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른 체구, 얼굴 반을 덮는 안경, 꺼벙한 표정이 트레이드마크였던 가수 이상우. 한동안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그가 발달장애를 지닌 아들 승훈이와 함께 근황을 알렸다. 지난 10년간 사업에 매진하는 틈틈이 노래를 계속 불러왔다는 그는 승훈이를 위한 ‘어떤 일’에 골몰해 있었다.
1997년 신곡 6집 앨범 발표 후 점차 팬들의 시야에서 멀어진 그가 지난해 가을 TV에서 반가운 모습을 드러냈다. 발달장애아인 아들 승훈(15)이와 가족의 일상을 그린 휴먼 다큐멘터리 ‘고맙다, 아들아’(KBS2 인간극장)를 통해서다. 닷새 동안 이어진 방송은 전국의 시청자를 가슴 뭉클한 감동에 젖게 했다.
“방송 후 발달장애아 어머니 한 분이 전화를 걸어왔어요. 그동안 아이가 장애라는 걸 숨겨왔는데, 이젠 떳떳하게 드러내놓고 얘기한다고요. 이게 너무 감사한 일이에요. 사람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다는 것. 장애아를 키운다고 모두 불행하게 사는 건 아니거든요. 행복하게 살고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방송출연을 흔쾌히 결정한 건 아니었다. 6개월에 걸친 제작진의 끈질긴 설득이 있었다. 가족이 모두 대중에게 노출되는 것부터가 부담스러운 데다 ‘잘해야 본전’이라는 생각 때문에 망설였다고 한다. “힘들겠다, 기운 내시라”는 말도 듣기 싫었다. 누구나 살면서 힘들 때가 있는데 특별히 더 힘들겠다는 말을 듣는 게 달갑지 않았다. 그럴 땐 “당신은 사는 게 안 힘드냐?”고 묻고 싶어진다. 다행히 방송이 나간 후 “승훈이가 참 예뻐요”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더 많아 고마웠다.
‘통기획, 묶음판매’
이제 ‘10년차 사업가’인 그이지만 대중에겐 아직도 ‘가수 이상우’가 더 익숙하다. 또 소심하고 어리벙벙한 캐릭터를 연기하는 배우라는 친밀감도 여전하다. 예전처럼 TV에서 노래 부르는 모습을 보기 어려운 팬들은 아쉬움이 크다. “왜 노래를 안 부르느냐?”는 물음에 “TV에 잘 안 나와서 그렇지, 최근까지 미사리 카페에서 일주일에 세 번 무대에 서고 백화점 행사에 출연하는 등 ‘찔끔찔끔’ 활동을 계속해왔다”는 답이 돌아왔다.
하지만 앞으로 당분간은 미사리 카페에서 노래 부르는 모습도 보기 어렵게 됐다. 1월부터 활동을 접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그가 대표로 있는 원업엔터테인먼트가 마련한 ‘컬처엠’ 공연 준비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대중음악, 클래식, 뮤지컬, 연극 장르에서 최고로 손꼽히는 스타를 포함해 10개 팀으로 구성, 2월부터 12월까지 릴레이 공연을 펼친다. 연중 펼쳐지는 컬처엠 콘서트를 보려면 회원으로 가입한 뒤 원하는 공연 두 개 이상을 패키지로 골라 예약하면 된다. 일반적으로 공연은 기획사가 하나의 공연물을 기획해 표를 파는 단발 형식이다. 그에 비해 컬처엠 공연은 여러 공연물을 한꺼번에 기획, 패키지로 묶어 티켓을 판매하는 새로운 방식이다. 이는 몇 년 사이 방송·연예시장 환경이 급변한 데 따른 발 빠른 대응에서 나왔다.
“1999년 사업에 뛰어들 때와 달리 최근 연예 매니지먼트와 음반 제작, 프로그램 제작 등 콘텐츠 제작을 둘러싼 엔터테인먼트 비즈니스는 한계에 다다랐어요. MP3 때문에 음반을 내도 안 팔리고, 배우는 돈을 다 줘야 붙어 있고, 방송제작은 방송국 좋은 일 다 시키고…. 또 영화는 투자배급사가 돈을 벌지 콘텐츠 회사는 못 벌거든요.”
