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출교한 장로들은 나를 흔들어 거래를 하려 했다
- ▶ 개혁대상이 교회개혁을 부르짖었다
- ▶ 내 자식이 교회 헌금 빼돌린 것 없다
- ▶ 이번 사건은 내가 목회를 잘못해 생긴 것
- ▶ 교인들이 원하면 미련없이 떠나겠다
이번 사건은 여의도순복음교회내 임의적인 친목단체인 ‘교회사랑장로모임’에서 조목사에게 올린 건의문(207p 참조)이 일반 언론매체에 알려지면서부터 시작됐다. 이 건의문은 교회재산의 투명한 관리와 조목사의 장남인 조희준 넥스트미디어그룹 회장의 자금전용의혹 해명을 요구한 것이었다.
여의도순복음교회측은 이들의 움직임을 교회조직을 훼손하는 ‘반란’으로 보고 이 건의문에 연서명한 장로 4명을 출교(黜敎)하고 10명을 징계하는 조치를 취함으로써 사건의 파장이 확대되기 시작했다.
조용기 목사는 추석 직후인 9월13일 수요예배 설교중에 “주의 몸된 교회조직을 훼파하는 것은 예수님을 다시 십자가에 못박는 짓”이라고 질타했다.
한편 조희준 회장이 대표이사로 있는 스포츠신문 ‘스포츠투데이’의 안티사이트인 ‘안티스투(Antistoo)’에서는 이번 사건을 둘러싸고 연일 뜨거운 찬반 논쟁이 벌어지고 있고 몇몇 일간지도 이 문제를 다루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여의도순복음교회 헌금과 재산에 대한 의혹만 증폭됐을 뿐 책임있는 관계자들의 적극적인 해명은 찾아볼 수 없었다. 따라서 “조용기 목사의 아들이 교회 헌금을 빼돌려 새로운 사업을 하다가 말썽이 난 모양이다”라든지 “문제가 있는 장로들이 교회 헌금 문제를 핑계삼아 목사를 흔들려는 모양이다”는 식의 추측만 무성할 뿐이었다.
먼저 징계당한 장로들의 진의를 파악하기 위해 수소문했지만 대부분 나서기를 꺼려했다. 다만 출교당한 장로중 한 명이 익명을 요구하며 자신의 입장을 간단하게 밝혔다.
“장로들을 제명한 것은 도에 지나친 과잉대응입니다. 사실 그동안 우리는 여러 차례 조목사님을 만나려 했지만 만나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건의서를 냈는데 그러면 그걸 검토한 뒤 장로들을 만나 해명하면 될 일입니다. 그런데 우리한테 조직적으로 서명한 것을 사과하라고 했는데 그렇게 되면 우리 입장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지금이야말로 조목사님이 장로들을 만나 대화로 풀어야 합니다.”
이 장로의 주장에 따르면 이번 건의서 건은 조목사가 아프리카에 있는 동안에 갑자기 이뤄진 것이 아니라 작년부터 준비해서 수백 명의 장로로부터 서명을 받았다는 것. 그리고 서명작업의 과녁은 조목사가 아니라 그의 아들과 가족들의 교회와 국민일보 사업 관여를 막겠다는 것임을 분명히 했다. 이들 서명장로들이 언론에 나서지 않는 이유는 사건의 확대를 원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뜻도 밝혔다.
이에 대해 여의도순복음교회측에서는 징계를 당한 장로들이 이미 언론에 자신들이 서명한 건의문과 교회 헌금과 관련된 의혹을 흘려서 파문을 일으켜 놓고 지금 와서 그런 말을 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며 그 진의를 의심했다.
“건의문이 아니라 쿠데타”
과연 서명한 장로들이 주장한 대로 교회 헌금을 조목사의 아들이 유용한 것일까. 그리고 여의도순복음교회 사상 초유의 대규모 징계를 한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이런 의문들을 풀기 위해 조용기 목사를 직접 만나보았다. 그가 세계적인 영적 지도자로 인정받는 만큼 자신의 명예를 위해서라도 ‘진실’을 말할 것이라고 기대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의도순복음교회 당회장으로서 적극적인 해명을 해야 할 의무도 있었다.
‘신동아’ 마감을 눈앞에 둔 9월16일 오전, 조용기 목사는 여의도에 있는 CCMM 빌딩 11층 세계순복음재단법인 이사장 접견실에서 흔쾌히 인터뷰에 응했다. 사오마이 태풍이야기를 화제로 삼아 몇마디 나누다가 바로 질문에 들어갔다.
―한반도가 지금 태풍을 겪고 있는데 여의도순복음교회도 일종의 풍랑을 겪고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몇몇 장로들이 목사님께 올린 건의문을 읽어봤습니까?
“건의문요? 그건 건의문이 아닙니다. 건의문을 작성한 사람들 중에 대표로 나서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요. 건의문에 서명한 장로가 300명이라 했는데, 서명한 문건이 없어요. 서명이 없는 개인적 문건은 건의문이 아니죠. 우리 교회 성도가 70만명인데 몇몇 개인들이 산발적으로 모여 만든 문건에 다 귀기울이면 목회를 하지 못합니다.
더구나 그 건의문을 올린 당사자는 우리 교회에서 아주 비윤리적이고 비도덕적인 사람으로 지금 징계 대상에 있는 사람이에요. 그 사람은 광주순복음교회를 건설하는 건축업자인데, 경제적인 부정을 저질러 광주교회에서 민사 형사 소송을 걸었어요. 불의를 한 사람이 정의를 부르짖을 수는 없습니다. 물론 교회 정책에 대해 반대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정해진 룰을 따라야 하지요. 제직회(집사 이상의 직분 모임)에 와서 언제나 질의할 수 있고, 당회(목사·장로의 모임)에서 신상발언을 할 수 있고, 실행위원회에 탄원서를 낼 수 있어요. 그런 룰을 무시하고 자기들끼리 교회 밖에 나가 단체를 구성하고, 그런 걸로 사람을 포섭하려고 하는 것은 조직에 해가 됩니다.”
