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4월호

최고참 소방관 이기환 소방방재청 차장

“쉽게 해줄 수 있는 소방검사, 돈 먹어야 해주는 풍토 사라져야”

  • 조성식│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airso2@donga.com│

    입력2010-04-02 11:3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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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방업무는 크게 화재진압, 구조, 구급 세 영역으로 나뉜다. 지난 1월 아이티 지진 참사 때 한국에서 날아간 119국제구조대는 열성적인 구조 활동으로 좋은 평을 들었다. 이를 계기로 소방관의 세계를 들여다봤다. 현역 최고참 소방관인 이기환 소방방재청 차장 인터뷰에 앞서 노원소방서 구조대원들의 현장출동에 동행했다.
    최고참 소방관 이기환 소방방재청 차장
    제가 업무의 부름을 받을 때에는

    신이시여,

    아무리 강렬한 화염 속에서도

    한 생명을 구할 수 있는 힘을 제게 주소서.

    너무 늦기 전에



    어린아이를 감싸 안을 수 있게 하시고.

    공포에 떨고 있는

    노인을 구하게 하소서.

    저에게는 언제나 만전을 기할 수 있게 하시고

    가냘픈 외침까지도 들을 수 있게 하시며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화재를 진압하게 하소서.

    저의 업무를 충실히 수행케 하시고

    제가 최선을 다할 수 있게 하시어

    저희 모든 이웃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고

    지키게 하여 주소서.

    그리고

    신의 뜻에 따라 저의 목숨을 잃게 되면

    신의 은총으로

    저의 아내와 가족을 돌보아 주소서….

    -소방관의 기도(Firefighter‘s Prayer)

    3월8일 오후 2시20분. 화재출동 경보가 울렸다. 노원소방서 소방대원들이 쏜살같이 차에 올랐다. 애애애애앵~. 두 대의 차량이 숨 가쁘게 움직였다. 취재팀은 구조대원들이 탄 뒤차에 동승했다. 방화복(방수복)과 방수모, 공기통, 면채(호흡을 위해 머리에 쓰는 마스크) 따위가 어지럽게 눈에 들어왔다. 5명의 구조대원은 차 안에서 방화복을 입고 기동화를 신고 공기호흡기를 준비했다. 앞차엔 화재진압팀장과 감식·조사대원들이 탔다. 요란한 사이렌 소리에 다른 차량들이 순순히 길을 비켜줬다.

    대원들은 무전으로 화재상황을 파악하면서 화재 발생 장소를 찾아갔다. 중계동 아파트 주변 상가 쓰레기 소각장. 소방차가 도착할 무렵 자체 진화로 불은 이미 꺼진 상태였다. 담뱃불이 원인이었다. 상황종료. 화재원인을 조사하고 기록하는 감식조를 뺀 나머지 대원들은 하릴없이 차에 올랐다. 이런 일이 잦은 탓인지 다들 무표정했다. 요즘은 화재가 많이 줄어 일주일에 한두 번 발생한다고 한다. 소방서로 돌아가는데, 또다시 출동지시가 떨어졌다. 이번엔 자살소동이라고 했다. 구조대원들은 차안에서 복장과 신발을 바꾸었다.

    최고참 소방관 이기환 소방방재청 차장
    ‘분노의 역류(Backdraft)’가 아니더라도 소방관 세계를 다룬 영화는 늘 가슴 뭉클한 감동을 준다. 때로 현실은 영화보다 더 극적이다. 평범할 때가 더 많지만.

    이기환(55) 소방방재청 차장(소방정감)은 현역 소방관 중 최고참이다. 1977년부터 근무했으니 올해로 34년째. 백발의 그는 중후하고 온화한 인상을 풍겼다. “사진보다 실물 인상이 한결 부드럽다”고 덕담을 건네자 “고맙다”며 웃는다. 연두색 넥타이와 백발이 묘한 대조를 이룬다. 소방방재청은 3월6일 ‘화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 ‘화재와의 전쟁’은 뭔가요.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전국 시도소방본부장과 일선 소방서장 등 220명이 청사별관에 모여 워크숍을 했습니다. 소방정책을 바꿔 후진국형 화재사고를 방지하자는 취지였습니다. 오전엔 사회저명인사의 강연을 듣고, 오후엔 발표 겸 토론회를 가졌지요. 마지막에 화재저감(低減)을 위한 전쟁을 선포했습니다.”

