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2월호

“공 치기 전에는 말하지 말라”

PGA 우승한 프로골퍼 최경주

  • 글: 황호택 hthwang@donga.com

    입력2003-02-04 16:3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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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즌 중에는 맥주 한 컵도 마시지 않고, 공을 칠 때는 절대로 입을 열지 않는 사나이. 그러나 힘들고 어려울 때는 하나님을 찾고 기도하는 마음 여린 사나이 최경주. 미국 진출 5년 만에 PGA 우승컵을 움켜쥔 그는 4대 메이저 대회 석권을 위해 오늘도 굵은 땀방울을 흘린다.
    “공 치기 전에는 말하지 말라”
    최경주는 한국에 들어오면 미국에서 PGA(미프로골프협회) 투어를 돌 때보다 더 바빠진다. PGA 스타의 반열에 오른 그를 모셔가려는 행사가 줄을 잇는 바람에 여간해서 시간을 뺏기 어렵다. 최경주의 일정을 관리하는 스포츠 매니지먼트 회사인 IMG의 주선으로 경기도 용인시 88컨트리클럽에서 그를 만났다.

    인터뷰에 앞서 최경주는 88컨트리클럽 운영위원들과 라운딩을 했다. 필자는 약속시간보다 두 시간 정도 일찍 도착해 최프로의 샷을 감상해볼 요량이었으나, 풍덕천 사거리에서 길이 꽉 막히는 바람에 발을 동동 구르다 약속시간을 20분 넘겨 컨트리클럽에 도착했다. 다행히 사진기자가 먼저 도착해 최경주를 붙잡아놓고 사진을 찍고 있었다.

    필자가 “토요일의 수지 용인 일대 교통은 못 말려요. 늦어서 정말 미안합니다”라고 사과를 하는데도 최프로는 기분이 상한 듯 굳은 표정을 풀지 않았다. 그는 사진을 찍고 나서 대뜸 “인터뷰를 20분 안에 끝내자”고 말했다.

    “IMG에서 한 시간 일정을 잡았지만 20분 늦게 도착했으니 40분밖에 남지 않았고, 내게 다른 일정이 생겨 20분 먼저 인터뷰를 끝내야 하겠습니다. 서로 20분씩 까먹는 거죠.”

    뭔가 착오가 있었다. 원래 1시간 반 동안 인터뷰를 하기로 돼 있었다. 최프로와 IMG의 협의 과정에서 30분이 어디론가 실종돼버렸다.



    최경주는 골프의 룰을 모든 인생사에 적용하며 사는가보다. 골프는 범실에 대해서는 반드시 페널티를 주는 스포츠이다. 귀책 사유가 나에게 있으니 할 말이 없지만, 200자 원고지 100여 장을 메우려면 최소한 2시간 정도 인터뷰를 해야 한다. 일간지에 쓰는 손바닥만한 인터뷰도 아닌데, 잡지의 대담 인터뷰를 20분만 하자는 것은 하지 말자는 것과 마찬가지다. 하여튼 최대한 시간을 끌어보기로 하고 인터뷰를 시작했다.

    ―오늘은 어떤 모임의 골프였습니까.

    “사적인 거예요.”

    최경주는 1998년부터 미국 가기 전까지 88컨트리클럽에서 헤드프로를 지냈다. 미국에 진출할 때도 88컨트리클럽 운영위원들의 도움을 받았다.

    “88컨트리클럽에서 헤드프로 생활을 하며 미국 가겠다는 결심을 굳혔습니다. 내가 미국에 갈 때 많은 분들이 도움을 주었습니다. 그 분들을 위해 하루 정도라도 시간을 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최경주는 2002 PGA에서 두 차례 우승해 상금랭킹 17위에 올랐다. 박세리는 LPGA(미여자프로골프협회)에서 한 해에 다섯 번 우승하기도 했는데, 두 차례 우승이 뭐 그리 대단하냐고 묻는 것은, PGA 프로들에게는 대단한 결례다. PGA와 LPGA를 동렬에 놓는 것은 남자 프로축구와 여자 프로축구를 대등한 수준으로 평가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작년에는 좋은 성과를 올렸습니다. 2003년에는 메이저 대회에서 우승해 고국 팬들을 기쁘게 해야겠지요.

    “한국 팬들은 목표에 대한 집착이 강해 부담스러워요. 선수가 목표 달성을 못하면 ‘이제는 갔네’라는 말을 쉽게 하지요. 만약 작년에 내가 17위가 아니고 100위권으로 밀려났다면 그런 소리를 또 들었겠지요. 사실 PGA 투어에서는 50위 안에만 들어도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습니다.”

    최경주는 1968년 5월19일생으로 35세. 빠른 동작과 강한 파워를 요구하는 종목이었다면 오래 전에 선수생활을 접었어야 할 나이다. 골프 선수는 정년이 길고 나이가 들어도 시니어 투어에 참여할 수 있으니 명성만 얻으면 평생 ‘꽃놀이’를 즐길 수 있다.

    “내가 바로 명예의 전당”

    ―몇 살까지 선수생활을 할 계획입니까.

    “아무도 모르는 거죠. PGA 투어에서 K. J. CHOI(최경주의 영문 이름)가 얼마나 좋은 기록을 내, 길이 이름을 남길 수가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단순히 K. J. CHOI가 미국에서 2승 올리고 조금 있다가 가버렸다는 이야기는 듣고 싶지 않습니다. 오래 기억에 남는 선수가 되고 싶어요.”

    ―박세리 선수는 ‘명예의 전당에 들어갈 때까지 선수 생활을 하고 싶다’고 하더군요.

    “명예의 전당 같은 건 솔직히 관심 없어요. 명예의 전당에 들어가느냐 마느냐에 선수의 값어치가 결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한국에서는 내가 바로 명예의 전당 아니겠습니까. 그러면 된 거죠.