한동안 과거와 달라진 비즈니스 환경에서 어떻게 해야 돈을 벌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이어졌다. 그가 내린 결론은 ‘엔터테인먼트 회사는 마케팅을 해야 한다’는 것.
이상우씨는 “승훈이가 없었다면 또 다른 세상을 알지 못했을 것”이라며 승훈이를 ‘인생의 스승’으로 꼽는다.
컬처엠 공연은 전자에 속하는 방식이다. 그에 따르면 국내 공연관람 인구는 한 해 30만~40만을 헤아린다. 관람료가 비싸다고 외면하는 사람들을 공연장으로 끌어들여 저변을 넓혀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우리는 △최정상의 고품격 공연을 △합리적인 가격에 △골라 볼 수 있는, 세 가지 모토로 사람들을 공연장으로 끌어들일 겁니다. 관람료가 싼 공연은 질적으로 완성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는데,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유통구조를 획기적으로 바꿔 ‘통기획, 묶음판매’ 전략을 도입한 거죠. 차이는 있지만 보통 공연 하나를 무대에 올리는 데 드는 마케팅 비용이 1억~2억원입니다. 컬처엠 공연은 10개 공연을 기획해 제작과 프로모션, 마케팅 활동을 한꺼번에 묶어서 하기 때문에 비용을 절약할 수 있죠.”
조수미, 구라모토, 윤도현…
현재 계약을 끝낸 10개 팀은 조수미와 유키 구라모토의 클래식 공연, 뮤지컬 ‘시카고’와 ‘뽀로로와 요술램프’, SG워너비·빅마마·박강성&심수봉, 윤도현 밴드의 콘서트, 연극 ‘백설공주를 사랑한 난장이’, 웃찾사&개그야&컬투패밀리의 기획공연이다. 이들 최정상급 공연을 보는 데 드는 비용은 2만~3만원으로 저렴하다.
그는 지난 4개월 동안 공연 팀 섭외를 위해 직접 발로 뛰며 열정을 쏟았다. 내로라하는 아티스트들을 섭외하느라 “무지 고생했다”는 그를 특히 애타게 한 이는 세계 정상의 소프라노답게 연중 스케줄이 빽빽한 조수미씨다.
“조수미씨의 한국 공연은 친동생이 관리하는데, 이 친구가 마음이 무척 따뜻해요. 발달장애아를 위한 공연이라고 했더니 기꺼이 돕겠다면서 유럽, 일본으로 누나를 쫓아다니며 시간을 빼냈죠.”
라이브 무대에서 톱으로 꼽히는 모 가수는 공연 계약서를 쓰기로 약속한 하루 전에 돌연 의사를 번복하는 바람에 밤늦게 그를 만나러 인천까지 달려간 이씨는 빈손으로 돌아서야 했다. 그래도 짧은 시간에 어려운 계약을 성사시킬 수 있었던 건 ‘인간극장’ 방송 덕분이었다. 마침 가족 얘기가 한창 전파를 타던 중이라 발달장애아를 돕는 공연에 다들 흔쾌히 동참하기로 한 것. 그는 “돈을 많이 벌고 싶은데, 그건 내 주머니를 불리려는 게 아니라 승훈이와 같은 발달장애아에게 지속적인 도움을 주고 싶기 때문”이라고 했다.
국내 공연관람 인구 증가, 고품격 공연 공급 확대, 대표 콘서트 브랜드화를 목표로 기획된 컬처엠 공연은 지난 1월 말 모 홈쇼핑에서 1시간에 2억5000여만원의 티켓 판매 수익을 올렸다. 금융계 고위 인사 몇 명을 통해 팔려나간 티켓 액수만 무려 10억원에 달한다. 돈을 많이 벌고 싶은 그의 바람은 현재까지 순항 중이다. 공연 수익금과 기업 후원을 통해 모은 기금으로 그가 가장 먼저 하려는 일은 발달장애아 후원재단 설립이다.
“승훈이를 키우다 보니 이게 아이 혼자 문제, 우리 가족만의 문제가 아니었어요. 장애를 가진 사람이 너무 많은데, 제가 할 수만 있다면 그런 사람들을 돕는 게 인생의 목표예요. 모든 사업의 초점을 여기에 맞추고 번 돈을 다 쏟아 부을 생각입니다.”