    ▼ 저감 정책의 핵심은?

    “지난해 12월4일 부산에서 발생한 실내사격장 화재처럼 다중이용업소 화재는 대부분 인명피해가 따릅니다. 그런 후진국형 화재는 관련자들에게 돌려주자는 취지입니다.”

    ▼ 관련자들에게 돌려준다는 게 무슨 뜻인지요.

    “소방검사를, 영업주를 비롯한 관계인들에게 돌려주자는 거죠. 그들이 자율적으로 점검하도록 말입니다. 또 하나는 피해를 보더라도 보상의 길이 없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다중이용업소는 의무적으로 화재보험에 가입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화재 발생은 감소 추세

    최고참 소방관 이기환 소방방재청 차장

    노원소방서 종합상황실.

    소방방재청은 2004년 6월 출범했다. 이 차장은 “1990년대부터 대형사고가 많이 발생한 게 출범 배경”이라고 설명했다. 1994년 10월 성수대교가 무너져 승객 32명이 죽고 17명이 부상했다. 이듬해 4월엔 대구 상인동 지하철공사장에서 일어난 대형 가스폭발사건으로 101명이 죽고 145명이 다쳤다. 그해 6월 발생한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는 502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대구 상인동 지하철 가스폭발사고 이후 재난관리법을 만들어야 한다는 얘기가 나왔어요. 1995년 소방업무를 관장하던 내무부 민방위본부가 민방위재난통제본부로 바뀌면서 소방관의 업무영역이 넓어졌습니다. 2003년 대구 중앙로 지하철방화사건이 일어난 후 국가재난관리개선기획단이 설치됐습니다. 그 후 소방방재청을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이 대두됐지요. 소방방재청은 한마디로 국가의 재난관리를 총괄하는 정책기관이자 집행기관입니다.”

    2009년에 발생한 화재는 총 4만7318건으로, 409명이 죽었고 2032명이 부상했다. 재산 피해액은 2518억5300만원. 화재원인을 유형별로 분석하면 부주의에 따른 실화가 가장 많고(2만2763건), 전기 관련이 1만786건이다. 방화는 756건이고 방화로 의심되는 화재가 2605건이다. 하루 평균 화재발생건수는 129.6건. 그에 따른 인명피해는 6.7명, 재산손실액은 6억9000만원이다. 이는 2008년에 비해 크게 줄어든 수치다. 화재발생건수는 4.7%, 인명피해는 10.1%, 재산피해는 34.3% 줄었다.

    화재 발생은 계속 감소하는 추세다. 올해도,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5% 줄었다. 화재가 감소하는 이유로 이 차장은 두 가지를 꼽았다. 건물 현대화와 화재안전에 대한 국민의식의 변화.

    소방방재활동은 화재, 구조, 구급 세 영역으로 구분된다. 화재는 줄었지만 구조와 구급은 증가 추세다. 구조의 경우 출동건수로 보면 2008년에 비해 2009년이 31.1% 늘었고(36만1483건), 처리건수는 41.1% 증가했다(25만7766건). 구조인원도 9만349명으로 6.8% 늘었다. 구급의 경우 1일 평균 이송인원이 9.3% 늘었고(3944명), 구급차 1대당 평균 이송인원도 11.6% 증가했다(1122명). 구조와 구급건수가 증가한 이유에 대해 이 차장은 이렇게 설명했다.