―건의문을 올린 장로가 목사님을 직접 찾아왔습니까.
“그 건의문을 작성한 당사자는 다른 사람을 통해 건의문을 올리고 난 다음에 밤에 내게 찾아와 잘못했다면서 세 번이나 용서해달라고 빌었어요. 그리고는 밖에 나가서 용서해달라고 말한 적이 없다고 거짓말을 합니다.”
교회개혁보다 흠집이 목적
―그들이 그전에도 건의문에 제기된 문제를 계속 건의하다가 목사님의 반응이 없으니까 이번에 터뜨린 것입니까?
“그전에는 거의 그런 적이 없어요. 갑자기 터뜨린 겁니다. 내가 아프리카 부흥회에 가 있을 동안 기습적으로, 쿠데타적으로 일을 벌여본 건데 방법이 잘못됐지요. 우리 교회 장로님이 1400명이에요. 그 중에 십수명이 모여서 자기들끼리 교회를 개혁한다, 정의를 실시한다 하는데, 그런 사람들 자체가 윤리와 도덕성에 문제가 있습니다. 징계를 받았다가 회복된 사람들도 끼어 있으니 1400명 장로들이 관심도 기울이지 않지요. 그것이 진실하고 참된 것이라면 1400명 장로들 중에 과반수라도 움직여야죠. 그래야 교회 개혁도 되는 거지요. 몇십명이 모여서 70만 성도를 모시고 있는 이 교회에 영향력을 미치려면 그런 방법으로는 통하지 않습니다.”
―교회를 개혁하려는 충정보다는 분열시키려는 의도가 있었단 말입니까?
“실제로 그 사람들은 유인물을 만들어 연판장을 돌린 후 물의를 일으키고 여론을 조성해 나를 흠집내려는 것이 목적이었지, 진실로 교회 개혁을 위한 의도가 아니었어요. 개혁돼야 할 사람들이 개혁하겠다고 나선 겁니다.”
조목사의 목소리 톤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건의문을 올린 장로에 대해 배신감을 느끼는 것 같았다.
―그 장로도 평소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은혜를 받으면서 큰 사람일 텐데, 왜 그런 행동을 했다고 보십니까?
“내가 보기에는 그들이 현재 교회와 성도들 사이에서 굉장히 곤혹스런 위치에 처해 있기 때문에 주의를 다른 데 돌려서 문제를 해결해 보려고 하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광주교회 문제가 상당히 심각해져서, 교회에서 이 사람을 징계하고 내쫓으려 하는 논의가 이는 중에 일을 일으켰거든요. 자기의 어려운 입장을 모면해 보려는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지금 말씀하신 한두 장로만 징계하지, 왜 그렇게 사상 유례가 없는 징계를 했습니까?
“징계라고 해봤자 십수명에 불과합니다. 1400명 장로 가운데 그 정도는 수에도 들지 않아요. 그리고 징계받은 장로들은 과거에 징계를 받았다가 사면 복권됐거나, 교회에 평소 불만을 가진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이번에 뭉친 거지요. 교회는 사랑이 위주이기 때문에 용서를 하려고 장로회장 등이 여러번 그들을 만나 회개하고 돌아서라고 했지만 말을 듣지 않았어요. 그러니까 우리 교회에서 장로들이 징계위원회에 고발했습니다. 징계위원회에서는 그들에게 소명을 하라고 불렀는데도 오지를 않았아요. 그래서 자동적으로 징계하게 된 것이지요.”
―이번에 일부 장로들이 작성한 문건은 목사님의 신학적인 노선보다는 교회 재산 문제나 목사님의 큰아들 문제를 거론하고 있는데요.
“그 사람들이 그런 문제를 이전에는 한번도 질문한 적이 없어요. 예를 들어 교회재산문제를 보지요. 순복음재단법인이란 게 있는데, 교회의 모든 재산을 관리하고 있어요. 아시다시피 종교재단법인은 문화관광부 감시를 받는 곳인데, 내가 어떻게 재단 재산을 뺐다 넣다 할 수 있습니까? 어떻게 그런 무식한 소리를 합니까? 재단이사회가 결의를 거쳐 재산을 취득하거나 매각을 합니다. 재산을 매각하려면 문화관광부의 허락을 또 맡아야 해요. 그걸 어떻게 내 마음대로 할 수 있겠습니까? 그 사람들은 재단의 재산을 왜 조용기 이름으로 등록했느냐 하는데, 단체 대표가 조용기이니까 그렇지, 아니면 하나님 이름으로 등록합니까?”
조목사는 조목조목 질문할 틈도 없이 그동안 참았던 말을 한꺼번에 쏟아놓았다.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는 의혹을 제기한 것에 대해 어이없어하는 듯했다. 그러나 ‘여의도순복음교회의 헌금―30대의 젊은 조희준 회장―거액의 새사업 투자’라는 삼각고리가 그럴 듯하게 연결돼 보이는 만큼 그의 빠른 말 사이사이에 끼어들어 추가 질문을 던져 보았다.
―큰아들인 조희준 회장이 국민일보 사장으로 있으면서 교회 재산을 빼돌렸다는 의혹도 있습니다.
“그것도 말도 안되는 소리예요. 아들이 여기 있으면서 돈을 뽑아갔다고 하는데, 나도 돈을 못 뽑는 마당에 어떻게 돈을 빼돌립니까. 아들은 일본과 한국에서 사업을 하고 있었는데, 국민일보에 전문경영인이 없어 적자가 누적돼 허덕거리는 바람에 내가 봉사해달라고 해서 온 겁니다. 국민일보 같은 후발 신문사가 IMF 사태를 맞으면서 한계점에 도달한 때였어요. 도저히 경영할 수 없는 처지에 놓여 있는 상황에서 내 아들 외에 월급 안받고 일할 사람이 누가 있었겠습니까. 아들은 실제로 월급을 한푼도 안 받고 2년 동안 일했어요. 아들은 1년에 430억원의 적자가 누적되는 상황에서는 국민일보가 더이상 존립할 수 없어서, 구조조정을 하고, 조직도 날씬하게 하다 보니까 욕을 얻어먹었는데 그건 당연하지요. 그리고 그 일을 마치고 자기 사업하겠다고 나간 겁니다.”