    물론 PGA 투어는 LPGA에 비해 명예의 전당에 들어가기가 엄청나게 힘듭니다. 그러나 혹시 압니까. 내가 나중에 마스터스에서 우승하면 명예의 전당으로 보내줄지. 그러니까 항상 최선을 다하려고 해요.”

    말이 빠른 편이다. 짧은 시간에 많은 분량의 인터뷰를 하는 데는 말이 빠른 사람이 좋다.

    ―2001년 1월 소니 오픈에 턱걸이로 참가했다가 컷오프를 당했더군요. 한 타 차로 컷오프를 모면한 적도 있고요. 그런데 불과 1년6개월 만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컷오프를 자주 당한 원인은 실력도 실력이지만 코스를 몰랐기 때문이었습니다. 다행히 컷오프 라인이 원 오버든, 원 언더든 항상 그 근처에서 놀았습니다. 2000년, 2001년 두 해 동안 항상 컷오프 라인 근처에서 노니까 가능성을 보여줬다고 할 수 있지요.”

    PGA의 컷오프 라인은 보통 이븐(72타)이나 원 언더 또는 투 언더에서 결정된다. 이 라인 안으로 들어가는 선수는 70명 선. PGA 투어 상위 선수들은 코스의 난이도와 관계없이 8언더 9언더를 너끈하게 친다.

    “내가 컷오프를 당하는 코스에서 톱 클래스 선수들이 8언더나 9언더를 치니까 ‘나는 아직 멀었구나’ 하는 심리적 부담감이 생겼습니다. 톱 클래스 선수들은 코스의 난이도에 관계없이 그렇게 쳐요. 대단히 잘 치는 거죠.

    올해 최고 낮은 컷오프 라인이 6언더였습니다. 정말 상상을 초월하는 스코어입니다. 그만큼 전체적으로 선수들이 업그레이드된 거죠. 나는 한 타 또는 두 타 차로 떨어지면서도 희망을 가졌습니다. 다음 주에 잘 치면 되니까…. 예수를 믿기 때문에 항상 기도하고 준비합니다. 어려운 상황이 닥쳐도 다음 주에 잘 되리라는 희망을 가졌습니다.”

    최경주는 독실한 기독교인이다. 그와 이야기를 하다 보니 신학교를 갓 졸업한 개척교회 전도사를 만난 기분이 든다.

    잊지 못할 3m짜리 내리막 퍼팅

    골프는 심리학이라는 말이 있다. 골프 선수 중에는 스윙 연습과 별도로 마인드 컨트롤 지도를 받는 사람도 있다.

    18번째 홀에서 5m짜리 퍼팅이 들어가면 우승이고 안 들어가면 2위라고 할 때, 그 스트레스를 이겨내려면 강심장일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도 자신감이 중요한 것이다. 최경주는 늘 ‘하나님 믿습니다’ 하고 퍼팅을 한단다. 기독교 전도를 하자는 것이 아니라 최경주의 마인드 컨트롤에 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2002년 시즌 들어서는 확신이 섰습니다. PGA 투어에서 어느 정도 해볼 수 있겠다는 확신 말입니다.”

    ―그게 미국 간 지 몇 년 만입니까.

    “2년이 채 안됐죠. 2001년도 퀄리파잉 테스트를 받을 때 마지막 퍼팅 하나에 다음 1년의 운명이 결정되는 기로에 있었습니다. 정말 마음이 착잡하고 무거워 기도를 했습니다. ‘주님 이걸 미스 하면 1년을 더 기다리거나 한국으로 가야 됩니다. 이거 어떻게 합니까.’ 퍼팅 하나가 들어가고 안 들어가고에 따라 고향으로 가느냐, PGA에 다시 남느냐가 결정되는 순간이었습니다.”

    ―몇 미터짜리 퍼팅이었습니까.

    “한 3m짜리 내리막 퍼팅이었어요.”

    골프를 모르는 분들을 위해 ‘뱀 다리(蛇足)’를 붙여놓자면, 오르막 퍼팅보다 내리막 퍼팅이 훨씬 어렵다. 오르막 퍼팅은 강하게 치면 들어갈 때가 많지만, 내리막은 공이 엉뚱하게 흘러 내려가는 경우가 많다. 아마추어 골프에서 OK 인심이 좋은 사람도 내리막 퍼팅에서는 OK를 잘 주지 않는다. 그만큼 들어갈 확률이 낮다는 이야기다.

    “쉽지 않은 퍼팅이었습니다. 그런데 내 몸에서 작은 움직임도 생기지 않고 탁 들어가더란 말이죠. 갤러리들은 그냥 단순하게 최선수가 중요한 퍼팅에 성공했구나 했겠지만 저로서는 그게 아니었습니다. 마지막 34위로 통과했지만 마음 속에서 불꽃이 피어올랐습니다. 이제는 되겠구나, 하나님께서 나를 버리지 않았구나 싶었습니다. 그 한 타에 2002년을 시작하는 내 마음은 벅차 올랐습니다. 그러니까 신앙생활을 소홀히 할 수가 없죠. 나는 항상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잘 돼도 감사하고 못 돼도 감사합니다.”

    ―PGA 초기 시절에 상금 액수는 적고 비용은 많이 들어 어려움을 겪지는 않았습니까.

    “많은 분들이 도와줬어요.”

    최프로는 의류 메이커인 슈페리어와 1996년부터 전속계약을 맺고 있다. 최경주는 슈페리어 로고가 새겨진 모자를 쓰고 경기를 한다. 작년에 PGA에서 두 번 우승하면서 슈페리어 로고가 매스컴을 많이 타 광고효과가 꽤 높아졌단다.