    “건물 붕괴시 피해자 구출과 같은 순수 구조활동이 아니라 생활안전사고에 따른 구조활동이 증가한 것이 주 원인입니다. 벌집 제거나 교통사고 구조가 많죠. 전체 소방업무를 분석해보면 구급이 40%, 화재가 25%, 구조가 15%를 차지하는데, 나머지 20%가 생활안전사고에 따른 구조입니다. 그걸 포함시키면 구조가 35%로 늘어나죠. 진정한 구조라고 할 순 없지만 현 체제에서는 신고가 들어오면 안 들어줄 수 없습니다.”

    최고참 소방관 이기환 소방방재청 차장

    현장으로 출동하는 119구조대.

    벌집 제거가 그토록 많다니. 기자가 의아해하자 이 차장은 진지한 표정으로 “사실입니다”라고 했다. 전날 기자는 예비취재로 서울소방재난본부 예하 노원소방서를 찾아가 2시간여 동안 소방대원들과 함께 움직였는데, 의외로 화재신고가 적었다. 이 차장에 따르면 노원서는 서울시내 소방서들 중에서 화재출동이 적은 편이다. 서울시내 22개 소방서의 하루 평균 화재출동건수는 60건. 영등포소방서의 출동횟수가 많은 편인데, 재개발지역과 낡은 건물이 많은 게 원인이라고 한다.

    자살소동

    노원소방서의 경우 구조 활동 사유를 보면 ‘화재현장’보다 ‘실내 갇힘’이 더 많다. 실내 갇힘이란 지체부자유자나 혼자 거동하기 불편한 환자를 구조하는 것이다. 멀쩡한 사람이 열쇠를 분실해 갇히는 경우는 정상적인 구조로 보기 어려우나 통계에는 다 구조로 잡힌다. 그밖에 구조 사유로 승강기사고, 교통사고, 산악사고 따위가 있었다. 구급사유로는 급만성질병이 가장 많고 추락, 낙상, 교통사고 따위가 뒤를 이었다. 노원서 통계에 대해 이 차장은 “다른 소방서들도 대체로 그렇다”고 했다.

    귀대 도중 출동지시를 받은 노원소방서 구조차량은 남산센터(서울종합방재센터)에서 알려준 위치를 찾아갔다. 새터민이 많이 산다는 임대아파트였다. 자살소동인 까닭에 구조대만 출동했다. 중도에 구급차 한 대가 합류해 뒤를 따랐다. 구조대원들은 구조장비를 꺼내들고 아파트로 뛰어올라갔다. 이런 경우 구조대의 임무는 잠긴 문을 따는 것. 하지만 이번에도 허탕을 쳤다. 안에서 문을 열어줬기 때문이다. 구조대원들은 “우린 가지” 하면서 아파트를 나섰다. 경찰관과 구급대원이 아파트 안에서 칼로 자신의 손목 인대를 자른 남자를 달랬다. 바닥에 피가 흥건하다. “이런다고 뭐가 해결돼? 빨리 병원으로 가서 치료하자고.” 취재팀은 구조대원들을 따라 밖으로 나왔다. 잠시 후 손목에 붕대를 감은, 짧은 머리의 사내가 화가 난 듯한 표정으로 걸어 나와 구급차에 올랐다.

    남산에 있는 서울종합방재센터는 서울 시내의 모든 119신고를 접수하는 곳이다. 자동화시스템으로 신고와 동시에 출동조가 편성된다. 예컨대 누군가가 노원구 월계동에서 119 신고를 하면 곧바로 노원소방서 소방대원들이 출동하게 된다. 센터에는 GPS가 설치돼 있어 신고가 들어오는 즉시 신고자의 전화번호와 위치, 주소가 화면에 뜨고 이 정보는 실시간으로 해당 소방서로 전송된다. 휴대전화로 신고하는 경우는 지역에 따라 위치가 곧바로 파악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소방정책 중에 일선 소방관들의 가장 큰 관심사는 3교대 실현이다. 3교대 근무자는 3일은 오전 9시에 출근해 오후 6시에 퇴근한다. 나머지 6일 동안은 하루 걸러 하루씩 3일만 일한다. 야근한 다음날엔 쉬고 그 다음날 다시 야근하는 형태다. 야근은 오후 6시에 출근해 다음날 오전 9시에 퇴근하는 것이다.