“내 인생의 스승, 승훈이”
이상우씨는 “발달장애아들이 모여 독립적으로 생활하는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 최대의 목표”라고 말한다.
이씨는 2집 앨범 수록곡 ‘그녀를 만나는 곳 100m 전’이 TV 가요 프로그램에서 연속 1위를 차지하며 인기 절정으로 치닫던 1993년 아내 이인자(42)씨와 결혼했다. 3년 뒤 그가 주저없이 “내 인생의 스승”이라고 말하는 첫아들 승훈이가 태어났다. 아이가 발달장애 진단을 받은 것은 생후 35개월 되던 해.
“처음 그 사실을 알고 난 뒤 석 달 동안 술에 절어 폐인처럼 살았어요. 그런데 무남독녀로 공주처럼 곱게 자란 아내는 저와 달리 승훈이를 끌어안고 억척엄마가 돼가는 거예요. 무지 미안했죠. 그런 아내를 보면서 ‘내 인생에 보통의 아이들과 조금 다른 아들이 있구나’ 하고 현실을 받아들였어요. 뒤늦게 정신 차린 거죠.”
발달장애란 신체적, 정신적 발달이 지체되는 질환군을 통칭하는 용어로 지적장애, 뇌성마비, 자폐장애, 전반적 발달장애 등을 포함한다. 이 가운데 전반적 발달장애는 언어를 이해하고 사용하는 능력, 전반적인 이해력, 타인과의 관계형성에 어려움을 보인다. 또한 작은 변화에도 어려움을 겪고 사물에 특이하게 집착하는 성향을 보이기도 한다.
“어떤 아이들은 가방의 지퍼만 보면 정신을 못 차리고 무조건 열어야 돼요. 지하철에서 사람들 가방에 달린 지퍼를 전부 열고 다니다 두들겨 맞는 경우도 있죠. 또 돌아가는 것만 보면 달려드는 애들도 있죠. 우리 승훈이는 바퀴가 돌아가는 걸 너무 좋아해서 무작정 자동차로 뛰어들다 사고가 날 뻔한 적도 있어요.”
현재 승훈이는 글을 읽고 쓸 줄 알며 숫자도 모두 익힌 상태지만 셈은 할 줄 모른다. 하지만 지난해 비장애인과 실력을 겨루는 전국수영대회에 나가 4위를 차지하면서 이씨 부부에게 새로운 희망을 안겼다. 승훈이는 집착증세 외에 분리불안증을 갖고 있다. 엄마와 단 한 시간만 떨어져도 어쩔 줄 모르고 힘들어한다.
“아이가 이제 중학생이 돼요. 혼자서 학교 갔다가 언어치료실에 들렀다가 수영하고 집에 돌아올 수 있어야 하는데, 아직 그걸 못해요.”
그는 아이를 손에서 놓지 못하는 아내를 답답해 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대판 싸우기도 했다. 승훈이의 진학 문제가 발단이었다.
“승훈이에게 적합할 것 같은 생태학교(대안학교) 한 곳을 찾았어요. 경북 영천에 있는데, 기숙사가 있어 승훈이를 주 4일만 그곳에서 생활하게 하자고 했죠. 우리 부부나 승훈이나 서로 떨어져 있는 고통을 극복해야 해요. 부모가 평생 옆에 있어줄 순 없잖아요. 그런데 아내가 펄쩍 뛰는 거예요.”
다행히 아내가 한발 물러서면서 타협의 실마리를 찾게 됐다.
LP판 100장에 감복한 투자자
1988년 부산 동아대 재학시절 MBC 강변가요제에서 ‘슬픈 그림 같은 사랑’으로 금상을 수상하며 가수로 데뷔한 그의 원래 꿈은 사업가였다. 경영대 응용통계학과를 지망한 것도 그 때문이다. 하지만 얼결에 가수가 된 후 마치 남의 옷을 빌려 입은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고 한다.
