이 칭찬을 받은 사람이 바로 조 토레(72) 전(前) 뉴욕 양키스 감독이다.

토레 감독과 웰치 회장이 모두 현역으로 활동하던 2001년 미국 경영주간지 ‘포천’은 두 사람의 경영 능력을 비교·분석하는 색다른 기사를 내놨다. ‘포천’은 그 결과 ‘명감독’이 좀 더 우수하다며 토레의 손을 들어줬다. 토레 감독이 야구팀이 아니라 기업체를 운영하는 인물이었다면 웰치 회장에 맞먹거나 그를 능가하는 걸출한 경영자가 됐을 것이라는 분석과 함께.

토레 감독이 이런 칭송을 받은 이유가 뭘까. 쓰러져가던 양키스 왕조의 부활을 가능케 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잘 알려진 대로 뉴욕 양키스는 메이저리그 최다 우승 횟수, 가장 비싼 구단 가치, 최고로 많은 선수단 전체 연봉(payroll), 홈런왕 베이비 루스가 속했던 전설의 야구팀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1980년대와 1990년대 중반에는 단 한 차례의 월드시리즈 우승도 거두지 못해 ‘모래알 군단’으로 불리는 치욕을 겪었다. 이 모래알 군단은 1996년 사령탑으로 등장한 조 토레의 부임 후 환골탈태했다. 월드시리즈에서 4차례 우승하고, 1998년부터 2000년까지는 ‘월드시리즈 3년 연속 제패’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달성하며 최강팀으로 다시 발돋움했다.



이 기간에 그가 전립선암과 싸웠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토레 감독에 대한 미국 야구계의 칭송은 더 높아졌다. 토레 감독은 감독으로 활동한 29년간 통산 4329경기에서 2326승 1997패(승률 5할3푼8리)의 성적을 기록하며 메이저리그 역대 감독 다승 5위를 달리고 있다.

일각에서는 토레 감독의 성공이 소위 선수 ‘빨’에 기인한다고 폄훼하기도 한다. 영원한 리더 데릭 지터, 홈런왕 알렉스 로드리게스, 특급 마무리 마리아노 리베라, 호타준족의 대명사 게리 셰필드 등 이름만 들어도 쟁쟁한 스타들이 즐비한 양키스에서 우승을 일궈내는 건 어렵지 않다는 것. 하지만 이는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소리다. 특급 선수가 많은 만큼 개개인의 독불장군식 행동이 잦았고, 선수단 전체의 기(氣)도 셌다. 토레 감독은 이런 톱스타를 한 팀으로 아우르고 관리하는 능력이 탁월했다.

토레 감독의 성공은 스타 선수를 대상으로 한 철저한 1대 1 ‘감성 마케팅’에 기인했다. 본인 역시 스타 선수 출신인 만큼 선수들의 복잡한 감정 변화를 잘 헤아린 토레 감독은 ‘채찍’보다 ‘당근’을 중시하는 전략을 썼다. 그는 선수들에게 어지간하면 성을 내거나 목소리를 높이지 않고 어떤 상황에서든 선수들을 믿는다는 자세를 일관되게 유지했다.

형의 영향으로 시작한 야구

조 토레  전 뉴욕 양키스 감독
‘메이저리그의 독재자’로 유명했던 조지 스타인브레너 고(故) 양키스 구단주와도 원만하게 지냈다. 스타인브레너 구단주는 취미가 감독 갈아치우기일 정도로 구단 운영에 시시콜콜 간섭했지만 토레 감독은 특유의 온화한 카리스마를 발휘하며 좋은 성적으로 구단주의 간섭을 잠재웠다.

최근 미국 야구협회는 토레 감독을 ‘2013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 나설 미국 국가대표팀의 사령탑으로 추대했다. 그가 메이저리그 내 최고 선수들로만 구성되는 WBC 감독으로 뽑힌 것 역시 “쟁쟁한 스타급 선수들을 하나로 묶는 데는 조 토레만한 역량을 지닌 감독이 없다”는 평판 덕분이다.

토레 감독은 1940년 미국 뉴욕 브루클린의 가난한 이탈리아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났다. 다른 이탈리아 이민자 가계와 마찬가지로 그의 집안은 엄격한 가톨릭 교풍이 지배하는 대가족이었고, 가족 간 우애(友愛)가 유달리 두터웠다. 그의 누나인 마거릿 토레는 수녀였다.

3남1녀 중 둘째 아들인 토레 감독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가족은 아홉 살 위의 형 프랭크 토레다. 프랭크 토레는 1950~60년대 밀워키 브루어스, 필라델피아 필리스 등에서 1루수로 뛰었다. 형의 영향을 받아 토레 감독도 어릴 때부터 야구공을 잡았다.

프랭크 토레는 메이저리그에서 8시즌 동안 선수로 활약하며 2할5푼8리의 통산 타율을 기록했다. 후하게 평가해도 B급 선수 이상이라고 보기 어려웠다. 하지만 형과 달리 토레 감독은 1960년 밀워키 브루어스에 입단하자마자 두각을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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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정민│동아일보 경제부 기자 dew@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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