    현재 전체 소방인력은 3만3000명에 달한다. 이 중 외근을 하는 교대근무자는 2만6824명이고 47%에 해당하는 1만2632명이 3교대로 근무하고 있다. 나머지 소방관들은 2교대를 하고 있다. 2교대 근무자들은 24시간 일하고 24시간 쉰다. 즉 오전 9시에 출근해 다음날 오전 9시에 퇴근한다.

    서울시내 대부분의 소방서는 2교대 근무체제다. 22개 소방서 중 3교대 근무를 하는 곳은 사건이 많이 발생하는 강남서 중부서 종로서 동대문서 4개 소방서뿐이다. 그럼에도 3교대 비율이 높은 것은 서울을 제외한 타 시도 소방서에서는 3교대 근무가 많기 때문이다. 각 소방서 예하 119안전센터 구급대원들도 대부분 3교대 근무를 하고 있다. 2교대에서 3교대로 바뀌면 주당 근무시간이 84시간에서 56시간으로 줄어든다. 소방방재청은 인력충원과 소방력 재배치로 올해 안에 전면 3교대를 시행하겠다는 방침을 세워놓고 있다.

    광견 출현

    첨단 소방장비의 개발도 열악한 근무여건을 개선하는 데 도움을 줄 것으로 보인다. 화재 정찰 및 진압을 하는 로봇을 개발해 위험지역에 투입한다는 구상이다. 대원위치시스템도 개발돼 시범적으로 운용되고 있다. 현장 출동대원의 팔에 자동으로 위치가 추적되는 전자팔찌를 채우는 것이다.

    맞춤형 구조·구급서비스도 눈길을 끈다. 구급사각지대를 해소하기 위해 ‘농어촌 119구급지원센터’를 설치하는 계획이 눈길을 끈다. 2012년까지 175개 읍면에 설치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그밖에 대(對)테러구조팀과 119시민수상구조대가 신설될 예정이다.

    최고참 소방관 이기환 소방방재청 차장

    광견 출현 장소에 올무를 들고 뛰어가는 구조대원.

    노원소방서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대원들과 대화를 나눴다. 대원들의 얘기를 들어보니 불필요한 출동이 잦은 것 같았다. 흔히 일어나는 청소년 가출과 부부싸움 끝에 한쪽이 가출한 경우도 실종신고가 들어오면 출동해야 한다. 찾느라 고생만 하고 허탕을 칠 때가 많다. 이런 일은 보람도 별로 없다.

    한 대원은 화재현장에 출동해 건물 위에서 뛰어내리는 사람을 보호하기 위해 재빨리 매트리스를 까는 일이 가장 힘들다고 했다. 산악출동도 여간 힘든 게 아니다. 관할구역인 불암산 수락산 등지에서 조난사고가 발생하면 걸어서 올라가야 한다. 차량 통행이 안 되기 때문이다. 산꼭대기에서부터 환자가 누운 들것을 어깨에 메고 걸어 내려오면 어깨가 빠지고 허리가 꺾이는 듯한 통증을 느끼게 된다.

    오후 2시50분, 소방서까지 얼마 남지 않은 지점에서 또다시 상황이 발생했다. 엘리베이터 사고였다. 당현천 주변 한 아파트에서 엘리베이터가 멈춰서 승객이 갇혔다는 것이다. 소방차가 방향을 틀었다. 한 소방대원이 내게 “한번 나오면 계속 출동”이라고 말했다.