    “처음에는 슈페리어와 연간 2000만원에 계약을 했지요. 내가 우승을 하면서 한국에서 브랜드 선호도가 올라갔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공 치기 전에는 말하지 말라”

    최경주는 하나님에 대한 기도를 통해 자신감을 회복한다. 오른쪽은 황호택 논설위원.

    ―두 번 우승하고 나서 계약조건이 바뀌지는 않았습니까.

    “한 번 계약하면 끝날 때까지 가는 겁니다. 어떻게 보면 손해인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나중에 다 그 만큼…. 김귀열 회장님도 최프로 덕을 봤다고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 동안 저도 슈페리어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돈은 있다가도 없고… 그런 것 아닙니까. 그러나 인간관계나 정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죠.”

    ―현재 연간 계약액은 얼마나 됩니까.

    “그건 밝힐 수가 없습니다.”

    최경주는 돈 이야기만 나오면 입을 다문다. 이미 신문에 난 이야기인데도. 슈페리어는 작년 1월 최경주와 3년간 15억원을 제공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박세리는 최근 CJ와 5년간 150억원에 이르는 타이틀 스폰서 계약을 맺었다. 앞에서 PGA와 LPGA의 차이에 대해 말했지만 최경주로선 조금 억울한 기분이 들 것 같다.

    ―테일러 메이드와는 연간 40만달러에 용품 사용 계약을 맺은 것으로 보도됐던데요.

    “보도 내용은 잘못된 겁니다. 그냥 좋은 조건이었다고만 말하고 싶습니다.”

    최경주는 테일러 메이드에서 제공하는 540 드라이버를 사용한다. 아이언은 랙(RAC)이라는 새로운 모델을 사용한다. 퍼터는 오딧세이를 쓰지만 별도로 계약하지는 않았다. 그는 드라이빙 아이언 2번을 잘 친다. 비거리가 아마추어들의 드라이버 거리인 245야드 정도 다.

    PGA와 LPGA 선수는 용품 사용 계약료에서도 엄청난 차이가 난다. 박세리 선수도 테일러 메이드와 계약을 했지만 최경주의 4분의 1 수준이다.

    박세리 김미현 박지은 장정 박희정 한희원 이정연 펄신 이선희 등 한국의 낭자들이 LPGA에서 성공을 거두면서 한국 텔레비전에는 PGA보다 LPGA 경기가 더 자주 방영된다. 그러나 미국 현지에서는 인기도와 상금 등에서 LPGA가 PGA에 족탈불급이다.

    ―PGA와 LPGA는 어느 정도 차이가 나는가요.

    “그건 빼자고요. 다 아는 사실을 내가 이야기해봐야….”

    한국에서 LPGA가 더 뜨는 현상을 억울해하는 눈치다.

    “관중의 열기와 선수들의 기량에서 차이가 크죠. 일단 공이 그린에 팍 서는 것과 또르르 굴러가는 것이 다릅니다. 여자 선수들은 진행이 늦어요. 선수들이 앉았다 일어났다, 왔다 갔다 하니까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약간 지루한 느낌을 줍니다. 드라이버로 공을 때릴 때도 힘이 약하니까 스펀지로 치는 것 같습니다. 무시하자는 게 아닙니다. 인기도를 이야기하다 보니 그렇다는 건데…. 미국에서는 LPGA 경기는 중계방송도 안해요. 정규 방송에서는 메이저 대회 빼놓고는 방송 안합니다. 골프 전문 채널에서만 LPGA와 유럽 투어를 중계방송하지요.”

    ―여자 프로들은 그린에서 공을 세우지 못합니까.

    “LPGA 톱 프로들은 물론 거의 다 세우죠. 그러나 PGA에서는 200등짜리나 1등짜리나 똑같이 그린에 공이 탁탁 서요. 모두 우수하다 보니 누가 어디서 어떻게 우승할지 아무도 몰라요. 잘 치는 선수가 우승할 확률이 많다는 것일 뿐이죠. 그만큼 실력을 갖췄기 때문에 인기가 높은 겁니다.”

    골프 전문가들은 최경주의 PGA 1승을 박세리의 LPGA 10승에 비교하기도 한다. 단순히 PGA 상금이 LPGA 상금의 10배에 육박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PGA 무대는 국내 남자 프로골퍼들에게는 난공불락의 성으로 여겨졌다. 골프장과 골프 인구가 한국의 열 배를 넘는 일본에서도 PGA 우승을 지금까지 두 차례(이사오 아오키, 마루야마 시게키)밖에 하지 못했으니까.

    ―미국 투어 생활 중에 박세리, 김미현 등 한국 여자 선수들과 만날 기회가 있습니까.

    “거의 없습니다. 우리가 플로리다에 있으면 LPGA 선수들은 캘리포니아에 있고, 우리가 캘리포니아로 가면 LPGA는 중부나 시카고, 뉴욕 쪽으로 가 있습니다. 스케줄이 전혀 다르죠. TV로는 가끔 봅니다. 한국 선수들이 잘할 때는 기분이 참 좋습니다.”

    ―타이거 우즈는 용품 사용료로 얼마나 받습니까.

    “정확하지는 않지만 몇천만 달러 된다고 합니다. 우리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 거죠. 다른 톱 클래스 선수들도 연간 300만달러 정도 받습니다.”

    ―타이거 우즈를 골프의 황제라고 하는데 최프로는 무어라고 불리고 싶습니까.

    “글쎄요. 나도 한국의 황제는 되지 않을까요”(웃음).

    한국인의 양주와 골프채 사치는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같은 성능의 제품이라도 고가 브랜드를 선호한다. 얼마 전까지는 켈러웨이가 한국 시장을 석권했지만 요즘에는 드라이버 500 시리즈를 내놓은 테일러 메이드가 추월했다. 테일러 메이드가 최경주, 박세리 선수 등과 용품 계약을 맺은 것도 한국 소비자들을 겨냥한 마케팅 전략이다.