―그때 목사님이 도와준 것은 없습니까.
“우리 교회는 조직이 크다 보니까 돈의 사용이 체계적으로 돼 있습니다. 예산위원회에서 예산을 짜면 그것을 당회에 통과시킵니다. 그 다음에 재정위원회가 있어서 예산 나가는 것을 전부 조정하고, 또 감사위원회가 감사를 합니다. 이런 구도에서 어디 가서 돈을 뽑습니까. 내가 직접 1억원을 뽑으면 그때부터 문제가 됩니다. 그런데도 그 돈을 뽑아 썼다고 야단이에요. 이것은 무조건 나를 흠집내려는 겁니다. 그래야 나하고 딜링이 되지 않습니까. 내가 제일 아파하는 자식 문제를 건드리면서 말입니다. 어느 부모든지 자식을 손대면 가슴이 아픕니다.”
조목사는 아들 대목에 들어서자 감정이 북받친 듯했다. 달변인 그가 말을 약간씩 멈칫거리는 듯도 했다. 조목사는 긴장하거나 강조해야 할 대목에서는 두 발 끝으로 바닥을 가볍게 두세번 두드리는 모습을 보였는데, 아들 이야기를 하면서는 유난히 그 모습이 눈에 띄었다. 이번 사건이 꼬이게 된 배경을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말하자면 장로들이 조목사의 아들 문제를 거론한 것은 조목사의 아킬레스건을 건드린 격이었다.
―장로들의 건의문은 큰아들 퇴진 자체가 목적이 아니고 목사님을 겨냥했단 말인가요?
“그렇죠. 나하고 딜링하려고 한 짓이지요. 우리 아들의 경우 이미 국민일보노조에서 고발해서 검찰청 조사와 국세청 조사를 다 받았지 않습니까. 그리고 아들에 대해 오보를 한 언론들이 오히려 고발당해 법원에서 지는 바람에 그쪽에서 타협하자고 나온 상황이었어요. 그러니 이미 조사받을 것 다 받은 아들을 겨냥하는 것은 의미가 없어요. 그런데도 자기들에게 유리한 여론을 조성하기 위해 그런 소문을 퍼뜨려요. 그래서 내가 당회를 열어서 의문이 있는 사람은 질문하라, 내가 대답 다 하겠다고 했지요. 그런데도 그 사람들은 그 대답조차 안 들어주는 것이에요.
무조건 압력을 가해서 나와 딜링하자는 거예요. 실제로 제3자를 통해 비밀 메시지를 내게 전해왔어요. 내가 자기들을 돌봐주면 모든 걸 잠잠하게 하겠다는 거지요. 나는 그런 부정의를 살려줄 수 없어요. 만약 나와 아들이 조금이라도 잘못된 것이 있으면 언제든지 물러납니다. 내가 43년간 목회했고, 온세계를 상대해서 복음을 전하는데, 돈 때문에 명예를 버릴 사람은 아닙니다. 내가 65살 먹은 나이에 마지막 마무리를 하려는 중인데, 돈 때문에 내 일생을 공중에 내버릴 만큼 바보천치는 아닙니다.”
조용기 목사와 같은 유명한 목회자가 자신의 명예와 인생을 걸고 말하는데 더 이상 이 문제를 거론하는 것은 예의가 아닐 것 같았다. 그러나 기왕 말이 나온 김에 장로들이 제기한 의혹을 몇가지 더 제기해보았다.
―이 빌딩은 교회 헌금으로 지은 것이지요?
“물론이죠. 성도 헌금으로 지은 것이고 세계순복음재단법인 소유로 돼 있지요. 그러나 100% 헌금으로 지어진 것은 아닙니다. 50%는 은행에 빚을 내 지었는데, 다 지은 다음에 건물의 상당 부분을 팔아 은행 빚을 갚았지요. 임대한 것도 있고, 판 것도 많아요. 그래서 이 빌딩에는 소유주가 많습니다. 우리 교회가 소유하고 있는 것은 몇층 되지 않습니다. 이것을 가지고 시비를 거는 것은 우스운 일입니다. 만일 행여라도 이 건물을 우리 아들 명의로 했다면 우리 교인들이 가만 안둡니다. 법적으로 재단 소유가 분명합니다. 언제든지 와서 법적 서류를 확인해 보세요.”
나를 보고 모금에 응한 것
―국민일보 평생 회원제를 통해 모금한 돈은 어떻게 관리하고 있습니까.
“평생회원제는 국민일보사가 어려움에 처하자 내가 발의한 것입니다. 평생회원제란 신문값으로 일시불 100만원을 지불하면 30년간 신문을 사서 보내준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신문 대금이 신문사에 들어가니까 경영에 도움이 되지 않겠어요? 평생회원제 돈은 신문사 돈도 아니고 교회 돈도 아닙니다.”
―어떻게 모금했습니까.
“내가 개인적으로 캠페인을 벌이고, 1년 동안 교인들을 안수해줘서 모은 돈입니다. 우리 교인들 뿐만 아니라 초교파적으로 호소해 5만명이 동참해 모은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교회가 그런 사업을 직접 할 수 없으니까, 신문판매주식회사를 세웠고 거기서 돈을 가지고 있어요. 그 돈으로 국민일보 신문을 사서 독자들에게 나눠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돈을 어떻게 빼돌려요. 그 돈을 유용하면 신문을 어떻게 구입하고 어떻게 배달합니까. 신문판매회사가 360억원을 가지고 있는데, 예전에는 은행 이자가 높아서 좋았지만 지금은 적자예요. 그래서 은행에도 넣고, 증권에도 투자해 수익을 올려야 직원들 월급도 주고 경영도 할 수 있지 않습니까.”
조목사는 평생 회원제를 통해 모금한 돈에 대해서는 직접 관리하는 듯 자세한 사항을 파악하고 있었다.