“원래 소박한 것을 좋아하는 성격이라 연예계 생활에 적응하는 게 쉽지 않았어요. 그뿐만 아니라 방송에서 말조심 해야지, 사생활 박탈당하지, 버거운 점이 있었죠. 끼가 없는 건 아니었어요. 초등학교 때부터 동요대회 나가서 상도 받고 중·고교 시절에도 계속 노래를 했어요. 대학 때는 밴드 활동을 했고. 끼는 있는 것 같은데 연예계 적응이 쉽지 않으니 참 부담스러웠죠. 그래도 일단 시작했으니 열심히는 했어요.”
대중의 인기를 뒤로하고 사업가로 변신한 데는 승훈이가 촉진제가 됐다. 일할 수 있을 때 열심히 벌어놓아야 나중에 승훈이가 생활하는 데 문제가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다행히 지난 10년간 의류사업, 놀이교육사업, IT벤처 기업투자가에 이어 엔터테인먼트 사업가로 변신하며 뛰어다닌 덕분에 ‘발달장애인을 위한 복지재단 건립’이라는 큰 꿈을 품을 수 있게 됐다.
“가수 시절에는 나 혼자 움직이면 되니까 뭐든 즉흥적으로 결정하고 실천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사업은 다르잖아요. 그래서 몇 년에 걸쳐 철저하게 준비한 뒤 시작했어요. 사업을 하려면 우선 계획이 서야 하고 뚜렷한 목표와 그에 따른 전략, 전술을 세우는 등 체계적으로 일을 해야죠. 노래하는 것보다 사업이 100배는 더 힘들지만 재미있어요. 성취감, 긴장감이 있어서 좋고, 돈 세는 맛도 있죠(웃음).”
그는 자본금 5000만원으로 출발해 140억원의 투자를 이끌어내는 수완을 발휘했다. 그중 33억원은 기업가들 사이에 투자받기 힘들다고 소문난 모 창업투자회사에서 받았다.
“그 회사 사장이 음악을 좋아한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청계천을 다 뒤져 LP 음반 100장을 사서 선물했어요. 그날 미팅이 끝나고 바로 술을 함께 마셨는데, 그건 투자하겠다는 얘기죠. 마침 사장이 음악을 좋아하고 제가 가수니까 운도 따랐던 거예요.”
일을 떠나 가족의 일상으로 돌아오면 요리하기를 즐기고 육아 정보를 꿰뚫는 자상한 가장이다. 6년 전 그는 장애아와 비장애아를 통합교육하는 기독교계 초등학교에 승훈이를 입학시키려고 1년 반 동안 주 2회 교회에 나갔다. 아내가 실내수영장과 체육관 등 훌륭한 시설을 갖추고 특수교사 수도 많은 그 학교에 아이를 꼭 보내고 싶어했기 때문이다.
입학의 전제조건은 아버지가 1년간 예배와 성경공부에 빠짐없이 참석하는 것이었다. 그는 목사인 매형과 신학대학을 졸업한 누나를 뒀지만 교회라곤 가본 적이 없었다. 마침 승훈이가 입학할 무렵은 회사를 설립해 한창 바쁠 때라 처음엔 아내에게 승훈이의 입학을 포기하라고 했다. 하지만 아내의 끈질긴 설득에 직접 학교를 둘러본 뒤 그도 마음을 바꿨다.
“1년 반 동안 예배를 빼먹은 게 딱 6번이에요. 보통 술 약속은 금요일에 많잖아요. 사업상 만난 사람들과 술 약속이 있는 날은 시간을 조금 당겨 저녁 6시에 모였어요. 저는 밥만 먹고 빠져나와 교회가 있는 수원까지 가서 ‘할렐루야!’ 하고는 다시 서울로 돌아왔죠. 그러면 밤 9시쯤 되는데 그때부터 폭탄주를 마셨어요. 그 짓을 1년 넘게 해서 결국 승훈이를 입학시켰죠.”
독립생활 가능한 발달장애 공동체
여느 아이들보다 부모 손길을 몇 배 더 필요로 하는 아들을 둔 아버지로, 사업가로, 가수로 살아온 그의 지난 삶은 듣기에도 벅차게 느껴졌다. 미사리 카페 무대에 서는 날은 귀가시간이 새벽 1시에 가까웠고, 주말이면 평일 내내 아이들에게 시달린 아내 대신 승훈이와 둘째아들 도훈(4)은 그의 차지가 됐다.