    “물론 한국 시장을 노리고 나와 계약을 맺은 거죠. 일단 PGA에 진출해 성공하면 한국이나 일본에서 우승한 것과는 대우가 다릅니다. 일본에서도 우승해봤고 한국에서도 해봤는데, 미국 우승과는 비교할 수가 없지요. 미국에 골프 용품 회사가 아주 많습니다. 그 중에서도 정상의 업체 테일러 메이드가 나를 선택해줘 감사합니다.”

    ―미국 진출 이후 고생스럽다거나 암담한 기분을 느낀 적이 있습니까.

    “일단 침대에서 자는 게 너무 추웠어요. 온돌방에서 자다가 갑자기 침대에서 자려니까 적응이 잘 되지 않았어요. 겨울철에는 찬 바람이 들어오고…”

    눈물 밥 먹은 이야기를 듣고 싶었는데 싱거운 대답이다. 후원자들의 도움으로 크게 고생하지는 않은 것 같다.

    ―처음에 살던 집이 허름했나요.

    “플로리다 잭슨빌에 있는 20만달러짜리 집이었으니까 미국 기준으로 보면 싼 집이죠. 잠자리가 불편하니까 몸이 빨리 회복되지 않았어요. 알지도 못하는 도시로 자동차를 몰고 가서 지도 들여다보며 골프장 찾아다니는 일도 쉽지 않았습니다. 공항에서 렌터카를 빌려 타고 골프장까지 찾아가는데 모든 걸 영어로 이야기해야 하는 상황이어서 어려움이 적지 않았습니다.”

    ―지금 영어 실력은 어느 정도입니까.

    “여섯 살짜리 아들과 실력이 비슷합니다. 액션 무비 볼 정도는 되죠. 계속 배우고 있습니다.”

    아침은 빵, 점심은 햄버거

    ―한국과 일본 무대에 만족을 못하고 PGA에 진출하겠다고 결심한 계기는 어떤 겁니까.

    “1996년도 한국 랭킹 1위를 해 월드컵에 출전했습니다. 자메이카까지 25시간 비행기를 타고 월드컵 예선전에 참가했습니다. 박노석 프로와 둘이 종합 2위로 예선을 통과했습니다. 1997년 10월 미국 사우스 캐롤라이나에서 열린 월드컵 본선에 참여했는데 경기운용, 선수접대, 공의 품질 등 모든 것이 한 수 위였습니다. 연습장의 그린도 아주 좋았습니다. 연습장이 그러니 코스는 얼마나 좋겠어요. 이런 정도의 시설과 서비스를 받으면서 골프를 제대로 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시아에는 그런 데가 없거든요. 그러나 미국에서는 어딜 가든지 완벽했어요.

    귀국 기자회견을 할 때 5년 안에 미국에 진출하겠다고 선포를 했어요. 한국과 일본에서도 잘나가는데 멀리 낯선 땅에 뭐 하러 가느냐고 말리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5년 동안 두드려봐서 문이 안 열리면 ‘내 실력이 그것뿐이니까’ 하고 포기했겠지요.

    1997년부터 서서히 준비했어요. 식생활부터 바꾸었습니다. 아침에 빵 먹고 점심 때 햄버거 먹고 볼을 쳐봤습니다. 잠을 세 시간만 자고 그 다음날 쳐보기도 했습니다. 여러 가지 적응 테스트를 해봤어요. 자메이카와 반나절의 시차가 있어요. 여기 밤일 때 거기는 낮이더라구요. 그러니까 낮에 졸리고 거기 밤일 때는 눈이 말똥말똥하니 골프가 안되잖아요.

    다섯 시간만 참으면 그 다음에는 괜찮거든요. 시차적응 연습하느라 2년 동안 새벽 1시 전에 자본 적이 없어요. 아내와 미국 가는 걸 연구하며 얘기를 하다 보면 시간이 금방 가버려요. 그리고 해마다 연초에 목표를 정해놓고 반드시 지켰어요. 나는 아시아에서 3승을 한다는 등 목표를 세우고 꾸준히 실천해나갔습니다.”

    최경주의 PGA 우승은 이같은 집념과 노력의 산물이다.

    ―신발에다 태극 마크를 붙이는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우리나라를 가장 잘 상징하는 것이 태극기 아닙니까. 내가 사용하는 볼에도 태극기를 집어넣었습니다.”

    ―미국 사회에는 보이지 않는 인종차별이 적지 않습니다. PGA도 얼마 전까지는 백인 세상이었지요. 지금은 타이거 우즈나 비제이싱 같은 선수들도 활동하고 있지만…. 사회생활이나 골프 투어 중에 차별을 느낀 적은 없습니까.

    “일부 못된 선수들 중에 아시아 선수를 무시하는 경우가 있어요. 얼굴을 마주치면 일부러 피해요. 한국 같으면 뒤통수를 한 대 때려주고 싶은데 그렇게는 못하지요.”

    ―경쟁의식에서 그런 건 아닐까요.

    “그런 것과는 다릅니다. 많이 참았어요.”

    ―매스컴에서 최선수에게 ‘갈색 탱크’라는 별명을 붙였습니다. 최선수가 플레이하는 자세가 마치 전투하는 전사 같다고 쓴 기사도 있더군요.

    “어느 시합에서 갤러리가 나를 보고 꼭 탱크 같다고 이야기하는 것을 기자가 듣고 기사에 그렇게 썼어요. 그 때를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어요. 내가 그 분에게 탱크가 무슨 의미를 갖느냐고 하니까 내가 그냥 막 밀어버린다는 것이었어요. 앞으로만 가고 뒤로는 못 간대요. 괜찮은 별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 별명이나 붙여도 관계없습니다. 막 붙여서 쓰세요. 사람들이 보고 느꼈을 때 즐거우면 되지요.”