“내가 그때 계산을 잘못한 게 있어요. 평생 회원제로 받아놓은 돈에 대해 높은 이자수익을 미리 계산에 넣어두었단 말이에요. 지금 이자율이 떨어지니까 적자예요. 한 부에 약 7000원씩 적자가 납니다. 나는 그 적자를 메우기 위해서 열심히 일하고 있어요. 이 돈에 대해서는 교회에서도 말할 권리가 없고, 독자들이 말할 권리가 있지요. 그런데 독자들이 이의를 제기하지 않아요. 우리가 신문 배달 다해주고 있으니까.
만약 신문을 한달이라도 못주면 독자들이 조사하라고 들고 일어나겠지요. 내가 경영해서 독자들에게 신문 배달하고 있는데, 왜 이 사람들이 말해요? 독자들 중에는 우리 교회 교인들 뿐 아니라 감리교 성결교 장로교 교인들도 있어요. 단 순복음교회 교인들 숫자가 많을 뿐이지요. 그러나 순복음교회 교인들도 당회의 지시를 받아 구독신청한 것이 아니고 사랑하기 때문에 나를 도와준 것이지요. 그리고 해약을 원하는 사람들은 지금까지 구독한 것 빼고는 언제든지 차액을 내준다고 했구요.”
―실제로 해약한 사람들이 있습니까?
“지금까지 한 사람도 없어요. 그것까지도 발표했는데. 그런데 이제 와서 그 돈을 내가 먹었다느니 내 아들이 먹었다느니 하고 있어요. 그래서 통장을 보고 싶으면 언제든지 오라고 해도 오지 않아요. 가능성이 있는 말을 해야지, 전혀 터무니 없는 말을 하고 있어요.”
―장남 희준씨가 스포츠신문인 ‘스포츠투데이’ 지와 경제지인 ‘파이낸셜 뉴스’지를 창간하고, 유선방송인 HBS를 인수했는데 그 돈의 출처에 대해서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만… .
“아들이 원래 일본과 한국에서 사업을 하고 있었어요. 한국에서는 FMK라는 회사를 차려 빌딩관리업을 했는데 서비스마스터라는 미국에서도 아주 유명한 회사에 로열티를 주고 한 겁니다. 그때 가지고 있던 주식을 전부 현대개발주식회사에 팔았습니다. 그때 정확한 액수는 몰라도 상당히 많은 돈을 받은 걸로 알고 있어요.”
아들, 교회돈 가져간 것 없어
―그 주식은 어디서 난 돈으로 산 겁니까?
“원래 주식 시세가 형편없을 때 2억원을 주고 샀답니다. 그후에 주식 가격이 아주 높아졌습니다. 이 돈과 은행 돈, 그리고 개인적인 빚을 지고 신문사업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일본 히다치에서 1억달러를 투자해 빚을 다 청산했습니다.”
―순복음교회나 국민일보와 관련된 돈을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는 말입니까.
“이 일은 아들이 이미 국민일보에서 물러난 후의 일이므로 순복음교회와도 아무 관계가 없어요. 내가 그때 아들에게 오직 하나 부탁한 것은 국민일보사를 구조조정할 때 나간 사람들을 창업하는 신문사에 써달라고 했어요. 아버지를 위해서라도 써달라고 했던 것이지요. 그리고 아들이 실제로 퇴직기자들을 많이 썼어요. 그게 죄라면 그 죄밖에는 없어요. 그리고 아들은 아버지 일을 이제 도와줄 대로 도왔으니까 앞으로는 천만금 줘도 교회일 안한다고 해요. 여하간 아들 사업에 교회 돈이 한푼도 들어간 적이 없고, 뽑아낼 수도 없어요.
신문사 돈을 뽑았다고 하는데, 매달 적자가 나는 신문사 돈을 어떻게 뽑아 씁니까. 노조가 가만 있지도 않을 테고. 그래도 이런 유언비어를 만들어 퍼뜨리는 것은 조목사 아들이고 국민일보에서 일했으니까 개연적으로 먹혀들어갈 것이라고 생각했겠지요.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한테는 먹혀 들어갑니다. 그러나 실제로 장부를 두고 증거를 내 놓으라 하면 증거가 없어요. 증거 없이 말만 퍼뜨려요.”
―그러면 현재 교회 헌금이 들어간 돈은 국민일보와 관련된 사업밖에 없습니까?
“국민일보를 설립하고 경영하는 데에 돈이 들어갔지요. 재단의 돈을 직접 주는 것은 내부자거래에 해당되기 때문에 안되고 관련법에 의하면 불특정 다수가 헌금한 돈으로 지원하는 것은 괜찮습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에 헌금한 돈을 가지고 지원했습니다. 그것도 정규적으로 한달에 20억원씩 주지 못하고, 5억원 줄 때도 있고, 10억원 줄 때도 있었어요. 헌금이 많이 들어오면 많이 주고, 적게 들어오면 적게 주는 것이지요. 그것도 우리 아들이 국민일보를 맡은 지 2년째 되던 해에는 한푼도 못 주었습니다. 우리 교회도 IMF로 흔들흔들하는데, 어떻게 돈을 줍니까.”
―현재 국민일보 주식은 신문판매회사가 다 가지고 있습니까?
“신문판매회사는 우리 교회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교회가 100% 다 가지고 있지요.”
―교회가 일반 기업의 주식을 소유할 수 있나요?
“못 가지지요. 상법상 교회는 세금을 안 내는 단체이기 때문에 교회가 직접 주식을 소유하지 못하지요. 그러니까 우리 교회가 신문판매회사를 만들어놓고 그 명의로 국민일보 주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목사님의 말씀을 들어보면 교회 내에서 이런 문제는 소식지나 다른 방법을 통해 충분히 해명할 수 있는 문젠데, 목사님이 이 사건을 두고 영적 전쟁이니 교권 도전이니 말하는 것은 너무 심각하게 반응한 것 아닌가요?
