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에서 뛰고 있는 지은희(23·휠라코리아)는 일명 ‘미키마우스’로 불렸다. 170cm의 장신이 즐비한 요즘 골프 선수들보다 훨씬 작은 162cm의 키에 귀엽고 앳된 얼굴을 지녀서다.
하지만 최근 그의 별명은 진화하고 있다. 지난해 6월 LPGA투어 웨그먼스 대회에서 첫 승을 거둘 때 노르웨이의 프로골퍼 수잔 페테르센에게 “불도그 같다”는 얘기를 들었다. 당시 지은희와 우승을 다퉜던 페테르센은 경기 후 “한번 잡은 기회를 절대로 놓치는 법이 없다”며 혀를 내둘렀다.
이제 그에겐 ‘메이저 퀸’이라는 영광스러운 작위가 주어졌다. 최고(最古) 역사의 메이저 골프대회인 US여자오픈에서 짜릿한 역전 우승으로 정상에 올랐다. 대회 최종일 72번째 홀에서 6m짜리 극적인 버디 퍼트로 승리를 확정짓는 순간 수천 명 갤러리의 기립박수가 쏟아졌다. US여자오픈은 1998년 박세리의 맨발 투혼, 2005년 김주연의 마지막 홀 벙커샷 버디, 지난해 박인비의 역대 최연소 우승으로 한국여자골프의 매운맛을 전세계에 알린 무대다. 지은희도 화려한 역전 드라마의 주인공이 되며 이 계보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북한강에 스티로폼 부표 놓고 물에 뜨는 공으로 연습
지은희는 강과 호수로 유명한 경기 가평군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물가에서 놀던 그는 5세 때 청평호에서 수상스키를 탈 만큼 겁이 없었다. 아버지 지영기(54)씨는 수상스키 지도자로 국가대표 감독까지 역임했다.
다른 동료 골퍼처럼 지은희도 아버지 손에 이끌려 골프와 인연을 맺었다. 가평초등학교 6학년 때인 1998년 아버지를 따라 춘천의 한 연습장에 간 게 출발점이었다. 그 연습장에는 현 골프대표팀 한연희 감독이 레슨 프로로 근무하고 있었다. 한 감독은 지은희의 자질을 알아보고 골프를 적극 추천했다. 한 감독은 “작고 어린 나이에도 야무진 구석이 있었다. 수상스키로 단련된 하체 근력도 단단해 보였다”고 회고했다.
마침 박세리가 한국인 선수로는 처음 US여자오픈에서 우승하면서 골프 열기가 뜨거워지던 때라 이들 부녀는 ‘제2의 박세리’를 꿈꾸며 골프에 매달렸다. 환경은 열악하기만 했다. 가평군에 골프장은 물론이고 골프연습장조차 없던 시절이었다. 아버지 지씨가 “골프 치는 사람이라고는 가평에 6명밖에 없었다”고 말할 정도였다.
16년 구력에 핸디캡 5인 아버지 지씨의 헌신적인 뒷바라지가 없었다면 오늘의 지은희는 불가능했다. 딸에게 훌륭한 코치를 붙여주기 위해 발품을 팔며 전국을 돌아다닌 아버지는 1999년 아예 은행 대출을 받아 지인의 밭에 골프연습장을 차렸다. 북한강에 거리를 표시한 스티로폼 부표를 설치해놓고 미국에서 구입해 온 물에 뜨는 공을 치게 한 뒤 강에 뛰어들어 공을 수거했다는 일화는 아직도 유명하다. 지은희는 “공을 찾으려고 헤엄치는 아버지가 안쓰러워 공 하나라도 더 정확하게 치려고 애썼다”고 말했다.
지은희는 아마추어 시절 국내 최강으로 이름을 날리며 탄탄한 기본기를 갖췄다. 가평종합고 1학년이던 2002년 한국여자아마추어선수권에서 우승했다. 이듬해 한 프로대회에 나가서는 준우승을 차지해 함께 출전했던 자신의 우상 박세리에게 “큰 선수가 될 것 같다”는 칭찬을 들었다.
하지만 2005년 프로 데뷔 후 우승 문턱에서 번번이 무너졌다. 국내에서 준우승을 7번이나 했고 우승은 두 번에 그쳤다. ‘준우승 징크스’라는 말까지 나왔다. 무엇보다 마음에 문제가 있었다. 화려한 주니어 시절을 보냈기에 프로에서도 꼭 성공해야 한다는 부담이 컸던 탓이다. 이때도 아버지의 도움이 컸다. 아버지는 딸에게 다 걸기 위해 20년 가까이 몸담은 수상스키 대표팀을 떠났다. 대표적인 멘탈스포츠라는 골프에서 딸의 심리를 다스리기 위해 백방으로 뛰었다. 체육과학연구원에서 전문적인 심리 트레이닝을 받게 하기도 했다. 대회 때는 직접 캐디로 나섰다.
2007년 조건부 시드로 LPGA투어에 뛰어든 지은희는 2년여 만에 평생 잊지 못할 메이저 타이틀을 따내며 성공시대를 활짝 열었다. “이런 기분에 골프를 계속하게 되는가 봐요. 골프 인생에서 최고의 순간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