    엘리베이터 정지는 흔한 사고다. 해당 아파트를 찾자 대원들은 갈고리 모양의 쇠붙이 꾸러미를 비롯한 구조장비를 들고 차에서 내렸다. 사고가 난 층은 15층이었다. 대원들은 15층까지 빠른 걸음으로 올라갔다. 취재팀이 헉헉거리며 뒤를 쫓았다. 상황은 금방 종료됐다. 엘리베이터 문에 ‘엘리베이터 만능키’로 불리는 쇠붙이를 들이대자 쉽게 열린 것이다. 승객은 중년 여인 한 명이었다. 대원들에 따르면 ‘엘리베이터 만능키’로 열리지 않는 문은 거의 없다고 한다.

    오후 3시16분. 소방차가 노원소방서로 돌아왔다. 오후 2시20분에 출동했으니 거의 한 시간 만이다. 대원들이 차에서 내려 대기실로 올라간 지 10분도 안 돼 또다시 출동지시가 내렸다. 광견(狂犬) 출현!

    지난 1월 아이티 지진참사 당시 소방방재청은 119국제구조대를 파견해 한국 소방대원들의 성가를 드높였다. 국제구조대가 발족한 것은 1997년. 현재 구조대장을 포함해 41명이 6개반으로 편성돼 있다. 1997년부터 지금까지 모두 12회 출동했는데 지진 9회, 항공기 추락과 태풍, 쓰나미로 인한 출동이 한 번씩 있었다.

    “1999년 대만 지진 때 출동해 국제적인 명성을 날렸지요. 9세 어린이를 구출했거든요. 이 일을 계기로 한국과 대만을 오가는 민항기가 취항했습니다.”

    아이티 사태 때 활약한 소방대원은 모두 25명. 의료진 7명과 KOICA(한국국제협력단) 직원 2명, 적십자 직원 1명이 함께 출국했다. 파견기간은 1월15일부터 24일까지 9일간. 하지만 가는 데만 72시간이 걸려 실제로 구조대가 활동한 기간은 일주일이 채 안 됐다. 다만 5명은 1월30일까지 현지에 남아 방역활동을 하고 돌아왔다.

    “지진이 나면 일단 빨리 현장에 도착해야 구조가 가능합니다. 아이티로 가는 직항로가 없다보니 도착하는 데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아이티 사태를 계기로 향후 국제적인 재난 발생시 군수송기를 이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지난 2월25일 군수송기를 활용한 모의훈련도 실시했습니다.”

    그을음 씻어내려 막걸리 마셔

    이기환 차장은 대구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소방관이 된 데에 특별한 동기가 있었던 건 아니다. 공무원이 되는 길 중 하나로 선택했다는데, 내면적으로는 부친이 소방관을 지낸 것에 영향을 받았다. 부친은 경북 영주소방서장을 지냈다. 그는 “아버지에 대한 존경심이 있었다”고 했다.

    1977년 그는 경북지방소방공무원 공채 1기로 소방관의 길로 접어들었다. 경찰로 말하면 순경에 해당하는 소방사가 된 것이다. 2년 뒤 소방간부후보생 2기 시험에 응시해 합격했다. 간부후보생 교육과정을 끝내면 경찰의 경위급인 소방위 계급장을 단다. 소방위의 첫 보직은 소방파출소장이다.

    1980년 11월 그는 소방파출소장이 됐다. 첫 근무지는 대구 동부소방서 봉덕파출소. 직원은 파출소장인 그를 포함해 11명에 지나지 않았다. 5명이 2교대로 근무했다. 소방차도 2대밖에 없었다. 현장에 출동할 때는 사무실과 차고를 닫아놓아야 했다. 당시만 해도 소방업무라 하면 화재진압밖에 없었다. 구급활동이 시작된 것은 1982년이고, 구조대원들은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을 계기로 활동하게 됐다.

    초임인 봉덕파출소장 시절 그는 화재현장에 처음 가봤다. 주택화재였다. 당시엔 목조나 블록건물이 많아 화재에 취약했다. 전기합선이나 누전에 의한 화재가 많았다.

    최고참 소방관 이기환 소방방재청 차장

    화재현장에서 불을 진압하는 소방대원들.