“이번 사건은 우리 교회에 대한 도전입니다. 겉으로는 비즈니스적 문제를 들고 나와 교회 개혁하라고 압력을 가하지만 근본적으로는 나를 무릎 꿇게 하고 교회의 현 제도를 무너뜨리자는 것 아닙니까. 그들이 요구하는 조건이 교회의 목사직도 교인들에게 지지 투표를 받으라는 겁니다. 교회 간부들도 세상식으로 투표해서 선출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명백히 교회에 대한 도전입니다. 이건 교회를 모르고 한 소리입니다. 교회는 세상의 민주주의와는 다른 조직이에요. 그러니 교권에 대한 투쟁이고 영적인 전쟁이지요. 진짜로 이것이 비즈니스 문제라면, 변호사나 회계사를 데려와서 공식으로 장부를 요청해 직접 확인해보면 될 것 아닙니까. 그런데 보여준다고 해도 오지를 않아요. 그러니까 그들이 제기한 문제는 비즈니스 문제가 아니라 나와 교회를 흔들려는 다른 목적이 있는 겁니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오랫동안 조목사와 서명을 주도한 장로들간에 갈등의 불씨는 내연하고 있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그것은 교회외적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나 교회 운영과 관련해서 서로 다른 생각이 점차 확산되어 갔던 것이고 이번 건의문 사건을 통해 폭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예전 같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습니다만.
“요사이 사회가 그렇게 변화했습니다. 지금 이걸 주도하는 사람들이 모두 97∼98년에 장로가 된 사람들입니다. 소위 말하는 신세대 장로입니다. 최근 마치 여당인 민주당에서 신세대 의원들이 들고 일어난 것처럼 말이지요.”
조목사는 이 말을 해놓고 자신도 재미있는 비유였든지 허허 웃었다. 앞에서 격앙된 목소리로 이야기할 때와는 달리 상당히 기분이 누그러진 것 같았다. 정치 얘기가 나온 김에 적절한 비유는 아니지만 김영삼 전대통령과 차남인 현철씨의 관계를 한번 꺼내 보았다.
―김영삼 대통령이 재임 말기에 카리스마가 흔들리게 되자 주위에서 들고나온 것이 아들 문제였습니다. 혹시 목사님도 카리스마가 흔들려 주변에서 아들 문제를 들고 나온 것은 아닙니까.
“그건 너무 억지 비교입니다. 목회자가 무슨 권력의 자리도 아니고, 또 김영삼 전대통령의 아들과 내 아들은 경우가 다르지요. 우리 아들이 교회 일에 관여한 것도 아니고, 국민일보에 와서 2년간 구조조정하고 떠난 게 전부입니다. 국민일보 사장 자리에 있다 보니까 이런저런 얘기가 나왔겠지요.
말이 난 김에 김영삼 대통령 시절의 얘기를 해보지요. 알다시피 그때 그 아들이 나라를 다스리다시피 하지 않았습니까. 제가 너무 답답해 청와대에 들어가 김영삼 대통령에게 아들을 직접 체포하라고 말했어요. 그러면서 중국 고사를 예로 들었어요. 옛날 중국의 어떤 왕이 사회정의를 세우기 위해 자신의 눈알과 왕자의 눈알을 하나씩 뽑은 얘기입니다. 저는 그 이야기를 하면서 김영삼 대통령에게 당신의 눈알을 하나 뽑고, 현철이 눈알을 하나 뽑으세요 하고 말했습니다. 현철이의 눈알을 하나 뽑는 것은 대통령이 현철이를 직접 체포하는 일이고, 대통령의 눈알 하나를 뽑는 것은 당시 김대중 야당총재와 타협하고 대화하는 일이었습니다. 대통령이 직접 아들을 잡아넣으면 국민이 동정하지만 검찰이 잡아넣으면 국민이 동정하지 않아요. 그때 그 이야기를 하고 나서는 대통령한테 밉보였던지 한동안 청와대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물론 김영삼 대통령으로서는 가슴 아플 일이었지만, 당시 목사 이외에는 누가 그런 말을 하겠습니까.”
목사 아들 보다는 사회인으로 봐야
―장남 희준씨가 젊은 나이에 신문사 사장이 되고 회장도 되고 하니까 주위에서 반발심 같은 것이 작용하지 않았나요?
“그런 것은 없었습니다. 내 아들보고 왜 사장이 되고 회장이 되었느냐 하는 말은 안 나와요. 전반적으로 우리 교인들은 나와 우리 가족을 사랑합니다. 순복음교회의 노인 장로들은 우리 아들이 주일학교에 나올 때부터 자식처럼 키워와서 지금도 아들에게는 말을 놓아요. 자기 아들처럼 사랑하지요. 그리고 우리 아이가 신앙적으로, 또 사회적으로 잘 되기를 기도해주고 있어요.”
―인터넷에 안티스투라고 해서, ‘스포츠투데이’의 선정성을 반대하는 사이트가 있는데요. 그걸 본 적이 있습니까.
“나도 봤어요. 나는 집에 들어가 시간만 있으면 인터넷을 열어놓고 여러가지를 섭렵합니다. 그런데 안티스투에 글을 올린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어요. 내 아들이 하는 사업을 국민일보의 연장 혹은 교회의 연장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미 아들은 사회로 돌아간 사회인일 뿐입니다. 국민일보의 대표도 아니고, 교회의 대표도 아닙니다. 사회에 나가 사업하는 일반인을, 단지 옛날에 그런 일을 했다는 이유로 그 그림자를 가지고 비난하는 것은 말이 안된다고 봅니다. 마치 법적으로 이혼해 이미 헤어진 사람보고, 여보 당신 하면서 찾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또 사회에 나가 언론 매체를 발행하면서 교회처럼 늘 거룩한 사업을 한다고 할 경우 사회 사람들이 받아줍니까. 왜 선교지처럼 만들지 않느냐고 하는 것은 웃기는 소리입니다. 동아일보나 조선일보 보고 왜 교회식으로 신문을 안 만드느냐 따지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안티스투에 올라온 비난은 희준씨가 목사님의 아들이기 때문에 목사님 같은 도덕성을 요구하는 성격도 있는 것 같은데요.