도훈이는 형과 열한 살 터울이다. 행여 승훈이에게 소홀해질까봐 그와 아내 모두 둘째 갖기를 꺼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가 죽고 나서 승훈이를 돌봐줄 사람이 아무도 없으면 어떻게 하나. 피붙이라도 하나 있어야지” 하는 심정으로 늦둥이를 봤다. 고개를 흔들며 신명나게 드럼을 치는 도훈이의 동영상을 보여주며 ‘흐흐흐’ 터지는 웃음을 감추지 못하는 그는 “끼가 장난이 아니어서 연예인으로 키울 생각”이라며 흐뭇해했다.
‘일인다역’을 감수하느라 잠시도 쉴 틈이 없어 보이는 일상을 어떻게 견뎌내는지 궁금했다. 그는 “원래는 무척 게을렀는데 스케줄이 꽉꽉 차니까 부지런을 떠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고 한다. 그에게 유일하게 주어진 혼자만의 휴식시간은 회사 근처 사우나에서 두세 시간 탕에 몸을 푹 담그는 월요일 오전이다.
지금까지 그가 발표한 앨범은 8장. ‘바람에 옷깃이 날리듯’ ‘그녀를 만나는 곳 100m 전’ ‘채워지지 않는 빈자리’ ‘하룻밤의 꿈’ ‘오! 사라’ 등이 특히 인기를 끌었다. 그 가운데 그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는 드라마 삽입곡인 ‘비창’이다.
“지금 들어도 싫증이 안 나는 명곡이라 좋아하지만, 너무 어려운 곡이라 컨디션이 안 좋으면 노래가 제대로 안 나와요.”
올해는 그가 가수로 데뷔한 지 꼭 20년이 된다. 하지만 기념앨범 발표나 콘서트 같은 이벤트 계획은 없다. 당분간은 사업에 전념할 생각이라는 것.
“노래를 하던 사람들은 그만하겠다고 접었다가도 무대가 생각나서 돌아온다는데, 저는 그런 거 별로 없어요. 하고 싶은 것 다 해봤다고 생각하니까 방송에도 별 미련이 없고. 처음부터 하고 싶어서 가수가 된 게 아니라서 그럴 수도 있죠. 어떤 가수들은 무대가 그리워서 텔레비전도 잘 안 본다는데 저는 안 그래요.”
지금 그의 관심은 온통 컬처엠 공연에 쏠려 있는 듯했다. 이번 공연의 예상 매출액은 90억~100억원, 예상 수익은 20억~30억원이다. 이 자금을 발판으로 발달장애아 후원재단을 설립하는 것이 첫 번째 목표지만, 그 후 재활센터와 재활학교를 세우고 운영하려면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수익원이 필요하다. 이 때문에 컬처엠 공연을 성공시켜 하나의 브랜드로 확립하는 것이 그의 간절한 소망이다.
“발달장애아는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대부분 갈 곳이 없어 더 이상 재활치료훈련도 못 받고 직업을 구할 수도 없어요. 독립적으로 생활하지 못하면 재활도 의미가 없는 거죠. 경기도 일산에 수녀님이 세운 쿠키 공장이 있는데 직원의 70%가 발달장애인이에요. 공장이 ‘사회적 기업’(취약계층 일자리 제공 등의 목적으로 노동부 장관 인증을 받은 기업)으로 인증받아 쇼핑몰, 백화점에 납품해요. 직업재활센터를 만들어 발달장애인들을 훈련시키면 이런 단순작업은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직업재활센터와 기숙사를 갖춘 공장 같은 공동체를 전국에 여러 곳 만들면 발달장애인들도 그곳에서 얼마든지 독립적인 생활을 할 수 있어요. 궁극적으로는 그런 시스템을 만들고 싶습니다.”
공동체 속에서 승훈이가 자신보다 더 불편한 친구들을 도우며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다면 그는 더 바랄 게 없다. 현재 국내 발달장애인 수는 5만~6만을 헤아린다.
“그들에게 딸린 가족까지 생각하면 이건 그들의 가정에만 책임지울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에요. 그들을 돕는 공동체를 하루빨리 세우고 싶어요. 승훈이도 5년만 있으면 스무 살이 되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