    “처음이라 당황스럽긴 했죠. 펌프차를 타고 화재진압을 지휘해야 하니. 직접 불을 살펴봐야겠다는 생각도 했지만 현장에 들어갈 수 있을지 걱정도 했습니다. 5명이 출동했는데 좀 우왕좌왕했죠. 공기호흡기라는 게 없던 시절이었습니다. 방화장비라고는 방수복과 방수모밖에 없었죠. 요즘과 달리 매연이나 유독가스가 심하지는 않았습니다. 지금은 공기호흡기를 장착하지 않고 현장에 들어가면 5초도 안 돼 죽습니다. 화재현장에 갔다 오면 시커먼 그을음이 목 안쪽까지 차 있습니다. 목을 씻어내기 위해 막걸리를 많이 마셨죠.”

    1980년대 초반 삼덕파출소장을 지낼 때 그는 화재의 무서움을 실감했다. ‘초원의 집’이라는 디스코텍에서 화재가 났다. 2층 건물이었는데 계단이 몹시 좁았다. 불을 피해 달아나다 한 사람이 엎어지자 뒤따르던 사람들이 계속 걸려 엎어져 통로가 막혀버렸다. 97명이 사망했다. 대부분 질식사였다.

    ‘아버지의 깃발’

    일선 소방서 방호계장을 할 때의 일이다. 당직근무를 서는데 서울 노원동에 있는 자동차 부품공장에서 화재가 났다. 다행히 현장에 도착할 즈음 자체 진압이 됐다. 공장장은 화재 원인을 숨기려 했다. 현장 조사요원이 화재원인을 살피고자 라이터로 불을 켰다. 그 순간 공장 내부에 있던 유증기가 폭발했다. 조사요원은 머리카락이 타고 얼굴에 가벼운 화상을 입었다. 그는 “초급간부로서 현장 경험이 부족한 탓에 일어난 사고였다”고 회상했다.

    1995년 대구 상인동 지하철공사장 가스폭발사건 때는 간발의 차이로 목숨을 잃을 뻔했다. 당시 대구소방본부 방호과장이던 그는 매일 오전 7시 반에 출근했는데 상인동 지하철역 앞을 지나다녔다. 사고 당일 아침 감기약을 사러 지하철역 근처 약국에 가보니 문이 닫혀 있었다. 할 수 없이 길 건너편 약국으로 갔다. 역에서 100m쯤 떨어진 곳이었다. 약을 산 지 1분도 채 지나지 않아 쾅 하는 소리와 함께 지하철공사장에서 화염이 치솟았다. 가스가 폭발한 것이다. 지하철역 앞에서 정지신호를 받고 대기하던 택시와 승용차, 버스 등 차량들이 화염에 휩싸였다. 지하철공사장의 복공판이 6층 건물 옥상까지 날아갈 정도로 가스폭발의 위력은 대단했다.

    그는 발길을 되돌려 현장으로 달려갔다. 지하철역 앞 약국이 문을 열었다면 세상을 하직했을 거라 생각하니 등에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2차 폭발위험이 있다고 해서 다들 쉽게 접근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그는 지금까지도 잊지 못하는 감동적인 광경을 봤다. 한 민간인이 로프를 갖고 지하에서 다친 사람들을 구조하고 있었던 것이다.

    1998년 대구북부소방서장일 때 동료 소방관들이 순직한 사건은 지금도 그의 기억 속에 또렷이 남아 있다. 복개천 하수구에 빠진 여중생 3명이 실종됐다. 관할인 대구동부소방서 구조대원 4명이 금호강에서 고무보트를 타고 수색하다가 급류에 사고를 당했다. 보트가 보(洑)에 떨어지면서 뒤집힌 것이다. 구조대원들은 한 발을 보트에 묶은 상태였다. 그 탓에 헤엄도 치지 못하고 익사했다. 다행히 한 명은 발을 묶지 않고 있었다. 이 대원은 배에서 탈출했고 대구북부소방서 구조대원들에 의해 구조됐다.