“이 세상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개성이 있고 개인생활이 있어요. 자식이 내 밑에서 자랄 동안에는 내가 뭐라도 할 수 있지만, 내 밑을 떠났을 때는 내 마음대로 컨트롤하지 못하는 법입니다. 머리가 크면 독립 인격체로 떠나 버려요. 이미 장성한 아들의 인생을 아버지라고 해서 지배하지 못합니다. 다만 내가 원하는 것은 우리 아들이 나처럼 신앙을 잘 가지는 것이고, 또 하나님을 잘 믿도록 기도해줄 따름이지요. 스포츠투데이는 교회와 상관없는 독립적인 기업입니다. 아들도 사회에서 밥 먹고 살아야 할 것 아닙니까.”
―논리적으로 보면 목사님 말이 맞는데, 돌아가는 분위기는 그리 간단치 않은 것 같습니다. 목사님이 세계적인 영적 지도자로 주목받고 있는 상황에, 그 아들이 만드는 스포츠신문이 보수적인 기독교인들이 보기에는 상당히 선정적인 점도 있으니까 정서적으로 부딪치는 것 같은데요.
“그렇게 공격을 할 수 있겠지요. 일반 사회에서 무슨 일을 하더라도 모두가 좋다고 박수를 치는 일은 없으니까요. 오해나 비난을 감수하고 나가야지요. 비즈니스는 비즈니스니까. 사실 목사나 장로 아들 중에는 하나님 안 믿고 완전히 세상으로 나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교회에서 목사나 장로 아들에게 너무나 많은 정신적 부담을 주니까요. 예를 들어 빌리 그레이엄 목사 아들은 완전히 타락했다가 돌아왔잖습니까. 머리 기르고, 오토바이 타고, 마리화나 피우고 하다가 결국 나이 40이 넘어서 회개하고서는 아버지 후계자로 들어섰습니다.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주위 사람들이 아들에게 목사인 아버지 대를 이으라고 격려합니다. 목사가 대를 잇지 못하면 얼마나 못났기에 제 자식 하나를 교역자로 못 키우나 할 정도예요.”
―목사님은 왜 목회하는 아들을 키우지 못했습니까.
“그것도 내 마음대로 못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이 아들의 마음속에 사명감을 주어야 하지요. 우리 집사람이 아버지가 목사니까 아들들 보고도 목사가 되라고 하도 강요하니까, 미국에서 신학대학까지 나온 둘째아들도 목사 안 합니다. 지금 벤처기업하고 있어요. 또 아이들이 하는 말도 맞아요. ‘아버지가 일하는 곳에 우리가 들어가서 일을 하다가 실수라도 하면 아버지 일생에 욕을 먹이는 짓이다, 아버지 일은 아버지 대에서 끝내고 우리 일은 우리대로 하겠다’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너희들이 잘 생각했다’고 말했습니다. 오히려 아들들이 내 부담을 덜어준 것이지요.”
아들이 입은 마음의 상처
―장남 희준씨는 교회 분위기에 부담이 돼서 방황도 상당히 많이 했지요?
“그랬습니다. 교회 장로들이나 누구든지 아들을 만나면 ‘너는 목사 돼라’ 하니까 큰 부담을 가졌어요. 또 학교 다닐 때도 굉장히 많이 얻어맞으면서 자랐습니다. 다른 아이들이 사소한 장난이라도 하면 괜찮은데, 우리 아들이 하면 ‘너는 목사 아들이 왜 이래’ 하면서 선생이 때렸지요. 큰아들이 서울대에 다닐 때도 많이 맞았습니다. 그때 학생운동이 한참 격렬했는데, 운동권 학생들이 보수적이고 통일반대분자인 목사 아들이라고 해서 우리 아이를 끌고가 얼마나 많이 때렸던지, 하루는 눈이 다 돌아갔어요. 집에 돌아와서는 아버지 때문에 매일 끌려가 매를 맞았으니 학교 안 다니겠다고 드러누웠어요. 운동권 학생들이 데모할 때도 우리 아들을 맨 앞에 세우고 그랬어요.
내가 아들을 살펴보니까 정신 상태도 이상했습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아들을 미국으로 빼돌렸어요. 그때 학생운동은 정말 무서웠어요. 우리 집에도 계속해서 ‘너하고 자식을 볼모로 잡아서 죽여버리겠다. 네가 보수적인 설교를 계속하면 죽여버리겠다’고 협박 전화가 오구요. 그래서 나는 한동안 집에도 못 가고 교회에서 자고 깨고 했었습니다.”
―안티스투에 큰아들의 이혼 경력에 대한 비난의 글도 올라오는데 그런 마음의 상처와 관련이 있습니까?
“장남이 정신적으로 불안정했어요. 그래서 첫번째 결혼에 실패했고, 두번째는 내가 소개해서 일본에 있는 의사 딸과 맺어주었지요. 큰아들은 조국에서 너무 많이 얻어 맞아서 한국인에 대한 불안공포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한국에서 안 살겠다 해서 일본에 거주하면서 일본 시민권을 얻으려고 했는데, 그것만은 내가 하지 못하게 말렸습니다. 이런 상처가 완전히 치료되지 않은 상태에서 일본 의사 딸과 결혼시켰습니다.
그런데 언젠가 아들을 데리고 프랑스 파리에 가서 선교집회를 할 때였는데, 일본의 아들 집으로 전화하니까 며느리가 전화를 안받고 친정으로 해도 전화가 안돼요. 참 이상하다 생각하면서 일본으로 돌아갔는데, 느닷없이 보험회사에서 아들 명의의 자동차 사고처리에 대한 통지서가 날아 왔어요. 자동차사고 날짜가 우리 아들이 파리에 있던 시기여서 자동차를 탄 적이 없어요. 그래서 조사해보니까 며느리가 결혼 전의 남자 애인과 차를 타고 온천장에 갔다가 사고를 낸 거였어요. 나는 아들에게 용서하고 살아야지 어떻게 하겠느냐 말해서 아들도 용서해 주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며느리 아버지가 와서는 ‘일본에서는 이런 일이 보통이다. 뭔 이런 일로 법석을 떠느냐’ 하면서 딸을 데리고 가겠다는 겁니다. 결국 아들은 두 번 이혼했지요. 그래서 지금은 결혼 공포증에 걸려서 결혼을 겁냅니다. 우리 아들은 두가지 큰 마음의 상처가 있어요. 하나는 조국에 대한 상처고, 또 하나는 결혼에 대한 공포증입니다.”