    탱크라는 별명이 최경주에게 딱 들어맞는 것 같다. 최선수는 전체적으로 다부지고 딱딱한 인상을 준다.

    억대 연봉의 캐디들

    여기서 인터뷰가 중단됐다. 최경주는 88컨트리클럽 운영위원들과 식사를 하러 들어갔다. 이야기를 하다보니 최경주도 재미를 붙인 모양이다. 식사를 마치고 나와서 40분 가량 더 이야기를 하기로 했다.

    최경주가 후원회원들과 식사를 하는 옆방에서 필자도 밥을 먹었다. 칸막이가 얇아 옆방에서 하는 이야기가 들렸다. 후원회원들이 인터뷰를 대신해주는 모양이 됐다. 후원회원들이 최경주의 레슨 프로에 대해 물었다.

    “필 리슨이라는 유명한 사람입니다. 보통 일주일에 두 차례 정도 받습니다. 체크업은 한 달에 한 번씩 비디오로 찍어서 합니다. 레슨은 지속적으로 받는 것보다는 어느 정도 간격을 둬야 돼요. 내가 체크업을 하고 나서 연습할 시간이 필요합니다. 레슨비는 내 마음대로 줘요. 특별한 계약 없이 가르쳐주고 훌쩍 떠납니다. 연습할 때 계속 붙어 있으면 오히려 방해가 됩니다.

    텔레비전을 보고 메모를 해두었다가 몇 번째 홀에서 보기한 이유를 말해주기도 합니다. 머리가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15년 된 고질이 아직도 완전히 고쳐지지 않았어요. 머리를 들면 슬라이스가 나고 머리를 일부러 숙이려고 하면 훅이 나고…. 엘리베이터 스윙이라고 합니다. 백스윙할 때 들렸다가 다운 스윙할 때 내려갑니다. 자세가 그러니까 타구의 정확도가 떨어집니다. 그걸 미국 가서 알게 돼서 뜯어고친 거죠. 문제점이 하나씩 해결되니까 공도 멀리 가고 정확도도 생기면서 우승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 90% 정도 고쳐서 마무리 단계예요.”

    후원회원들이 캐디에 대해서도 물었다.

    “비제이싱(피지)이 골프 치면서 ‘캐디 바꾸라’는 충고를 여러 번 했습니다. 요즘도 만나면 ‘너 아직 캐디 안 바꾸고 있냐’고 해요. 비제이싱은 스트레칭 시켜주는 트레이너도 있습니다. 새로운 캐디를 구하는 중입니다.

    캐디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선수가 연습공을 칠 때 드라이버 거리, 표정, 걸음걸이 등을 보고 컨디션을 판단해 채를 뽑아줍니다. 내 캐디는 미국 일류선수들의 캐디 수준에 못미칩니다. 퍼팅할 때 브레이크는 내가 읽지만 아이언 샷의 거리, 방향 등은 70% 이상 캐디에 의존합니다. 캐디가 흐리멍텅하면 안 되죠. 컨디션에 따라 선수가 판단 착오를 일으킬 수도 있거든요. 그럴 때 현명하게 옆에서 컨트롤해줄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최경주는 식사 도중 자동차 트렁크에서 공을 가져와 사인을 해서 후원회원들에게 하나씩 선물했다. 한 시간 반 가량 진행된 식사 모임이 끝나자 최경주가 다시 인터뷰를 하러 돌아왔다.

    ―옆방에서 캐디 이야기를 많이 하더군요. 일류 선수에게는 일류 캐디가 있어야겠지요. 일류 캐디는 연봉이 어느 정도입니까.

    “타이거 우즈의 캐디는 연봉이 150만달러라고 합니다. 한 달에 1억원 정도 받는 캐디들도 있습니다.”

    골프 가방 들고 다니며 채 뽑아주는 직업치고는 고액의 연봉이다. 그 정도면 우리나라 일류 프로골퍼보다 훨씬 나은 소득이다.

    ―그 사람들 골프는 잘 칩니까.

    “그건 잘 모르겠어요.”

    ―타이거 우즈하고 맞대결도 해보았죠? 우즈의 특기는 무엇입니까.

    “타이거 우즈는 롱 아이언 미들 아이언을 잘 사용합니다. 공을 그린에 세우는 스핀력이 좋아요. PGA에는 우즈 외에도 우수한 선수들이 널려 있어요. 비제이싱은 숏 게임에 뛰어나요. 프레드 펑크는 드라이버의 길이가 길지 않은 대신 페어웨이 안착률이 굉장히 좋아요.”

    ―본인의 장기는 뭐라고 생각합니까.

    “글쎄요. 골고루 하는 편입니다. 숏 게임도 어느 정도 하고, 미들 아이언과 드라이버도 잘 쓴다는 평을 들어요. 특별하게 장기라고 내세울 만한 건 없는 것 같은데…. 90∼100야드가 가장 자신감이 생기는 거리예요.”

    ―그 때는 몇 번을 잡습니까.

    “50도 웨지를 잡고 90∼100야드 샷을 할 때가 버디 잡을 확률이 제일 높았습니다.”

    ―완도에 계시는 부모님께 용돈은 얼마나 드립니까.

    “때에 따라서 달라요. 가을에 일꾼을 많이 쓸 때는 좀 많이 드리죠. 명절이나 생신 때도 시합 때문에 못 가니까 돈으로 때우는 거지요. 시골에서는 현금을 좋아해요. 뭘 좋아하시는지 잘 몰라 그냥 돈으로 드려요.”

    ―미국에서 성공한 뒤에는 용돈이 늘어났겠네요.

    “와이프가 드리고 있습니다. 100만원, 200만원 정도입니다.”

    ―성공한 뒤에 고향 친구들 만나봤습니까.

    “미국서 우승하고 작년 9월 한국에 왔을 때 만났습니다. 불알 친구들이 대개 잘됐어요. 흐뭇해하더군요.”