    이 차장은 “당시 순직한 소방대원의 아들이 지난 3월 소방간부후보생으로 입교했다”고 흐뭇한 표정으로 얘기했다. 주인공은 이기웅씨. 순직한 부친(이국희)의 뒤를 잇고자 소방간부후보생 시험에 응시해 수석으로 합격한 이씨는 현재 간부교육과정을 밟고 있다.

    화재나 구조현장에서 순직한 경우 1억5000만원의 보상금이 나온다. 유족연금 지급 방식은 두 가지가 있다. 공무원연금법에 따른 유족연금은 근무기간에 따라 차이가 난다. 20년 미만 근무자의 경우 월급여의 55%, 20년 이상 근무자는 65%가 지급된다. 이에 비해 국가유공자법에 따르면 월 94만8000원의 연금을 받게 된다. 두 가지 방식 중 금액이 더 큰 쪽을 적용받는다.

    “죽어도 소방관 안 하겠다”

    후배 소방관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을 묻자 이 차장은 청렴성을 강조했다.

    “소방관에 대한 국민의 시각엔 양면성이 있어요. 긍정적 면도 있고 부정적 면도 있습니다. 119구조대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는 매우 높습니다. 반면 소방검사가 공정하거나 투명하지 않고 소방관들의 태도가 불친절하다는 부정적 인식도 있습니다. 그런 걸 고쳐나가야 해요.”

    김훈의 소설 ‘공무도하’에는 소방관의 절도행각이 나온다. 보석가게 화재현장에 투입됐다가 아무도 없는 곳에서 보석들을 주워 자신의 옷주머니에 집어넣는 장면이다. 이 얘기를 들려주자 김 차장은 “과거엔 종종 그런 일이 있었다”고 인정하면서 “요즘은 그런 일이 없어졌다. 장담할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그는 소방검사를 하는 소방관들에게 각별한 주의를 당부했다.

    최고참 소방관 이기환 소방방재청 차장

    은평소방서 구조대원들이 ‘만능키’로 엘리베이터 문을 열고 있다.

    “서울시내 소방관 5700명 중 188명이 소방검사 일을 맡고 있습니다. 쉽게 해줄 수 있는 일인데도 돈을 먹어야 해주는 못된 관행이 있는 게 사실입니다. 한 사람 잘못으로 전체 소방관이 욕을 먹게 되죠. 이런 일이 없어져야 합니다.”

    초급간부에서 출발해 최고위급 간부가 된 그는 부하직원들에게 “부당한 지시는 하지 않는다”는 지휘방침을 갖고 있다. 당연한 얘기지만, 그런 생각이 몸에 밴 데는 사정이 있다.

    “수십 년 동안 근무하면서 상사의 부당한 지시로 고통당한 적이 많습니다. 예를 들면 본서에서 계장이나 과장 지낼 때 주말당직근무를 바꾸려 해도 허락을 안 해줬습니다. 집안에 급한 일이 있거나 불가피한 사정이 생길 경우 동료와 협의해 근무시간을 바꿀 수 있잖습니까. 바꿔도 아무런 문제가 없으니. 그런데 서장이 허락을 안 해줘요. 내가 그 자리에 가면, 나는 부하직원들에게 그런 부당한 지시를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곤 했죠. 실제로 지켜왔고.”

    그는 아들 딸 하나씩을 뒀다. 아들은 대학 졸업 후 취업을 준비하고 있고 서울대 사대를 나온 딸은 올해 이화여대 로스쿨에 입학했다.

    ▼ 아들이 소방관 되겠다고 하면 어떡하시겠습니까.

    “소방관은 죽어도 안 하겠다고 합니다.(웃음) 나를 보고 있으니, 소방관은 안 할 것 같아요. 물론 한다고 하면 제가 말리진 않겠지만, 안 하면 좋겠어요.”

    ▼ 자신의 성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아버님이 다혈질이셨어요. 성질이 몹시 급하셨죠. 그 정도는 아니지만 저도 그런 기질이 있습니다. 평상시엔 큰소리 내는 법이 없는데, 몇 번 지시했는데도 고쳐지지 않으면 큰소리를 치게 됩니다.”