―목회자로서는 성공하신 셈인데 남편과 아버지로서는 점수를 많이 못 얻겠군요.
“30~40점 정도 될까요. 그것도 많은 거지요. 목회를 하면서 가정의 요구를 충실히 채워주지 못했습니다. 지금은 비교적 시간이 있는 편이지만 예전에는 새벽기도를 인도해야 하니까 교회에서 살았습니다. 잠도 교회에서 잤어요. 집에는 일요일 오후에 들어가서 하루 밤 자고 다시 월요일에 교회로 나왔습니다. 해외선교도 많이 나갔죠. 그래서 우리 집 사람에게 미안한 마음에 공부를 하도록 해서 지금 대학교수가 되지 않았습니까. 자기 할 일이 있는 거죠. 그리고 우리 애들은 어릴 때 ‘조용기 목사님은 알아도 아버지는 모릅니다’라고 저에게 말하곤 했어요. 지금 우리 애들이 신앙이 좋지 않다고 사회적으로 지탄을 받는 데는 제 책임이 많습니다. 저는 우리 애들과 한번도 휴가를 보낸 적이 없고 낚시를 간다든지 등산을 간 적도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후배 목사들에게 ‘나같은 불행한 목사가 되지 말라’고 말합니다. 2000~3000명 정도의 교회를 맡으면 가정도 돌볼 수 있고 자녀들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지만 10만명대가 넘는 목회를 하게 되면 심방에서부터 상담까지 끝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가정을 돌보기 위해서 교회를 소홀히 하면 갈등이 옵니다. 주의 종으로서 가정을 소홀히 할 수밖에 없었어요. 그래도 집사람은 잘 참고 저를 받들어주었습니다. 그래서 고맙게 생각합니다.”
―사도 바울에게는 교만하지 못하도록 스스로를 각성시키는 ‘가시’가 있었습니다. 목사님에게 어떤 가시가 있습니까.
“이번에 서명한 장로들이 가시 아닙니까. 제가 교만한지는 몰라도…. 이런 사건이 생긴 것은 내가 목회를 잘못했기 때문인데 심각한 자책감을 느낍니다. 내가 나도 모르게 교만하고 오만해서 이 사람들을 사랑으로 이끌지 못했다는 것을 하나님께 회개하고 자복합니다.”
서명한 장로들 중 몇몇은 출교했으니까 가장 아픈 가시를 교회에서는 뽑아낸 셈인데 조목사 마음속에는 그대로 박혀 있는 모양이었다.
헌금 예결산 투명하게 관리
―아무튼 이번 사건을 계기로 여의도순복음교회 교인들 중에는 목사님께서 헌금 문제는 충분히 납득할 수 있도록 말씀해주셨으면 하는 분들이 많은데요… .
“우리 교회 뿐 아니라 어느 교회나 제직회가 있어서 매달 예결산 결과를 공개적으로 보고합니다. 그런데 아무리 참석하라고 얘기해도 장로나 집사들이 참석을 하지 않아요. 그러고 나서 불평을 하면 어떻게 합니까.”
여의도순복음교회 한 관계자는 이번 사건이 던진 파장 때문에 헌금 문제와 관련해서 많은 교인들이 궁금해하는 만큼 곧 헌금 관련 해명서를 교인들에게 돌릴 계획이라고 밝혔다.
―지금 여의도순복음교회 연간 예산이 1200억원 쯤 됩니까? 그중 이웃을 돕는 등 사회선교비는 어느 정도 사용합니까.
“한참 좋을 때 그 정도됐고요. 요즘은 1000억원쯤 됩니다. 교회 관리비와 인건비 등을 빼고는 전부 선교비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국민일보 돕는 일도 일종의 사회선교비로 봐야지요. 이외에도 엘림복지타운과 신학교 및 개척교회를 지원하는데 씁니다.”
―고아원이나 양로원 등 어려운 이웃을 돕는 데는 어느 정도 사용합니까?
“고아원이나 양로원 등 복지시설을 지원하는데는 연간 40억원에서 50억원을 사용하고 북한주민 돕기에도 연간 30억원 정도 지원합니다. 그동안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느라 알리지 않으니까 사람들은 그많은 헌금이 어디에 사용했는지 궁금했던 모양입니다.”
―사회심리학자 에리히 프롬은 ‘소유냐 존재냐’란 책에서 인간의 삶을 두가지 유형으로 나눴습니다. 즉 소유형과 존재형인데, 이런 유형을 여의도순복음교회를 비롯한 한국 대형교회에 적응시켜보면 소유형을 추구했다고 볼 수 있지 않습니까.
“대형교회가 되려고 해서 된 것은 아닙니다. 그 교회의 목사가 설교를 통해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을 채워주니까 사람들이 많이 모여들어 교회가 대형화된 겁니다. 그리고 교회가 대형화됐다고 해서 목사가 그 교회를 소유하려는 욕망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작은 교회의 목사나 큰 교회의 목사나 모두 복음을 전하겠다는 사명감 외에는 다른 생각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현실속에서는 가끔 교회 재산문제를 둘러싸고 목사와 장로간에 갈등을 빗는 경우도 있다. 장로들이 중심이 돼 교회를 세운 경우 ‘월급쟁이’ 목사들이 밀려나기도 하고 목사가 교회를 개척해 세운 경우 장로들이 교회를 떠나기도 한다.