    ―한국에 오면 이런저런 행사에 불려 다니느라고 피곤할 텐데요. 박세리 선수는 쓰러져 입원한 적이 있습니다.

    “감당할 만해요. 다만 미국과 달리 복잡한 교통 때문에 이동하는 데 불필요한 시간이 많이 소요돼요. 그렇다고 전철을 타고 다닐 수도 없고….”

    최경주의 작년 드라이브 평균 비거리는 274.9야드이다. 한국에서는 최대 장타자 소리를 들었는데 미국에 건너가보니 달랐다. 연습장에서 비제이싱 바로 옆 타석에 자리를 잡고 드라이버를 쳐본 적이 있다. 최경주는 드라이버 거리가 비제이싱에 훨씬 못미쳐 창피한 생각이 들어 가방을 싸들고 나와버렸단다.

    “드라이버 비거리가 미국 톱 클래스 선수보다 평균 20야드 떨어지더라구요. 그 친구들은 아이언 5번 들고 칠 때 나는 아이언 3번 들어야 하니까 아무래도 정확도가 떨어지지요. 그래서 초창기부터 거리가 나는 스윙으로 뜯어고쳐 그나마 여기까지 온 거예요. 계속 거리가 느는 추세죠. 내년에도 더 늘어날지 몰라요. 계속 늘어나고 있으니까.”

    신앙생활로 시련 극복

    ―드라이브 비거리가 PGA 선수 중에 몇 번째나 됩니까.

    “톱 클래스는 아니라도 중간 이상은 됩니다.”

    ―홈페이지에 들어가 봤더니 스윙 모델이 이안 우스남이라고 돼 있더군요.

    “과거에 이안 우스남 스윙을 보면서 연습을 했어요. 키와 체격이 비슷해 모델로 삼았습니다. 이안 우스남은 유럽에서 현역으로 뛰고 있죠.”

    ―교회에 매주 나갑니까.

    “수요 예배와 주일 예배는 빼놓지 않습니다. 집에서도 자기 전에 아내와 함께 예배를 봅니다.”

    ―신앙생활이 인생에 어떤 도움을 준다고 생각합니까.

    “굉장한 도움을 주죠. 골프는 내가 치지만 준비하는 과정은 기도 속에서 만들어져요. 기도를 드리면 응답을 받아요. 그래서 감사하다는 표시를 해요.

    인간은 약한 존재입니다. 공을 칠 때도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한다면 얼마나 잘 칠 수 있겠습니까. 그렇지만 노력을 해야 합니다. 부모가 노력도 안 하는 자식한테 막 퍼부어 주지는 않잖아요. 그거와 똑같은 거죠.

    PGA 투어를 돌아다니다 보면 말할 상대도 의논할 상대도 없습니다. 기도를 하면서 하나님과 상의를 하는 거죠.

    ‘지금 내가 이렇습니다. 이런 고민이 있습니다. 돌아다니는데 영어가 제대로 안 돼 어려움이 많습니다. 좋은 사람 만나 길을 잘 찾게 해주세요.’

    이렇게 기도를 드리면 우연인지는 모르지만 그렇게 돼요. 내가 기도한 것이 그대로 이루어지면 하나님이 복을 주셨다고 생각을 하지요. 그리고 다녀와서 감사기도를 하는 겁니다. 이런 기도를 통해 어려운 미국 생활을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공 치기 전에는 말하지 말라”

    호쾌한 최경주의 샷. 최경주는 힘과 힘이 대결하는 PGA대회에서 두 번 우승을 거머쥐었다.

    신앙생활 이야기만 나오면 말이 길어진다. 그냥 내버려두면 인터뷰가 아니라 신앙 간증이 될 판이다. 비신자들은 최경주가 말하는 기도의 힘을 일종의 정신수련이라고 이해하면 될 것이다.

    메이저 대회는 마스터스, 브리티시 오픈, US오픈, PGA챔피언십 넷이다. 최경주는 아직 메이저 대회에서 우승을 낚지 못했다. 메이저 대회에서 우승을 하면 어떻게 달라지는지 최경주에게 직접 들어보는 것도 의미가 있으리라.

    “엄청나게 달라지죠. 그때는 기자가 이렇게 저를 직접 만날 수 없습니다. 대회에서도 경호가 붙어요. 격이 달라지는 겁니다. 아마 내가 메이저 대회에서 우승하면 고국의 팬들도 변화를 실감할 수 있을 거예요. 그때는 정말 내 몸이 아닐 거예요.

    메이저 대회는 전세계 텔레비전으로 중계됩니다. 4일 동안 매일 7시간을 방송합니다. 내가 만일 메이저 대회 3일 혹은 4일째 선두로 나선다면 K. J. CHOI의 고국인 사우스 코리아는 물론 완도라는 작은 섬 이야기까지 나올 겁니다.”

    ―메이저에서 반드시 우승을 해봐야 되겠군요.

    “앞으로 3년 정도 준비를 철저하게 할 생각입니다. 기도도 해야겠죠. 메이저 대회에서 우승을 하면 저는 물론 한국에도 엄청나고 획기적인 변화가 올 겁니다.”

    최경주는 PGA 우승 직후라 전체적으로 자신감이 넘쳐흘렀다. 메이저 대회에서 우승하고 나면 그런 자신감은 한껏 더 부풀 것이다. 바쁜 시간을 쪼개 인터뷰에 응해준 최경주에게 나쁜 이야기를 하고 싶지는 않지만, 더욱 대성한 그를 보고 싶은 뜻에서 한마디만 걸치고 지나가려고 한다.