    그가 “직원 관리 측면에서 꼭 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고 했다.

    “직원들이 보고 때문에 제 방에 들어오는 경우 저는 항상 차를 한 잔 줍니다. 직원이 높은 사람한테 할 이야기가 10가지 있다면, 물을 한 잔 주면 2가지, 커피를 주면 3가지나 4가지 얘기하게 됩니다. 밖에서 술을 먹으면 다섯 가지를 얘기하고, 술도 먹고 밥도 먹으면 10가지를 다 얘기합니다. 그냥 앉아 있기만 해서는 아무 얘기도 안 나옵니다. 상하 간 대화가 안 되죠. 저는 이것만큼은 꼭 지켜왔습니다.”

    그는 “학교 선생이 꿈이었다”고 말했다. 지금도 미련이 남아 있다면서. 인터뷰는 별다른 감흥 없이 끝났다.

    산으로 달아난 광견들

    노원구에는 버려진 개가 많아 종종 광견 출현 신고가 들어온다고 했다. 소방차는 노원사거리를 지나 의정부 방면으로 한참 달렸다. 2교대를 하는 구조대원들에게 주말이나 휴일은 다른 세상 얘기다. 부족한 인력을 충원해 하루빨리 3교대가 실현되기를 바랄 뿐이다. 한 대원에게 “동료 중 순직자가 있었느냐”고 묻자 “1년에 한 번씩 구조훈련을 받는데, 지난해 로프 하강훈련 중 한 명이 사고를 당해 죽었다”고 말했다.

    신고자가 계속 통화 중이라 위치를 찾는 데 애를 먹었다. 노원구와 의정부시의 경계지점이었다. 차에서 내린 대원들은 바구니와 마취총, 잠자리채 모양의 올무, 쇠봉 따위를 들고 광견 2마리가 나타났다는 장소로 향했다. 아파트 뒷산이었다. 대원들을 맞은 신고자는 “개가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며 어색하게 웃었다. 한 대원이 “먹을 걸 주든지 해서 개가 제자리에 있게끔 유인해둬야지, 이렇게 돌아다니면 못 잡는다”고 푸념하듯이 말했다. “개 잡는다고 온 산을 다 뒤질 순 없잖습니까.” 쓴웃음이 나왔다. 간혹 개를 잡다가 물리기도 한단다. 구조대원들은 성과 없이 철수했다.

    소방서로 돌아오니 오후 4시가 조금 넘었다. 취재팀은 소방서 2층에 있는 구조대원들의 대기실을 둘러봤다. 대원들에게 가장 힘든 점을 묻자 역시 인원부족을 꼽았다. 팀장을 제외한 16명이 갑을 두 조로 나뉘어 활동하는데, 이런저런 사정으로 실제로 현장에 출동하는 인원은 한 조에 6명밖에 안 될 때가 많다는 것이다. 보수나 처우는 예전에 비해 많이 좋아졌다고 한다.

    “새벽에 출동할 때가 가장 힘들지요. 시민들에게 봉사한다는 자부심과 긍지가 없다면 현장에서 목숨 걸고 일 못 합니다.”

    2004년 소방방재청 출범 이후 5년간(2005~09년) 순직한 소방관은 31명이다. 현장(화재진압, 구조, 구급)에서 죽은 소방관이 19명, 교육훈련 중 사망한 소방관이 1명, 기타 11명이다. 유형별로는 화재진압 순직자가 15명으로 가장 많다. 공상자(公傷者)는 모두 1560명. 화재진압이 386명으로 가장 많고 구급(327명), 구조(181명), 교육훈련(168명) 순이다. 2009년의 경우 사고부상 원인 중 가장 많은 것은 실족(16.2%)이다. 그밖에 부상 원인으로는 교통사고, 허리부상, 추락, 전도, 충돌 따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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