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소설 ‘진실이 말소된 페이지’를 펴낸 손아람(27)씨. 수년 전 힙합그룹으로 활동할 당시 이미 특이한 이력(서울대 출신, 멘사회원)으로 화제가 된 바 있는 인물이다. 음악활동을 접고 소설을 낸 지금도 자신의 ‘이력’에만 쏟아지는 언론의 관심을 불편해 하는 그의 모습은 주류 문화산업과는 ‘결이 다른’ 자신의 정체성을 정확히 반영하는 듯했다.
2003년 해체된 ‘진실이 말소된 페이지’(이하 ‘진말페’)에서 활동했던 손씨가 자신의 그룹이름을 따서 펴낸 소설은, ‘진정한 힙합’을 꿈꾸던 젊은 뮤지션이 좌절하는 과정을 그렸다. 한마디로 자전적 소설이다. “20대의 젊음에 대해, 꿈과 좌절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고 그는 말한다.
손 전도사, 오 박사, sid로 구성된 ‘진말페’는 1세대 언더그라운드 힙합그룹으로 신촌과 홍대 일대를 누볐다. 힙합 팬들 사이에서는 기린아로 통할 만한 활약이었다. 여러 음반사의 러브콜을 받던 이 ‘촉망받는 그룹’은, 그러나 어느 날 갑자기 해체를 결심했다. 가수를 돈 버는 수단으로만 여기는 제도권 음반산업이 벽이었다.
“언더에서는 하고 싶은 음악을 하면 됐는데, 음반사는 ‘대중성’ 운운하며 음악적인 부분에 타협을 요구했어요. ‘음악은 작곡가에게 맡기고 너희는 방송이나 해’라고 하더군요. 매일 곡을 들고 찾아갔지만 돌아온 한마디는 ‘이 노래엔 뽕끼가 없어’였고요.”
소설이다 보니 일부 픽션도 가미했지만, “이름만 가리는 건 의미가 없을 것 같아” 작곡가 김도현, 가수 조PD를 비롯한 많은 대중음악계 인물을 실명으로 등장시키기도 했다고.
어려서부터 문학에 관심이 깊어 꾸준히 습작을 써왔다는 손씨는 “앞으로도 다양한 장르의 소설을 계속 쓰고 싶다”고 했다. 이렇게, 남이 겪지 못한 경험과 남이 갖지 못한 시각을 지닌 소설가 한사람이 세상에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