    자신감이 과한 나머지 ‘챔프의 풍모’에 영향을 미치는 선까지는 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홀인원은 딱 두 번

    전남 완도에서 태어난 섬소년 최경주는 화흥초등학교 시절 축구, 씨름, 투창 선수로 활약했고 완도중학교 때에는 역도선수로 뛰었다. 체육특기생으로 완도 수산고에 진학했다가 박현덕 체육교사의 눈에 띄어 골프와 인연을 맺었다.

    박교사는 어린 학생들을 조기에 발굴해 골프 선수로 키우겠다는 뜻에서 최경주 등 다섯 명을 선발해 샷 연습을 시켰다. 당시에 주변 사람들로부터 ‘집안 형편도 좋지 않은데 무슨 골프냐’며 면박을 당하기 일쑤였다.

    최경주는 골프연습장을 처음 보고 ‘꿩 사육장에서 골프를 치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골프연습장이 먼 곳에 있어 부친이 운전하는 경운기를 타고 다녔다. 완도군에서 하나뿐인 골프연습장에서 공을 줍고 청소와 온갖 궂은 일을 하면서 타석이 비는 틈을 이용해 연습을 했다. 독학하다시피 골프를 시작한 지 3개월 만에 박교사의 손에 끌려 난생 처음 광주 송정리 공군부대 골프장에 가, 생애 첫 공식 라운딩에서 90타를 쳐 주위 관계자들을 놀라게 했다.

    1년여 만에 70∼74타의 놀라운 기량을 뽐낼 만큼 급성장했고, 완도 수산고 2학년 때 전남 영암이 고향인 서울 한서고 재단이사장 김재천씨의 눈에 띄어 한서고로 전학, 본격적인 골프선수의 길에 들어섰다.

    ―우연한 계기로 골프에 입문해 인생이 완전히 바뀌었다고 할 수 있겠네요.

    “그렇죠. 역도를 계속했다면 시골 학교 코치나 하고 있었겠죠.”

    ―홀인원과 이글은 몇 번이나 했습니까.

    “이글은 셀 수가 없고 홀인원은 딱 두 번 해봤습니다. 한국에서 한 번, 미국에서 한 번. 이글은 글쎄요, 1년에 6~7개씩 한 것 같네요.”

    ―주말 골퍼들에게 ‘신동아’ 지면을 통해 원 포인트 레슨을 하나 해주신다면요.

    “절대 공 치기 전에 말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말을 하면 공이 5야드 10야드, 빗나갑니다. 왜 그러냐 하면 말을 하면 샷에 대한 메모리가 멈추고 말과 관련한 연상을 하게 되기 때문이지요. 공을 앞에 놓고 말을 하면 뇌의 작용이 공을 치는 것에서 말에 대한 연상으로 바뀌는 겁니다. 공 치는 메모리가 잘 작동되지 않습니다. 중요한 얘기예요. 집중력과는 좀 달라요. 공 치기 전에 말을 하면 그만큼 손해입니다.”

    ―일단 티를 꽂고 공을 올려놓고는 말을 하지 말라는 이야기입니까.

    “그 전부터 말을 하면 안됩니다. 티 박스에 올라가서부터는 말을 안해야 합니다.”

    ―큰 대회에서는 갤러리들이 따라다니며 소음을 내지 않습니까.

    “그런 소음과는 다릅니다. 소음이 나도 내가 뇌에서 공을 어떻게 쳐서 어디로 보낸다는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밖의 소리를 들어서 생각을 바꾸는 것과 자체에서 생각을 하는 것과는 큰 차이가 납니다. 공에 집중하면 옆에서 누가 뭐라고 해도 잘 안 들립니다. 메모리가 작동하니까요.”

    ―88컨트리클럽은 국가보훈처에서 운영을 하는데요, 어떤 경위로 헤드프로를 맡게 됐습니까.

    “1995년에 88컨트리클럽에서 첫 우승을 했는데 코스가 참 편하다는 느낌을 가졌습니다. 여명현 사장의 배려로 헤드프로를 맡게 됐죠. 그 전에는 88에 헤드프로 자리가 없었어요. 내가 미국 갈 때는 88 운영위원들께서 힘을 합쳐 돈을 마련해줘 미국에서 여유를 갖고 연습에 몰두할 수 있었습니다.”

    시즌 중에는 절대 금주

    ―부인은 투어에 함께 다닙니까.

    “함께 다닐 때도 있고 안 다닐 때도 있어요. 아들이 학교에 다닙니다. 둘째 는 한 살 난 딸입니다. 항상 따라다니지는 못하고 금요일에 왔다가 일요일에 집으로 갑니다. 남편이 시합할 때는 집에서 기도를 해줍니다. 쇼핑도 안가고 아이들 돌보면서 일주일 내내 기도하는 거죠. 그리고 시합이 끝나면 쇼핑이나 그동안 못했던 일을 합니다. 아내의 기도를 생각해서라도 한 타 한 타 소중하게 쳐야겠다고 다짐하지요.”

    최경주 성도의 신앙간증은 비신자 독자들이 지루해할 것 같아 이 정도로 줄인다.

    ―휴스턴은 미항공우주국(NASA)이 있는 도시죠. 언제 이사갔습니까.

    “2001년 2월에 이사를 갔죠. 미국에서 성공하기 전이라서 그렇게 좋은 집을 사지는 못했습니다. 잭슨빌 집보다는 조금 나은 집이지만 지금 수준으로 따지면 조금 미흡하죠. 50만달러 정도 주고 샀습니다. 나의 골프 역사를 만든 집이라서 애착이 갑니다. 우리 부부가 고생해서 집을 마련하고 그 집에서 골프 역사를 쓴 이야기를 공개하고 싶습니다.”

    ―골프 외에 어떤 취미가 있습니까.

    “몸 관리를 위해 헬스를 합니다. 스트레칭하면서 몸이 이렇게까지 유연해질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만족감을 느끼기도 해요. 몸이 유연해야 공이 잘 맞으니까. 집에서 놀 때는 영어실력을 키우기 위해 미국 영화를 주로 봐요. 뉴스는 조금 지루하지만 많이 보려고 노력해요.”