“저는 오늘이라도 우리 성도들이 ‘목사님 싫습니다’ 하면 빈손으로 나갑니다. 교회는 교인들이 헌금해서 지은 것이지 제 소유가 아닙니다. 저는 ‘우리 성도들중 50%가 저를 싫다고 하면 미련없이 나가겠습니다’고 공표합니다. 다른 대형교회 목사도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목사님은 언제라도 떠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다는 말씀인가요.
“내가 이제 나이가 65세인데 사람이 60세 넘으면 언제나 죽음의 문제를 생각하게 돼 있습니다. 자기 뒤를 깨끗하게 정리해놓아야지 그렇지 않으면 나중에 혼란이 오지 않겠습니까. 내가 언제 사라지더라도 스스로 정리가 되게끔 해놓아야죠.”
―요즘 유언장 미리 쓰기 운동도 있는데 혹시 유언장은 써놓았습니까.
“유언장을 쓸 이유가 없어요. 제가 가진 재산이 없습니다. 제가 43년동안 목회를 했어도 교회에서 사택 한번 지어주지 않았습니다. 교회에 월급 올려 달라는 이야기를 한 적도 없고 사택을 지어달라는 말을 한 적도 없습니다. 아들이 연립주택을 지어서 제 명의로 분양을 해줬는데 그곳에서 살고 있습니다. 제가 타고 다니는 승용차도 교회에서 사준 것이 아니고 제자들이 돈 모아서 사준 겁니다. 그래서 제가 교회에 대해서는 아무런 신세를 진 것이 없기 때문에 무슨 말을 해도 거리낌이 없습니다.”
교회에서 납골당 세울 계획
―목사님이 쓰신 책의 인세나 설교테이프 판매료는 목사님 통장으로 들어오지 않습니까.
“그것은 모두 저와 아내가 개인적으로 운영하는 고아원과 양로원에 보냅니다. 고아들이 50~60명 정도 되는데 그들을 입히고 먹이는데 돈이 모자라 돈을 빌리기도 했어요.”
―요즘 시신 및 장기 기증이나 화장을 장려하는 운동이 벌어지고 있는데 이 문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다음주 당회에서 우리 교회가 납골당 짓는 문제를 거론하려고 합니다. 한국 같은 좁은 땅에서 묘소가 계속 늘어나는 것을 더 이상 방치할 수는 없어요. 저도 죽으면 무덤을 만들지 말고 순복음기도원에 뿌려지기를 원합니다.”
활발하게 이야기하던 조용기 목사도 이 부분에서는 나지막하게 목소리를 깔고 진지하게 말했지만 자신과 관련된 부분은 기사화하지 말아줄 것을 부탁했다. “우리 애들이 이 말을 들으면 큰일난다”는 것. 그러나 우리 사회 각 분야의 최고층 지도자들 중에 공개적으로 무덤을 만들지 않겠다고 결심을 밝힌 사람은 아직까지 드물기 때문에 공개하는 것이 더 의미가 있다고 판단했다.
―목사님은 오랫동안 목회를 하면서 어떤 유혹이 가장 컸습니까.
“젊었을 때는 이성적인 유혹이 있었죠. 목회를 하게 되면 여성 신도들과 많이 접하게 되는데 그들은 목사를 선망의 대상으로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데 저는 다행스럽게도 곁에 호랑이 같은 최자실 목사(조용기 목사의 장모)가 계셔서 그런 유혹을 잘 넘길 수 있었어요. 안 그랬으면 저도 스캔들이 있었을지도 모르죠. 혈기 방장한 30대나 40대에는 설교를 하다보면 이쁜 여자에게 눈이 가는 법이고, 젊고 이쁜 여자를 상담하게 되면 몇분이라도 더 이야기하고 싶은 법인데, 호랑이 할머니 같은 분이 24시간 붙어 있으면서 조금만 상담이 길어져도 상담실에 들어와서 그 여신도를 쫓아내버리니 스캔들이 생길 수가 없었죠. 그 당시에는 속이 상했지만 하나님께서 저를 사랑하셔서 그런 분을 제 옆에 붙여주셨다가 50대가 돼서야 제 곁을 떠나가게 하셨어요.”
―대통령이 되고 싶다든지 명예에 대한 유혹은 없었습니까.
“그런 욕망은 없었어요. 한때 제 주위에서 대통령에 출마하라고 권유하는 사람도 많았어요. 그러나 제 소명이 목사인 것을 분명하게 알았기 때문에 흔들리지 않았어요.”
―한때 건강에 이상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는데… .
“콜레스트롤 수치도 높아지고 당도 좀 생겼죠. 그러나 치료를 잘해서 이제는 이상이 없습니다. 그때는 집회도 많고 운동할 시간은 없고 해서 스트레스가 너무 쌓였어요. 그래서 1주일에 세 번씩 수영을 하고 기름진 음식을 피하니까 치료가 되더군요.”
―목사님은 그동안 가난한 서민들을 치료하고 위로하는 일에 치중하는 제사장적인 사명을 충실히 해왔습니다. 그러나 사회의 불의한 일에 대해 발언하는 예언자적 역할은 약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저는 예언자적인 역할에 재간이 없습니다. 그런 것은 다른 분들이 하시지 않습니까. 마더 테레사처럼 어렵고 병든 사람들을 어루만져 주고 치유해주는 것이 제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조목사의 얼굴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세계적인 영적 지도자라서 그런지 오른쪽 이마가 유달리 발달한 ‘우뇌형’인간이란 느낌이 들었다. 이런 인간형은 계산적이고 논리적이기 보다는 이상적이고 감성이 풍부한 것으로 알려진다.
애당초 인터뷰 목적은 건의문을 올린 장로들이 제기한 의혹에 대한 해명을 듣기 위한 것이었다. 조목사는 이런 의혹에 대해서 당당하게 열변을 토했지만 가족과 자신의 문제에 대해서는 때로 목소리의 톤이 낮아지기도 했다. 세계의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존경하고 그들에게 희망과 위로를 주는 ‘화려한 목회자’의 이면에는 한없이 ‘초라한 인간’도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조목사와 인터뷰한 2시간은 충분한 해명을 듣기에는 짧은 시간이었는지 모르지만 조목사의 진솔한 모습을 보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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