    ―투어할 때는 어떤 음식을 먹습니까.

    “투어할 때는 100% 양식을 먹고 집에서는 한식을 먹습니다. 나는 토종이라서 김치찌개, 제육볶음 같은 것을 좋아합니다.”

    ―술은 어느 정도나 합니까.

    “시즌 중에는 한 잔도 안 합니다. 그러니까 1월1일부터 정규 PGA 투어가 끝날 때까지는 맥주 한 컵도 안 해요. 이제까지 해본 적이 없어요.”

    PGA 투어는 1월6일에 시작해 11월10일경까지 48개 대회가 열린다.

    ―골프 시즌이 끝나야 위스키 시즌이 시작되겠군요. 주량이 어느 정도입니까.

    “주량은 소주 2∼3병입니다. 폭탄주는 10잔, 20잔도 가능해요. 그런데 폭탄주 스무 잔 마신다는 말은 안 쓰면 좋겠네요.”

    ―체력이 강하니 술에도 강한 것 아니겠습니까. 20잔 마시고 취한 나머지 실수한 일은 없나요.

    “실수 안해요.”

    ―한국은 골프장 회원권이 집 한 채 값과 맞먹습니다. 높은 그린피와 교통난 등으로 골프를 즐기기에 좋지 않은 환경입니다. 골프 대중화를 위해서 무엇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까.

    “코스가 더 많이 생겨야 합니다. 세금도 반 이상 줄여주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보통 사람들도 쉽게 접할 수 있고 뛰어난 선수가 나올 수 있습니다. 매스컴에도 책임이 있어요. 골프는 사치스러운 운동이 아닙니다. 골프 재능을 지닌 학생이 학교 골프부에 들어가고 싶어도 사회적 거부감 때문에 야구부나 축구부로 돌리게 됩니다.

    미국에서는 택시 운전기사도 시간 나면 골프 칩니다. 직접 카트를 끌고 치면 2만원 정도면 되니까요. 한국은 코스는 적고 수요는 많으니 자연히 그린피가 비싸지는 거죠.

    한국에서는 그린피를 마구 올려도 골프장 수에 비해 골퍼의 수가 많아 골프장이 유지됩니다. 골프 코스를 많이 건설하고 세금도 낮추어야 합니다.”

    ―청와대에서 체육훈장 받을 때 김대중 대통령이 뭐라고 하던가요.

    “남자 골프 우승이 더 어려운 것을 알고 계시더라고요. 김대통령께서는 취임 후 공무원의 골프장 금족령을 풀어준 이야기를 하시더군요. 김영삼 대통령 때는 공무원들 골프 못 치게 하지 않았습니까.”

    ―한국과 일본에서 열린 월드컵 축구경기는 시청했습니까.

    “미국 동부 시간으로 새벽 2∼4시경에 경기가 벌어졌는데 한국 경기는 빼놓지 않고 다 봤어요. 원래 축구를 좋아합니다. US오픈을 앞두고 잠을 푹 자야 하는데도 새벽에 일어나 경기를 봤어요. 잠이 부족하니까 공이 잘 안 맞더라구요.”

    ―골프 경기에 나쁜 영향을 미치리라는 걸 알면서도 잠 안자고 월드컵 경기를 봤다니 놀랍군요.

    “일단 축구가 중요하지 않습니까. 16강, 8강, 4강 올라갈 때마다 신이 났어요. 텔레비전을 못 봤으면 아마 공이 더 안 맞았을 거예요(웃음). 골프는 이겨도 좋고 져도 좋았어요. 마지막 4강전에서 우세한 경기를 하고서도 골로 연결시키지 못하더군요. 골프로 치면 퍼팅이 미숙했다고 할까요. 운이에요. 하나님 뜻이 그런 거죠. 만약에 결승까지 갔으면 온 나라가 월드컵 열풍에 말려 일도 못했을 거예요. 적당한 시기에 잘 진 거라고 생각해요.”

    ―IMG에서 뭘 어떻게 관리해줍니까.

    “스케줄 관리를 비롯해 나와 관련된 건 다 해요. 언론 인터뷰도 IMG를 통해야만 할 수 있지요. 이번 ‘신동아’ 인터뷰도 IMG를 통해 들어왔지만 내가 ‘노’ 하면 ‘노’ 할 수 있는 거예요.”

    ‘노’를 안해 고맙지만 기왕 인터뷰를 하면서 이런 말은 안했으면 더 좋을 뻔 했다. 어려운 성공을 일구어낸 데서 오는 자족감이 크다 보니 그러려니 하고 이해해주고 싶다.

    ―미국에서 자신의 기사가 난 신문을 봅니까.

    “비행기에 실려 온 신문을 며칠 뒤에 보게 됩니다. 인터넷으로 뽑아서 보기도 하고….”

    ―부인도 골프를 합니까.

    “칠 줄은 아는데 시간이 없죠.”

    인터뷰를 마친 뒤에 다른 일정은 없고 서울로 직접 차를 몰고 올라간다고 했다. 처음에 인터뷰를 20분밖에 할 수 없다고 해서 다른 일정이 있는 걸로 생각했다. 인터뷰가 일단 진행되자 솔직하고 진지하게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 보여주었다.

    밤 10시였다. 인터뷰가 지연돼 한편으로 미안한 마음도 들었지만 밤이 깊어 차가 잘 빠질 테니 도착시간은 비슷할 거라고 생각했다.

    재능 발굴, 집념, 노력, 그리고 엄격한 자기관리가 어느 분야에서건 성공한 인간을 만들어낸다. 이것이 최경주를 만나고 나서 얻은 느낌이다. 그가 올 시즌에서 메이저 대회 우승이라는 ‘기적’을 만들어내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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